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7-30(수)
 
교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




언론은 기본적으로 보도기능과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해 나가는 공익적 기능을 한다. 미디어 수용자들은 언론을 통하여 정보를 얻고, 권력과 사회 비리에 대하여 알게 되므로 감시와 견제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기독언론은 여기에 더하여 선교적 기능과 교육적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적 기능이라 함은 복음을 매체에 담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이며, 교육적 기능이라 함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신앙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 언론 못지 않게 기독언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매체는 한국교회언론회 조사에 의하면, 지난 5년 간을 사이에 두고 살펴보았을 때, 110여 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 많은 기독언론매체들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가? 또 교회의 문제들을 담아내는데 이렇게 많은 언론매체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이로 인한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교회가 받아들이고 정리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있어야 하겠다.
우선은 현재 기독언론의 상황에서 장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미디어 수용자가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양한 종류의 매체이다 보니 취할 수 있는 내용의 폭이 넓다고 할 것이다. 둘째는 고용창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독교 언론에 종사하는 인원은 대략 7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들이 기독언론을 통해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첫째는 매체의 난립과 영세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계신문의 경우, 주간 내지 격주간 간격으로 정상적으로 발행하고 있는 매체는 30개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부정기적이거나 특정기간에만 발행되는 경우가 많다. 시의적절하게 모습을 보여야 할 언론매체가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운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신문언론 매체가 연간 필요한 운영비는 대략 수억 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은 난맥상(亂脈上)을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교회 안에서의 광고나 후원은 제한적인데 말이다.
둘째는 일부언론을 제외하고는 저널리스트들의 잦은 이동과 이직을 보게 된다. 이는 전문적 직업에 대한 만족과 소명에 대한 성취도가 약하다는 반증이다. 반면에 이들에 대한 전문교육이나 생활보장도 대부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도와야 할 것인가? 이것은 교회와 지도자, 언론 종사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로 본다. 먼저는 언론 종사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언론이라는 간판만으로 언론역할을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은 기독언론인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목표와 운영에 대한 분명한 계획과 대책이 없다면 조심스런 결단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또 분명한 신학과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사의 인적구성에 있어서도 신문의 경우, 취재·편집·영업에 있어서 최소한 10명 이상의 전문인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제대로 안 된다면 비슷한 매체끼리 합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는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특정 단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매체는 신문의 형태를 띄지 말고 과감히 소식지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또 무분별하게 이름을 걸어 놓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 지도자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조속히 물러나야 한다. 셋째는 교회의 관심이다. 교회들이 개별교회 홍보용으로 과다하게 지출하는 경비를, 건전한 기독언론에 대해서 문화·선교비를 책정하여 적극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이다.
넷째는 기존 메이저급 언론들의 반성이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들만 취급할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구석구석에 있는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야 한다. 소외된 사람들이 반발하여 우후죽순격으로 언론매체를 만드는 경우들을 차단해야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국내용으로만 언론을 만들지 말고 해외에 한국교회를 알릴 수 있는 정도의 국제적 수준의 언론매체도 있어야 한다.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매체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기독언론은 일반언론보다 정직하고 선명한 목적에서 앞서야 한다. 기독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과 진실을 담아내야 한다. 목적 상실의 언론운영은 곤란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라고



교회연합신문에 거는 기대




우리는 수없이 다양한 언론매체들과 인터넷의 바다에 헤엄치며 살고 있다. 많은 정보와 직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이들 언론 매체를 통해서 알아간다.
기독교언론도 사회의 민주화 발전에 따라 상당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수없이 많은 언론사들이 생겼다. 그런 측면에서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발전은 주로 물량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교계의 언론은 교권을 감시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교단을 성역으로 두고, 눈치를 보며, 알아서 잘 써주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창간 14주년을 맞는 교회연합신문에게 축하하기에 앞서 교회개혁의 중요성을 당부해야하는 필자의 마음은 독자들과 같이 무겁다. 그 어느 때 보다 교회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과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사명감으로 불타야 한다. 신문은 새로운 보도나 비판을 매일 또는 일정한 기간을 두고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전달하는 정기간행물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언론의 힘이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인지하게 하고 때로는 그들을 설득하여 태도를 바꾸게 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기능이 마비되거나 스스로 힘을 잃을 때, 속한 단체나 사회는 판단력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지금 우리사회는 양극화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에서부터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 우익과 개혁으로 갈라져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이런 갈등 속에 교회는 세상을 치유하고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교회가 오히려 양극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언론의 사명은 크고, 특히 기독교 언론과 교회개혁의 관계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연합신문에 거는 기대가 크기에 함께 동역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과제를 적어본다.
첫째, 교회가 교회다워지도록 기독교 언론으로서 헌신해 주기를 바란다. 교회개혁에 노력을 다하되 언론사의 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언론의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교계의 사안을 담대히, 그리고 명백히 알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교회 개혁에 스스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목회자들의 의식을 깨우는 기획기사를 제공해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의 사역을 바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또한 잘못된 교회상과 목회자상을 비판하고 성경의 모델을 제시해야한다. 언론에 보도된 뉴스나 기획기사는 다른 시각으로 인한 충돌이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갈등은 서로 다른 견해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교회개혁을 통해 사회에 희망을 주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갈등과 충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둘째, 적은 소리라도 정의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지 않고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정의의 편에 서서 그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증폭시켜야한다.
소수의견을 인정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소수의견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음하는 성도들이 즐겨 찾는 신문,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는 일꾼들이 기다리는 신문, 소외된 사람들이 위로받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 주기를 바란다. 이런 귀를 가진 신문은 소위 큰 손에 의존하지 않고 개미군단, 즉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후원을 받고 자라나게 될 것이다.
셋째,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란다.
언론개혁이란 개혁대상이 언론사와 언론인들, 보도내용, 저널리즘의 관행과 규범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지금 사회 언론은 개혁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기독교 언론이 먼저 솔선수범 할 때이다.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기에 스스로 뼈를 깎는 아픔으로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 종교 특유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을 탈피하여 과감한 변신을 신문에 반영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기독교언론에 관심을 갖고 이용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교회의 관심과 노력없이 바른 기독교 언론이 세워질 수 없다. 무엇보다 언론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풍토을 조성하여 교권에 의한 간섭을 자제하고 교회이기주의와 교단 권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소식은 언제나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킨다. 지금도 겸손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고생하는 사역자와 교회들에게 용기를 주고 숨겨진 희망의 소식을 찾아내어 많이 소개해주기를 우리 모두는 바라고 있다.
세례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나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하며 회개와 희망을 외쳤던 그 소리가 바로 교회연합신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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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4주년 특별기고 / 기독언론 현황과 그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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