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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정치참여
- 본고는 한국기독교연합과 한국정치외교사학회가 지난 12월 1일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별 심포지엄 ‘해방 후 한국정치와 기독교인’ 중 박창훈 교수의 원고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정치참여’ 중 ‘종교개혁과 국가’ 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종교개혁과 국가루터의 종교개혁이 독일인들의 국가의식을 고취했다는 평가는 다분히 현대적인 국가개 념을 거꾸로 덮어씌운 반역사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루터는 단지 작센지방의 수도사였기 때문이 다. 물론 루터에게서 현대 “독일”에 대한 의식을 찾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나, 그가 사용하는 언어 를 통해 구별되는 통치지역에 대한 의식은 분명했고, 그런 의미에서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은 국 가개념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그 발전과정에서 민족국가의 형성에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고, 그만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1. 법치주의 중세가 허물어지고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교황의 정치적 위상과 의미는 축소되는 과정을 겪었다. 아울러 교황과 함께 그를 옹호하려는 전통적 권위였던 황제에 대항하게 된 개신교(프로테 스탄트)는 이제 근대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종교개혁가들 사이에 제기된 세 속권력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그만큼 세속권력의 상대적인 성격을 드러냈으며, 이는 교회가 하나 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세속권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루터는 독일인이었다”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항상 흥미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그의 독일어 성경번역에서 보듯이, 황제 한 사람의 통치를 대신할,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기대와 염원은 종교개혁 과정에서 분명하게 표출되었다. 민족이나 국가의 개념은 아직 성숙되지 않았으나, 적어도 지역 통치자에 대한 기대로 인해, 교황의 역할 만큼이나 황제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교황의 타락에 대해서, 중세부터 계속되던 “공의회주의”(conciliarism) 가 루터에 의해 더 강화된 것과 같이, 황제에 대항하여 “슈말칼덴 동맹”(Schmalkaldischer Bund)이라는 정치적·군사적 동맹이 나타났다. 이 과정을 통해 종교개혁가들은 국가가 근거해야 할 법치주의의 근거를 제시했는데, 1530년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의 16조는 “공무(세속권력)에 관하여”(Of Civil Affairs)를 다 음과 같이 정의하였다.세속권력들에 관하여, 그것들은 시민의 사역이 하나님의 선한 일처럼 정의롭다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들은 공무를 담당하고, 재판에 참석하여, 제국의 법과 현재 적용되는 법들에 따라 사무를 결정 하며, 올바른 벌을 내리고,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여, 병사로서 행동하며, 합법적인 거래와 계약을 하고, 재산을 유지하며, 공무원이 요구할 경우 맹세를 하고, 아내와 결혼을 하거나 혼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공무를 금하는 재세례파를 정죄한다. 그것들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나 믿음이 아니라, 공무를 저버리는 것을 복음의 완전함이라 여기는 자들도 정죄한다. 이는 복음이 마음의 영원한 의로움을 가르치기에 그렇다. 반면에 그것은 국가 (commonwealths)의 명령이나 통치를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계명 즉 우리가 사랑 해야 하는 것과 같은 계명처럼, 그러한 것들을 보호하고 유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떤 죄를 짓도록 명령하는 때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기에(행 5:29),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권세자와 법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여기서 “제국의 법과 현재 적용되는 법들에 따라”는 분명히 세속 권력에 대한 의무와 공무의 근거가 법이어야 한다는 법치주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루터가 염려하는 또 다른 종교개혁의 줄기가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재세례파들인데, 정부에서의 공무직 자체를 금지하던 자들이다. 루터는 이들의 지나친 이분법적인 세계관과 그에 따른 과격한 분리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즉 두 세계 또는 두 왕국을 구별할 수는 없고 두 세계에 함께 속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해가 루터의 생각에 드러난다. 이제까지 루터는 1524년부터 1526년 사이에 있었던 독일농민전쟁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군주들의 시녀”였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위의 신앙고백에서 보듯, 루터는 정부에 대하여 맹목적인 복종을 의도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정부가 죄를 짓도록 한다면, 예를 들어 신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부당한 전쟁을 일으킬 경우에, 따르지 않을 근거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 고 있다. 세속 정부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구일 뿐, 그렇지 않을 경우는 그에 저항할 수 있다. 실제로 루터는 “작센 군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황의 군사적 지지자인 브라 운슈바이크 공작을 체포했을 때, 그를 석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자신의 판단을 전 하면서, 정치적인 타협을 시도하려는 독일 군주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였다. 단순히 농민을 지지했기에 더 급진적이었고(Thomas M tzer), 군주들을 지지했기에 더 보수적이었으며(Martin Luther) 그래서 결국 루터가 독일 제 3제국의 형성에 기여하는 신학을 제공했다는 해석은 극복되어야 한다. 카터 린드버그가 반론하듯이, 토마스 뮌처는 신정통치라는 중세시대의 세계관으로 돌아가서 선택된 이들로 통치되는 국가를 생각한 만큼 반동적이었지만, 오히려 루터에게는 개인의 이성과 믿음으로 모든 것을 상대화시키는 급진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루터는 로마서 13장에 대한 해석을 통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권력, 타락한 권력에 대하여,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늘 상기시켰으며,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칼을 받은 이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를 강조할 때도, 루터는 율법의 3가지 기능, 즉 첫째 죄악된 행동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징벌을 강조하고, 둘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도록 하며, 마지막 셋째,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할 행동들을 교육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특히 첫째 기능에 따라 루터는 형사적 처벌을 위한 법의 기능을 강조했다. 2. 민주적 대의제도루터의 두 왕국론 이후에, 교회와 세속 권력은 항상 두 기관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논의 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교회와 세속 권력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양측에서, 적어도 교회내부에서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논의와 실험을 촉진시켰으며, 결국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및 대의제도가 교회 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기본적으로 봉건적인 형태의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감독제 교회 형태 를 따른다. 감독제는 개신교 가운데 잉글랜드 국교회와 미국의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체제 (polity)이다. 이는 감독을 중심으로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칼빈을 통해서 제네바 에서 추진된 교회체제는 감독이 없고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구성된 평신도들의 기능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목사는 설교를 담당하며, 시내 목사회에서 선정하여 시의회에 천거하고 개교회의 동의를 얻어 확정되었다. 장로는 교회의 정치와 치리를 맡았 으며,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집사는 교회의 회계와 구제를 담당하였다. 제네바의 모든 시민이 교인이었으니, 이 체제는 교회만의 체제가 아니라, 도시국가 자체의 정치구조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특히 제네바의 윤리적인 지침을 주기위하여, 평의회(당회, consistory)를 구성했는데, 목사 5인과 장로 12인으로 이루어졌다. 장로는 시의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으며, 1주일에 한 번 씩 모여 교회의 규율과 시민의 도덕을 관장하였다. 평의회의 결정은 지도 감독만이 아니라 처벌을 위한 법정에 영향을 주었다. 신정정치를 표방한 칼빈의 교회제도는 실제로는 제네바를 대의제도를 통해 운영하는 것이었다.20) 칼빈의 장로제는 이후 잉글랜드 국교회로부터 분리된 청교도들에게서 더욱 민주적인 발전과정을 겪었다. 목회자가 일반 신도들에 의해서 선택받았으며, 특히 은혜를 입은 신도들은 교회 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목회를 하며, 교회의 생활과 예배를 결정하였다. 영국에서 이 청교도들은 1640년대에 의회의 다수를 이루게 되었으며, 장로제를 통하여 영국 교회를 보다 철저히 개혁하려 고 하였다. 이후 청교도 혁명은 영국의 왕 찰스 1세를 처형하는 결정을 가져온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으며, 그만큼 절대군주를 거부하고 공화정을 이루는 정신적인 근거를 청교도들은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청교도들의 장로제는 올리버 크롬웰의 집권 이후에 회중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국가종교 를 부정하면서, 종교의 자유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성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교회체제였으며, 이는 장로제보다도 민주화된 형태의 교회체제였다. 즉 신자들의 교회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공동체였다.종교개혁 이후에 교회체제를 매개로 구현된 정치형태는 민주적인 발전을 겪었고, 이는 국가적인 민주주의의 성숙과 병행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은 민주주의의 확장에 일 정 정도 기여하였다. 개혁주의에서 두드러지듯, 종교개혁은 대의제도를 통한 평신도들의 참여를 확대하였으며, 장로제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하여 평신도들의 참여의 기회는 그만큼 늘어났다. 그 리고 민주화 과정은 시민의식의 성장을 통해 구체화 하였으며, 근대 민주주의 국가의 등장으로 꽃 을 피웠다. 아울러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성례에 의하여 진정한 신자를 구별하던 방식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개인의 체험과 양심의 판단으로 맡겨지는 만큼 민주화하였으며, 이제는 개인적인 신앙체험, 즉 “확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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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과 기독교의 정치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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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해준 분들은 우리들이 영원히 감사해야 할 ‘민족의 은인’들이다. 신약성경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1880년대 중국 심양에서 최초로 번역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로스 기념관’을 건립해서 그의 공적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구약성경의 경우는 어떤가? 누가 언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했는가? 이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의 업적을 감사하는 기념사업은 고사하고,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구약성경을 최초로 우리말로 번역해 준 ‘은인’은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 목사이다. 한국명으로는 ‘피득’이라고 부른다. 그가 1895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말을 배운 후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시편촬요’를 출간한 것이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이 된다.알렉산더 피터스는 1871년 러시아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다. 그가 자라났던 19세기말, 제정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극심해서 유대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러시아를 떠난 24세의 청년 피터스는 우여곡절 끝에 멀고 먼 일본 나가사키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곳에서 그를 붙잡으셨다. 기독교로 개종한 그 청년은 유대인 본명을 버리고, 그에게 세례를 준 미국 선교사의 이름을 따라 ‘피터스’(Pieters)라고 개명했다. 그때부터 그는 ‘피터스’로서 하나님이 인도하는 새로운 삶의 길을 걸었다. 그는 미국성서공회가 파송한 권서(勸書, Colporteur)의 자격으로 한국으로 와서, 최초의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준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피터스는 어학에 특출한 재능을 타고 났다. 히브리어는 말할 것도 없고 라틴어와 희랍어와 같은 고전어도 학습했다. 뿐만 아니라 독어, 불어, 영어, 이디쉬어(Yiddish,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합성어)까지 구사하는 어학의 귀재였다. 여기에는 한국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 피터스 청년이 1895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이 땅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이 없었다. 당시 한국에는 구약성경을 번역할 인물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피터스는 그 일을 감당하는데 최적의 인물이었다.그가 서울에 온 후 3년만에 구약성경 중에서 번역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시편’을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 운율에 맞는 유려한 우리말로 시편을 번역했다는 것은 그의 천부적인 어학적 재능을 잘 말해준다. 1900년 피터스는 미국으로 가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목사안수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당시 구성된 구약성경 번역위원회의 위원으로 뛰어난 히브리어 실력을 발휘해서 구약성경 번역에 중추적 역할을 했고, 1910년 마침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을 완료했다.그러나 이것으로 한글성경 번역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출간된 한글성경을 가다듬어 손질하고 오류가 있는 곳은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피터스 목사는 구약성경 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 위촉되어 한글성경 개역작업에 주도적 역할을 감당했다. 개역작업은 1938년에 끝이 났고, 그 해에 ‘개역성경전서’가 출판되었다. 1938년에 완선된 개역성경과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을 비교하면, 맞춤법이나 고어체(古語體)만 조금 다를 뿐, 그 내용은 놀랄 정도로 차이가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1910년에 번역되고 1938년에 개정된 구약성경은 대단히 잘된 훌륭한 번역이라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소리내어 읽으면 우리말의 운율에 잘 들어맞아 감탄이 나올 정도이다.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는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공로자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만큼, 피터스 목사를 이 땅에 보내주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러나 그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1900년부터 3년 동안 피터스는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해서 신학교육을 받은 후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때 신학교에서 같이 신학수업을 받던 엘리자베스 캠벨(Elizabeth Campbell)을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신혼의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피터스는 구약성경 번역사역에 전념했다. 그런데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엘리자베스는 폐결핵에 걸렸고, 결혼생활을 4년도 넘기지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에서 별세했다. 한국에 왔던 초기 선교사들이나 가족들 중에는 폐결핵이나 풍토병으로 사망한 분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한국의 역악한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캠벨 여사는 서울 양화진의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는 먼저 떠난 아내 엘리자베스를 추모해서 후일 세브란스 병원에 결핵환자 진료소를 마련했고, 크리스마스 실 운동도 전개했다.그 후 피터스 목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던 여의사 에바 필드(Eva Field)와 재혼했다. 필드 여사는 두 아들을 낳았으나, 불치의 암으로 그가 환자를 돌보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했다(1932년). 그도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었다.1941년 피터스 목사는 70세가 되어 성경번역자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46년 동안 봉사했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캘리포니아주 LA근교 패서디나(Pasadena)시에 있는 은퇴선교사 주거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58년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패서디나에 소재한 플러신학대에서 연구교수로 있었다. 구약학으로 학위를 받고, 평생토록 구약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필자로서는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준 피터스 목사가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패서디나에서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어 뜻있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피터스 목사가 패서디나에서 별세했다면 그의 묘소도 틀림없이 그곳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구약학도로서 그의 묘소를 찾아가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그의 묘소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놀라운 사실은 피터스 목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 조차 별로 없었다. 피터스 목사는 잊혀진 존재였다.묘지 사무실 누구도 피터스 목사가 누구였는지, 또 그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천 구 이상이 묻혀있는 넓은 묘역에서 60년 전에 돌아간 분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곳에서도 피터스 목사는 무명의 잊혀진 인물이었다. 결국 사무실의 컴퓨터 조회를 통해서 그가 묻혀있는 대략적 위치를 알아냈다. 이 공용묘지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묘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넓은 구역에는 묘지마다 크고 작은 여러가지 모양의 묘석들이 세워져 있어 묘석들로 숲을 이룬 듯이 보인다. 이렇게 묘석들이 즐비하게 세워진 넓은 구역 한 편에 작은 묘석조차 보이지 않는 초라한 묘역이 있다. 멀리서 얼핏 보면 잔디와 잡초로 덮여있어 묘역같이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잊혀진 듯한, 마치 무연고자 묘역같은 느낌이 드는 구역이다. 바로 이 구역 안에 피터스 목사의 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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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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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감사의 사람 사도 바울을 생각한다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월례회가 지난 11월 10일 서울 신촌 성결교회에서 개최한 11월 월례회 ‘감사의 영을 부어주소서’에서 오정호 목사가 발제한 ‘감사의 사람 사도 바울을 생각한다’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바울 서신에 나타난 감사신약성경에는 바울 서신에 감사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감사표현의 70% 정도가 바울 서신에 집중되어 있다.(개역개정으로 판단할 때, 감사 표현은 신약 전체에 65회(63구절) 등장하는데 바울 서신에 48회(46구절), 그 나머지에 17회(복음서에 11회, 사도행전에 2회, 히브리서에 1회, 요한계시록에 3회) 등장한다. 신약성경은 모두 260장인데, 복음서가 89장, 바울 서신이 87장, 기타 책이 84장으로 집계된다. 물론 각 장의 절수가 고려돼야 하지만, 대략 잡아 바울 서신이 약1/3 정도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진섭 교수/그말씀/2014년 11월 두란노)앞의 진술된 내용으로 보건데 사도 바울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감사의 체질인 것이 틀림없다.그는 마치 시인의 시가 읽는 이들의 감정 이입으로 말미암아 시다워질 수 있듯 사도 바울의 삶을 한편의 시라고 할 때 고조된 감사로 감정이입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가졌으리라사도 바울은 마치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타석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공이 오기를 기다리던 타자가 찬스를 결코 놓치지 않고 힘차게 쳐내는 것처럼 그는 감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감사자였다. 물론 그가 주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환경을 매의 눈을 가지고 살폈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매는 상공 1Km에서 땅에 기어가는 들쥐를 알아낼 정도라고 한다. 동일한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사도 바울처럼 감사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은 평범함을 감사의 비범함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음을 안다. 아니 그가 본질적으로,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감사로 표현해야 할 그 시점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 생명의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상대적으로 그 자신의 죄성과 초라함 그리고 외식에 대하여 처절하게 탄식하였다. 자기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규정하였다. 골짜기가 깊으면 정상이 높듯이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세워진 자기 모습 앞에서 때로는 감격하며, 때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때로는 경이로움을 담아 외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2-16)사도 바울은 감사의 체질이었다.바울 서신 중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형식이 바로 ‘감사형식(thanksgiving formula)’이라 불리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13개 바울서신중 11개 서신에서 이런 감사형식이 등장한다.(갈라디아서와 디도서에는 예외적으로 감사표현이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는다. 신학자들은 이 두 서신의 배경에 무게를 둔다. 갈라디아서는 거짓복음을 따르는 자들 때문에 디도서에는 목회적 사역을 전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감사체질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압도적으로 감사를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곧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감사는 삶이었고 그의 삶은 감사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감사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감사가 멈추지 않는다. 그가 생명을 드려 개척한 여러 교회 교우들의 형편을 듣고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될 때 그는 감격하였다. 그 예로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그는 벅찬 마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특히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반듯한 신앙생활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감사함을 표하였다.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또한 그가 감사함으로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것처럼 핍박중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 교우들 역시 기도가 삶에 녹아져 그것이 모든 핍박을 이겨내고 딛고 일어서는 ‘성도의 동력’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원수에 대한 증오심이 불길처럼 일어나는 것을 막아내고 복음적인 삶의 영적 선순환을 추구하도록 하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사도 바울은 박해가운데서도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그의 감사를 표하였다.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살후 1:3)한 마디로 표현하면 복음의 실체와 영광을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자기 정체성 확신의 토대로 삼음에 대하여 이 역시 감사의 제목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살후 2:13)개인에 대한 감사사도 바울은 우주적인 감사에 대하여 민감하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개인에 대한 감사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빌레몬 때문에 드리는 감사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형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그 기저에는 빌레몬의 믿음과 행함이 놓여 있었다.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몬 1:4-7)굳이 심리학적인 이론을 차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경험한대로 상대에 대한 인정과 칭찬과 감사는 경계심을 해제하고 적의를 풀게 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힘이 있다.로마서는 하나님의 웅대한 구원 계획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인간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인간의 죄성을 치열하게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로마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전에 사도 바울은 16장에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명한다. 곧 그의 삶을 복되게 하고 눈물을 함께 나눈 동역자 들이다. 예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우리도 알건데 신앙은 윤리로 반드시 표현된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관계로 반영된다. 우리 시대의 아픔은 신앙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다. 진리를 빙자하여 편당을 짓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따뜻함이 사라진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과 가장 신앙적인 것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힘께 나아가는 개념인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로마서 16장을 대필자인 더디오에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불러준 사도바울을 상상 할 수 있다. 아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떠올려 입술로 표현할 때 그의 마음은 한없는 감사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서 산전수전 함께 겪어낸 피붙이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그들의 관계 아닌가.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롬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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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감사의 사람 사도 바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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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은퇴자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본고는 지난 9월 8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진행한 9월 월례회 ‘은퇴자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중 이정익 목사가 발제한 ‘열정과 합리적인 목회를’을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이 정 익 목사(한복협 부회장, 신촌성결교회 원로)목회를 마치고 지난 시간 사역들을 되돌아보니 만족한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모든 은퇴자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모두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떠오른다. 본 주제를 가지고 은퇴자들에게 질문해 보았는데 한결같이 만족하는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더 많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말이 있느냐는 질문도 여러분이 모두 대동소이했다. 그 제안들과 본인의 마음을 포함해서 몇 가지로 제시한다. 1. 소명에 충실 하라 무슨 일이나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소명은 중요한 문제이다. 소명으로 말하자면 목회에 대한 소명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목회가 힘든 분야이지만 그래도 기쁨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소명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 부름 받음의 소명이 너무나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도됨에 대해서 모든 서신서 첫머리에 반드시 “주께로부터 부름 받아 사도된 나 바울은 ....”이라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또 고전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다. 얼마나 확실하고 분명한가. 소명이 이렇게 분명한 목회자는 열정적으로 목회사역을 이룰 수 있다. 오늘 후배 목회자에게 이 소명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목회는 주께로부터 위임된 사역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성심껏 수행해야 할 사역이다. 이 부분이 분명하면 목회사역은 행복한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다. 2. 하나님 목회를 하라 본질에 충실 하라는 말이다. 오늘 목회현장에는 목회 외적인 비본질적인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들이 있다. 제왕적 목회, 물질주의적 목회, 소통 없는 목회, 기복신앙적인 목회, 프로그램 중심목회 등이다. 너무 수단적이고 방법론적이고 인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본질에서 목회가 너무 많이 이탈했다는 말이다. 즉 자기중심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오늘 목회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많아진다. 너무 과시적이다. 너무 인간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 말은 본질에서 너무 많이 이탈해 있다는 말이다. 교회성장이 좀 늦고 경쟁에서 발전이 좀 늦어질지라도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 목회는 하나님 목회이기 때문이다. 3. 영성에 충만 하라 목회가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영성에 의해 사역을 수행하여야 한다. 오늘은 대부분 지성위주의 목회를 한다. 지식과 정보와 이론이 너무 앞선다. 영성이 없는 목회에는 변화와 회심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와 성경 연구에 몰두하라. 영력을 구비하라. 목회에서 영성이 부족하면 수단이나 방법이나 프로그램에 의존하게 된다. 왕상 22:의 미가야 선지자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다. 거짓 선지자들이 왕 앞에서 영혼 없는 말을 할 때 미가야 선지자는 네가 골방에 들어갈 때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영성 없는 목회는 영혼들을 떠나가게 만들거나 가나안 성도들을 양산하게 된다. 4. 상식이 있는 목회를 하라 한국교회가 말이 많고 갈등이 많은 이유는 목회현장에 합리성이나 상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목회자들의 금전거래의 불투명성은 비상식적 행태 중 가장 두드러진 형태이다. 목회자들은 마음대로 돈 쓰는 것을 권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재정에 대한 합리성이 없으면 반드시 불분명의 폐해를 겪게 되고 마침내 지도력의 상실로 이어진다. 행 20:33절을 보면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였다”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크게 교회를 건축하는 일, 건축 후 채무로 인한 교회파산, 각종 소송행위, 재정 스캔들, 모두 상식이 결여된 목회에서 기인되는 부작용들이다.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원로들의 끊임없는 욕망과 후임자의 지나친 견제는 비상식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교회를 병들게 한다. 모두 상식을 무시해서 나타나는 병폐들이다. 5. 지도자성을 발휘하라 목회자는 너무 좌우에 지나쳐 편향되거나 지역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목회 지도자는 먼저 이 편협함부터 극복을 해야 한다. 목회자는 먼저 내 교회, 내 교단, 내 신학의 도그마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생각이나 의식 그리고 교계 관계나 신학 등에서 영혼의 그릇이 컸으면 좋겠다. 오늘은 교단주의, 교단신학주의, 지역감정, 좌우파 의식이 너무 강해 예수는 그 다음이 되었다. 목회자들이 지도자성을 발휘하려면 먼저 이 편견들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영혼의 커야 하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오늘 세종대왕의 지도력이 재조명되고 있다. 세종은 영혼이 크고 넓고 따뜻했다. 그의 통치이념은 위민으로 압축된다. 세종은 만삭된 노비가 노동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산후 휴가제를 창안 실시하였다. 자신의 세자책봉을 끝까지 반대했던 황희를 임금이 되자 정승으로 18년 동안 봉직하게 했다. 백성들의 민족자긍심을 위하여 한문이 있었지만 훈민정음을 창제 하였다. 세종 12년에 조세개혁을 할 때 5개월 동안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반대자 17만 명을 끝까지 설득하여 무리 없이 세법개정을 완성하였다. 노비출신인 장영실을 정사품 호군으로 등용하여 자격루인 해시계를 발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쇠약한 몸으로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정사를 시작하였고 집현전 학자들로부터 올라온 각종 문서들을 결제하였다고 한다. 이 지도력이 통합의 지도력이다. 이런 세종의 미래지향적인 마음을 백성들이 알고 세종은 진정한 우리의 스승이라 하여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날이 세종의 생일날이다. 이 같은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우선 영혼의 그릇이 커야 가능하고 그 의식이 미래지향적이어야 가능하다.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 상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하고 정체성이 분명하고 세종이 위민이 통치철학이었다면 오늘 목회자들의 이상은 하나님 사랑이고 그 사랑을 목회현장에서 구현하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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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기획
-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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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은퇴자로 후배 목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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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과 목회자 윤리
- 한국의 신학교육도 한국교회의 갱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신학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편집자 주 1. 종교개혁 신학의 구현을 위한 신학교육의 갱신종교개혁 시기에 신학교육의 갱신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고 나아가 도시의 사회를 개혁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개혁 신학을 구현하는 신학교육의 갱신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종교개혁기의 신학교육의 갱신은 중세에서 근세로의 이행기에서 일어난 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하려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목회 윤리는 기존의 교회의 권위를 옹호하는 변증논리가 아니라 기존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드러내는 비판논리였다. 봉건제도의 붕괴, 근대 도시의 출현, 교황의 권위 타락, 교회의 도덕적 타락 등 중세교회의 대내외적 상황에서 면죄부 판매를 통한 중세교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저항의 시작이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사회비판에 앞서 교회비판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교회비판이 당시 사회에서 커다란 공감대를 얻으면서 개혁활동은 점차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러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들이 당시 사회의 공론장에서 공감을 얻으며 확산되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간 것도 중요한 한 가지 이유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그들의 신학적 주장의 공적 설득력 때문이었다.82) 그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로마교황청이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확보를 목적으로 “공익의 탈을 쓰고 사익을 챙기던” 로마가톨릭교회를 목숨을 걸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공의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이었다. 루터의 신학의 입장은 성서의 권위에 의거해 교회를 위해 공공의 입장에서 교회를 비판했으며,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신학 패러다임을 낳음으로써 그 공적 정당성과 신뢰를 회복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신학교육도 한국교회의 갱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신학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다.2. 목회자 윤리 확립을 위한 신학교육의 갱신종교개혁자들은 당시에 타락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한 교회상과 지배하는 목회자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그러한 종교개혁의 진행은 새로운 목회자상을 구축하여 올바른 목회윤리를 형성하려는 작업이었다. 그러한 목회윤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 목회자들의 부패한 윤리상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인 대안을 찾아서 교육기관의 설립을 통하여 구현하는 것과 함께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지배하는 목회자상을 비판하고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하였으며, 목회자들은 행정관리나 미사집전자나 고해성사 담당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라고 보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목회자교육에 집중하였다. 이들은 목회자들의 모범적인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칼빈은 이 문제를 제도화하고자 시찰회를 조직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성도들의 삶의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여 치리제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그러한 측면에서 목회자들의 윤리를 개혁하는 데는 그 윤리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신학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그것을 교육해 나가야 하겠다. 지금까지 군림하던 사제들이 지위에서 만인제사직의 확립을 통해 말씀 선포를 통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서의 성직자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권위화를 극복하고 평신도들의 만인사제직을 구현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3. 교권화된 교회정치 구조의 개혁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부패와 타락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저항정신의 표출이었다. 그러한 저항정신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표어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지만, 멈춰 서 있는 돌은 이끼가 낀다.그러한 면에서 한국교회 내부에서의 자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한국교회 밖에서의 공격을 통해 한국교회의 자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내부 안에서 일상화된 교권다툼과 법적 분쟁, 신학교들마다의 내부적인 싸움, 이러한 교권화된 한국교회의 문제 속에서 한국교회 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한 면에서 하나님의 교회나 신천지같은 여러 이단들이 발흥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부패를 고발하는 여러 반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진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독교 이단들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들이 빈번하고 일어나고 있다. 진보세력이란 무신론 단체들은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공격들은 한국교회의 자정능력 상실에 대한 외부의 공격일 수도 있고, 교회의 세력화로 인한 사회의 경계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총회나 노회가 교권에 의해 장악되어 관련당사자들의 이해관계의 다툼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기구가 생겨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방안이 마련되어 제 기능을 발휘할 때, 목회자들의 윤리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상에서 일어나던 것들이 한국개신교 안에서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자조석인 이야기들은 그러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교회의 공조직이 건전한 모습으로 정화되고 갱신될 때 한국교회의 건강한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4. 교회의 목사직 세습의 근절과 목회자들의 은퇴제도 마련중세 말에 이르러 교회부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성직자들의 성직의 세습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성직 독신제가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세습이 교회타락의 주범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도 목사직의 세습이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 안에서 목사직의 세습을 근절하는 법안들이 여러 교단들에서 제정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특히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온갖 탈법과 편법을 통한 계승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속에서 한국교회는 신뢰를 상실하고 목회자 윤리는 타락되어 가고 있다. 교회에서도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실이다.이와 함께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회들에서 목회자들의 은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과거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이후의 생활문제와 관련하여 교회들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을 통한 해결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5. 교회의 공적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오늘날 신학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신학의 공공성은 기독교신앙이 개인의 구원과 심령의 평안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공적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세상권력을 장악하여 타락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교회와 국가의 영역을 구분하면서 동시에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사회의 건전한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렇지만 신학적인 공공성이 목회자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로 이해되는 것은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고, 오히려 성경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평신도들의 건전한 교육과 함께 NGO단체를 비롯한 건전한 시민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가치관의 공공성의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6. 치리제도를 교회 양육을 통한 성도의 성숙과 목회상담의 활성화 방안 마련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 성도들의 생활과 관련된 치리의 문제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치리가 실종되었다는 언급이 자주 거론된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안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의 Discipline은 단순하게 잘못된 행위에 대한 권징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건전한 영적 성숙을 도모하는 양육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츠빙글리, 부처, 칼빈으로 이어지는 치리에 대한 강조는 그들의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의 건전한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려는 설교와 교리교육 등을 통한 교육목회, 제자훈련 등을 필요한 인격적인 성숙, 그리고 성도들의 삶의 문제를 상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목회상담제도의 심화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같이 다원화되고, 여러 교회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와 국가가 협력하여 권징을 시행하던 시대의 방법의 단순한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적극적인 성숙을 도모하기 위한 목회자들의 건전한 윤리의식의 형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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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과 목회자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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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국교회의 위기와 목회자의 윤리적 책임
- 본고는 지난 7월 20일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의 발표회 ‘종교개혁 500주년과 목회자 윤리’에서 이원규 교수가 발제한 ‘한국교회의 위기와 목회자의 윤리적 책임’ 중 ‘한국교회 위기의 실태’ 부분을 발췌·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오늘날 한국교회 위기의 사회적 징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눈부시게 성장을 거듭해 왔던 한국교회가 이제 그 성장이 멈추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림으로 공신력이 한없이 추락한 것이다. 먼저 양적 성장의 문제를 살펴본다. 지난 몇 십년간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급격히 성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1960-2010년 사이 50년간 교회 수는 5천 개에서 8만 개로 늘어 16배가 되었고, 교인 수는 60만 명에서 9백 만 명으로 늘어나 15배가 되었다. 어떻게 이러한 성장이 가능했을까? 과거 한국교회 급성장의 요인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뜨겁고 열성적인 부흥운동, 성령운동, 전도운동, 신앙운동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신앙적 역동성이 성장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 것이다. 둘째로,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 특히 열정적 감성주의, 현세적 공리주의, 무교적 기복주의와 같은 한국의 문화 정서가 종교 신앙의 확산에 도움을 주었다. 셋째로, 정치적인 불안과 공포, 경제적인 빈곤과 박탈감, 사회적인 소외를 야기한 문제적인 상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혹은 성당이나 절)를 찾게 했다. 그러나 2천 년대에 와서 한국교회는 정체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10년 단위로 실시하는 통계청의 인구조사 결과 1995-2005년 사이 개신교인 수는 14만 명 감소했다. 그런데 2015년 조사에서는 그 수가 968만 명으로 2005년보다 오히려 120만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교인 수가 증가한 것일까? 두 가지 현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스스로 개신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회에는 나가지 않는 소위 ‘가나안 성도’의 증가이다. 그 비율은 최근 개신교인의 17%(165만 명)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신천지, 여호와의 증인, 영생교 등 이단 집단의 성장이다. 이들의 수는 백 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통계청의 인구조사는 가나안 성도나 이단 교인들도 모두 개신교인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전통 교단 소속 교인으로 자주든 가끔이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수는 실제로 700만 명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교단 통계도 교인 수의 감소를 보여준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단이라 할 수 있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감리교, 예장고신, 기장의 경우 예외 없이 교인이 줄고 있는데, 이 다섯 교단에서만 지난 5년간 교인 수가 50만 명이나 감소했다.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 상당히 민주화되었고, 경제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이제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60년 1인당 국민소득이 80 달러에 불과했는데, 2016년에는 그것이 2만 8천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배부르고 따뜻하고 편한 삶을 누리면서 한국인은 서서히 종교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05년 47%였던 무종교인의 비율이 2015년에는 56%로 크게 늘어났다.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그리고 복지 향상과 함께 종교적 관심이 멀어지며 교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던 서구 사회의 종교적 ‘세속화 현상’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수준의 향상은 한국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인 여유는 사회적인, 심리적인 여유를 만들어내면서 종교 이외의 것, 특히 “인생을 즐기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생활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조사에서 ‘종교를 갖는 것’이라고 응답한 한국인 비율은 1984년에는 11%였으나 2014년에는 5%로 줄었고, ‘신념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라는 응답은 같은 기간 동안 27%에서 6%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에 지난 30년 사이 ‘돈이 많은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11%에서 25%로 늘었고, “여가/휴식 시간이 많은 것‘은 2%에서 12%로 증가했다. 도덕적, 종교적 관심은 약화된 반면에, 물질적, 오락적 관심은 훨씬 더 많아졌다. 이제 급속히 발달한 여가산업(leisure industry)이 하나의 대체종교(alternative religion)로서 신도 확보 및 유지에서 기성종교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한국교회 쇠퇴에 중요하게 작용한 또 다른 상황적 요인은 인구학적인 변화인데, 특히 낮은 출산율이 문제다. 종교가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종교인의 출산율,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출산율이 높아야 한다. 과거 교회성장에 기여했던 한국인의 높은 출산율(예를 들면 1970년 4.53)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2016년 1.17)으로 떨어졌다. 이 비율은 세계 평균 2.54의 절반도 안 되며, 선진국 평균 1.64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출산율은 대개 선진국의 경우 낮은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2.0보다 낮은 나라 가운데 종교가 성장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 때문에 2030년부터는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인구의 감소는 자연히 종교 인구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2060년경에는 개신교 인구가 400만 명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예측한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더욱 암울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러나 한국교회의 쇠퇴를 촉진한 보다 심각한 요인은 교회 자체에 있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잃으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아졌다는 점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2017년 여론조사 기관인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단위로 실시한,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우선 전반적 신뢰도에서 한국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응답 비율은 겨우 20%지만,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1%에 이르고 있다. 이것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51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데는 18%(49점), “목사님의 설교와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데는 21%(51점), “한국교회의 활동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28%(57점)만이 “그렇다”고 응답하고 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 기관에 대한 물음에서는 응답 비율이 가톨릭(33%), 불교(21%), 개신교(19%)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신교가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무종교인의 개신교 평가는 치명적일 정도로 부정적이다. 그들의 평가에 따르면 “가장 신뢰하는 종교기관 역시 가톨릭(37%), 불교(18%), 개신교(7%) 순이다. 무종교인 가운데 개신교 교인을 신뢰하는 비율은 9%, 목사에 대한 신뢰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한국교회에 대한 무종교인들의 이런 불신은 선교에 결정적인 장애 요인이 된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대한 이러한 낮은 신뢰도가 한국교회 쇠퇴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하겠다.한국교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가서 비신자가 되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무종교인의 35%가 과거에 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종교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비율을 인구로 환산하면 880만 명이다. 무종교인의 과거 종교를 보면 개신교가 68%로 가장 많고, 다음은 불교(22%), 가톨릭(10%) 순이다. 결국 600만 명이 개신교를 믿다가 무종교인이 된 것이다. 타종교로 개종한 비율도 개신교가 가장 높다. 한국의 종교인 가운데 다른 종교로부터의 개종 경험이 있는 비율은 10%로 250만 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 개신교를 떠나 다른 종교로 개종한 비율이 52%로 가장 높은데(불교에서 다른 종교로, 33%; 가톨릭에서 다른 종교로 10%), 이것을 환산하면 130만 명 정도다. 결국 그동안 개신교를 믿다가 교회를 이탈한 인구는 모두 730만 명이나 된다. 이것은 불교 이탈자 270만 명, 가톨릭 이탈자 115만 명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며, 결국 한국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개신교를 믿다가 무종교인이 되어 버리거나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일까? 개신교인이 교회를 이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교회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교회가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가 되지 못하고 세속주의(예를 들면 돈이나 권력에 집착하는 경향)에 물들어 있는 모습에 반감을 가졌다. 목회자나 교인들의 사랑과 관심의 결여, 소속감의 결여나 목회자에 대한 불신도 중요한 요인이다. 목회자의 무의미한 설교, 비인격적인 태도, 권위주의 등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헌금과 전도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다. 교회 내의 파벌 싸움과 갈등도 문제이다. 이렇게 해서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한국인들은 한국교회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는 것일까?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의 요인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한목협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개신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 이유로 들고 있다. 한국교회는 목사나 교인에 있어 언행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전도가 너무 강제적이고 집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교회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분열과 다툼이 심하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사리사욕이 심하다는 것이다. 타종교에 대하여 너무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지나치게 규율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는 것이다. 세속화되어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한국교회가 사회적인 신뢰를 상실하고, 쇠퇴를 촉발하게 된 것은 한국교회가 영성과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데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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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국교회의 위기와 목회자의 윤리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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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가르침들: 그 환희와 고뇌
- 본고는 지난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가 교회창립 12주년과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신앙대강좌 ‘종교개혁의 환희와 고뇌’ 중 윤형철 교수의 강연 중 ‘루터’ 관련 부분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루터의 ‘영혼의 고뇌’젊은 루터는 전형적인 중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부였던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을 법률가로 출세시키려고 에르푸르트 대학에 보냈다. 청년시절에 루터는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는 몇 번의 사건을 경험한다. 스무 살되던 해에 루터는 칼에 다리동맥을 찔리는 큰 부상을 당해 과다출혈로 죽을 뻔 한다. 1505년 루터가 스물 두살이 되던 해에 흑사병으로 동생들을 잃는다. 곧이어 에르푸르트 대학교수들도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었는데, 한 교수가 죽어가며 자신이 수도사가 아닌 것을 한탄하고 죽었다는 소리를 전해들은 루터는 충격에 빠졌다. 같은 해에 루터는 죽음의 공포가 영혼 깊은 곳을 마비시키는 경험을 한다. 여느 때처럼 집에 들렀다가 학교로 돌아오던 길에 슈토테른하임이라는 벌판에서 벼락을 동반한 심한 폭풍우를 만난다. 폭풍우 속에서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루터는 일종의 발작공포를 일으키며 광부들의 수호성인인 성 안나를 소리쳐 부른다. “성 안나여 도우소서 그러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루터는 그 때부터 자신에게 ‘영혼의 고통’(독일어로 안페추퉁겐)이 시작되었다고 후일 밝혔다. 루터는 곧바로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돌아와서 짐을 싸서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된다. △탑상체험영혼의 고뇌에 짓눌려 있는 젊은 수도사를 안타깝게 여긴 선임사제 슈타우피츠가 루터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조언하고 신학공부를 종용하였다. 신설된 비텐베르그에서 학위를 받고 신학교수가 된 루터는 처음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가르치다가, 학장이었던 슈타우피츠의 권유를 받아 성경과목을 맡게 된다. 그렇게 해서 강의준비를 하며 연구한 성경이 시편과 로마서였는데, 이 성경 안에서 루터는 영혼의 고뇌로부터 탈출할 통로를 찾기 시작했다. 루터는 어거스틴 수도원의 탑 꼭대기에 마련된 서재에서 성경연구를 하였다(그래서 그가 복음의 정수를 발견한 체험을 ‘탑상체험’이라고 한다). 평소 루터는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을 싫어해서 로마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로마서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을 연구하면서, 루터는 앞부분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것과 뒷부분의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심했다. 중세인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사랑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해 고해와 고행과 순례를 계속 하면서 매일 한걸음씩 천국의 사다리를 올라가듯 스스로 이뤄야 하는 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마서의 이 구절은 의인이 믿음으로 산다고 선언하지 않는다. 두 서술이 연결되려면 ‘하나님의 의’는 ‘내가 달성하는 의’가 아니어야 한다.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새롭게 발견한다. 의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고행과 고해와 금욕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되고 그리스도의 의는 신자에게 전가된다. 죄인인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위대한 교환’을 통해서이다. 오직 그 방법이 아니고선 이뤄질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의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마련하신 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완전한 의이다. 루터는 로마서1:17을 통해 복음을 발견했을 때 자신이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순간이 바로 ‘종교개혁의 환희의 순간’이다. △95개조 논제루터가 시편과 로마서 연구를 통해 새로이 발견한 복음으로 벅차있을 때, 면죄부 판매 문제가 불거진다. 95개조 논제에서 루터는 교황이 연옥 감독권을 가지고 면죄부를 파는 것의 허황됨과 어리석음을 조목조목 밝힌다. “교황은 하나님의 용서를 선포하는 것 말고는 어떤 죄도 용서할 능력이 없다. 교황은 교회법에 의한 이 땅에서의 형벌이나 감할 수 있을 뿐 죽은 자의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으니 연옥에 있는 자의 형벌을 감한다는 면죄부는 사기이며 교황의 탐욕일 뿐이다. 교황의 면죄부는 어떤 의미에서도 교회의 보물일 수 없으니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없애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참된 보화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부터 오는 거룩한 복음이다.” 종교개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후대에 기억될 이 일은 면면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터가 성채교회 정문에 이 논제를 붙인 것은 거기가 일종의 신학교 게시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만성절(All Saints’ Day)로 불리는 11월 1일에 신학교수들이 모여서 신학토론을 벌이는 것이 전통이 있었다. 95개조 논제는 로마교회의 개혁을 위한 선언문이 아니었다. 심지어 면죄부 신학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루터는 면죄부가 남용되고 오해받는 것을 지적하려고 하였다. 로마가톨릭의 면죄부 신학에 따르면, 면죄부는 고해성사와 같이 현세적 처벌을 면하는 효과를 지닌다. 면죄부도 일종의 헌금이니 공로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면죄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용서의 효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은 면죄부가 천국으로 가는 티켓인 양 여기고 심지어 앞으로 지을 죄를 위해서 넉넉하게 사두기까지 했다. 루터는 그런 오해와 남용에 대해 신학적 토론을 벌이고자 한 것이었다. 분명, 이때까지 루터는 아직 개혁의 칼이 아니었다. 본인도 로마가톨릭교회를 철저히 개혁하려는 의지를 품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를 쓰시기로 하셨다. 95개조 논제는 인쇄술이라는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독일 전역과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은혜의 복음에 막 눈 뜬 수도사가 교황과 대주교의 탐욕을 지적하고 면죄부 교리의 한계와 오용을 지적하는 그 문서가 부패한 교회에 진저머리 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반박과 비판의 논리를 제공한 것이다. △루터, 하나님의 칼로 벼려지다.루터의 95개조 논제가 일으키는 반향을 전해들은 교황 레오 10세의 심기가 불편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맥주로 유명한 독일을 빗대어 교황은 “어느 술 취한 독일 수도승이 지껄이는 헛소리이고, 술이 깨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교황은 일파만파로 번져가는 95개조 논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교황과 교회에 불경한 죄를 물어 종교재판에 회부해서 화형 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터의 글과 사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의 논리를 깨뜨리고 이단이요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야 했다. 죽이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될 일이다. 교황은 최고의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을 동원해서 1518년부터 2년 동안 세 차례 신학논쟁을 벌여서 루터를 공략하려 하였다. 하이델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토론회를 준비하려고 루터는 더욱더 성경연구에 매달렸고, 그 결과 자신의 신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루터는 점점 로마가톨릭신학과 결별하게 되고, 하나님의 칼로 벼려지게 된다. 루터를 하찮은 수도승쯤으로 생각했던 교황 레오가 루터를 “주님의 포도밭에 침입한 멧돼지”라고 불렀을 때 루터가 로마교회에 치명적인 존재임을 예감했을 지도 모른다. 신학토론회를 끝내고 루터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정연하게 밝힐 필요를 느꼈다.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 1520년에 써내려간 세 편의 논문은 소위 ‘종교개혁 3대 논문’이라고 불리는데, 루터의 신학과 사상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첫 논문인 <독일 귀족들에게 고함>(1520)에서 루터는 독일의 영주들과 귀족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침묵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다”라고 시작하는 이 논문에서 루터는 교황의 폭정과 탐욕을 보호하고 있는 세 가지 장벽이 있는데 이것은 허탄한 논리로 된 종이 울타리와 같으므로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영적 권력이 세상 권세 위에 있다”는 주장이 교황권을 신성불가침으로 만든다. 루터는 영적 계급과 세속적 계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영적 계급에 속하므로 이 주장은 거짓이라고 말한다(이것이 만인제사장설이다). 둘째,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제의 중재 없이 스스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기에 이 주장 또한 거짓이다. 셋째, “오직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루터는 교황은 전혀 개혁할 의지가 없으므로 왕과 영주와 귀족들이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회의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두 번째 논문인 <교회의 바벨론 유수>(1520)에서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근간이며 사제의 절대적 권한의 근거인 성례 문제를 비판하면서 로마교회의 심장을 겨냥한다. 그리고 마지막 논문인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루터가 자신의 명분을 교황에게 이해시키려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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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가르침들: 그 환희와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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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서 바라본 한국교회
- 본고는 지난 6월 20일 열린 한목협 제19회 전국수련회에서 이말테 교수(루터대 신학과)가 발제한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서 바라본 한국교회’ 중 ‘한국 개신교회와 500년 전의 천주교회 사이의 공통점’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1. 율법주의적 예배 이해한국어 용어를 만들 때 미국 선교사들이 고테스딘스트 혹은 서비스라는 용어를 한국어로 번역하지 않고 대신에 종교개혁의 예배이해와 어울리지 않는 워십(Worship)이라는 말을 선택하여 예배라는 말로 번역했다. 예(禮) 와 배(拜)라는 한문이 둘 다 인간의 행동을 말한다. 그래서 제사적 차원만 표현된다. 더 심각한 말은 ‘예배 드린다’라고 하는 표현이다. 여기에서 세 번이나 인간의 행동만 표현된다. '예배' 혹은 '예배 드리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토착화의 예이다. 이 한국어 용어들을 볼 때 한국 개신교회가 율법주의적 예배 이해에 놓여 있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예배 이해에 있어서 종교개혁을 필요로 할 것이다. 2012년 독일 종교개혁지 탐방 참여자들이 그 문제를 잘 발견했다.2. 헌금에 대한 오해한국개신교인들이 헌금을 많이 낸다. 하나님의 복을 얻거나 복을 얻으려고 헌금을 드리는 교인들이 많을 것이다. 더 많은 헌금을 얻기 위하여 헌금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사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오해를 사용하는 교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헌금이 드리는 자에게 살아 있는 동안에 이미 보람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루터 시대에는 그 기대가 사후의 삶을 향한 것이었다.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교인들이 500년 전에 수많았다. 그 때 교인들이 연옥을 두려워했다. 루터 시대의 천주교회는 교인들의 연옥에 대한 두려움을 돈을 모으기 위해 악용했다. 돈을 내는 사람들에게 죄 값의 면죄를 약속했다. 교인들의 입장에서 면죄부가 비쌌지만 할만 했다. 신자들이 안심했고 교회도 좋아했다. 양쪽에게 다 유익한 비즈니스이었다. 한국 개신교회가 약속하는 기복과 같았다. 그 차이는 다만 그 때의 희망은 사후 세계를 향한 것이었고 오늘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현재의 더 좋은 삶을 위한 것이다. 루터가 면죄부 제도를 95개 논제를 통해 공격했다. 이러므로 종교개혁은 올바르지 않은 교회의 돈 문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인들에게 잘못된 안전을 주고, 운명을 돈으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약속을 비판함으로 시작되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돈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서도 운명을 변경시키려 하는 시도도 있다. 기도를 하나님께 영향을 줄 수 있는 도구로 이해하는 개신교인들이 많을 것이다. 기도를 이렇게 가르치는 목사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기도에서 빌었던 것을 얻을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하는 목사들이 있다. 이러한 염치없이 하나님을 사용하려는 교만함은 루터 당시의 천주교인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회의 개혁이 루터 당시 천주교회보다 더 시급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3. 선행을 통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하나님께 영향을 주고 자기의 미래를 더 좋게 만들려고 하는 방법들 중에 선행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시도도 있다. 루터도 이것을 시도해보았다. 루터가 검은 수도원 입회와 열심히 기도하는 일을 통하여 천국 입장권을 얻을 수 있는 줄 알았다. 수도자로서 그의 위기는 먼저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과 죄를 충분히 발견하고 고백했는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의 위기는 자기 자신을 솔직히 알았고 자신을 속이지 못했던 것에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깊숙하게 죄에 빠져 있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천국 입장권을 자기 노력으로 얻으려 하는 시도가 교만한 것임을 발견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루터처럼 천국 입장권을 얻으려고 하는 한국 교인들이 있다. 그리고 사는 동안에 이미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열심히 공동예배에 참여하고, 십일조를 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전도하는 사람이 모범적인 교인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우선 목사에게 보람이 되는 것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종교적 행동만이 모범적인 교인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은 평소에도 용감하고, 솔직하고, 남을 도와주고, 약한 자를 변호하고 보호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강한 자의 양심에 호소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이라고도 해야 할 것이다. 루터는 온 삶을 예배로 이해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직장생활도 포함된다. 개인 생활도 포함된다. 요즈음 그 문제를 인식하는 한국교인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한국 개신교회에 아직 그 길이 멀다. 4. 교회의 지옥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악위에서 이미 루터 시대 사람들과 달리 한국 개신교인들은 헌금을 많이 내면서 현재 사는 동안 보람을 얻기 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 개신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선교할 때 그렇다. 명동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수막을 보면 거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예수 믿는 자 천국; 불신자 지옥”. 인간의 사망과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교회가 악용하는 일이 많다. 500년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다. 세례 요한의 심판의 경고와 같은 전파와, 예수의 하나님께로 초청하는 전파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 개신교인들이 많은 모양이다. 어쨌든 종교개혁지 탐방 참여자들이 한국 개신교회가 500년 전의 서구교회와 비슷하다고 하면 이 분야에서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5. 교회의 교권주의종교개혁자들은 사제와 평신도의 절대적 구별을 반대했다. 모든 신자들 혹은 모든 세례교인들의 만인제사장직을 가르쳤다. 루터에 의하면 성경말씀이 분명하고 모두에게 이해가 쉽다. 그래서 평신도들이 없으며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사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루터에 의하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모든 죄를 사했다. 원죄뿐만 아니라 모든 나중에 생길 현재의 죄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개신교회에서 미사에서의 예수님의 희생제물의 반복이 필요 없었다. 그리고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장들도 필요 없었다. 또한 개신교인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직접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신자에게 중매역할 하는 성인과 성모와 같은 중보자들이 필요하지 않다. 개신교회의 목사들은 다른 교인들보다 더 높은 자들이 아니라 한 지역교회에서 목회하기 위하여 사명을 받은 교인들이다. 공식 설교와 성례전 인도 때문에 교인들의 상대방이어도 교인에 속한다. 한국개신교회에서 이러한 종교개혁의 특징이 거의 안 느껴진다. 위계질서적 사상을 강조하는 유교적 사회에서 예를 들어서 자기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온공동예배 동안 중앙 위치에 있는 설교대에 서 있는 장로교 목사들이 많다. 찬송이나 영광송 때도 비켜서지 않는다. 목사가 비키면 예배가 멈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개혁교회의 교리에 의하면 교회 공동체가 예배한다. 목사가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설교 때 청중이 동의하면 이것을 아멘으로 표현한다. 만약에 설교가 진리와 달랐다고 생각하면 주로 친절하게 침묵으로 이의를 표현하지만 중요할 때 아니라고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설교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신하는 목사들이 많다. 그들이 스스로 아멘이라고도 하고 교인의 이의 표현을 허락하지 않는다. 목사 중심이 한국 개신교회에서 심각하다. 함께 찬송이나 신앙고백을 할 때 목사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목사들이 대부분 회중 가운데 앉아 있지 않고 제단이 있는 높은 좌석에 앉아 있다. 6. 성직매매종교개혁의 시발점은 면죄부이었다. 루터는 이 면죄부를 반대하기 위하여 95개 논제를 작성했다. 종교개혁이 천주교회의 성직매매와 비리 사건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성직매매는 신약시대부터 금지된 범죄이다. 서기 313년과 381년 이후에 성직매매가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었다. 451년에 열렸던 칼케돈(Chalkedon) 공의회에서 돈을 받고 사제를 서품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 금지법이 중세에 여러 차례 확인되었지만성직매매사건들이지속적으로생겨났다. 돈으로 자기 성직을 받은 신부들과 주교들과 교황들이 많았다. 루터가 이러한 뇌물사건인 성직매매를 공격적으로 비판했다.한국 개신교회에서 뇌물을 주고 고위 성직을 얻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큰 교단에서 총회장 혹은 감독회장이 되고 싶으면 수 억 원을 써야 한다고 한다. 장로가 되고 싶을 때에도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어야 하는 것도 문제이다. 7. 목사들의 지나친 돈에 대한 관심과 잘못된 사용루터시대와 마찬가지로 돈을 너무 좋아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루터가 이미 1520년에 천주교회 사제들의 성직록과 이자 수익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비판했다. 루터 시대에 영적인 동기나 목적 대신에 재정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보람을 얻기 위하여 성직을 택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수입을 높이기 위하여 농민들에게 지나친 압박까지 하는 사제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제들이 서민들을 희생시키며 살았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의 크기와 교회 재정의 양적 현황에 대하여 지나친 관심이 있는 목사들이 많을 것이다. 1990년대에 발표자가 당시 한국 개신교회의 영향력 있던 대표자와 대화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람이 전에 목회했던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다. 필자가 그 교회를 알았기 때문에 교회가 크다는 말을 했다. 그 목사가 맞다고 대답하며 12억이라고 했다. 교인수를 말하지 않고 일 년의 총수입을 말했던 것이었다. 그 목사가 사람들보다 재정을 생각했다. 이것이 교회를 성직록으로 본 루터 시대의 천주교 사제들과 비슷하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통계에 의하면 담임 목사들의 잘못된 돈 사용이 교회 안에서 생긴 갈등들 중에 가장 잦은 원인이다. 목사들의 돈 욕심이 가끔 무섭다. 목사 한 명이 아파트 8채나 소유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그리고 목사가 왜 큰 차를 타는가?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한 루터가 지원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와주지 않는 것을 도둑질과 십계명의 위반으로 해석했다. 여러 참여자들이 한국 개신교회가 재정적인 상황에 있어서 종교개혁시대의 천주교회와 비슷하다고 하는 것에 근거가 있다. 8. 목사들이 교회를 개인적 소유로 착각한국에서 자기 돈으로 교회를 개척한 목사들이 많다. 교인들의 헌금으로 구입한 부동산을 목사의 개인 소유로 이해하는 목사들이 많은 것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담임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유산으로 맡겨 주는 습관을 언급할 수 있다. 교회를 개인 소유로 보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 개신교회가 500년 전의 천주교회와 비슷하다. 독일 식으로 표현해보면, 교회와 돈이란 뜨거운 감자이다. 즉 까다로운 문제라는 의미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통계에 의하면 담임목사 임명과 세습 문제가 모든 교회공동체 내의 갈등들의 원인 중에 두 번째로 잦은 것이다. 9. 목사들의 도덕적, 성적 타락천주교회의 도덕적 상황이 루터 시대에 좋지 않았다. 교황까지 루터가 비판했다. “교황의 변덕과 거짓을 통해 로마시가 말할 수 없을 만큼 나쁜 영향을 받는다. 적그리스도도 이 보다 더 모독적으로 지배하지 못할 만큼 장사와 무역과 소동과 거짓과 속임과 강탈과 도둑질과 호화와 간음과 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남색과 하나님을 멸시하는 다양한 것들로 가득 찼다.”한국 개신교회에 착한 교인들과 모범적인 목사들이 많지만 드러나는 추문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성적 추행에서부터 간음과 사기와 탈세와 횡령까지 하는 목사들이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의 통계에 의하면 목사의 성적 문제가 교회 공동체 안의 문제 원인 중에 4번째로 잦은 것이다.10. 많은 목사들의 낮은 신학적 수준이 부분이 제가 외국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많은 목사들의 낮은 신학적 수준이 특별히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도 돈만 있으면 다닐 수 있는 대학교를 찾을 수 있다. 대학교 교수들이 대부분 F점수를 주지 않아서 최하 수준의 학생들까지도 목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만 신학을 전공해도 목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회에 수많은 목사들이 3년 동안만 신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개신교회의 신학적 수준이 낮다. 이러한 교회가 흥할 수 없다.목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세례를 아무에게나 쉽사리 주거나 세례 예비자들에게 충분한 교육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개신교의 양적 성장주의가 세례의 ‘대 바겐세일’을 만들었다. 잘못된 동기를 바탕으로 충분한 준비 없이 사람들이 교인이 될 수도 있고 목사도 될 수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11. 기타 공통점들 화려한 교회건물들을 건축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대표적인 화려하고 큰 교회건물(들)이 교단마다 필요할 것이다. 성공회도 덕수궁 옆에 있는 대성당 덕분에 에큐메니컬(ecumenical) 예배와 행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과 땅 구입을 위하여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개신 교회가 요즈음 너무 많다. 유럽의 천주교회가 대형교회 건물을 짓기 원했다. 자기 권력을 보여주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러한 목적은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과 어울리지 않는다. 하이델베르크 공개 학술 논쟁에서 루터가 1518년 4월 26일에 매우 일찍 영광의 신학을 비판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창조된 것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신학자들은 신학자들이 아니다.” 라고 했다. 올바른 신학은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국 개신교회에서 기복사상을 따랐던 목사들이 수많았다. 기복사상은 번영의 신학(Prosperity Gospel)의 한 형태이고 현재의 영광의 신학의 대표적 사상이다. 루터가 영광의 신학을 반대하고 거부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기복사상을 벗어나는 한국 목사들과 교회들이 많다. 영적 그리고 정치적 권력을 둘 다 원하는 것과 교인들이 조건 없이 성직자들의 말을 순종하기를 원하는 태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를 원하는 입장도 루터가 제안한 종교개혁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다.한국 개신교회가 500년 전에 천주교회처럼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어떠한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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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에서 바라본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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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6월 9일 서울영동교회에서 개최한 6월 월례회에서 유관지 목사가 발제한 대북지원 ‘교회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성서에서 답을 찾자남북의 화해와 대북지원 문제는 지금도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이다. ‘호국과 보훈의 달’이며,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라는 노래를 부르는 6․25가 들어 있는 6월에는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을 촉발시킬 도화선이 되기 쉬운 위험을 안고 있다.이럴수록 우리는 성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고 손해가 되더라도 순종해야 한다.성서에는 ‘화해’라는 말이 두 번, 화해와 비슷한 말인 ‘화목’이 21번 나온다.(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읽기’에는 ‘화목’이라는 말이 101건으로 되어 있으나, 그 중 80건은 ‘화목제’ ‘화목제물’이다.) 빈도는 그리 높지 않으나 산상보훈에 있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마5: 23˜24)라는 말씀은 이 문제의 황금률이다. 인도적 지원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 17~21)라는 말씀이 또한 그러하다.김병로 교수(서울대)는 최근의 한 포럼에서, 성경에서 답을 찾는 문제의 폭을 넓혀, “분단 상황 속에서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교회가 반응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분단을 어떻게 성경적으로 해석하면서 한국교회가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우리의 과제를 제시했다.(「기독교타임즈」 5월 20일)‘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통일선교 운동에서 가장 요청되면서도, 잘 되지 않고 있는 것이 ‘연합’이다. 2015년에 분단 70년과 관련된 행사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 ‘통일선교의 컨트럴 타워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몇 차례 있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지금은 통일선교 운동의 새 전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때 한국교회는 연합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의장 이철신 영락교회 목사)는 지난 5월 11일,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이해와 한국교회의 준비'라는 주제로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이사포럼을 열었는데, 발제자로 나온 강인덕 박사(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으로 정책 방향의 변화가 예고된 현 시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문 대통령이 밝힌 인도적 지원과 협력 강화 등의 대북 정책이 한국교회가 민족복음화를 추진하는 부분에 있어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럴 때일수록 과거와 같은 개 교회 중심 대북 선교 전략에서 벗어나 연합을 통한 선교 확장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경청해야 할 발언이다.북한을 향한 문이 조심스럽게 열릴 것으로 예측되는 지금을 연합 문제의 진보를 이룰 계기로 삼아야 한다.용어를 바꿀 것을 제안한다우리는 ‘대북지원’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늘 이 모임의 주제(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에도 이 말이 들어 있다.용어는 그 일의 성격을 규정하고 인식을 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을사보호조약’과 ‘을사늑약’, ‘동학란’과 ‘동학농민혁명’, ‘5․16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의 예를 보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다.‘지원’은 주고 받는 관계이다. 자칫하면 요즘 자주 말썽이 되는 ‘갑을관계’가 되기 쉽다. 이런 것을 생각하며 ‘갑갑관계’임을 담고 있는 용어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먼저 ‘대북협력’을 들 수 있다. 북한을 지원하고 있는 단체 56개가 참여하고 있는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약칭 ‘북민협’)는 설립 당시부터 ‘지원’이라는 말 대신에 ‘협력’이 들어간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활동 내용 기록에서는 ‘지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대북나눔’이라는 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구제와 봉사’라는 말을 사용해 왔는데, ‘구제’는 ‘나눔’이라는 말이, ‘봉사’는 ‘섬김’이라는 말이 대신 쓰이더니, 이제는 이 말이 정착이 되었다. 천태종은 대북지원을 담당하는 단체의 이름을 ‘나누며 하나되기(Share the World)’라고 정했는데, 이 단체는 2003년 12월에 설립되어, 2016년 1월에 통일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대북섬김’이라는 말도 있다. 송원근 목사(자연빛교회 담임, ACTS 연구교수, 韓鮮통일목회연구소 소장)는 2014년 6월 5일에 열린 ‘쥬빌리통일콘퍼런스’에서 “어떻게 교회가 통일을 살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면서, “Ⅱ. 교회의 통일 사역사(使役史)”서 “대북섬김사역기”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한국교회의 통일선교사에서 1990년대가 ‘대북섬김사역기’라는 것이다. 이 말도 좋게 느껴지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느낌도 준다.방북자들의 언행이 중요하다통일부는 대북 접촉과는 별개로, 방북 승인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6월 3일) 앞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교계 인사들이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NCCK는 통일부의 방북승인을 받으면 실무진과 회원교단 대표 20여 명이 참여하는 방문단을 꾸릴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었다.(5월30일)방북하는 교계인사들의 언행이 중요하다. 겸손함과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진 자의 오만〔猝富根性〕은 절대 금물이다. 다른 기관에 대한 비난, 경쟁의식에서 나오는 말도 그렇다. 그것은 북한측에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대북지원은 북한선교의 한 방편이기도 한데, 북한에서의 직접 전도가 엄하게 금지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방북 크리스천들의 겸손하고 신실한 언행이 좋은 간접선교 방법이 된다.과거 방북이 많이 행해지고 있을 때 이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음을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북협력 NGO 실무자로 교계 인사들, 또는 후원 인사들과 함께 방북을 했을 때, 북한측 참사들보다 같이 간 분들의 언동에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 한번은 친숙해진 북한측 참사로부터 밤에 호텔 앞뜰에서 이에 대해 매서운 충고를 들은 일도 있다.맺는 말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요즘은 북한 주민들의 기아 현상에 대한 보도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려명거리 건설 등 북한의 화려한 면이 부각되는 보도를 자주 대하게 된다. 탈북민들의 탈북동기도 생계형 탈북보다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탈북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북한의 식량난은 이제 해결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북한은 계속해서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그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주민들의 생활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한은 지금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올해 봄 가뭄으로 모내기 농사에 어느 해보다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지난 1일, 올해 봄철에 가뭄이 계속된다고 언급하며 가뭄을 극복하고 모내기를 제때에 끝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연합뉴스 6월 4일) 작년 가을에 강화도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찾았을 때, 해설사는 “여러분, 오시면서 추수가 한참인 것을 보셨지요? 봄가뭄이 심했는데 강화도는 소방차들을 동원하고 여러 방법으로 모를 내서 순조롭게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너편 북한 땅은 지금까지 추수하는 광경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강화도 건너편은 ‘연백벌(평야)’라고 해서 북한이 자랑하는 곡창지대 가운데 하나이다.대북인도적지원의 시급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이런 것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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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남북의 화해와 대북 인도적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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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폐지 반대
- 출애굽기 21:12,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출애굽기 21:14,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의도적으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21:16, “사람을 후린 자(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명기 24: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납치하여)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납치한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해 온 우리나라,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지난 수십년 간 가정교육, 학교교육, 종교교육, 인성교육(도덕, 윤리)이 모두 붕괴되어 오늘날과 같은 사회현상들의 일탈이 뿌려 온 씨의 열매로 나타나고 있다.사형이란 무엇인가? 사형은 흉악범(중범자)들에 대한 최고의 형벌이다. 사형은 흉악범들의 생명을 빼앗는 죽음의 형벌이다. 사형은 사람이 범죄 타락한 이래 흉악범들에 대한 형벌로서 인류 초기부터 존재해 왔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살인 사건부터이다(창 4:8). 사형은 도덕·윤리와 인륜에 관한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어떤 사람들이 사형제도를 반대하는가? 소위 인권운동자들, 평화주의자들, 반전·반핵주의자들, 일부 사회학자들, 일부 좌경 진보정치인들, 종교계(불교, 유교, 천주교, 기독교 등)의 급진 자유주의자들, 동성애자들(Homo Sexuals), 절대 다수의 살인범들, 영적·신앙적·도덕적 분별력과 표준이 없는 자들 등이다.여기서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 무리들, 단체들, 정당들, 종교인들 대(對) 사형제도를 적극지지 찬동하는 사람들, 무리들, 단체들, 정당들, 종교인들의 색깔이 판이하고 분명하다.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나니…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마 7:18)고 말씀하셨다.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의 거짓 궤변들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에 사형 제도는 반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변사형제도 반대, 폐지론자들은 주장하기를,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생명권 등에 비추어 형벌의 이름으로 범죄자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모순이자 자가당착이다”, “사형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허용될 수 없다”고 한다.비평: 물론 사람 생명의 존엄성은 너무나 귀중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여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Life)를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 16:26, 막 8:36, 눅 9:25)라고 말씀하셨다.사람 생명의 존엄성이 가장 가치 있고 또 중요한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격적 존재(人格的存在)이기 때문이다(창 1:26).사형제도 반대·폐지론자들은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 때문에 사형 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 생명의 존엄성이란 사형수들의 생명을 말하며, 사형수들은 무고한 그리고 무죄한 사람들의 귀중한 생명들을 악랄하고 잔인하게 빼앗아 간 흉악범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흉악범·중범자들의 생명도 귀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면 그들에 의하여 고귀한 생명을 빼앗긴 무죄한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은 무시·경시되어도 된다는 말인가?우리는 사람들의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그토록 귀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악한 자들·흉악범들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 죄의 값, 곧 죄를 범한 자가 받을 정당한 대가는 최고의 형벌 곧 사형이기 때문이다(롬 6:23).② 사형은 죄수들의 재활의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변비평: 물론 사람이 범죄하면 뉘우치고, 회개하고, 교화되어 새사람으로 거듭나 인생의 새 출발이 있기를 소원한다. 실제상 상당수의 죄수들은 범죄의 정도에 따라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면서 재활을 준비한다. 그러나 죄수들 모두가 재활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죄수들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흉악범들과 경험담을 나누며, 출감 후의 범죄를 계획하고 모의한다.사형제도 반대·폐지론자들은 죄수들의 죄질 정도와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중범자들에 대한 형벌은 재활의 문제가 아니라 공의의 문제이다.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은 자들에 대한 공평한 형벌은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주는 것뿐이다. 흉악범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죄수들 중에는 재활을 위한 죄수들이 따로 있고, 중벌로 다스려야 할 죄수들이 따로 있다.③ 사형은 범죄 방지에 효과가 없다는 주장과 궤변사형제도 반대·폐지론자들은 사형이 범죄 방지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이 범죄 방지에 효과가 있다면 왜 범죄가 감소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사형당할 것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일 뿐이다. 사형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들에서 중죄(重罪)는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비평: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들의 도덕률과 윤리관이 높고, 사회가 건전할 때에는 범죄율이 적고, 반면에 사람들의 도덕률이 낮을 때에는 사회가 타락되며 범죄율이 증가된다. 법이 엄하고 법을 엄격히 시행하면 범죄율이 적고, 반면에 법이 허술하고 법을 엄격히 시행하지 않으면 범죄율이 증가된다. 그 이유는 법이 허술하고 법을 엄격히 시행하지 않으면 범죄하고자 하는 심리적 충동이 더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범죄 타락한 인간의 본성(本性)은 죄의 성질(罪性)이 있기 때문이다.사형은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범죄로 인하여 형을 살거나 사형을 받지 않기 위하여 사회의 안녕질서를 위해 절대 필요하다. 사형은 범죄를 억제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촉진시킨다(신 17:13). 먼저 법이 엄격하여야 하고, 법 집행자들은 법을 엄격히 집행하여야 한다.흉악범들의 신상을 분명히 밝히고, 복면을 벗겨 얼굴을 만천하에 들어내고 공개하여 더이상 악행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들이 공포 속에서 벗어나 평안히 살도록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④ 재판의 불공평성과 오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과 궤변사형제도 반대, 폐지론자들은 사형은 무고한 사람에게 사형을 집행한 경우에는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비평: 물론 경찰, 검찰, 판사, 변호사 모두 사람이요, 사람은 모두 불완전하다. 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불공평성과 오판의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법제도가 완비되어 있는 국가들은 법 자체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철저한 조사, 현장 검증, 증인 채택, 검사의 논고, 변호사의 변호 등 상당한 법 절차를 밟아 판결을 내린다. 오판일 경우 상부법원(고등법원, 대법원)에 상소할 수 있고, 사면 제도도 있기 때문에 법치 국가에서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궤변들이다.⑤ 사형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에 위배되므로 사형제도는 반대·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변비평: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사랑은 깊은 애정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공의에 기초하여 나타내신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내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요 3:16; 롬 8:3, 32).하나님은 사랑이시나 죄는 증오하신다. 공의를 배제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사형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비양심적, 비윤리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 사랑이다.⑥ 사형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제6계명)에 위배되므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궤변비평: 사람에게 생명을 부여하시는 이는 창조주 하나님뿐이시요,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과 죽음(生死)를 주관하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도 사람의 생명을 취할 권한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제6계명, 출 20:13)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사형제도 반대·폐지론자들은 무죄한 사람의 생명을 잔인하게 빼앗는 살인범과 중범자들을 처벌하는 사형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돈하고 있다.⑦ 예수님은 사형을 반대하였다는 주장과 궤변사형제도 반대·폐지론자들은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요 8:11)고 하시므로 사형을 반대하였다고 주장한; 율법에 적어도 두세 명의 증인이 요구되었는데 아무도 그녀를 정죄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사형제도를 무효화하는 선언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에 대한 죄의 용서이며, 간음이 큰 죄이나 ‘자신들은 그런 죄인이 아닌지’를 살피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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