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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순이 나르샤”
- “새에덴의 꽃, 생명 / 순장들이 모인 은혜 넘치는 / 이 좋은 시간과 공간에 / 나를 택하여 주사 더 큰 사명으로 날아오/르게 하시니 더욱 주님 높이 섬기며 / 샤론의 꽃을 피우겠습니다.” 이건 지난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었던 ‘새순이 나르샤’ 시간에 어느 순장이 저에게 보낸 ‘새순이 나르샤’로 지은 6행시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순장은 ‘맨발의 소명자’로 6행시를 썼습니다. “맨 처음 교회를 간 건 그저 예쁜 여학생 때문이었습니다. / 발치에 앉아 멀리 떨어져서 들은 제자 베드로의 배신 이야기에 의로운 분노가 타올랐습니다. ‘나라면 그렇게 배신 안 한다. 사내 대장부가 3년이나 따라 다녔으면서 배신을 하냐?’ / 소리치듯 내뱉은 마음의 소리에 / 명령이 내려오듯 제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 자녀로 삼아주시고 주님의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새순이 나르샤’라는 프로그램은 코로나 이후 소그룹과 생명순(구역)을 살리기 위한 중간 그룹의 모임이었습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00명에서 150명 단위로 교회 카페에서 교회오빠인 담임목사와 교회언니인 순장들과의 영적인 따뜻한 대화와 소통을 하는 시간을 갖았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겨우 교회를 유지하고 회복을 하였지만 이제 코로나의 검은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새로운 부흥과 성장을 이루어야 할 시기이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순(구역)이 살아야 되고 생명순이 살기 위해서는 생명순장(구역장)들과의 긴밀한 소통과 관계성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제가 먼저 격려의 메시지를 하고 성도들이 저에게 묻고 싶은 것을 엽서에 적어서 주면 그걸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어느 한 장도 가볍게 취급하지 않고 진솔하고 성심성의껏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니까 그곳에 모인 성도들이 감동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후문에 의하면 가까이에서 단둘이 이야기하듯 그런 분위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교구마다 직접 만든 선물을 저에게 전달을 하였습니다. 어떤 교구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케이크, 또 김밥, 저의 캐리커쳐와 제 시를 캘리그라피로 쓴 액자 등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떤 교구에서는 저에게 노벨문학상을 준다고 메달을 만들어서 목에 걸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또 다른 교구에서는 콩나물 꽃다발을 가지고 왔습니다. 새순이 콩나물처럼 막 자라라고 말입니다. 그런 후에 순장들과 함께 가수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를 개사해서 함께 노래를 불렀습니다. “♪ 그렇게 대단한 기대까지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 그대 하나 떠나간 우리 교회 이제 그대 아님 채울 수 없소 /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성도로 만나 / 꿈을 꾸듯 새에덴을 이루고 / 주님의 은혜로 벅찼던 우리가 예배로 만나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그 모든 건 은혜이었음을...” 그리고 제가 마무리 축복기도를 하고 일일이 한 분 한 분 다 악수를 하였습니다. 천 명이 넘는 순장들이 한꺼번에 모이면 그냥 하나의 집회로 끝났을 텐데, 교회 카페에서 100명, 150명 단위로 모이니까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역시 작은 공간이 주는 분위기의 효과가 크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서로 작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악수를 하며 아이컨택을 하니까 정말 가까이에서 단둘이 데이트(?)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었겠죠. 이러기를, 어떤날은 하루에 몇 번씩 하니까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지만 끝나고 잠시 누우면 진짜 순장들이 새순이 되어 날아오르는 환상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정말 콩나물 꽃다발처럼 생명순들이 쑥쑥 자라 오르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변함없이 교회오빠인 담임목사를 응원하고 추앙하고 지지해준 교회언니인 순장들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서 우리 교회는 ‘새순이 나르샤’할 뿐만 아니라 ‘생명이 나르샤’하고 ‘부흥이 나르샤’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에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쓰고 불멸의 성장 신화를 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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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새순이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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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땅과 하늘의 찬양대가 앙상블을 이루는 순간”
-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니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 저녁에 본당을 성도들로 가득 채운 채 ‘할렐루야’를 찬양하였을 때 말입니다. 그것도 주일 오전예배 때도 아니고 밤 예배 때 말입니다. 지난 부활주일은 보통 부활주일이 아니었습니다. 2시에 광화문에서 한국 기독교 140년 역사만에 최초로 2023 부활절 퍼레이드를 인도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교단 총회장을 하였고,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였기에 실무대회장을 한다는 것은 옷에 맞지 않았지만, 이영훈 목사님과 CTS 방송에서 간곡하게 요청을 하여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후 4시에는 한교총 주최로 대통령이 참석하는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서 축시 순서를 맡았고 저녁에는 우리 교회 부활절 칸타타 행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행사가 겹치다보니 막상 퍼레이드 행사에는 못 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라도 참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활주일 3부 예배만 끝내고 바로 광화문으로 출발하여 겨우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4시에 영락교회에서 열리는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하여 기념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콩밭에 있었습니다. ‘부활절 퍼레이드에 적지 않은 성도들이 동원이 됐는데 이분들이 지쳐서 저녁에 안 오면 어떻게 하나. 정말 3층 본당까지 성도들이 가득 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염려를 왜 저만 하였겠습니까? 우리 교회 실무진들도 저와 같은 염려와 고심이 깊었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부활주일 저녁예배 행사를 하자고 했을 때 오후에 부활절 퍼레이드 행사가 있어서 좀 무리가 되지 않을까하는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결단 해야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 번 해 보자고 밀어붙였습니다. 그러자 팀장회의에서 새에덴의 모든 성도들이 퍼즐 스티커를 부착해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하여 예배가 시작될 때부터 본당 3층까지 꽉 채웠습니다. 저는 본당을 가득 채운 새에덴의 성도들이 ‘할렐루야’를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새에덴 연합찬양대가 ‘죽임 당하신 어린 양’, ‘살아계신 주’를 비롯해서 ‘할렐루야’까지 칸타타를 정말 잘했습니다. 연합찬양대가 주축이 되었지만 모든 교인들이 다 일어서서 ‘할렐루야’를 찬양할 때 정말 너무 아름다웠고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언젠가 예배시간에 온 성도들이 의복을 하나로 통일하고 찬양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찬양대도 몇 주 전부터 토요일마다 나와서 연습을 하고, 전교인이 자발적으로 참석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짜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니까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본당 3층에 있는 성도들에게 달려가서 격려해 주고 싶을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기뻐하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제가 감사기도를 할 때 죽전의 하늘이 열리면서 우리 교회 찬양대와 하늘의 찬양대가 함께 만나서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진동시키는 앙상블을 이룬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정말 죽전의 하늘을 찢고 하나님의 임재와 운행하심이 가득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자려고 하는데도 잠이 안 오는 것입니다. 수면제를 먹었는데도 두어 시간 만에 또 깬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환영처럼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꿈과 현실이 서로 교차되면서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이었지만 너무 행복했습니다. 꿈 없이 잠들지 않고 꿈 없이 깨지 않는 삶은 여전히 연속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거룩한 욕심이 생기고 또 도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에는 ‘할렐루야’ 못지않은 전교인 연합찬양을 또 한 번 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때는 하얀 옷이 아닌 추수를 상징하는 노란 옷을 입고 해보고 싶다는 도전과 거룩한 욕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때의 모습이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있고 제 안에서 ‘할렐루야’ 찬양이 계속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녹화영상을 볼 때마다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고, 특별히 지난 목요일 7시 반에 CTS 방송에서 녹화중계가 방영되었을 때 정말 가슴이 울컥거렸습니다. 그날 참석해 주신 성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고 부활절 계란을 3만 3천 개나 기증해 주신 송성은 집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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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땅과 하늘의 찬양대가 앙상블을 이루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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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꿈은 길 위에서 잠들지 않는다
- 저는 지난주 월요일 우리 총회 산하 농어촌 목회자부부수양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온 김에 ‘일상적인 투어가 아닌 의미 있는 관광을 할 수 없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한국 베트남 수교 30주년 행사를 주관하신 우리 교회 최진영 집사님(코리아헤럴드 대표)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여기에 온 김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명소나 혹은 유력한 분을 좀 만날 수 없습니까?” 그랬더니 당장 베트남 대통령 친구이자 5선 국회의원과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도 더 의미가 있는 게 없습니까?” 했더니 “그러면 스타레이크시를 방문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곳은 하노이에 있는 60만 평의 노른자 같은 땅에 서울 강남과 같은 특별한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는 곳인데, 우리나라의 대우건설이 투자하여 지금까지 개발을 주도해 왔다고 합니다. 1차 사업은 다 완공이 되어 이미 2천 여 세대가 입주하여 있고 2, 3차 사업도 진행되고 있어 추후 빌라와 아파트가 계속 건설될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국회, 11개 행정부처 등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그런 곳을 가보고 싶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마친 다음 날 스타레이크시를 방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국진 현지 법인장과 직원들이 친히 나오셔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스타레이크시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제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처음으로 이 사업을 꿈꾼 드림 메이커가 누구였습니까? 혹시 김우중 회장이 입안한 거 아닙니까?” 그랬더니 “맞다”는 것입니다.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에 와서 “아, 여기는 정말 호텔과 오피스텔 그리고 신형 아파트와 빌라 등의 새로운 신종 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며 이런 신도시 건설의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러 건설회사가 참여했지만 다른 기업들은 다 그만두고 대우건설이 끝까지 해 왔다는 것이구요. 저는 도시 모형도만 보지 않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할 뿐만 아니라 직접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투어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뷰를 보니까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멋있게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건설회사 하나가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인 나라에 와서 어떻게 허가를 받아서 개발을 하고 신도시를 만들 수 있는가?” 저는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너무 감사하고 대우건설을 추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비록 그 꿈을 본인이 이루지는 못했지만 꿈꾸는 자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김우중 회장의 꿈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언젠가 제가 쓴 ‘꿈은 길 위에서 잠들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 또한 꿈의 인생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난 이후에 고독한 별빛 아래서 잠들고 차가운 새벽이슬을 맞으며 깨어나는 외로운 길 위의 인생이었습니다. 120원짜리 점심을 사 먹을 돈이 없어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가난한 신학생이었지만 기도원에 올라갈 때면 소나무들을 저의 성도라고 생각하고 설교 연습을 했습니다. 점심값을 아껴서 책을 사 보며 밤마다 지혜의 등불을 밝혔습니다. 바로 이런 꿈이 있었기에 길 위에서 쓰러지고 잠들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을 비비며 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저라고 해서 왜 좌절과 상처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꿈은 그 길 위에서 잠들지 않고 계속 걷게 하였고 오늘의 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길 위에서 잠들지 않습니다. 물론 잠시 잠들 수 있으나 꿈에는 길이 있기 때문에 또 일어나 걷게 됩니다. 그것이 허상이요 야망에 불과하다면 포기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니, 좌절하고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꿈은 길 위에서 잠들지 않고 걸어가고 또 걸어가게 합니다. 우리가 꿈을 꾸면 그 꿈은 내 생전에 이루어지든지, 천국 간 후에 이루어지든지 누군가에 의해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일단 꿈을 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내 자녀를 통해서 이루어져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모두 아름다운 뷰티플 드리머(beautiful dreamer)가 되어 길 위에서 잠들지 않을 찬란한 별빛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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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꿈은 길 위에서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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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도자는 선각자여야 합니다”
- 이 세상에는 현자와 우자가 있습니다. 우자는 가르쳐줘도 모르고 현자는 가르쳐주면 아는 자입니다. 그런데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싹을 보고 미래를 아는 사람을 명자(明者)라고 하고, 싹이 보이지도 않지만 기미만 보고도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을 철인(哲人)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싹도 안 나고 기미도 안 보이는데 미래를 꿰뚫어 보고 예측하며 그것을 대비하는 사람을 선각자(先覺者)라고 합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대안을 세우는 선각자여야 합니다. 코로나가 왔을 때 저는 교단 부총회장으로서 몇 분의 교회사 교수들로부터 자문을 받은 후, 한국교회 지도부에 칼빈의 ‘쿼런틴’(quarantine) 즉, 격리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할 때 중세 가톨릭 사제들은 공간의 권위를 지키기 위하여 무조건 성당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걸 주도한 교황이 클레멘트 6세였습니다. 그 결과 성당이 집단감염의 진원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였고 중세 가톨릭은 몰락을 자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선각자적 시각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였습니다. 그는 먼저 구빈원을 만들어서 사회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흑사병이 왔을 때 구빈원 자체가 쿼런틴, 즉 격리시설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일반 성도들에게도 쿼런틴 시스템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노약자는 물론 일반 성도들도 교회로 오지 말고 집에서 격리를 해 있으라고 했습니다. 대신 성직자들이 찾아가서 예배를 드려 주었습니다. 당연히 교회에서는 비록 소수였지만 성직자들을 비롯하여 건강한 사람들, 혹은 중요한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칼빈은 예배의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면서도 이웃 사랑과 생명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은 제네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계속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시는 제가 부총회장 때라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내가 총회장이 되고 한교총 대표회장이 된 후 한국교회에 쿼런틴 시스템을 제안하고 정부와는 협상을 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 균형을 맞출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비난과 공격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엄청난 언론의 공격을 받고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곤두박질쳤을 것입니다. 또한 총회장 임기 때 저는 총신의 임시이사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화를 이루어냈습니다. 사실 다들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손을 놓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쌓아온 사회적 네트워크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총신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총회 이사회를 구성할 때도 교육부가 여성 이사를 파송하기 전에 총회가 선제적으로 여성 이사를 추천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105회 총회 때 기여 이사제를 시행토록 결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일부 정치권에서는 “당신은 총회에서 매장된다. 당신은 정치적으로 죽는다” 하면서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응대했습니다. “나는 백번 죽어도 좋습니다. 총신이 발전하고 총회가 잘 될 수 있다면, 나는 총회에서 쫓겨나도 좋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아니나 다를까, 교육부에서 3명의 여성 이사를 선임하였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총회 입장에서 반대 성명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반대를 하였지만 다른 분이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총회장 이름으로 소송을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총회장 이름으로 소송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총신이 부당한 손해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고 곧바로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요즘일수록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판단하고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눈앞에 있는 현실만을 바라보고 교권적 안목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총회와 총신에는 진정한 선각자적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과거에 허허벌판에서 다시 교단을 일궈낸 선진들은 이런 선각자였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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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지도자는 선각자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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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상남자보다 중요한 것은··· ”
- 수요일 저녁 예배에 갑작스럽게 미국 뉴욕에서 목회를 하시는 김성국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퀸즈 장로교회 장영춘 목사님의 지도아래 목회 훈련을 받고, 아주 충직하게 부목사 생활을 하였던 분입니다. 장영춘 목사님은 뉴욕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디아스포라 세계 한인 목회자들을 하나로 묶는 세미나와 포럼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교회도 적지 않은 후원을 해 주었는데요. 한번은 장 목사님이 한국에 오셨다고 해서 제가 식사를 대접했는데, 다음날 캄보디아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 얼굴이 밝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캄보디아에 가지 마시고, 한국에서 쉬셨다가 미국으로 가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 선교지에 꼭 가야 된다고 하시며, 그 마음을 꺾지 않으시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소식을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뇌졸중이 와서 급히 미국으로 가셨다고 말입니다. 전화를 해보니까 언어도 불편하신 듯 느껴졌습니다. 사모님께 자초지종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중풍에 어떤 특수 약재가 정말 효과가 있다는데, 미국에서 구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더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그것을 하나님 은혜로 구하여 오전 비행기를 타고 뉴욕까지 갔습니다. 제가 갔더니 목사님이 너무 감격해서 막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이 의리가 있고 신의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상남자인 걸 몰랐습니다. 그간 한인 목회자를 섬겨준 것도 감사한데, 약재까지 가져온 게 너무나 고맙습니다.” 저는 그 분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그날 저녁 비행기로 다시 왔습니다. 돌아와서 계속 전화로 확인해 보니까 그걸 드시고 아주 좋아지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세월이 흐르고, 그 일은 세월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 목사님을 모시고 부목사를 하다가 퀸즈 장로교회 담임 목사가 되신 김성국 목사님을 대면하니까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김 목사님도 “온 교인들이 소 목사님의 그 헌신과 섬김에 위로를 받고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라고 설교 서두에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 장 목사님께서 하셨던 그 한마디가 요 며칠 동안 계속 뇌리에 스쳐 갔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상남자’라는 단어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상남자의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합니다. 항상 약자를 보면 보호해 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강자 앞에 전혀 굴하지 않는 용기와 패기가 넘쳤던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의리와 신의를 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오죽하면 한동안 우리 교회 당회에서 “믿음이 없으면 의리라도 있자”를 슬로건으로 삼았겠습니까? 모름지기 남자로 태어났으면 상남자가 돼야 합니다. 대장부가 돼야 합니다. 제가 키는 작아 어찌 보면 소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의 가슴 안에는 대장부의 심장이 꿈틀거리고 있고, 대장부의 기상과 결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라면 무엇보다도 소명감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요즘 하나님께서 저에게 온유와 겸손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옛날 같으면 누가 저를 욕하거나 비방을 하면 당장 찾아가거나 전화를 했을 것입니다. 버럭 화를 내며 “왜 그러냐”고 그럴 텐데, 요즘은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는 훈련, 또 온유 훈련, 겸손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보다 배짱이 있고, 용기와 결기가 가득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아야 할 때는 참고, 온유해야 할 때는 온유하게 만드십니다. 어느 현인의 말처럼 말이 되지 않는 사람과 말을 섞으면 ‘실언(失言)’을 하게 되고, 말이 되는 사람과 말을 하지 않으면 ‘실인(失人)’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는 아예 말조차 꺼내지 않으셨던 것을 보지 않습니까? 글을 쓰는 이 시간, 상남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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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상남자보다 중요한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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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의 약속은 어디서 오는가
- “이제 곧 봄이 오려나봐 / 너는 웃고 있는데 / 난 이별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 겨울나무도 아무 말이 없어 / 숲 속 나무의자에 앉아 /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하는데 / 바람이 분다 / 꽃이 나만 홀로 남겨놓고 / 산을 내려가네 / 나는 산에 있고 / 꽃은 마을로 간다.” 이 시는 제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쓴 시집,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에 나오는 ‘꽃’이라는 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꽃은 김춘수의 꽃과는 반대되는 꽃입니다. 김춘수의 꽃이 시적화자와 연결이 되고 관계를 맺는 꽃이라면, 이 시의 시적화자는 꽃과 분리되어 잠시지만 스스로 고독과 고립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스스로 꽃과 분리되어 망각의 시공간 속으로 은둔하고 싶어 하는 자아입니다. 코로나의 공포감과 우울함 사이에서 고뇌하는 시적화자는 잠시 어떤 위로와 관계 맺음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으로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폐허와 같은 세상 속에서 혼자 남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이 모습은 꼭 시적화자의 모습이기 전에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가 여기서만 끝나면 시가 아닙니다. 여기서 시는 반전이 있어야 합니다. 꽃이 나만 홀로 남겨놓고 산에서 내려가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얼핏 보면 꽃과 나는 완전히 분리되어 나는 산에 있고 꽃은 마을로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이 마을로 내려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봄이 확실하게 오는 것이 아닙니까? 코로나 때문에 갈대처럼 헤어져 고립되고 황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화사한 꽃들이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꽃으로 만나서 그들 스스로가 꽃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시적화자도 어쩔 수 없이 꽃과 합일이 되어 마을로 내려가서 꽃으로 만나고 꽃과 같은 세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꽃’이라는 시는 그냥 서정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갈대처럼 헤어져 고독을 숙명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우리는 꽃으로 다시 만나 화해의 봄, 희망의 봄, 미래의 봄을 함께 맞게 될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반드시 옵니다. 아니, 코로나 팬데믹도 끝나고 이미 봄은 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거리에 보면 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고, 안 쓰다가도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또 쓰기도 합니다. 또 실외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다가도 실제로 행사장에서는 다시 다 쓰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다 마음으로는 산으로 가는 것입니다. 올 겨울은 유난히 길었습니다. 혹독한 날씨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혼란과 갈등이 우리 사회를 겨울왕국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난방비 폭탄이 터지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저도 올겨울에는 코로나 때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고뿔이 들어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못 잔 탓에 약지 손가락의 마비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분명히 봄은 옵니다. 어떤 추위도, 어떤 겨울도, 심지어 아무리 꽃샘추위가 오고 봄을 시샘한다 하더라도 봄은 옵니다. 앞으로도 한 번쯤 더 눈이 올지 모르고 또 꽃샘추위가 올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 겨울을 더 길게 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여기저기서 들리는 뉴스와 사건, 사고들이 우리의 겨울을 더 길게 할지도 모릅니다. 한국교회 역시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와 헤이트 스피치 등으로 갈등과 분열의 골을 더 깊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거짓을 생산하고 조장하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또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사실을 직접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거짓뉴스에 현혹되어 레밍효과나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한국교회의 겨울은 더욱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봄은 옵니다. 그냥 날씨가 따뜻해져서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오지요. 매화가 됐든, 목련이 됐든 분명히 제일 먼저 핀 자그마한 꽃송이 하나로 봄이 올 것입니다. 저는 그 꽃송이 하나 피우기 위하여 지금도 앙상한 숲 한 가운데서 연둣빛 봄을 꿈꿉니다. 봄길은 차가운 겨울 숲에서 시작하고 봄의 약속은 겨울의 소원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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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봄의 약속은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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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 “어젯밤 꿈엔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참으로 억울하고 원통해서 / 엉엉 울어댔습니다 / 타 문화권에서 / 선교활동을 하다가 /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어 돌아온 / 한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서 말입니다 / 어느 외딴 섬에서 / 당신의 품안에 그분을 안겨 드리며 / 온몸이 부서진 시신을 보고 / 저는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 내가 저렇게 죽어야 했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 하늘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 / 내가 저렇게 조각난 주검이 되어 /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 왜 나는 저 기회를 빼앗겼을까 / 나는 무엇을 하다 / 저 영광을 놓치고 말았을까 / 내가 그여야 하는 걸 / 하늘 영광은 주검을 덮습니다 / 그의 주검은 / 육신 온전한 내 몸뚱이보다 아름다웠습니다 / 그래서 저는 / 섧디섧게 울었습니다 / 일찍이 저에게 / 홀로서기를 연단시켜서 / 험한 세상 잘 이기며 / 사명 잘 감당하는 / 고고한 한 그루의 소나무로 남아 있게 하신 / 당신 뜻이 고마운 줄 알면서도 / 어젯밤 꿈에는 왠지 섧기만 했습니다 / 당신 만날 새벽에 / 꿈에서 깨었을 땐 / 그 짜디짠 눈물이 / 귓속까지 고여 있었습니다 / 어느덧 익어 가는 세월 속에서 / 이제 저도 조금씩 당신을 닮아가고 / 한 걸음 한 걸음 / 당신 계신 / 영원한 본향에 이를 때가 / 가까움을 느낍니다...(하략)” 위의 시는 저의 첫 시집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에 나오는 표제시입니다. 지금 보면, 시인으로서의 예술적 심상 보다는 활활 타오르는 소명감으로 가득 찬 목회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시입니다. 특별히 이 시는 프라미스 콤플렉스 건축을 앞두고 설계를 하던 때에 지은 시입니다. 시가 평범한 것 같지만 시적 화자는 이슬람권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수류탄 파편에 맞아 죽은 선교사의 시신을 보고 원통하고 억울해서 엉엉 울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죽음이 원통하고 억울하다고만 하면 산문이지요. 참으로 원통하고 억울한 사연이 선교사의 죽음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순교였습니다. 그의 순교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무나 부러워서 엉엉 울어댄 것이죠. 시적 화자의 소원은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하는데 / 내가 먼저 순교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차지해야 하는데...”에서 보듯이 순교였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적 화자의 소원이었던 것이죠. 시적 화자는 목양을 하며 큰 교회당 건축을 준비하고 있는 목회자였기에 현실적으로 이슬람권의 선교사로 가서 죽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도 시적 화자는 섧디 서러운 눈물을 터트리며 순교를 갈망하는 속마음을 ‘꿈’이라는 도구를 통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이자 시인이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로서 형상화한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이번 주간은 올해 가장 힘든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새학기 새출발을 위한 헤리티지 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월요일에는 부산 지역 지도자 신년 만찬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하고 왔습니다. 수요일 오전, 저녁 설교, 또 철야기도회 설교와 각종 모임까지 너무나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뇌리에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때의 초심을 생각하며 힘을 내었습니다. 온 몸이 찢겨 순교한 이슬람권 선교사의 순교를 바라보며 “내가 왜 그 기회를 빼앗겼을까, 그 영광을 놓치고 말았을까...” 울부짖으며 순교를 갈망하던 목회자의 불타는 소명감을 다시 한 번 새롭게 떠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살아있는 순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제 한 몸, 시간과 체력 모든 것을 다 던져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살아있는 순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몸은 천근만근이고 마음은 지쳤지만,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라는 시를 읽으면서 다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새로운 힘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이 시를 노래하며 행복하게 사명자의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아니, 살아있는 순교자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이 계신 영원한 본향에 이를 때가 행복한 미소 지으며 달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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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어젯밤 꿈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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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보가 될 바에는 더 큰 바보가 되라”
- 류시화 시인이 쓴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밀림 속에서 모든 동물들이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당나귀가 풀의 색깔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당나귀가 자기 혼자 “풀이 파란색”이라고 소근 거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예 모든 동물들 앞에서 풀의 색깔이 파란색이라고 소리쳐 대는 것입니다. 이때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풀은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이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당나귀는 더 소리를 높였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그러자 동물들이 덩달아 편 가르기를 하였습니다. ‘초록색파’와 ‘파란색파’로, 혹은 호랑이파와 당나귀파로 나뉜 것이죠. 호랑이는 포식동물의 왕답게 으르렁대기 시작했고 당나귀는 분수를 모르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니까!” 누군가의 중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밀림의 왕 사자를 초청하여 판결을 부탁하자고 하였습니다. 호랑이도 동의를 하였습니다. 왜냐면 사자는 고양이과 동물로서 당연히 자기편이 되어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당나귀의 주장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호랑이의 주장도 잘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사자는 당나귀의 말이 옳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풀은 초록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말이죠. 판결 후에 호랑이가 사자에게 으르렁대며 “왜 그따위 판결을 하느냐”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너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그렇게 오판을 했느냐”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른발로 사자를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사자가 지혜롭게 말을 했습니다. “어이, 호랑이. 물론 나도 풀이 초록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숲의 제왕이 되어가지고 저 하찮은 당나귀와 논쟁을 벌이다니. 논쟁을 벌이려면 적어도 자네보다 훨씬 지식과 지혜가 높은 자와 해야지. 자네는 어리석은 자와 무의미하게 논쟁을 했어. 이미 호랑이다움을 잃어버렸고 소중한 시간과 기운을 낭비한 채 오히려 세상을 더 시끄럽게 만들었다네··· ” 저도 어릴 때부터 우김질을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한번 우기면 그것이 잘못된 주장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우김질을 했던 기질이 있었습니다. 개척교회 때는 물론, 중형교회가 되었을 때도 스티븐 코비의 주장대로 “언제나 주도적으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주도적 의미를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생각을 했던 면도 있었겠지만요. 이런 제가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연합사역과 공적사역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좋은 일을 하면서도 비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공교회를 위하여 옳은 일을 하면서도 불필요한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안에 있는 호랑이 본성이 발동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가 극심한 상황에 이르러서는 방역 당국과 예배 퍼센티지를 협상하는 것을 신사참배로 규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떻게든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목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하며 격려비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차마 입에 담기에도 창피스러운 프레임으로 공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저는 제 안에 있는 호랑이의 입을 다물도록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말을 했죠. “기왕 바보가 될 바에야 더 큰 바보가 되자. 그리고 논쟁을 하려면 너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능력 있고, 지혜 있는 현자와 하자.” 어떻게 풀이 파란색이란 말입니까? 당나귀의 주장은 말도 안 되죠. 풀은 당연히 초록색이지요. 그러나 호랑이는 호랑이답게 놀아야 했습니다. 당나귀와 논쟁을 하는 그 순간부터 호랑이는 호랑이의 자존심과 체면을 구겨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격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저를 충동질 하였습니다. “소 목사님, 왜 가만히 계십니까? 허락만 해주시면 제가 나서서 대리 고발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안의 호랑이가 으르렁대려고 했습니다. 아니, 제가 나서서 법적조치를 하면 당연히 실형을 받게 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저 다움과 한국교회 진정한 리더다움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보다 훨씬 능력이 있고 지식이 넘치는 현자들을 찾아 토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분들의 글을 읽고, 그런 분들과 만나 말씀을 듣고 때로는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만이 걸어가는 바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내 제 앞에 골드오션(Gold Ocean)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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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바보가 될 바에는 더 큰 바보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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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2월에 연둣빛 봄을 꿈꾸다”
- 올 겨울은 정말 겨울다운 겨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강추위도 있었고, 눈도 많이 내렸거든요. 난방비 폭탄만 없었으면 올 겨울은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겨울이 될 뻔 했습니다. 정말 눈도 유난히 많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체감온도가 영하 25도라는 경이적인 추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산에 올라가니까 체감으로는 영하 25도를 훨씬 넘긴 것 같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어서 5,6초만 두면 바로 굳어버렸고 호주머니에 넣고 간 생수도 꽁꽁 얼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겨울나무에 하얀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앙증맞게 피어난 에델바이스를 보는 것 같았고 인동초 처럼 보였습니다. 히말라야산맥이 따로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우리 교회 외벽에 붙어 있는 “한 겨울에도 연둣빛 봄을 꿈꾸다”라는 문구를 생각했습니다. 이 문구는 지하철 분당선에도 글판으로 걸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워서 좋지만 아무리 추운 겨울도 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얀 눈을 지탱하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추위에 고통스러워하겠지만 저의 눈에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봄의 연둣빛 꿈이죠. 지금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지만 봄의 햇살에는 당연히 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홍매화, 백매화가 가장 먼저 필 것이고 뒤를 이어 진달래와 목련이 함께 피고 눈으로 덮였던 설원의 대지는 연둣빛과 연분홍 세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봄의 따뜻한 아지랑이가 올라오고 봄비까지 내리게 되면 4월의 풀은 겨울의 황막한 대지를 뚫고 솟아나서 지평선의 푸른 소나타를 노래하게 됩니다. 특별히 바람이 부는 들판에서 흔들리는 풀은 환상적인 봄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생명의 마에스트로가 되지요. 그 역동하는 생명의 박동, 푸른 생명의 펌프질을 보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경기 침체와 난방비 폭탄, 재난, 재해 등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와 힘겨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겨울의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마음의 추위와 삶의 추위는 여전합니다. 그래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연둣빛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푸시킨도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중략)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우리 역시 아직은 겨울이지만 연둣빛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소포클레스가 말한 것처럼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맞는 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겨울에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맞이하고 싶었던 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든지 이 어려운 삶을 견뎌야 합니다. 겨울의 추위는 견뎌냈지만 이제 마음의 추위와 삶의 추위를 견뎌내고 삶의 봄을 맞이해야 합니다. 푸시킨의 말대로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절망하거나 낙심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생(生)이란 명(命)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겨울이지만, 매화가 벌써 꽃 몽우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연분홍 진달래와 하얀 백목련이 필 것이고 그 뒤를 이어서 개나리와 벚꽃들이 만개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듯 우리의 삶에도 반드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의 “추운 겨울이 오면 따뜻한 봄 또한 멀지 않으리”라는 시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추위가 매섭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우리는 연둣빛 봄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연분홍의 꽃 몽우리를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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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2월에 연둣빛 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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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슴이 뛰기만 한다면···”
- ‘문학나무’라고 하는 아주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문예지가 있습니다. 작년 말에 저에게 ‘성경 인물시리즈 5편’을 써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에게 공문이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에서 공문을 안 챙겨 줬든지 아니면 제가 그 공문을 못 봤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지난주 금요일 날 “왜 원고를 안 보내 주냐며 빨리 시를 써서 보내달라”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급한 맘에 성경 인물시를 쓰려고 하는데 그날이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금요일 오후는 주보 글도 점검하고 철야기도 설교 준비도 해야 해서 가장 바쁜 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성경 인물시를 쓰려니까 멘붕이 왔습니다. 사실 제가 지난번 시집 ‘너의 이름을 사랑이라 부른다’를 쓴 이후에 시에 관한 한 절필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 목회일정과 연합사역 일로 얼마나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까? 그리고 또 신년축복성회 준비를 해야 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절필을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재앙인지 모릅니다. 물론 제가 여러 가지 산문이나 글은 계속 썼죠. 또 일반 서정시나 제가 자유롭게 정한 제목의 시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아담에서부터 하와, 가인, 아벨, 셋, 이런 식으로 인물시를 쓰려고 하니까 시상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토요일날 주일학교 교사 순회 기도회와 청년부 집회를 하면서 국문과생이나, 문창과 출신들은 한 문구라도 떠오르면 저에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또 토요일날도 바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냥 선광현 목사에게 기본적인 시의 구성을 엮도록 좀 불러줬더니 선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좀 종교시 냄새가 나는데요. 일반 문예지에 게재하는 것이니 현대시로 구성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니까 더 멘붕이 왔습니다. “시인이 돼가지고 이렇게 시상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그 순간 한비야의 글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가 쓴 ‘바람의 딸, 지구의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 보면 케냐의 한 의사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병원은 나이로비에서 정말 잘 되는 병원인데 이 의사는 1년 중 6개월만 병원을 오픈하고 6개월은 오지로 가서 의료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때는 대통령이 초청을 해도 대통령조차도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비야가 그 의사를 만나기 위해 오지로 찾아가서 이렇게 물어봤대요. “선생님, 여기서 왜 의료봉사만 하세요? 나이로비에서 병원을 가면 더 많은 사람을 고칠 수가 있고 돈도 정말 많이 벌 수 있는데요.” 그러자 의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사람이 어떻게 돈만 벌고 삽니까? 돈을 벌면 가슴이 뛰지를 않아요.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해야 가슴이 뜁니다. 사람이 가슴 뛰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문득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좋다. 가슴만 뛰면 된다. 내 가슴이 뛰는 한, 시는 반드시 나에게 찾아온다. 정호승 시인처럼 결사적으로 시를 쓰려고 하면 반드시 시는 찾아온다.” 그리고 안도현의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도 생각이 났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나중에 연탄재가 될망정 지금 타오르는 연탄처럼 내 가슴이 뜨거우면 반드시 시는 찾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가슴으로 시를 간절히 사모하고 사모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시적 언어가 생각이 나고 성경 인물에 대한 시적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하나가 떠오르니까 계속해서 연결이 되고 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라는 시를 먼저 썼습니다. “내 안에 유리거울 하나 빛났지 / 당신이 나를 흙으로 빚고 /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 그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 산짐승과 날짐승들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의 호명 / 태양빛도 숨죽이던 날 / 하와의 하얀 손바닥 위에서 빛나던 / 빨간 선악과의 미혹 / 금단의 열매를 깨물었을 때 / 내 안에 유리거울이 깨지고 / 깨진 유리 파편 위로 / 검은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 에덴을 잃어버린 후 / 지금도 소나기가 내리면 / 슬픈 소년이 된다.” 아담을 쓰고 나니까 하와, 가인, 아벨, 셋으로 연결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월요일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편집장님과 월요일 오후에 통화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써서 보내셨습니까? 이건 정말 소목사님만이 쓸 수 있는 시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획을 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금방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뜨거운 가슴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슴이 뜨거운가, 안 뜨거운가의 차이입니다. 영어의 정열이라는 말이 Enthusiasm이라는 말인데, 헬라어 ‘앤 데오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정열의 삶을 살고 가슴 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이 뛰고 불타오를 때 글도 쓰고 시도 쓰고 새로운 골드오션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슴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은 얼마나 뜨겁습니까? 얼마나 불태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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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가슴이 뛰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