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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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11:6).

 

아직은 젊고 건강하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어느 날 갑자기 병들었습니다. 병은 의원을 찾아갈 틈도 없이, 간호할 틈도 없이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목숨이 경각간에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38년 된 불치 병자를 고치시고, 시각 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며, 중풍병자를 고치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부탁하면 고치시는 예수님께서, 특별한 관계에 있는 두 자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위해서라면 열 일 다 제쳐 놓고 오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함을 들으시고도 그들의 기대처럼 곧바로 오시지 않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그리고는 마치 나사로가 죽는 날을 기다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나사로가 죽은 후에 비로소 베다니를 향하여 떠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육안으로 보기에 모두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나사로처럼 갑자기 병들 수도 있고, 또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는 일도 어그러지고 풍비박산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기도가 즉각 응답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요단 건너편에 머무시는 동안 마르다, 마리아의 집에서는 애타게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오히려 상태가 더 악화 되어 죽음까지 가게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타나는 현상이 간혹 우리의 기대에 맞지 않는다 해도 신자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36:24).

 

신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우리의 지각을 초월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고전2:9).

 

마르다 마리아 자매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야곱 생각에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나타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의 뜻대로 안 되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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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C 칼럼] 강성률 목사의 ‘하나님의 하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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