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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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삼하6:11).

 

지난 주일 새벽까지 주룩 주룩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눈깨비로 바뀌더니 차츰 함박눈이 되 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형질의 구름인데 비로, 진눈깨비로, 함박눈으로 바뀌는 것은 그를 맞이할 때의 온도차이일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겼던 하나님의 궤가 블레셋에서 돌아온 후로 70여 년 동안(에벤에셀의 승리 때까지 20, 사울 통치하의 40, 다윗의 통치하의 10)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습니다(삼하6:3). 그런데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아비나답의 집에 복이 임하였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옮기는 도중 소들이 뛰자 하나님의 궤를 붙들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이에 다윗은 두려워 그에게로 옮기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웃사 사건 전까지 70여 년 동안 잠잠했던 여호와의 궤가 오벧에돔 집에 머문 지 단지 석 달뿐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궤로 인하여 오벧에돔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분명하게 주셨던지 모두에게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다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웃사 역시 죽임을 당하고, 용사 다윗도 두려워 예루살렘으로 모셔가지 못한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셔온다고 하자 오벧에돔인들 기쁜 마음으로 모실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오벧에돔은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벧에돔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맡았으니 온갖 정성을 들였을 것입니다. 자기 집에 하나님 보시기에 불합한 것들을 모조리 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청결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보며 언약궤 모시는 법을 터득하려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언약궤를 직접 볼 수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성막 문지기, 언약궤를 지키는 문지기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직분을 천하게 여기거나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충성스럽게 맡고 지켰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온 가족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대상26:4-7절까지는 오벧에돔과 그 자손의 직분에 대하여 나열 됩니다. 그리고 8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 이 명이며이처럼 그 자손들에게까지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반면에 아비나답의 집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언약궤를 수레에 모신 것을 보면 아마도 하나님을 말씀을 경홀히 여겼던 것 같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4:15).

 

성물은 만지지 말며 어깨에 메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어깨에 메도록 하지 않고 수레에 실었으며, 또 만졌습니다.

 

구름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그 은혜가 온도차이로 인하여 단비가 되기도 하고 또 눈이 되기도 한 것처럼 신자들의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웃사처럼 화가 되기도 하고, 오벧에돔처럼 복이 되기도 합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우리와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바라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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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아비나답의 집과 오벧에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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