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못밥
                                   
                          이 오 장


어이 싸게싸게 나오소
아무리 바삐도 밥을 먹어야지
아따 사돈집에 왔는가 상각을 갔는가
아무렇게나 편히 주저앉아
옷벌이면 어쩐당가
어차피 젖은 옷인디 두 다리 쭉 펴고 앉어
역시나 일꾼은 밥이여
많이 있응께 걱정 말고 먹더라고
막걸리도 한 잔씩 혀야지
아따 거 쌩지도 맛있지만 갈치지짐이 좋네그랴
들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꿀맛이랑게
숭이네는 어찌 냉기는가
속이 안 좋아
저쪽 밭고랑에 얼른 댕겨오소
풀밭에 앉을 때는 뱀 조심허소
학기네는 왜 밥을 싸두는가
식구들 걱정 말고 많이 먹어둬
이따 집에 가서 한 바가지 싸갔고 가
모심는디 먹을 것 애끼것는가
논두렁 인심이 풍년 부르는 거여
저기 호락질 허는 상근이도 불러와
안 불러도 오지 않고 어찌 눈치본다냐
오늘 모심는 거 본게 밥 안먹어도 배부르네
가믐 끝에 이렇게라도 심는 모가
동네 잔치랑게
가을에 환갑잔치 한 번 더 혀야지


지나간 우리들 고향과 농촌풍경이 흑백영화 필름이 흐르듯 돌아가고 있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이오장 시인의 유니크한 시세계다. 독백의 독특한 대화체는 인용부호가 없어도, 화자와 청자가 없어도 소동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이는 劇詩이며 언어예술의 본류를 이끄는 시를 다시금 무대예술로 연출되는 듯, 놀랍게도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문학과 언어를 결합하여 사라져가는 농경문화와 방언까지 살아 생동하는 삶으로, 문화와 역사를 아울러 관동하며 독자로 하여금 정감의 세계와 우리 삶의 궤적과 정체성까지 돌아보게 된다. 한 폭의 소박한 민화 한 점을 감상하게 된다. ‘모심는 날은 동네 잔치랑게’ 일도 잔치고 축제다. 농경문화의 축제날이다. 품앗이로 서로 돕고 살았던 농촌의 모습 오랜 우리민족의 삶이었다. 퇴색하고 잊혀진 문화와 언어가 우리 곁을 지켜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이지만, 이오장 시인은 그의 시집 ‘고라실의 안과 밖’에서 어릴 적 경험한 농촌의 문화와 민속어와 방언을 이야기하듯 노래하고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그리움과 애틋함을 시를 통하여 다시 만나게 되어 큰 기쁨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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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수) 못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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