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사신분이셨기에 이 기도는 가장 위대한 기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도는 5섯 가지 주제로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둘째는 저희를 보전해 주옵소서, 셋째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넷째는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다섯째는 저희로 함께 있게 하옵소서. 라는 중보의 기도로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첫 마디는 “아버지여”입니다. 성도의 모든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그것은 참으로 아버 지께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부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읽듯이 공식적으로 부르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11절의 거룩하신 아버지 25절의” 의로 우신 아버지 진실로 아버지를 부르는 자는 덕지덕지 붙은 수식어가 아닙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장식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멋에 불과 할 뿐입니다. 아버지께 기도하는 성도가 “당신”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무언가 잘못 된 것 같습니다. 오늘 교회와 성도는 아버지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경외를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기도하는 자세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그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이 묻어 있습니다. 우러러 보는 가운데는 그 좋으신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이 있습니다. 말못할 가슴 뜨거운 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하늘을 우러러” 본 것만은 아닙니다. 그 하늘에 계신 그 좋은 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그 믿음을 보여 주고 있다고 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의 자세 부터 배워야 합니다.
강아지가 주인의 밥상 앞에 앉아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기다리며 주인의 숫 가락을 온전히 따라 움직이듯이 예수님의 기도의 자세부터 배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기도는 “때가 이르렀사오니”입니다. 그때는 어느 때입니까? 자기 죽음의 때 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 하심에 자기의 때를 아 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때를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자기의 때를 알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일 뿐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의 때를 알 뿐만 아니라 우리의 때도 아십니다. 그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자식이 잘 되어야 부모가 자식을 통해 영광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자식이 잘 못하면 그 자식을 둔 부모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동네를 다닐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실뿐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아들로 영광스럽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빌 2;6-11)
철저하게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서의 결단이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 한 때입니다. 너무 앞뒤를 재고 셈이 너무 영 약한 성도들을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 것인가를 생각하면 씁쓸해 집니다. 좀 바보스럽더라도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살아가는 좋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