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 임현주 목사(항상기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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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21:12)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무조건 뛰어야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선생님은 잡혀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모든 재판 과정을 몰래 따라다니며 숨죽여 보았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법정 최고형, 1급 사형수들이 받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아 나무에 못 박혀 높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시체가 무덤 속으로 넣어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한 순간에 끝나버렸습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가실 수는 없습니다. 물 위를 걸었던 분입니다. 폭풍을 꾸짖던 분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 분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로마제국으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예루살렘 입성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드디어 우리 왕이 왔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앞에서 뒤에서 따르며 환호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11:7~10) 우리는 그 환호성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는데, 내 집이, 내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나아와 호소하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선생님입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날아갔습니다. 우리는 무섭고 두려워 그 밤에 다 도망쳤습니다. 두르고 있던 겉옷도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쳤습니다(14:51,52) 모든 것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은 다시 우리들을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처음으로 우리를 불렀던 곳입니다. 허기진 우리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준비합니다. 그런 줄 알고 따랐던 그 선생님이 그 선지자가 아닙니다. 창세 이후 사람이 무덤에서 살아나올 수는 없습니다. 그를 하나같이 버렸던 우리를 다시 찾아 올 수는 없습니다 그의 죽음 앞에서 그를 모른다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우리들입니다. 그가 재판받을 때, 악한 일을 도무지 한 적 없는 분임을 증명해 줄 증인들이 우리였음에도, 나서지 못한 우리들입니다. 홀로 죽음의 길을 가게 한 그 분입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같이 먹고 자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발을 손수 닦아주신 그 분이 맞습니다. 이 바닷가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눈앞에 서 계십니다. 처음에 무덤을 찾아갔던 마리아가 그가 살아계심을 보았다고 했을 때 도무지 믿지 않았습니다(16:11) 엠마오시골로 다시 돌아가던 두 제자도 자신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하였을 때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24:13~35)

그러고 보니 살아생전 몇 차례나 이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9:31) 왜 말씀하신 그대로의 일이 일어나도 그 때나 지금이나 믿을 수 없을까요? 지금도 사실 새까맣게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몇 차례나 우리의 믿음 없음을,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살아난 후에 우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겠다(14:28,16:7), 여기서 만나자 하신 곳, 이 곳입니다. 왜 다시 이런 우리를 찾아 오셨을까요.

 

그 선생님, 우리들의 주 앞에 다시 섰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왜 모른다 했는지, 왜 저주까지 했는지, 왜 버리고 도망했는지,그것부터 먼져 따져 묻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서운한 기색, 실망한 기색이 없습니다. 야단할 기색이 아닙니다. 다만 숯불을 피워 아침을 준비 했습니다. 역시나 밤을 새워 일하고도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만남을 준비 했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주 예수님과 함께 먹는 아침입니다. 그러나 전처럼 신나게 웃고 떠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 할 수 없습니다.

 

귀신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도 행한 우리였지만(10:1), 선생님의 십자가형 죽음 앞에서는 모두 도망쳤던 우리입니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합니까?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왜 그랬냐, 왜 못 깨닫느냐, 또 다시 야단이라도 맞고 싶은데 이젠 눈도 마주칠 수 없습니다. 무어라 말씀하실지 귀만 기울 일 뿐입니다. 다시 살아나신 그 분 앞에서 더 이상 감출 것도 숨을 곳도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침 먹을 시간이라도 주어진 것이. 먹으며 생각을 해 보아야겠습니다. 입으로 떡은 생선은 들어가지만 도무지 생각이 멈추었습니다. 지난 3년이, 처음부터가 내 생각이었습니다. 끝이 내 생각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대로가 아니었습니다. 내 눈앞에서 일어날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분만 우리의 생각들에 개의치 않고 하실 일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야 내 생각을 멈춥니다. 분주한 나를 멈춥니다. 내 안의 모든 시끄러움과 다툼이, 모든 의문, 모든 억울함, 울음과 두려움이 멈춥니다.

 

오직 그 분 앞입니다. 온 세상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앞입니다. 그는 이렇게 다시 살아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이렇게 있습니다

 

다 먹은 후에 드디어 베드로에게 말씀 하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다만 사랑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21:15~17)

사랑이 아닌 그 모든 것은 십자가 죽음 앞에서 남김없이 모조리 도망쳐야 하는 것임을. . .

죽음을 넘은 사랑으로만 세워 가는 주님! 오직 사랑이길 원하는, 사랑이신 주님!

 

<항상기쁜교회는 현재 서울 강서구 개화동에서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항상기쁜교회로 검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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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01572
김영신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축복이 넘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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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임현주 목사의 ‘와서 아침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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