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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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단 서편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변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거민들이 여호수아의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예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으로 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원방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약조하사이다

 

기브온 사람들이 나오기 전에, 이스라엘에 대한 새로운 반응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 본문과 아주 비슷한 5:1에서는 가나안 왕들이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녹았다라고 나온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들이 이 일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우려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모였다. 그들이 들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아이성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성에서 이스라엘이 처음에 비교적 작은 성을 차지하는 데 실패하자, 이제 지역의 왕들이 고무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극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변화는 10-11장에 나오는 가나안 사람들의 반응을 계속 지배할 것이다. 10-11장에서 그 왕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소식에 다시 한번 반응하며, 2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시사하는 전투가 거기에 기록되어 있다. 9장은 대부분 다른 길을 택한 한 집단의 이야기를 기록하지만, 여호수아서는 분명히 보다 호전적인 이 반응을 먼저 강조하고 싶어 한다. 여리고에서 아간이 저지른 죄와 아이에서 그것이 함축하는 것들은 아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7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공동책임을 강조했다. 이제 우리는 그 죄의 또 다른 결과를 본다. 죄의 결과들이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멀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다. 여러 가나안 왕들은 더 이상 듣고 마음이 녹는 것이 아니라, 대신에 모여서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로 한다. 그들은 이전에 여호와가 하신 일 때문에 마음이 녹았는데, 이제는 이스라엘이 한 일 때문에 용기를 내어 공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들이 이전에는 분열된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하나로 연합한다.

 

대부분의 가나안 왕들은 전쟁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한 집단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 비록 속임수이긴 하였지만,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는다. 기브온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아이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문만은 아니다. 여리고에서 일어난 사건들도 그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실패했다고 해도 모두가 그들을 반대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더 큰 그림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들린 소식은 그 성의 멸망에 초점에 맞춰져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권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를 것이다. 대신 그들은 속임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으로 14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아이 남서쪽으로도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위치로 보아 그곳 사람들은 여리고와 아이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신속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 대해 일반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아직 기브온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결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나중에 여호와가 시혼과 옥에 하신 일에 대해 들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군사적 실상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다. 고대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그들의 신학을 일반적 삶, 특히 군사 상황과 분리하지 않았다. 기브온 사람들의 도전 과제는 이스라엘을 설득해서 그들과 평화 조약을 맺고 그 평화가 유지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계획은 낡고 해어진 옷과 신발을 착용해 변장하고, 오래된 양식과 헤어진 여장을 갖추고 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주장할 내용, 곧 그들이 매우 먼 곳에서 왔고, 그 땅 거민들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품목들 목록은 길지만 다 나열된다. 그 목록은 그 사람들이 먼 길을 왔다는 증거로 제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길갈에 있는 이스라엘 진영으로 간다. 길갈은 이스라엘에서 흔한 지명으로, 이스라엘이 그 땅에 처음 들어갔던 곳을 포함해서 적어도 세 개의 길갈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 시점에 처음에 갔던 길갈로 다시 갔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이곳은 아마도 길갈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알려지지 않는 장소일 것이다. 물론 벧엘 약간 북쪽에 있는 길갈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요단 골짜기에 있는 길갈이 아니라고 해도, 그 지명은 적어도 요단강을 건넌 기억들을 불러일으키며 이스라엘에게 여호와를 순종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상기시킬 것이다.

 

죄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위한 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들을 담대하게 해서 공세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죄가 오늘날 교회를 공격할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 믿는 자의 실패에 반응하며 우리를 공격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에 헌신한 백성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할례를 시행한 것과 유월절을 지킨 것은 이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들에 헌신하고, 또한 우리 가운데서 매우 쉽게 발생하는 죄를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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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웅 교수의 선교칼럼] 여호수아와 선교20 - 기브온 거민들(수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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