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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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이라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감정이 안 생긴다는 고민을 많이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까요? 라는 질문도 받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생기면 주를 위해 모든 걸 다 걸고 헌신할 수 있을 텐데 그 사랑이 안 생기니 괴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귀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안되어지니 괴로워하는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까요? 하나님을 모르고는 사랑 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을 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그분이 누구신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벌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벌이라고 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죄에 대해서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 하나님은 죄에 대한 벌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인식으로 시작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예수님에게 담아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진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14:9)

 

한 죄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있는데 사람들 손에 붙잡혀서 그 앞으로 질질 끌려 왔습니다. 머리채는 다 풀어지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과 옷이 흙먼지와 뒤엉켜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그대로 끌고 온 것입니다. 죄를 짓는 도중에 잡혀 왔으니 꼼짝없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피할 곳도 없고 도망 갈 수도 없습니다. 법대로 하면 돌로 맞아서 죽게 된 것입니다. 죄인 여자를 향해서 모여있는 사람들이 돌을 손에 하나씩 쥐고 곧 던질 기세입니다. 죄인에게 벌을 주는 살기등등하고 살벌한 현장입니다. 하나님은 천벌을 내리셔서 죄에 대한 벌을 주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법대로 하면 돌로 쳐 죽여야 마땅하니 예수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때 예수님의 눈이 수치심보다 더한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죄인 여자의 눈과 마주 치셨습니다. 정말로 불쌍하다는 말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는 여자입니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요? 한때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는 귀한 딸이었을 텐데 죄를 짓고 나니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죄인의 신분이 그렇게 처참합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나지막한 예수님의 한마디에 갑자기 살벌하던 현장이 숙연해 집니다.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양심을 건드리니 이 말씀을 듣고 하나씩 하나씩 슬쩍 그 불편한 자리를 피해서 나갑니다.

 

이것이 죄인을 대하시는 공정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사람 중에서 누가 죄인이며 누가 의인이겠습니까? 모두가 죄인이지요.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죄를 벌하려던 그 자리에 아무도 없고 예수님과 죄인 여자 둘만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 하지 아니 하노니...”

이 말씀을 들은 죄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오열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다 용납하시고 받으셨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용서구나, 사랑, 이것이 사랑이구나...’

자기의 죄를 용서받은 것을 아는 사람은 용서하신 것이 사랑 인 것도 압니다. 그 여자의 마음이 어떤 심정 이었을지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런 귀한 용서를 받고 또 다시 같은 죄를 지을 강심장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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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이영은 목사의 ‘음행 중에 잡힌 여자’(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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