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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당부 잊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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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우리가 다시는 그 어떤 나라도, 민족도 지배하지 못할 강한 나라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그의 바램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굳건히 실현됐습니다”
이달(6월) 초 대한민국에 매우 특별한 손님들이 방문했다. 미 하와이의 10대 청소년 14명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을 직접 연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하와이 역사클럽(KHHC)'의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민주주의 정착은 물론 하와이 한인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영웅 '이승만'의 흔적을 훑으며, 그가 실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을 고백했다.
하와이는 물론 한국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던 ‘한국·하와이 역사클럽' 방문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 10여년을 오직 이승만 알리기에 온 몸으로 매진했던 허상기 이사(건국대통령 이승만재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허상기 이사는 근래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영화 '건국전쟁' 제작의 가장 큰 공헌자이기도 하다.
본보는 최근 서울 연지동 모 처에서 허상기 이사를 만나 금번 ‘한국·하와이 역사클럽' 탐방과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과 신앙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하와이 역사클럽' 학생들의 한국방문이 꽤 많은 주목을 받았나?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나?
: 하와이에서 지내는 한국인 길나연 학생이 지난해 6월 한국을 방문해 정읍선언에 참여했었는데, 거기서 이승만 대통령의 진실을 듣고 많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듯 싶다. 하와이에서 지내며 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어렴풋이 듣기는 했지만, 그 분의 독립운동과 애국, 대한민국 건국과 개혁 등은 길 학생에 매우 관심을 끈 신선한 충격이었다. 곧장 하와이로 돌아온 길 양은 한국인 2세들과 역사클럽을 만들기로 마음 먹고, 직접 이를 위한 기획서를 작성해 내게 가져왔다. 내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대학 교수(토목 전공)를 한 교육자인 탓에 다행히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이후 지난해 11월 ‘한국·하와이 역사클럽'이 정식으로 발족되고, 12월에는 내가 학생들을 인솔해 하와이 역사탐방을 실시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을 접했다. 이승만이 세운 4개 한인기독교회, 이승만이 머물던 초막집, 인하공원 등 많은 곳을 갔다.
한국에 오기 전 이미 하와이에서 1차 역사탐방을 끝냈다. 하와이 역사탐방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라는 먼 타국에서도 오직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의 안녕만을 위해 기도했던 애국과 한 사람의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모범적 신앙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은 태평양 바다가 보이는 요양원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대한민국의 미래와 비전, 국민들의 생계를 고민했던 그 애국 정신을 이제 너희들이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많은 곳을 방문했다. 양화진 선교사 묘역, 인하대학교, 배재학당, 이화장, 전쟁기념관 등 많은 곳을 갔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꼽는다면?
: 사실 모두 감동이었고, 각자의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아펜젤러 선교사 묘역 방문이 매우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스승이자, 한국의 복음화와 발전을 위해 모든 생을 바친 분이다.
실제 아이들이 아펜젤러의 묘역 앞에서 자신과 같은 미국인들이 이 곳 대한민국을 위해 크게 헌신한 사실에 많은 생각을 하더라. 그날 저녁 토론에서 한 아이는 "대한민국 초기 이렇게 많은 미국인들이 이 곳에 왔고, 또 한국을 위해 살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랍다"고 고백키도 했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의미를 꼽는다면?
: 진실의 회복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너무도 왜곡되고 거짓으로 얼룩져 있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가 대체 건국대통령을 이토록 폄훼하는 곳이 있는가? 미국은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의 이름을 기념한 길만 3,000개 이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능력이나 업적이 부족했는가? 절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전 세계 내노라 하는 리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세계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우리나라가 6.25 당시 미국 등 자유우방의 참전과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이 대통령의 업적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그 누구의 주입이나 강요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진실을 정립할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도 뿌듯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나?
: 참 부끄럽지만 원래 그렇지는 않았다. 지난 2013년 어머니의 요양 차 하와이로 이주해 왔는데, 이 곳에서 좌파세력에 의해 지속적으로 매도되는 이승만 대통령을 보면서 이것은 아니다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 사실 이곳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은 설 자리가 없었다. 일례로 지난 2018년 하와이 호놀룰루 시의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에 온 날을 '이승만의 날'로 제정키로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시의원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결정을 한국은 물론 하와이 한인동포들이 매우 좋아해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온갖 좌파 단체들이 시의회에 항의 메일을 보내, 시의회를 강력히 비난하며, 이승만의 날 제정 결의를 취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당연히 시의회에서는 자신들의 건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한국의 행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때 좌파의 전략에 더 이상 당하면 안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부터 역사를 위해 싸워야겠다 마음먹고,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웃으면서 얘기하시는데 막상 그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 힘든 것도 힘든 일이지만 너무 슬펐다. 왜 우리의 건국 대통령을 짓밟지 못해 안달인가 하는 생각에 너무도 허탈하고 슬펐다. 이 대통령이 하와이에 와서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한인 동포들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중에 가장 큰 교회가 있는데, 수년 전 그 곳을 담임하던 목사님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잘린 적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 교회는 북한 평양 모 대학교 총장을 단상에 올리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교회가 이승만 대통령을 지우지 못해 안달인 것이다. 이런 고난의 과정을 겪었기에 오늘날 '한국 하와이 역사 클럽'도 가능했다. 당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정말 기도하면서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다행히 지난해 건국전쟁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바뀌고 있는데?
: 너무 감개무량하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릴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드디어 깨어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매일 감사드리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 앞에는 '종의 멍에를 지지 말라'는 구절이 써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진정으로 바랬던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진정한 독립과 자주였다. 민주주의를 통해 국민들 스스로 독립된 조국이 진정한 주인이 되길 바라셨다. 이제 우리가 그 분의 뜻을 이어야 하지 않겠나? 다행히 우리나라가 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모든 업적이나 역사적 사실이 다 조명되지 않았다. 우리가 아직 알려야 할 역사들이 많이 남아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 일단 한국 하와이 역사클럽을 더욱 활성화 할 계획이다. 일단 11월에 하와이 빅아일랜드로 3차 역사탐방을 떠난다. 그 곳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매년 한국 하와이 역사클럽의 한국 방문을 정례화 하려 한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현재 하와이에 이승만 기념관 건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약 60만불 정도가 드는데 지금 열심히 모금운동 중이다.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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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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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별은 아쉽지만 소망이 더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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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에 저희 교회를 섬기던 최해규 장로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요일 오후에는 위로예배를 드려 드렸고, 금요일 오후에는 입관예배를 드렸으며, 토요일 점심에는 하관예배까지 인도했습니다.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최진경 장로님이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위중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해달라고 오신 것입니다. 저도 솔직히 약간 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미국에 가 있을 때 최해규 장로님이 천국 가시면 누가 장례식을 인도해 줄 것인가... 물론 부목사님들이 있지만, 어찌 제가 마음으로 스승처럼 존경했던 최해규 장로님의 마지막 길을 그들에게 맡기겠습니까?
그분은 평생을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시면서 올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각종 민방위훈련이나 군부대를 다니면서 효와 충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민폐를 끼치지 않고 언어생활도 자제를 하시며 사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도 세월이 흘러서 노환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장남인 최진경장로님이 저에게 기도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목사님, 제발 우리 아버님이 90세까지만 살면 좋겠습니다. 85세의 연세도 단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 욕심으로는 90세까지 붙들고 싶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에게는너무나 잔혹한 고통이 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붙들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제 곁에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아버님께서 90세까지 산다는 보장은 못하지만, 지금 아무리 위중하다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도의 감동의 확신이 오는데 제가 미국 가는 일정 중에는 하나님이 불러주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제 확신을 믿으십시오. 만약에 제 감동이 틀려서 미국 가기 전에 최 장로님이 돌아가신다면 제가 미국 일정을 포기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제가 자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도 혹시나 해서 최 장로님께 전화도 드리고 또 교구 전도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말 건강 상태가 호전이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사히 미국 일정을 마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진경 장로님이 그날따라 보고 싶어서 아버지를 면회했는데 면회하고 바로 그 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들임을 인지하고 눈인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으셨으니 임종을 하신 것이죠. 제가 그 사연을 듣고 원주에서 달려와 위로 예배를 드려주었습니다.
예배 후에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장례예배가 천차만별인데 아쉬움이 있거나 껄껄껄 잘했으면 좋았을 걸 등 마음 아픈 장례식도 있는데요. 오늘 장례예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이별의 아픔은 있으나 감사가 있고 고인이 되신 최해규 장로님이 잘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나 세상에나 특히 자녀들에게나 성도들에게 모범된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진경 장로님의 인사도 감동이었어요.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하나님께도 교회에도 더 잘하겠다는 인사가 너무 은혜스러웠습니다. 이별의 아쉬움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며느리와 손자의 모습도 인상이 깊더라고요. 이건 불효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님이 너무나 인생을 잘 살아내신 것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느껴지는 눈물이었어요.”
저도 위로예배 때 이런 말씀을 전했죠. “저도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누가 제 장례를 치러야 될지 모르지만 우리 소 목사님이야말로 정말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눈물과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질병이 없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위로를 받고 안식을 얻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하는 설교 그대로 누군가가 제 장례식에 그런 설교를 하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장례식에서도 저를 아는 성도들이 이별에 대한 아쉬움뿐만 아니라 삶을 위대하게 살고 하나님의 사역을 잘 일구신 존경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를 원합니다. 저도 그런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 천국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그 소망이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1도 없어요. 어떻게 남은 삶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있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최해규 장로님의 천국환송예배를 하면서 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천국 소망이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 내가 목사 되기를 너무나 잘했지. 내가 목사 안 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방탕하게 살았으면 내 영혼이 지옥에 가지 않을까. 앞으로도 하나님의 영광과 천국의 상급을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며 살아야지.”
그렇습니다. 이별의 아픔보다 더 큰 것은 천국 소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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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