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3(목)
 

믿음의 유추(類推)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 내가 죽을 때까지 "나는 왜 사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는 문제는 '나'를 "믿음의 유추(類推)"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고의 신이나 궁극적인 구원과 연결시키는 인간의 내적 태도에서 신념이나 신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의 은총을 강조하는 신앙에서 믿음은 신이 직접 주는 내적인 확신이나 사랑의 태도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인 역사적인 계시에 대해 하나님의 감동을 나타내는 인간의 반응을 알게 하며 인간의 궁극적인 관계에 관여하게 하는 믿음으로 이를 신앙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관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삶을 사는 인생관과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의 생명관으로 참 인생의 삶의 의미를 가진다. 인생의 모든 삶의 문제가 생명의 기본적인 것이기에 생명관으로 사는 삶을 살게 한다. 이는 올바른 생명관으로 살아야 자연의 피조세계와 더불어 사는 생명관으로 공생의 삶의 둥지를 틀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관은 생명을 내신 분으로 창조자의 창조섭리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숨결이 서린 생명들을 통하여 그 삶은 서로의 화해공동체로 공생공존의 의미를 알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창조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를 창조한분의 창조의도를 알아야 하며 자연계와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거쳐 계속하여 원인을 규명해야 결과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삶의 근본임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유추(類推)"로 사람이 사는 것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 되어 이를 삶의 절대가치로 삼아 사는 '믿음'인 것을 말한다.
생명을 가진 삶에는 두 가지의 가치로 절대가치와 상대가치가 있다. 절대가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를 알게 하며 이 가치는 생명에 영향을 미치며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기에 인간은 역시 창조의 이유와 우주의 법칙 속에서 태어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존귀한 존재임을 믿는 것이다. 반면에 상대가치는 인위적인 가치이다. 이는 만들어진 가치이기 때문에 시간의 때와 공간의 장소가 바뀌면 변화하게 된다. 상대가치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범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절대가치는 좋음과 싫음의 차원을 넘어서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의미로서의 그 가치를 알게 한다. 오늘날의 사회적 삶의 병폐는 가치가 없는 것을 마치 가치 있는 것인 냥 좇고 있는 오늘 이 세상의 잘못된 물신(物神)풍조를 보면 알게 한다.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은 18세기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20세기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인 추진력이 되어 왔으며 역시 ‘정직은 최상의 정책이다’라고 한 프랑크린(Benjamin Franklin)의 말과 같이 서구인을 바르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복잡한 생활을 영위하다 보면 정직과 성실 등의 전통적 모럴로서는 불가능하며 오히려 현세의 시세에 적응하여 융통성과 유연성 등이 더 필요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로 실리주의를 넘어 실용주의를 낳았다. 그로 인해 유감스럽게도 신앙이나 현실성이 없는 문제는 다 도외시되는 경향이 되었다. 이리하여 본 훼퍼는 서구인의 비신앙 경향을 개탄하면서 형식으로 교회 출석은 신앙과 생활이 유리되는 가운데 하나님은 삶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세기 후 르네상스시대에 모든 사람은 신앙을 행동규범의 초석으로 삼아 절대가치로 "믿음의 유추"로 신념해 왔다. 그 예로서 막스 베버(Max Weber)가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역설했듯이 종교개혁은 근대 자본주의 제도의 신앙적 바탕을 이루어 주었다. 특히 칼빈주의에 있어서 하나님의 예정을 믿는 교리는 경제인들에게도 자기 직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것((召命)이라고 믿는 직업관과 또 물질에 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일시 위탁받은 청지기의 관리관을 갖게 함으로써 이런 신앙적 사명(使命)감과 금욕주의 위에 "믿음의 유추"로 근세 자본주의 제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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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유추(類推)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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