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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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7~18).

 

선거 때가 가까워짐에 따라 몇 몇 국회의원들은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겠다며 출마포기를 선언합니다. 그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위와 명예를 버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권세하면 얻고 누리고 부리는 것을 생각하기 쉬우나 버릴 수 있는 것도 큰 권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고 멸망당하는 이유들은 대부분 얻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못해서 생깁니다.

 

소돔성이 멸망할 때 롯의 가족들은 그동안 일구어 놓은 살림과 명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지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버릴만한 힘이 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습니다. 그들의 약함을 천사가 도운 것입니다. 하지만 롯의 아내는 끝내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19:26).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모두 멸하라고 한 우양을 멸하지 않고 가장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끌어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명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삼상15:24). 그가 왕이었지만 백성들의 잘 못된 말을 뿌리칠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왔던 부자청년은 가진 것을 버릴 힘이 없어 버리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고 맙니다(19:21). 이처럼 버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은 영적인 힘입니다. 어떻게 해야 버릴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14장에는 롯이 사는 소돔 땅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결국 소돔을 포함한 연합국이 패하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은 빼앗겼으며 롯도 포로로 잡힙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평소 잘 훈련 된 318명의 용사를 데리고 밤에 습격하여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조카 롯과 또 부녀와 백성을 다 찾아왔습니다(14:1-16).

 

아브람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러자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소돔 왕도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그러자 아브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 하리라.”(14:17-23).

 

그가 소돔왕의 호의 아닌 호의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준 떡과 포도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을 먹고 거절할 힘이 생긴 것입니다. 이처럼 거절할 힘, 거절할 능력은 성령의 감동된 말씀을 먹을 때 생깁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 풍성한 문화 유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7:2-3). 바울 역시 그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이 영광의 예수님이 나타나 주셨기 때문입니다(26:19).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그와 조상들이 섬기던 힌두를 버릴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나타나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버릴 힘은 영광의 하나님을 볼 때 생깁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입니다(33:19).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것은 꼭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하여 무엇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살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함입니다. 그러한 영광은 말씀을 믿을 때 체험하게 됩니다(11:40).

 

11:24이하는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라고 말합니다.

 

바라보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12:2-3).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 명예 영광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었고 또한 바라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거절의 힘은 믿음과 소망에서 나옵니다.

 

얻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리려면 권세, 곧 힘이 있어야 합니다. 버릴 권세는 말씀을 먹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믿음과 소망에 힘을 쓸 때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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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버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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