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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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 요르단의 선교역사를 말하고자 한다. 요르단 하면 생각나는 곳이 두 군데가 있다. 첫째는 유명한 페트라 이다. 이곳은 사도 바울께서 회심 이후에 방문하여 사역한 곳으로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한 곳은 카락성 이다. 이곳은 십자군 전쟁 당시에 건립된 곳으로 천해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땅인 요르단은 지금은 무슬림의 땅이 되어서 기독교가 숨쉬기 어려운 형국이 되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이미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었다. 오늘은 선교사가 전해준 이야기들을 통해서 요르단의 개신교 선교역사를 펼치기로 하겠다. 이 자료는 참으로 귀중한 요르단의 선교역사 이다. 지난여름에 중동지방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세계선교역사를 강의 하였다. 그 때에 수강하신 선교사님들에게 본인이 사역하고 있는 선교지의  선교역사를 정리하여 레포트로 제출할 것을 요구 하였다. 오늘은 요르단에서 사역하고 있는 서정섭 선교사가 제출한 글을 중심으로 하여 요르단 선교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요르단의 선교역사를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기술하고자 한다.
요르단에는 1830년 미국의 회중교회(congregation church),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가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 걸프 지역에 왔다. 1850년에는 성공회도 중동에 들어오게 되고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바스라에는 장로교회가,이집트에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가 그리고 레바논에는 회중교회와 개혁교회가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장로교 신학교는 이집트에서 시작하였고(그래서 오늘날 걸프지역에 교회가 부진한 이유는 신학교가 이집트에만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이라크인은 이집트에서 신학공부를 하여야 했다. 레바논에서는 이 세 교단이 연합하여 National Evangelicalchurch)를 이루어 초교파의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장로교회는 현재 시리아와 레바논이 하나의 Synod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시리아에는 장로교회, 나사렛, 침례교회, 얼라이언스 교회가 있다. 얼라이언스는 미국의 CMA(Christian & missio nary alliance)로 부터 시작하여 중동과 아시아에 퍼져 있다. 요르단의 5개 교단의 신앙노선을 보면 침례교단과 복음주의 자유교단은 칼빈주의를, 나사렛 교단과 하나님의 성회는 알미니안 주의를 택하고, 얼라이언스 교단은 칼빈주의와 알미니안 주의가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850년에서1900년 사이에 Free Methodist, Holiness movement 그리고 웨슬리안들이 이집트와 레바논에 들어왔고 이어서 하나님의 성회도 들어왔다. 앞의 세 교단은 부흥사를 보내어 함께 사역을 감당하였다.그러나 택함을 받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는 장로교단과 거룩한 행실 즉 성화를 강조하는 감리교단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교에서는 그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1930년대 이집트에서 일단의 복음주의자들 20-30명 정도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왔다. 웨슬리안,장로교 그리고 이 둘을 수용하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들은 다양한 정교회(시리안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콥트 정교회,그리스 정교회 등)와 카톨릭 사람들에게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에만 있음을 전하였다. 여기서 팔레스타인이라고 말한 것은 요르단 동편과 서편을 다 말하며 요르단강 동편은 현재의 요르단 왕국을 가리킨다.
1930년에 요르단 카락에는 얼라이언스 교회가 있었다. 카락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종족간에 끈끈한 유대가 있었다. 아직도 이런 종족간의 결속 의식은 카락, 살트, 아즐룬, 마프락, 마안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은 흔히들 말하는 “북 팔레스타인(예루살렘 북쪽 지역)부흥”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그리스 정교회 배경을 가진 7-8명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이 중 아부 샤하다파쿠리는 그 가족이 다 열심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가문이었다.
요르단이 수도를 살트에서 암만으로 1939년에 옮기자 당시 행정건물도 암만으로 옮겨갔다. 기독교인들은 당시 자녀 교육에 대한 열심히 있어 레바논들으로 유학을 보냈고 이런 학식을 갖춘 기독교인들이 정부 요직에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정부 공직자의 35% 수준에 이르게 된 적도 있었다. 요르단의 많은 여성들은 그리스도의 참된 신앙과 성경공부를 좋아했다. 그래서 오늘날 요르단 교회의 70%는 여성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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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선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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