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강성률 목사1.jpg
 
사무엘상 24장에 이미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서 사울이 택한 군사 삼천 명의 수색을 피하여 굴속에 숨어 있을 때 용무차 들어온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만 베어 보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런 사건이 있은 후에도 회개하지 않고 다윗이 십 황무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다시 그를 잡기 위하여 직접 삼천 명을 거느리고 온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이 그를 죽이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숫자상 삼천 대 육백은 싸움이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찌하든지 사울이 못 미치는 곳으로 피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는 아비새와 함께 직접 사울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비록 사울이 누워있다고는 하지만 겹겹이 둘러싼 보초병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을 잡아 왕의 총애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아비새와 함께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벌어졌던 사울의 엔게디 황무지 사건과 나발의 사건을 통하여 큰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결코 사울의 손에 붙이지 않으신다는 것과 악인은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8:5a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다윗이 거친 들에서 사울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결코 사울의 손에 붙이시지 않으신다.’는 믿음일 것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사울은 진 가운데 누워 자고 군사들 역시 하나님께서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삼상26:12). 그러면 왜 다윗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죽이고 왕을 차지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그의 선을 악으로 갚는 사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자신들을 애굽에 팔아넘겼던 형님들이 곡식을 사기 위하여 그곳으로 온 것을 알았습니다. 형님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던 것은 그를 애굽으로 보낸 분이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님들을 마음으로부터 이미 용서하였지만, 회개할 기회는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흘 동안 그들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흘 후에 요셉의 형님들은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42:21)라고 말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므온만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다른 형제들은 곡식과 함께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107:10이하에는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라고 나옵니다.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라고 나옵니다.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으니 그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만일 엎드러졌을 때 돕는 자가 있었다면 회개하며 부르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조건 돕는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 햇빛도 좋지만 무조건 햇빛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15:7). 그러므로 복 중에서 큰 복은 회개의 복입니다.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합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

 

회개하게 되면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며, 마귀 올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5-26).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회개할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회개할 마음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회개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께 사로잡히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마귀 올무에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올무에 걸린 자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무엇인가에 중독된 상태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자 하였지만, 사울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점점 심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이스라엘 땅에서 없앴던 신접한 여인을 찾아 죽은 사무엘을 불러오라고 합니다(삼상28:8-9). 그 결과 블레셋의 침입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회는 착한 양심을 쓰는 사람이 포착합니다. 착한 양심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 때문에 통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57:15). 다윗이 사울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 것은 양심 쓸 기회를 준 것입니다.

 

신자들이 어떤 죄를 짓더라도 회개하면 사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회개는 생명을 얻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며, 마귀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사울에게 회개할 기회를 준 다윗’(삼상 26:6-16)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