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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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다. 누구든지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의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살리시려고 오셨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의 중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이요 죽음에서 살리신 것이다.
우리나라 말로 ‘살림’이라는 말은 살려 낸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0:10절에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고 하심으로 예수가 오신 목적은 생명 그것도 풍성한 생명을 위해서 오셨음을 선포 하셨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교회의 목적이 아닐까요? 그런데 현대의 교회들은 교회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잃은 채 값싼 은혜를 팔아 대형 주의로만 지향해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생명을 가꾸는 일은 먼저 밭을 갈아 엎고 씨를 뿌리고 물을 공급해 주고 식물을 자라게 한다. 또한 식물이 자라는데 방해를 주는 요소를 제거해야 하고 열매를 맺도록 부단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생명 운동을 어떻게 전개 하셨는가?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단순하게 표현 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의 하는 일은 무엇인가? 생명운동은 첫째 음성을 듣고 알아주는 일이다. 음성을 알아준다는 것은 한 마디로 인간의 아픔과 기쁨 형편과 처지를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 땅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국민들의 음성을 들어 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하거늘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음성만 듣거나 희 희 락락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음성만 듣는다면 그 교회는 편견과 이념에 사로잡힌 교회로 바른 교회라 할 수 없다.
예수님은 갈릴리 민중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복잡한 현실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과 탄식을 들으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부르시며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고 하셨다.
두 번째는 아픔을 기억해 주는 것. 이름은 그 사람만의 가진 대명사이다. 이름은 한 인간의 인격이요 가치이며 가능성과 존엄성이다. 이름을 서로 불러 주지 못하는 사이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가 이름을 알아주고 그 이름을 섬겨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대접을 해주는 것이 목회요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 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서의 본뜻이다.(마 7:12)
생명 운동의 세 번째는 목숨을 던져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성경 말씀에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을 알고 양은 나를 안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한 15:10). 이 말씀에서 목숨을 바치는 서약을 하셨다. 이것은 정치인들의 구 호와는 사뭇 다르다.
그들도 나는 여러분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국민을 위하여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고 곧잘 맹세를 한다. 국민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인격적인 존중도 안하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은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슨 맹세도 떡 먹듯이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없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배신과 배역을 물 마시 듯 하는 자들이다.
이것을 예수님은 도둑이라고 규정 하였다.(요10:10)) 교회는 앞서 말한대로 생명 공동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가 살아남는 길은 생명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에 대해 대나무 숲을 예로 들고 싶다. 대나무는 그 몸체가 1m 이상 길쭉하게 뻗어 올라간다. 그런데 그 몸체에 비해 뿌리는 대단히 가늘고 짧게 박힌다. 그런데도 큰 폭풍이 불 때에 소나무의 큰 가지가 뚝 뚝 꺾이고 포퓰러 나무가 쑥쑥 뽑히어도 대 나무는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남는다. 왜 그럴까? 대 나무는 집단으로 함께 사는 집단군거 식물 (群居 植物) 이기 때문이다. 약한 뿌리는 옆의 약한 뿌리와 베를 짜듯이 얽힌다. 결국 태풍이 불면 힘없는 가지가 부ㅤㄷㅣㅊ치지 않도록 서로의 간격을 유지시켜주며 앞의 나무가 쓰러지면 뒤에 나무가 밭쳐주고 열개 백 개가 죽 받쳐주면서 태풍을 이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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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가꾸는 일(요 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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