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주님, 어둠에서 새벽으로 이끄소서!

성도의 책임을 주님 앞에서 피하지 않게 하소서!

 

이억주 목사.jpg

 

금년에도 성탄절을 맞이함이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기 예수로 오신 성탄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기 때문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0-11)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어서 살아가는 것이라. 예측불가 하고 위험한 세상, 슬픔 많은 세상일지라도 성탄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깊은 어둠에 뒤덮여 있다. 우리 사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위험한 일들, 문제만 더 쌓여가는 실망스러운 것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자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온통 회색빛으로 가려져, 마치 2000여 년 전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오실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예수님이 오신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와 헤롯왕의 학정(虐政)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에는 희망이 사라지고, 영적인 지도자들마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었으니, 서민들은 눌린 고통의 무게로 인하여 탄식하며 지새우는 영적 깊은 밤과 어둠 속에 살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선한 것을 원치 않는, 악한 영의 지배하에 희망의 빛은 점차 사라지고, 절망스런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이 아닌가? 거짓과 위선, 폭력과 타락이 일상적이고, 선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빛을 잃었으니, 예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 외에 누가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요?

 

지배가 섬김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악이 선을 가장(假裝)하고, 강압이 긍휼을 억압하고, 경멸이 존경을 몰아내고, 거짓이 진실을 지워버리고, 미움이 사랑을 쫓아내었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이런 악행을 멈추게 할 것인가? 누가 이 시대를 참된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창조된 세상으로 바꿀 것인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여, 이런 상황이 남의 일인가?

 

금년에는 성탄의 좋은 소식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게 되었으니, 주님의 돌아서신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에 주님의 말씀이 너희가 버린 십자가를 다시 지러 가노라이를 누가 창작의 영화 대사(臺詞)라고만 여길 것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숭고한 심령(心靈)으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딸 예루살렘이여,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여,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라고 찬송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생명 경시의 시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일명 동성애법, 가정해체, 교육 개정 빌미로 사상을 오염시키는 교과서 제정 시도 등)를 대놓고 거부하는 시대, 원수 갚는 것과 타락된 삶을 무슨 권리로 여기는 시대, 완악(頑惡)하고 패역(悖逆)하며 음란하고 우상숭배와 술수(術手)를 즐겨,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이 세대를 외면할 것인가?

 

생명의 주님을 심령에 모셔 들여서, 거룩한 영적 혁명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신앙의 사람들이 할 일이 크지 않겠는가? 코비드19로 인하여,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슬픔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전쟁과 기근과 억압과 핍박으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심령에 임하여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은총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과 자유를 빼앗기고 가난과 굶주림과 생명의 위협이 일상이 된 가엾은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 앞에 나서서 도구(悼懼)의 눈물을 흘릴 이유가 우리에게 충분히 있지 아니한가?

 

성탄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자들과 권세를 주장하는 권력자들과만 친구가 될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 사랑 실천명령을 받들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2022년에 맞이하는 성탄절에는 주의 종들과 온 교회가 거룩하신 성탄의 기쁨을 실현하여, 이 세상 모두에게도 진정한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 헌신의 제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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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2022년 성탄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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