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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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교회 연합기관 통합, 왜 필요한가?

 

이 시점에서 교회 연합기관 통합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일학교 학생들도 알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사면초가의 위기 속에 놓여 있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독립과 건국, 근현대사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이끌었던 정신적, 사상적 기초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계몽과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남궁억, 유관순 등 선각자들이 다 기독교인들이었다. 특별히 주기철 목사는 끝까지 일제의 정신적 식민정책이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순교까지 했다.

 

민족의 독립이후 대한민국 건국위원들은 민족의 정신적 근간을 이룰 새로운 종교를 찾았다.(1945815일 해방 이후 기독교는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고려는 불교를 건국정신의 중심으로 삼았고, 조선은 유교를 건국정신의 근간으로 삼았다.

 

특별히 해방 직후 전국에 만들어졌던 건국준비위원회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으며, 이들이 받아들이고자했던 건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였다. 기독교는 우상과 미신, 가난과 질병으로 가득했던 조선 땅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 문맹을 깨우치고 구제를 하면서 민족 종교로 자리 잡았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교회로 몰려왔다. 춘원 이광수는 성공하려면 교회로 가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해방 이후 기독교는 유사정부 역할을 했다. 당시 한국정부는 국가의 주요임무인 교육, 의료, 복지, 문화, 예술의 전반적인 분야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다. 이때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구제하고 교육을 통한 사회 계몽과 문화예술 영역을 진흥시켜 나갔다. 인간의 자유와 사랑, 평등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정신적 가치가 없이 어찌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번영될 수 있었겠는가? 뿐만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번영의 이면에는 한국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영적인 부흥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절망에 빠진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고, 이런 희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교회 역시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편승 하면서 김형석 교수가 말한 대로 우리만의 종교적 이너서클과 카르텔을 형성하며 연못 안에 갇힌 교회가 되었다. 시대정신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면서 사회로부터 칭송받고 선한 리더십을 행사하던 한국교회가 점차 외면을 당하고 오히려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8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배타적 민족주의와 진보적 사고가 한국교회를 영향을 끼친 면도 있었고, 교회는 여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한국교회는 새천년을 맞이하였다. 기업들은 새천년을 맞아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고 사회 구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대비를 하고 준비를 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전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기존의 매뉴얼만 돌리고 장밋빛 희망만 가지고 새천년을 맞이하였다.

2007년 평양 대부흥회 기념행사 때도 너무 자축하는 분위기로 갔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는 잔치를 하다가 망했다고 했다. 바로 그 잔치 이후에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터졌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도 없었다. 바로 그때부터 개독교, 똥경, 먹사 등 입에 담지도 못할 온갖 비난과 조롱을 다 듣게 된 것이다. (물론 의료봉사단을 교회는 당연히 좋은 일을 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을 때 언론이 이것을 과장 확대해서 보도했고 해당교회와 한국교회가 여기에 대한 대처를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과도한 교권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분열의 분열을 거듭하게 된다. 연합기관 내에서 서로 다투고 분열하는 동안에 국회에서는 이슬람 스쿠크법, 종교 과세, 차별금지법 등 한국교회 생태계를 위협하는 법들이 발의가 되었다. 그런데도 연합기관에서는 이런 것을 대응하고 막아낼 생각을 못했다. 왜냐면 연합기관이 분열하면서 또 다른 기관을 만드는데 신경을 쓰다보니까 정작 공적 교회를 세우고 공적 사역을 돌볼 틈이 없었다. 연합기관 마저도 본연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2020년초에는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코로나 사태를 맞았을 때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예배가 셧 다운되고 초토화 되어 버렸다. 논자는 당시에 대응기구와 자율적 방역을 주장하였다.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현장예배를 축소하고 온라인예배를 병행하면서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최소한의 행정지원만 하도록 선제적 대응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일부 교회가 산발적으로 확진자를 내면 선별적 행정을 하도록 제안했다. 그러나 논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국교회가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하여 정부에 예배의 주도권을 제한받음으로써 한국교회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21세기목회연구소 김두현 소장에 의하면 한국교회는 세 부류로 나누어졌다고 한다. 첫째는 전통적인 교회 사수파였다. 국민 여론과는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현장예배를 강행하는 파였다. 교회 사수파의 정신과 가치만큼은 높이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를 생명처럼 존중히 여기면서도 동시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 보건에 앞장서야 한다는 책무도 깨달아야 했다.

 

둘째, 온건한 중도파였다.현장예배를 반드시 지키되, 사회 여론을 감안할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집단감염의 거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고위험군과 노약자들은 집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온라인을 통해 예배를 송출하자는 것이었다. 꼭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원리더십과 원 메시지를 내야 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셋째, 백기파(포기파)였다.코로나가 두려워 지레 겁을 먹었거나 혹은 코로나를 핑계대고 아예 예배를 포기해 버린 교회다. 겨우 주일예배만 드릴 뿐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저녁예배, 새벽기도를 다 문 닫아 버리는 교회가 여기에 속한다. 심지어는 주일예배를 포기하는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주일예배를 포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공예배도 포기한 것 까지 포함하면 포기파가 6%에 달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교회 미션은커녕 비전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기득권의 카르텔과 이질집단의 트러스트로 갈라지는 양상을 보였다. 어떤 교회와 연합기관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하여 더 강력한 결속의 동형화를 이루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사람들은 SNS(단톡방), 유튜브를 통해서 온갖 비난과 편가르기, 분열, 대립, 충돌 그룹을 형성해 나갔다. 이런 상황을 안티 기독교 세력이 어찌 가만히 두겠는가.

 

그들은 언론을 통하여 교회와 사회를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충돌 프레임을 만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고스란히 희생양이 되었던 곳이 바로 한국교회였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팬데믹의 후유증을 얼마나 크게 앓을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엇박자를 내지 않고 하나의 메시지, 원 메시지를 내며 강력한 결집구조를 이루었다면 이러한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별히 이정훈 교수의 엘정책연구원 빅데이터 온라인 여론조사 발표를 보면, 어느 기독교 기관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적 행보를 보였던 특정 집회를 기점으로 국민 여론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나왔다. 그 전에는 국민들은 코로나하면 신천지를 연상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반사회적 집단인 신천지와 정통 한국교회는 다르다고 구분하여 생각하였다.

 

그런데 엘정책연구원 빅데이터에 의하면 특정 집회 이후에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국민 여론이 코로나 확산과 한국교회를 연관시켜 부정적 이미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 역시 신천지와 다를 바가 없다는 부정적 프레임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 한국교회는 언론과 국민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는가. 그만큼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급격하게 실추되고 엄청난 데미지를 입게 된 것이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원 리더십을 행사하고 원 메시지를 내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코로나를 빌미로 해서 정부가 지나치게 교회 예배를 제재하였던 것도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부는 항상 방역과 같은 것을 내세워서 자기들의 비판세력을 공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원이 뉴욕시의 방역이 지나치게 종교의 자유를 규제했다고 판결한 것을 우리 정부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국민보건을 위하여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는 의무도 있지만 그 방역지침이 지나칠 때 과연 그것이 정당한 것인지, 과도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응을 했어야 했다)

 

더구나 다시 팬데믹 상황이 올 것을 대비해서 감염병과 관련된 개정법안80개 이상이 발의 되어 있다고 한다. 이 개정법안에 대해 잘 대처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다른 팬데믹이 올 때 교회는 또 다른 피해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럴 때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원 리더십을 행사하고 원 메시지를 내야 한다. 역사를 보면 교회가 망할 때는 반드시 다툼과 분열이 있었다. 가장 비근한 예가 동로마교회와 러시아 정교회다.

 

지금이야 말로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한국교회 생태계 보호와 공적 사역의 미래를 위하여 새판짜기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다시 하나 되어 큰틀 공동체를 이루고 큰 숲을 이루는 연합기관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 일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루어야 할 마지막 기회요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우리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영적인 혜안의 눈을 뜨고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블루 시그널일 것이다.

 

본론 교회 연합기관 통합, 무엇이 문제인가?

 

1. 교권 제일주의가 문제이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의 다툼과 분열은 반드시 교권 때문이다. 동로마교회는 화상숭배 문제로 다투다 망했고, 러시아정교회는 화상문제를 넘어 교조적 예전논쟁 때문에 싸우다 볼세비키 혁명을 맞았다. 사실 그런 것들은 하나의 명분과 구실일 뿐이었고, 분열과 멸망의 주요인은 교권 다툼 때문이었다. 한국교회도 다를 바가 없다. 교권이나 자리다툼 때문에 교파가 얼마나 많이 나누어졌는지 모른다.

 

물론 50~60년대에 장로교의 분열은 자유주의와 용공주의를 막으려는 신앙적인 결단 때문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단 분열과 연합기관이 분열된 것은 교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교권 때문에 금권선거가 자행되고 말할 수 없는 음모와 분열의 상처를 남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속에 내재해 있는 욕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욕망을 자극시키는 바벨론의 음녀의 유혹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바벨론의 음녀는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손에 음행의 포도주잔을 들었다고 하지 않는가.(17:2-3)

 

요한계시록에서는 짐승 자체가 권력을 상징하는데 짐승을 탄 음녀가 땅의 임금들과 음행을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음녀가 유혹을 하는 도구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정사의 영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다. 그 정사의 영이 서로 교권을 탐내게 하고 그 교권을 위한 정치를 하도록 교계 지도자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교권 제일주의의 이기적인 사고를 내려놓아야 한다.

 

2. 교단 우선(이기)주의가 문제이다.

 

교단은 각자의 신학과 교리가 있다. 각 교단의 교리와 신학의 정체성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이단도 막고 신앙의 순결성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교단 우선주의나 이기주의로 가면 안 된다. 경영학에서도 사일로 이펙트’(Silo Effect), 부서 이기주의기관 충돌이 나타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고 분열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사일로 이펙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비전과 가치를 항상 리마인드 시켜야 한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교단으로서만 존재하면 안 된다. 특별히 요즘은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교단은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 한 교단만 가지고는 절대 막을 수 없다. 모든 교단이 교단 우선주의를 초월해서 하나 되어 교회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 교단 우선주의를 넘어서 하나된 연합기관의 원 리더십을 세우고 원 메시지를 내야 한다.

 

3. 공교회 의식이 없는 개교회주의가 문제이다.

 

영국의 윌리엄스(Andrea Williams) 변호사에 의하면, 영국교회가 개교회주의의 함정에 빠져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 사상과 입법화를 막아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그저 개교회 목회만 하고 교회 자체만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서 낙태, 동성애, 이슬람 문제 등이 대두될 때 우리는 기도하고 목양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무관심하고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영국은 낙태법, 이슬람 샤리아법, 평등법 등이 다 통과되면서 교회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전 국민이 기독교인이나 다름없던 나라가 지금은 실제적인 기독교 인구가 겨우 2% 밖에 안 되는 나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이슬람은 8%가 되어 버렸다.

 

윌리엄스 변호사는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한국교회는 절대로 영국교회의 비극적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당시 영국의 목회자들이 영혼을 구원하는 목회를 한다고 했지만 자기 취향에 맞는 개교회 목회에만 도취됐다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영국교회가 목회자의 개성과 취향에만 맞춘 클럽교회화 됐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 영국교회는 차별금지법 때문에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사회복지형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교회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ADF(Alliance of Defence Fund)라는 기독교 방어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어 버렸다. ADF는 미국의 깨어 있는 변호사들이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미국교회를 방어하기 위해서 만든 법률단체다. 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이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 교회들이 문화적, 관습적으로 보호되어있던 것들이 재판으로 가면 다 지는 것이다. 그래서 ADF라는 방어기구를 만들어서 현재 56명의 변호사들이 미국교회와 단체로부터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미국교회가 전에는 재판을 하면 80%를 패소하였는데, ADF가 생긴 다음부터는 80%를 승소하고 있다. 이런 단체도 있는데 어떻게 미국에서 동성결혼법이 통과될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백방으로 알아보아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와 변호사 등 12명이 미국에서 있었던 동성애 대처 방안 세미나에 참석하고 ADF 본부를 방문하고 왔는데, 그 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이 가서 보니까 미국교회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으로 때늦은 뉘우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37개 주에서 동성애가 다 통과 되었고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법도 합법화되어 버렸다. 완전히 미국교회 생태계가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ADF는 목회자나 신학자가 모인 단체가 아니고 변호사들이 모인 단체였다. 그래서 반기독교적인 공격의 현상만 보았지 영적 배후의 실체를 보지 못한 것이다.

 

그들의 사역은 어느 지역교회가 법적 불이익을 당하면 그때 그때 변호해주는 일에 급급했다. 그러니까 개교회를 보호하는 일에는 성공했지만 거대한 반기독교적인 시류를 보지 못해서 동성결혼법이 통과되는 것을 예견도 못했고 막지도 못한 것이다. 이것이 ADF의 한계였다. 그런데 이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ADF도 공교회 의식을 가지고 전방위적인 사역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 목회 빅테이터 연구소(대표 지용근 소장)에서 한국교회의 목사, 장로, 평신도들을 다 합쳐서 공적 교회에 대한 인식 설문조사를 해보니까 19% 밖에 모르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만큼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공적 마인드가 없이 개교회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논자는 다음에 조사할 때는 19% 가운데 과연 공교회의 공적 사역을 위해 얼마나, 무엇을 헌신했는가?”를 조사해 보고 싶다. 조사를 한다면 1-2% 밖에 안 나올지도 모를 것이다.

 

개교회 뿐이겠는가. 교계 안에 있는 여러 기관들이 있다. 기관들도 공적 마인드와 사역 보다는 자기 기관을 키우고 확대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생태계 원리상 남의 교회가 무너지면 우리 교회도 무너지고 남의 교단이 무너지면 우리 교단도 무너진다. 특별히 지금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비롯하여 낙태법, 모자보건법, 감염법에 관계된 집회 금지법 등 반기독교 악법이 계속 추진 중이다.

 

더구나 배타적 민족주의(극우파)와 진보적 사회주의(좌파)가 충돌하고 대립하는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사회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기독교를 서구세력으로 보고, 진보적 사회주의는 기독교를 반혁명적 기득권 세력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교회는 이런 반기독교적인 세력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되어 방어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

 

4. 독선적 신념으로 우리만의 이너서클을 형성했던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독선적 신념에 빠지면 사회적 감수성과 공감능력을 잃어버리고 오직 우리의 교리와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정죄하게 된다. 물론 우리의 신앙을 정말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그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이도 있고 다양성이 있을 수 있다. 독선적 신념에 빠져서 자기만이 옳고 정통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

 

예컨대, 자기 교단의 신학만을 내세워서 다른 교단의 다양성을 부정해도 안 된다. 특정 연합기관의 독선적 신념으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연합기관을 부정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교단과 연합기관이 나누어지지 않았던가. 우리가 이단은 반드시 차단하고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이단이 아닌데도 감정을 섞어서 이단성이 있다고 공격을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당연히 이단은 끊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라면 차이와 다름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히 교단과 연합기관은 더 그렇다. 독선적 신념과 우리만의 카르텔에 빠져 있으면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러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성 안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 때도 연합기관이 서로 소통하고 공감해야 할 때에 각자 다른 소리를 내며 감정적 양분까지 일으켰지 않았던가.

 

결론 - 교회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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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제언] 소강석 목사의 ‘한국교회 연합기관, 하나가 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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