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형 목사(드림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성도는 언제든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 매우 허영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타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 물건을 나르는 모습에서, 일상적인 걸음걸이에서, 눈빛과 머리를 흔들어 보이는 과정에서 그러한 모습이 묻어나 보이게 됩니다.
사진을 촬영할 때 쓰는 용어로 ‘스냅샷’(snapshot)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는 순간적인 장면을 촬영한 사진으로, 인물 사진에서는 자연스러운 동작이나 표정을 재빠르게 포착한 사진을 뜻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0.1초의 순간적 동작과 모습 속에 휙 하고 지나가는 몸동작이지만 그 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만의 현실과 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대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습관적인 것들입니다. 때로는 평소 감사를 잃어버린 채 불만족스러워하던 습관적인 모습이, 때로는 자신의 우월함을 은근히 나타내 보려는 모습으로, 때로는 무능력함의 뒷모습으로, 때로는 자기의 이익을 애써 감추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으로, 때로는 상대방을 속으로 조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자기만의 연약하고 부족한 허영심의 모습은 자기 내면에 숨어있는 과거의 모습이며,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연약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믿음의 부모와 같이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그렇게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뤄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작은 일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은 그렇게 ‘값싼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순교자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철천지 원수입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가 없는 사죄요, 교회의 권징이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만찬이요, 개인의 참회개가 없는 용서입니다. 값싼 은혜란 뒤따름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과 구원이 가장 귀한 것인데도, 실상은 은혜와 신앙을 쉽고 값싼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나님도 교회도 하찮고 쉬운 존재로 여기는 잘못된 신앙, 빗나간 교인의 모습을 뜻하는 말입니다. 기도회에 곧잘 나오지만, 막상 참된 회개는 없는 그런 기도를 하는 모습이라든지, 하나님과 교회 앞에 분명히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교회는 권징하지 못하고, 잘못을 행한 자들은 여전히 교회의 주요 활동에 참여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쉽게 여긴다든지, 참된 회개가 없는데도 형식적인 용서를 받은 것처럼 예배드리며 마당만 밟고 자리를 떠나는 모습 등에 대해 ‘값싼 은혜’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값싼 은혜로 무장된 마음이 우리 안에 있게 된다면, 그러한 모습은 하나님과 신앙과 교회를 등한시하는 내면의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실상은 이런 값싼 은혜가 아닌, 순전하신 예수님의 보혈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값진 은혜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진정한 값진 은혜를 체험하고 그것을 끝까지 소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값진 삶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순간의 동작이 회개를 이룬 고귀한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 동작이 그 사람의 신앙의 현주소를 정확히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 자신과 하나님의 현재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귀한 뜻을 위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도록 하신다고 하셨습니다(13절). 그러므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며(14절),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우리의 양심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놓여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마음이 더욱 값진 은혜를 사모하는 자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