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장에는 모세를 통해 언약 백성들에게 주어진 각종의 생활 규범들이 계속되고 있다. 십계명의 제9계명의 거짓증거, 거짓 재판 금지 조항과 함께 원수에게 선을 행하고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 등을 언급하고 있다. 오늘의 사회는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내에 공의와 사랑 법과 정의가 힘이 아니라 돈이나 뇌물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천국은 결코 뇌물로 들어 갈 수가 없다.
우리 육신은 항상 눈에 보이는 크고 많은 것 보이는 힘을 의지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람 보다 다수의 힘으로 정의를 결정 짓는 경향이 있다. 인류가 점점 발달함에 따라 대중화가 가속되어 대중사회 문화로 발달 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대중으로 조직된 사회는 조직을 구성하고 있기 마련인데 잘못 형성된 여론에 좌우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형성된 여론은 개인이나 소수에 대한 무시와 제재를 가하는 심각한 오류를 발생하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다수를 따르는 악을 범치 말라고 하신다. 성경의 정의는 단순히 많다는데 있지 않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히셨는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유대 군중들의 소리에 굴복한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날 다수에 의한 행동과 악행들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가?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다수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을 때는 혼자서라도 담대히 진리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즉 진리에 어긋난 다수편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리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라 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하며 억울한 상대의 아픔을 깊이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엡 4:22절에서 “거짓을 버리고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한 지체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끼리 서로 거짓말 하는 것은 자기 지체를 속이는 것이고 자기 양심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거짓말 하지 말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그 주인에게 돌려줄 것을 명령 하셨다.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지거든 못 본체 하지 말고’ 그 나귀를 도와주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원수였던 죄인들이 길을 잃고 해매일 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요 14:6)무거운 죄짐을 지고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구원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랑이다. 즉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오신 대속의 역사이다. 그런데 한 지체이면서도 반목과 질시와 미워함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슬프고도 괴로운 일이다. 나무의 뿌리가 살아 있는 한 나무의 가지를 잘라내어도 그곳에서 더 많은 덧가지들이 자라난다. 그리고 벌은 때로 주인을 쏘기도 하지만 그들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꿀을 모은다.
이와 같이 우리를 괴롭 하는 원수를 위해 복을 빌 때 우리를 위하여 더 큰 은혜와 축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자.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 3:16).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 하라는 명령을 내리신다. 사랑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시고 신앙은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요 이웃을 위해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쓰라고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자신의 성숙을 위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 하지 않는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신의 요구대로 살아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감독자요 우리의 지도자이신 성령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한다. 거듭난 성도들은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뜻에 순종 할 때만 육신의 상징인 가나안 일곱 족속들을 쳐서 복종시킬 수가 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의 신을 섬기지 말고 숭배하지 말고 그들의 주상을 파괴 할 것을 명령하셨다.
여기서 주상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는 사각 기둥을 의미 하는데 이러한 석주들이 바티칸 광장을 비롯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돌기둥은 남성의 심벌로 상징되기도 하고 영적인 의미로 육신의 자아, 잘못된 성격이나 고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아직도 마음에 주상을 파괴하지 못하고 있는 증거이다. 우리의 육신의 자아인 주상을 파괴 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처럼 우리에게 놀라운 평강의 복을 내리실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싸움에서 실제로 승리로 이끄시므로 영적인 싸움에 담대해야 할 것이다.
ⓒ 교회연합신문 & www.ecumenicalpres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