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 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국제독립교회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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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24:37-39).

 

지난 9일 새벽 0130분경이었습니다. 눈을 뜬 채로 누워 있었는데 재난 문자 발송 진동이 울리는 동시에 바닥이 좌우로 두 번씩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전 포항 지진 때보다 더 큰 울림이었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시골에 자랐던 저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여 농사일을 많이 거들지 않았지만 가끔은 부모님을 도왔습니다. 도리깨로 콩이나 깨를 떤 후, 체를 좌우로 흔들어 곡식과 쭉정이를 거르는 일도 했습니다. 오늘 새벽 작은 흔들림에, 하나님께서 지구를 흔드는 일은 우리가 체를 흔들기보다 훨씬 쉽겠다고 느껴졌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지구를 크게 흔드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없을 터인데, 지금까지 주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는 생각에 감사드린 것입니다.

 

코로나가 4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었다고 하지만 코로나는 다양한 형태로 백신을 피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히 코로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만합니다. 코로나가 의식이 있어서 스스로 백신을 피하여 변신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경고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노아 시대 홍수로 인하여 다 멸망당할 때까지 깨닫지 못한 것처럼, 코로나와 같은 각종 재앙으로 다 우리가 멸망당할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이 멸망 받은 이유는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특별히 흉악한 죄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행동은 오늘날 우리와 특별히 다를 바 없었습니다.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24:38-39).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은 노아가 살던 때뿐 아니라, 지금도 대부분 사람에게 관심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루는 에서가 사냥하고 장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솔솔 팥죽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뜩 허기졌던 차인데 냄새까지 나니 더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내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면서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습니다(25:32-34). 그러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노아 시대에 먹고 마시며 시집가고 장가간 것처럼, 에서 역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갔습니다. 이유는 그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의 백성 된 명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 된 명분을 소홀히 여기고 세상살이에만 빠졌기 때문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관여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에게 관심을 둡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남의 자녀가 말을 듣거나 안 듣거나 상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타락하면 세상에 심판을 내립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1-3).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코비드 상태는 그 서막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이 가까이 오셨다는 생각으로 등불을 켜고 서 있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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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크 칼럼] 강성률 목사의 ‘생각지 않는 때에 오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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