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로마서 5:14에서 아담을 “오실자의 모형(type)”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실형” (Antitype)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히브리서의 저자는 9장에서 성막의 모양과 제사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첫째 장막이 서 있는 한 성소에서 제사 드리는 제도를 가리켜 “비유”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비유”라는 말은 헬라어 “파라보래”(παραβολή)를 번역한 것인데, 대부분의 서양 역본에서는 “상징”(symbol)이라고 번역하고 있다(히 9:9). 아울러 9:24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것들의 모형인 손으로 지은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이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하늘 성소 그 자체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 온 백성을 대신하여 지성소에 홀로 들어가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이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자신이 대제사장의 실형으로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늘에 있는 성소로 들어가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성경의 성전과 제사제도가 다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형이라는 것이고,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가 실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과 이스라엘의 성전, 그리고 그 성전에서 행해지는 모든 제사 제도가 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에 대한 모형이고, 더 나아가서 구약 성경의 모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앞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아담을 머리로 세워진 세상의 구조와 조직과 질서도 역시 앞으로 새 아담이 이루실 새 세상의 모습,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담은 새 아담의 모형이다(롬 5:14).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모든 피조물의 우두머리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고후 4:4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 Χριστός ὅς ἐστιν εἰκὼν τοῦ Θεοῦ.)이라고 가르치고, 빌립보서 2:6에는 예수께서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본래 하나님”라는 말은 “이미 존재하셨던 하나님”( θεος ὑπάρχων)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골 1:12-20에는 그리스도께서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분 안에 계시고, 만물의 으뜸이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의 왕으로 세우셨듯이, 이제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모든 피조물의 왕이 되게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무릎 앞에 꿇게 하셨다”(빌 2:10)는 것이다. 예수께서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시고 왕이 되신 것이다. 이 세상은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대왕)-예수님(왕, 그리스도)-만물로 이루어진 조직과 질서로 새롭게 재편 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머리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골 2:10). 그래서 새로운 세상은 이제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새로운 언약 체계를 이루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왕이시고, 예수께서 그의 피의 언약으로 구원하신 자들이 그이 백성이고, 세상 만물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새로워진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 것이다.
그런데 이때 우리 예수님의 백성들은 옛 아담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높고 영광스러운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예수님의 백성들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하여 새사람을 입게 된다. 아담 이후 계속 죄인으로서 가죽 옷을 입고 반역자라는 죄명을 붙이고, 사형 집행을 앞두고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서 살아온 우리들이, 이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새 사람이 된 것이다(골 3:10). 무엇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 되고,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왕을 모시고, 새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꿈과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왕을 섬기며, 새로운 왕과 함께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새 출발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순서가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아담 안에서 온갖 죄를 짓고 살았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다 죄로 물든 죄인이다. 죄인이라는 신분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아담 안에서” 이제 “새 아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아담의 나라”에서 “새 아담의 나라”로 들어와야 한다. “아담의 백성”이 “새 아담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아담의 옷을 벗고, 몸을 씻고, 새 아담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새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 나아와 그의 왕이 아담이 아니라, 새 아담, 그리스도 예수님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고백해야 한다. 베드로처럼 예수님 앞에서 “주는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는 고백적 서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새로운 몸의 지체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새 아담의 나라의 새로운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제 새 아담과의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사람으로 인생을 새 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전에, 이미 우리 안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의 죽은 영혼을 일깨우셨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의 호흡을 들이쉬게 되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눈이 뜨이며,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을 주셨다. 영혼의 젖을 주시고 그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그는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죄를 회개하고 고백해야 한다. 자신이 아담의 연대에 속한 자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제는 새 아담의 나라에서, 새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는 서원을 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고, 그것을 가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의 종을 통하여 그의 머리에 상징적으로 물을 붓게 하신다. 이제 그는 새로운 새 아담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의 신분이 변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담의 옷을 벗고, 새 아담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 안에 들어온 군사가 되었으며, 새 아담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세례를 상징하는 물세례를 받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 것이다. 우리 죄인들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엄청난 신분의 변화와 특권과 은혜와 축복을 받은 새로운 생명체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특권과 이 영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우리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립해야 한다. 우리는 비록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이지만 분명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의 피로 세운 새 아담의 나라, 예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더 이상 아담과의 안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새 아담, 예수께서 우두머리이시고, 왕이신 새 언약의 연대성 안에 있는 새 아담의 나라의 나라 백성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된 언약 백성이다. 만물의 머리 되신 예수님의 지체이다. 예수님과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다. 예수님 계신 곳에 우리도 있고, 예수님 가신 곳에 우리도 가고, 예수님 하신 일을 우리도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자라듯이 우리도 점차 자라며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옛 사람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라.” (골 3:9)고 가르친다. 그리고 우리가 지식에까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빌 3:7-8).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려면 지식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꾸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뇌를 바꾸어야 한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틀에 맞추어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손발을 움직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새 아담의 새 사람들은 신자로서의 신분에 걸 맞는 정체성과 인생관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이다.
둘째로 새 아담의 나라의 새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새로운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리와 어린양, 송아지와 젊은 사자, 암소와 곰, 어린아이와 독사 등 도저히 공생공존할 수 없는 존재들이 약육강식의 태생적인 적대감을 버리고,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다(사 11장). 바로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일하시고, 이 나라를 위하여 새 백성을 모으시려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마 23:37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자기 병아리를 자기 날개 아래 모으려 하는 것과 같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하였느냐?”고 울부짖으셨다. 새 나라의 새 백성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에스겔 34장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흩어진 양들을 모으시는 목자로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시고, 우리를 그 백성 삼으셨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소망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백성을 모아 하나님의 새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God’s fellow worker), 곧 동역자라고 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동역자이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세우셨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모으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백성도 이미 다 선택하여 준비해 놓으셨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다만 그들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에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 인도자의 노릇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선지자 노릇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지자로 세우기 위하여 성령세례를 주셨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로운 나라의 새 사람으로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사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각박한 세상에서 몸부림치며 살지라도 세상 나라를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세상 나라는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탐욕을 쌓게 한다. 우리를 파멸의 길로 빠지게 한다.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 새 아담의 나라를 바라보고, 새 나라의 백성을 모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의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