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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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전례 없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더 행복해졌을까?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이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은 것을 보며 물질과 행복이 정비례하는 것이 아님은 자명한 듯하다. 행복은 물질적인 소유의 크기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인간의 실존에 대한 자존감이나 정신적인 만족감으로 보다 더 깊이 연관되어 근본적인 삶의 문제를 알게 한다.
일찍이 동서고금의 사상가들은 행복에 대하여 여러 가지를 말한다. '결핍과 곤궁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올바른 사물의 질서에 대한 인식', '우주나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신하는 상태', '마음의 평화', '사람이 불행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상태' 등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생각하면 한 생명은 자기의지에 의해 태어나고 죽고 사는 것이 아니며 한번의 삶으로 한 목숨, 한 생애로 숨을 거두는 생명의 진리를 피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실로 행복에 대한 정의는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이는 누구나 행복을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로 인식하는 열망들(熱望longings)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세가지 열망을 열거해 본다. '일상적인 열망(casual longing)', '기본열망(critical longing)', 근본열망(crucial longing)'이 있다고 생각한다. 풀이하면 일상(日常)적인 열망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용한 양식에 대한 요구이다. 예로써 돈을 벌고 싶고 좋은 집 마련하고 좋은 음식 먹고 싶은 일상적인 요구인 것이다. 그리고 기본(基本)적인 열망은 기본적인 요구를 만족시켜 주더라도 우리는 관계성에서 오는 또 하나의 요구로 그 만족을 하게 한다. 관계 즉 배우자에게 사랑, 존경 받고 싶은 마음, 자녀들이 책임 있게 사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 주위사람, 친구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기본적인 열망이 있다. 다음으로 근본(根本)적인 열망으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열망을 알게 한다. 이 열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 될 때 만족할 수 있는 그 열망임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없이는 인간은 그 어디에서도 만족함을 얻을 수 없고 그 열망은 공허하다. 여기에 인간의 근본적인 열망을 알게 한다. 사람의 행복은 영원한 것이다. 세상의 물질과 권세와 명예는 시한적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행복은 땅에서 얻으려 함이 아니라 하늘에서 얻으려 함을 알게 한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은 옳다. 사람이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쉽다. 여기에 예수님은 인간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는 부정하지 않지만 이 보다 물질에 대한 태도가 더 문제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물질을 땅에 두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부를 소유하는 것은 죄가 아니 되지만 다만 더 있는 사람은 더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소유면 다 되는가 그것도 아니고 없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것은 소유 또는 무소유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 중요함을 알게 하는 것이다.
행복한 에덴에서의 인류 최초의 사람들은 행복하였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창조자의 약속을 어긴 처음 사람은 행복한 동산에서 불행한 처지에 놓여 그 불순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 대하여 바로 지금 '나는 누구인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삶을 이루는가 생각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