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한 농부가 있었다. 봄이 되자 농부는 참깨를 밭에 심으려 했다. 하지만 준비된 씨앗이 없었다. 농부는 고민을 하던 중 마침 먹으려고 냉동실에 보관해둔 참깨 씨를 가져다 밭에 뿌렸다. 내심 싹이 안 나면 어떨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그 전 해에 봉지에 담아 보관했던 참깨보다 훨씬 더 많은 싹이 돋자, 농부는 씨를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좋은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참깨는 영하 20도의 냉동실에서 언젠가는 따뜻한 땅에 뿌려질 날을 고대하며 인내했을지도 모른다. 그 참깨 씨가 예년의 참깨보다 훨씬 더 많은 싹을 나게 한 것은 바로 인고의 결과였다. 만약 참깨가 냉동실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했더라면 아무리 훈훈한 흙의 가슴에 안겼더라도 생명의 싹을 틔우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참깨 씨 한 알도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는 인내의 힘이 있어야 자신을 싹틔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700년 만에 피어난 연꽃 이야기이다. 경남 함안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연꽃 씨앗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그 연꽃은 연못의 지하층에서 발견된 10개의 씨앗 중 한 개로 ‘아라 홍련’으로 명명된 꽃이었다.(2010년 7월 8일자 신문)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그 연꽃 씨앗은 얼마나 자신을 꽃피우기를 학수고대 했을까? 연꽃 씨는 조건이나 환경이 맞지 않으면 천년이 돼도 싹을 틔우지 않는다고 한다. 이 씨앗도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길고긴 세월을 인내하고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저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난 세월이나 지금이나 인내하지 못한 일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내 없이 연꽃 씨앗이 꽃을 피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또한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세상에는 신앙과 믿음이 아니라도 자기들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어려움을 기쁘게 감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저는 어느 책자에서 50년 동안 웃음 배달부로 살아온 영원한 코미디언 남보원씨와 뽀빠이 이상용씨의 이야기를 읽었다. 남씨는 연예계에 힘들게 데뷔했다고 했다. 성우, 아나운서, 영화배우, 탤런트시험을 다 떨어진 뒤 20대 후반에야 영화인 협회가 주최한 ‘스타 탄생’ 코미디 부분에 합격했다. 데뷔 후 첫 무대는 서울 시민회관이었다. 이 때 그는 현인, 최희준 등 당대 인기가수의 성대모사와 팔도 방랑기 등을 쏟아내 인기를 끌면서 이후 원맨쇼의 일인자가 됐다고 했다.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씨는 1989년 장교로 군 복무한 점이 인정돼 방송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를 진행해 인기 MC가 된 후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 지 40년이 흘렀지만 젊은 뽀빠이로 살고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도 많았는데 송해씨가 1925년생, 김동건씨가 1939년생, 그다음 세 번째 ’장수만세‘를 하는 방송인은 이 씨 라고 한다. 이 씨는 요즘도 전국을 돌며 해학과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강연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라‘이다.
어느 날 어떤 작가가 그에게 데뷔 40년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그는 여섯 살 때를 생각하면 덤으로 인생을 사는 인생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기구한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를 뱃 속에 넣고 아버지가 계신다는 백두산까지 걸어가다가 아버지를 못 만나고 친정인 부여에 오셔서 날 낳으셨지, 병 덩어리, 그 자체였고 못 먹어서 거의 시체이다시피 했지, 주위 친척 식구들이 이런 나를 보고 평생 걱정거리에다 어머니는 시집도 못 가는 신세를 만든다고 땅에 묻어버린 거야, 이를 본 이모님이 묻은 나를 꺼내 솜에 싸서 뒷산으로 도망갔다가 이틀 만에 데리고 내려왔고 이후 6년을 누워서 살았어, 결국 여섯 살부터 걸음마를 시작해 열두 살까지 온갖 병치레를 하면서 겨우 목숨을 이어나갔지‘ 하지만 그는 열세 살부터 아령을 시작해 열여덟 살에 미스터 대전고와 미스터 충남에 뽑혔다고 한다.
1966년에는 미스터 고려대(농대졸업) 응원단장을 지낸 뒤 ROTC 기갑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 제대 후 취직을 못해 번데기와 북어, 다시마 장수 등 22가지 외판원을 하다가 28세 때 TV에 나와 뽀빠이가 됐고 그때부터 ’덤‘ 인생을 살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약하게 태어나 가장 건강한 뽀빠이가 됐으니 더 바랄게 있나? 세상 어디에나 무엇에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지‘ 그는 건강 비결에 대한 질문에 ’자신감이지, 자신만만하게 사는 게 제일이냐, 덕분에 나는 아직도 바쁘게 일하고 있잖아‘라고 답했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30분까지 독서를 하고 두 시간 가량 아령과 역기로 건강을 다진다고 했고, 지금도 팔뚝 근육은 젊은 선수 못지않다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술과 커피,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고 식혜나 수정과 등을 주로 마신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 여당 측으로부터 대전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이씨는 ’국회의원은 4년밖에 못한다. 나는 영원한 뽀빠이가 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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