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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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입니다. 나사로가 병이 깊어 위독해 지자 누이들은 예수님께 급히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며 이틀을 지체 하시는 바람에 나사로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육체의 죽음은 죽는 게 아니고 자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는 것이면 깨워서 일어나는 게 가능한 일입니다.

 

사는게 무엇이고 죽는 게 무엇인가? 예수님은 생명과 죽음에 관하여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깨우러 베다니로 가십니다. 베다니에는 죽은 나사로를 애도하는 사람들로 초상집이 북적거립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마르다 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도가 마지막 부활의 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믿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다시 살아난 다는 것은 지금 현재 살아나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가져야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죽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생명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넘어서 다시 사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받은 사람은 죽음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효력은 죽은 후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현재의 순간부터 시작되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아무도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그들로 믿게 하시기 위해서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에서 육체가 다 썩은 시체로 있는 나사로를 깨우십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을 막고 있는 돌을 치우라고 하시고 무덤 밖에서 나사로가 들을 만한 큰 소리로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예수님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죽은, 아니 자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성큼 성큼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시체라고 해야 할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나사로가 손과 발을 베로 동인 그대로 무덤에서 나옵니다. 그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는 시체 모습입니다. 죽은 자가 일어나서 나올 수 있는 장엄한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에서 그것을 보던 사람들이 놀라서 탄성을 지릅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차갑고 어두운 무덤까지 들어가서 자기의 육체가 썩어가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겠지요, 예수님은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십니다.

 

아직도 손발이 묶여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고 있는 나사로를 풀어주어서 가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 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풀어주는 일은 누군가에게 하라고 위임하셨습니다. 손과 발이 묶여 있는 나사로는 스스로 자신을 풀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사로를 풀어주어야 합니다. 나사로를 풀어주지 않으면 생명을 받았어도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습니다. 죽은시체처럼 그대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풀어져야 비로소 생명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나사로는 살아 있어서 싸이고 묶인 결박 때문에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누군가의 손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나사로의 얼굴을 꽁꽁 싸맨 수건을 풀어 줍니다. 나사로에 대한 긍휼한 마음으로 손이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손과 발을 풀어주면서 나사로의 눈과 마주친 그는 놀라운 생명의 경이로움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이제 나사로는 더 이상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로워진 손과 발을 움직여 보면서 나사로는 조심스럽게 걸어봅니다. 나흘이나 매여 있던 다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니 뛰어보고 싶습니다.나사로는 더 이상 죽음에 눌려 지내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 있는 자들은 죽음을 향해 외칩니다. “나를 눌렀던 어둠에 속한 모든 것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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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요1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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