• 최종편집 2024-04-18(목)
 

그렇다면 시편 본문으로 돌아와서 다윗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께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윗을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고, 심지어 그의 후손을 아들로 삼아 영원토록 그의 왕위가 견고하게 세우고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삼하 7).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께 자기를 버리지 말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신 것같이 다윗도 버리실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다윗의 언약을 파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유다 왕 아하스 때에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왕 르신이 군사 동맹을 맺고 아하스를 침공하여 그를 다윗의 왕좌에서 폐위시키고, 이름도 잘 모르는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삼겠다고 작전을 세웠다. 이 정보를 들은 아하스와 유대 백성들은 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이 무릎이 떨렸다고 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이러한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이들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징조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임을 알려 주신다. 다윗보다 200년 후의 일이다.
이것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버릴 생각은 없으시고, 다윗과의 약속을 변개하실 마음도 없으시다. 그렇다면 다윗이 염려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관계성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그의 아들로 삼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의 유업으로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400년이나 노예생활을 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노예에 관한 것 뿐이었다.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서 살아가려면 교육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했다. 40년의 광야 생활은 바로 노예 근성을 고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정신과 철학과 생활을 배우는 기간이었다. 매도 맞고 채찍도 맞았다. 다윗도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다.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의 죄를 은닉하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 장군을 암살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가정에 감내하기 힘든 벌을 내리셨다. 그의 아들 암살롬의 반역으로 왕자들이 몰살 당하고, 그의 아내들은 그의 아들에게 짓밟혔다. 그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궁을 버리고 피난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집안이 하루 아침에 다 풍지박산이 되 버렸다.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참기 힘든 아픔과 모욕과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전처럼 정상적일 수는 없었다. 다윗은 침상이 썩도록 눈물을 흘렸고, 그의 뼈마디가 흔들리도록 회개했다. 하나님은 그를 받으시고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그의 후손 가운데 “임마누엘” 메시야를 보내셨다(시편 32, 51).
우리 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죄인의 신분에서 아들의 신분이 되었다. 아담의 나라에서 새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민이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답게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예수님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흰 옷을 입으신 예수님과 높은 보좌에 앉아서 거룩하다고 찬송하는 천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 그 스스로가 자신을 심판할 것이다. 사실 신자들이 죄를 짓는 것은 고의적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행자지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가슴 속에 양심이라는 센서를 부착해 놓으셨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그 센서가 작동하여 경보음을 울리게 되어 있다. 당연히 그때 즉각 범죄 행위를 그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계속하여 짓고, 죄를 즐긴다면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하여 대항하는 행위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비뚜러지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져 있을 것이고, 너희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져 있을 것이다.”(마 18:18)라고 가르치셨다. 이 땅에서 사람들 사이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과 그 관계가 바르지 못하고 불편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바를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받기 전에, 그 자신에게 심판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에 그를 연단 시키고, 훈련시켜 바른 신자가 되도록 만드실 것이다
신자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고, 행실을 고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요일 1:6-7). 죄지은 신자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시고 고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훈련과 권징을 시행하신다. 사람들을 통해서 훈련시키고, 교회를 통해서 훈련을 시키시고, 때로는 직접 채찍을 드신다. 하나님의 채찍은 다윗의 경우처럼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이 땅의 신자들에게 사는 날 동안 필요한 것이고, 성도의 견인 교리는 하나님의 훈련과 채찍이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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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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