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의 고귀한 성품 가운데 가장 으뜸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선”이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어로 “토브”(טוב)라고 하는 말은 성경에서 흔히 “선하다”(good), 혹은 “좋다”는 의미로 번역되고 쓰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만, 그의 “선,” “선하심”도 사랑 못지않게 중요한 성품이다.
누가복음 18:18-19에 보면 한 유대교 지도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상속 받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라고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심지어 자기 자신도 선하다고 칭함 받는 것을 거절하시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유일하게 선하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새겨보면 우리 인간들이 함부로 “선하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염두에 두신 선이란 어떤 것일까?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 곧 손이 오그라든 자를 고치시는 사건을 좋은 예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막3:1-6). 안식일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모든 종교 지도자들과 일반 성도들이 함께 모인 가운데,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고소 거리를 찾고 있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가 안 고치시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고치시는가 못 고치시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고치시는가 안 고치시는가 문제였다. 물론 예수께서는 이러한 상황이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두고 회피하시지 않고 오히려 도전하셨다. 이들을 향하여 질문을 하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옳으나?”고 물으셨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선과 악” “목숨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이라는 대칭되는 병행구를 사용하여 선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고, 악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고, 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 속에서 바로 선과 악의 개념을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의 창조 기사는 6일 동안 매일 창조를 마치시고, 계속 “하나님 보시기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신다. “God saw that it was good.”(וירא אלהים כי טוּב). 여기서 “좋았다”고 번역하고 있는 “토브”라는 말은 “좋다”는 의미도 있지만 “선하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어휘이다. “선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창조가 다 선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의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동산의 모든 질서가 파괴되고, 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과는 반대되는 개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이고 파괴되는 곳에는 악이 있는 것이고, 살리고 살아 있는 곳에는 분명 선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살리는 것이 선이라면, 생명을 주시고 살리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선하신 것이다. 아마도 바울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에베소 성도들에게 “우리는 그가 만드신 작품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들을 통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은 나를 창조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만들었을까? 엡 2:10을 보면.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로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신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선한 일”이 무엇인가? 단순히 “좋은 일”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나쁜 일 일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유일하게 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으로서 히브리어 “토브”라는 말은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적인 의미보다는 동사로 “살리다”는 의미로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다스리다”는 말의 의미는 정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유형 무형의 만물이 각각 그 목적에 따라 그 생명이 유지되고 그 기능이 작동하도록 살피고 돌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 세계의 조직과 질서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켜지도록 돌보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다. 다스리는 것은 오늘날의 표현으로는 정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창조와 출생부터 정치하는 존재이다.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살고, 살리기 위하여 정치를 한다. 따라서 모든 정치는 살리는 것이 목표이고, 모든 정치 행위는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신 목적은 그가 만드신 모든 만물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다스리기”위함이고, “다스리는 일”이 바로 “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가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살리기 위하여 돌보고 가꾸는 일을 하도록 지으시고, 사명을 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선”이라는 것이다. 모든 정치 행위는 그 목적이 “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일”을 하도록 만드셨는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살리는 일을 하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리는 일을 하도록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 안”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아담을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이 있고,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언야적 연대성이 있다. 아담을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은 아담 한 사람의 죄와 불순종으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만물이 다 죄인이 되고, 죽음 가운데 있는 존재들을 말하고,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언약적 연대성은 아담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아담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나라를 이루게 된 존재들을 의미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서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두시고 우리를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신 뜻이 선하다는 이 사실은 내가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야 할 고귀한 목적을 부여하고, 내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결코 하찮은 존재,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가 아니다. 꼭 필요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태어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선한 일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셨다. 비록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한 손이 마른 지체 장애자를 고쳐주신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일을 하면 붙잡아 고소하여 죽이려고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데도, 그는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시고, 살리는 일을 하신 것이다. 살리는 일은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이 없이는 생명이 없다. 예수님은 이 손 마른 자를 고쳐주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그의 목숨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선한 뜻을 두시고 창조하셨다. 그래서 그 속에는 근본적으로 선을 사모하고, 선을 행하고자하는 소원이 있다. 그러나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는 사람, 곧 사탄의 왕국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그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며 사는 것이다.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해하고 죽이는 악을 행하며 살다가 결국은 자기도 죽게 될 것이다. 관계를 잘 못 맺은 것이다. 아담과 연대성 안에 있는 한 그는 사망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연대성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선한 뜻을 두시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들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을 살리는 선을 행하실 수 있고, 선을 행하게 하실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의 악행과 실패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롬 8:28). 그래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에게는 실패가 없다(말 3:6; 히 13:8). 하나님의 이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두신 그 창조의 목적은 선한 것이다. 살리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그들이 지향하여 나갈 길은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서로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관계를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희생을 치르더라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고,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