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1.jpg
흔히 하는 말 중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말이 있다. 구경이 아무리 좋다 해도 배불리 먹은 후에 하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세상은 온통 먹자판이다. 먹음으로 만족하고 힘을 얻고 생명을 유지함으로 모두가 먹는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영·육간에 먹을 것을 주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간 만나를 내려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사랑이며 큰 기적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은혜는 에수 그리스도를 이 땅위에 보내신 것이다.
그들이 먹었던 떡은 육신의 욕망을 의미한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고기와 떡, 부추, 마늘 등 자극적이고 육신적인 음식을 먹었는데, 이제 그런 음식을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육신의 욕망을 채워주는 음식들이지만 영혼을 채우지 못하는 것들이다.
오늘날 세속적인 교회에서는 애굽의 음식들로 가득 채우는 설교들을 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죄사함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잘만 믿으면, 헌금을 많이 내면 건강하고 그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는 육신을 위한 인간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들은 광야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육신적인 양식을 찾았고 그것을 찾지 못하자 원망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형적인 불신 세상의 표본 이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 들고 갈 영혼들이 하나님의 크신 선물인 천국을 보장 받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지만 여전히 육신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이스라엘은 70여 일 동안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을 다 먹어 버렸다. 그 때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초목도 구경할 수도 없었으며 더구나 식량을 파는 자도 없는 무인지경이다. 백성들은 허허벌판 메마른 사막에서 이제 굶주려 죽게 되었다고 아우 성 치다가 모세와 아론을 다시 원망 하기 시작 하였다.
그 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어 배부르게 먹게 하셨다. 여러분, 지상 인류의 삶의 실상을 살펴 보십시오. 현대를 사는 모든 인류는 삶의 굶주림에 배고파 한다.
살고 싶으데 살지 못하고 죽기 싫은데 안 죽을 수 없는 이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영원한 삶을 가지지 못한 삶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자를 가리켜 목자 없는 양이라고 하셨다.
식량 생산량의 70% 이상이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아르헨티나, 프랑스, 오스트리일리아 등지에서 생산 된다고 한다. 땅이 커서인가? 땅이 큰 것으로 말하면 아시아에서 중국도 있고, 인도같은 나라도 있다. 아프리카의 아프리카공화국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얼마나 큰 땅을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런 나라들을 통하여 세계 인류의 식량 부족을 채워 주시기도 하신다.
예수님의 설교의 절반이, 부의 소유와 소유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사람에게 재물 (빵·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입증해 주신 것이다. 재물에 대한 결정적인 영향력은 두 가지이다. 물질주의와 성서이다. 물질주의는 사람들에게 돈을 좋아 할 것을 가르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성서는 ‘돈에 미혹 되지 말아라’ 돈은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 하여라.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은 하나님의 축복 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서의 가르침 보다 물질주의에 매료되어 살고 있다. 그래서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악명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분이야 말로 세상을 구원하시려 오신 참 메시야이시다(요한6:14).
오병이어의 기사이적을 목도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남긴 말이다. 예수님은 너희 재물을 땅에다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그 분은 우리로 하여금 양식을 어떻게 보관하고 사용 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영구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다. 있다가도 없어지는 허무하고 믿지 못 할 재물이 아니라 때를 따라 필요한 양식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만나의 현대적 의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