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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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2022) 417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부활 주일'이 같은 날 겹친 날이다. 부활절을 부활의 날로 할 것인가, ‘부활 주일로 할 것인가는 초기 교회의 논쟁 중에 가장 첨예한 문제였다. 주후 325년 니케아 이전의 교회는 두 가지 절기를 지켰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유월절(니산월 14)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오순절 날에 이르는 오순절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유월절과 부활절은 가장 깊은 슬픔과 가장 높은 기쁨이 만나는 연속적인 행사로 연결되었고, 이를 '파스카 스타우로시몬'(pascha staurosim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파스카 아나스타시몬'(pascha anastasimon)이라고 불렀고, 후에는 이를 '부활절'(Easter)이라고 했다. 파스카 스타로우시몬은 슬픈 금요일에 해당하고, 파스카 아나스타시몬은 기쁜 주일에 해당하는 날로서, 이 주간은 두 큰 사건을 기념하는 거룩한 주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유월절 양'(고전 5:7)이 우리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예언적 예표로 이해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 받은 사건이 곧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구속될 일을 예표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성 금요일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한 17일 부활절 전야까지는 금식 기간으로 지켜졌다. 이 때 교회에는 부활절 철야 기도회가 있었다. '부활절 철야'는 온 회중이 각별한 신앙심으로 새벽까지 철저하게 지켰다. 구속 사역으로 완성한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점차 기독교 유월절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부활절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유월절 시기와 금식일의 시기에 관하여 지역의 교회마다 관습의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이 발생했다. 소아시아 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는 니산월 14일에 엄숙한 금식으로써 기독교 유월절을 지켰다. 그리고 금식을 마치는 17일에는 성찬과 애찬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된 기독교 유월절과 구속의 잔치를 베풀었다. 니산월 14일 저녁에 베푼 성찬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 관습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으셨다는 사상을 강력히 내포하고 있었다. 이들을 '14일파'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 또 다른 서방 교회들은 부활절을 음력 3월 보름 다음에 오는 주일 날(일요일)'부활 주일'로 기념했다.

 

이로 인해 초기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부활의 날'에 기념할 것인가, '부활 주일'에 기념할 것인가를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 문제는 교회 밖의 세상에서 볼 때, 교회의식의 통일성이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325년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인 니케아에서 부활절 문제를 논의한 결과 로마교회의 관습을 따라 춘분 이후(321)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을 '부활 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부활절이 이르면 322일부터, 늦으면 425일 사이에 오게 된다. 그리하여 부활절은 '부활의 날'이 아니라, '부활 주일'에 지켜지도록 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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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부활의 날인가, 부활 주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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