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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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를 떠올린 것은 아마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면 늙은이의 망념으로 웃어넘길 것이다. 아니라면, 지난 해 베니스를 찾았을 때, 토마스 만의 중편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1971년에 비스콘티가 감독 제작한 동명의 영화 장면들을 떠올리며, 제멋대로 데자뷰 현상으로 처리해 보려했던 자신을 새삼 부끄럽게 여기고 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석양이 비치는 바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기선. 중절모자에 머플러 그리고 색안경을 쓴 노인. 지친 모습의 주인공은 독일의 명작곡가 아센바흐로 설정되어 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아센바흐가 문필가로 설정되어 있지만. 하긴 토마스만 자신도 친구였던 구스타프 말러를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지만.       
호텔에 도착한 주인공의 눈에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이 뛰어든다. 성장을 하고 있는 주변의 어떤 여성들보다도 아름답지 않는가. 소년의 이름은 타지오. 열 너덧은 되었을까. 꽤나 까다로울 것 같아 보이는 모친과 천진난만한 누이동생들 그리고 도우미들에게 둘러 싸여 있다.  
아센바흐의 눈길은 타지오 소년에게 사로잡힌다. 저녁식탁에서도 흘끔 흘끔 시선을 주다가 자리를 뜰 즈음에야 이편을 의식하는 타지오의 눈길을 느낀다. 아센바흐는 자신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충격 때문에 크게 동요한다. 문득 친구 알프레도 생각이. 그는 말했었다. “아름다움은 노력으로 창조되는 것”이라고 우기는 자신을 비판하면서 “아름다움이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 이라며 “창조를 넘어선 아름다움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강변하지 않았던가.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의 타지오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눈부시듯 바라보는 아센바흐. 타지오도 그의 시선을 감지한 것은 아닐까. 소년을 향한 아센바흐의 상념은 짙어지기만 하는데... “균형을 잃고 싶지 않다“며 괴로워하는 아센바흐는 결국 베니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튿날 아침 스쳐 지나는 아센바흐에게 타지오가 미소를 짓는데, 고통을 다스리며 마음속으로 작별을 고한다. “타지오, 이별일세. 부디 행복하기를... ”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은 아센바흐에게 역무원이 다가온다. 실수로 짐짝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는 것. 화가 치민 아센바흐. “짐이 되돌아올 때까지 베니스를 떠나지 않을 터이니 그리 알라!” 하고 내뱉는 노신사의 표정에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엿보이는 것을.  
역 구내. 한 야윈 사나이가 스러져 있다. 베니스에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호텔로 돌아온 아센바흐, 창문으로부터 타지오의 모습을 발견한다. 해변으로 가고 있었다. 반라의 모습으로 모래투성이가 되어 뛰노는 모습. 소년 타지오야 말로 창조의 원천이 아니던가. 새 작품을 쓰리라는 의욕이 솟아난다.
어느 날 아센바흐는 타지오의 뒤를 따라 베니스 거리들을 누빈다. 저만큼 거리를 두고 뒤따르면서도 말을 건네지는 않는 그를 의식한 타지오도 입을 다문다. 이따금씩 뒤돌아보며 그를 확인하는 타지오. 그 눈길이 유혹하는 것도 같다.  
아센바흐는 베니스 거리가 소독액으로 범벅이 되어 있음을 눈치 챈다. 돈을 주고 입수한 정보는 베니스 전역이 역병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것. 관광사업으로 먹고 사는 베니스 당국은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지오와 그의 가족이 역병을 피해 베니스를 떠나게 해야지 다짐하는데, 아센바흐 자신은 점점 쇠약해진다. 정작 베니스에서 역병에 감염된 것은 아센바흐 자신이었던 것이다.
호텔 이발사가 말한다. “우리는 딱 느끼는 만큼 나이를 먹는다오.” 검게 그의 머리칼을 염색하고, 하얀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해준다. 타지오의 뒤를 쫓는 아센바흐. 차오르는 숨결과 흐르는 땀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 우스꽝스러운 몰골, 웃을 수밖에... 아내와 딸과의 행복은 오래 지속하지 못했었다. 딸이 죽고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떨어지고, 연주장에서 청중들의 조롱을 들어야했다. 꿈에서 깨어난 아센바흐.
마지막으로 타지오의 모습을 망막에 담아두고 싶은 아센바흐. 흰 양복에 모자를 쓰고 하얗게 화장을 하고... 흐느적이며 해변에 나타난 주인공. 타지오가 이쪽을 보는 듯도 싶은 데 역광으로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손을 내뻗는 아센바흐의 뺨에는 범벅이 된 땀이 흘러 분장한 피에로의 얼굴을 연상케 한다.  일어서다 스러진 아센바흐. 호텔 직원이 부축해간다.
enoin34@nave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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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베니스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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