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설교에 모든 답이 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 말씀은 세 가지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첫째는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경이다. 둘째는 ‘보이는 말씀’으로서 성례전이다. 셋째는 ‘들리는 말씀’으로서 설교이다. 우주도, 생명도 ‘말씀’으로 태어났다. 그만큼 말씀이 중요하다. 이 말씀이 구약에서는 곧 ‘지혜’로 나타난다.
교회가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선교하고, 봉사한다 해도 말씀이 없으면 모두가 헛 것이다. 이 말씀은 예배를 통해 전해진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예배의 성공이다.
한국교회는 일제하 박해 속에서도 목회자들의 설교가 진지했다. 또 해방 후 60-70년대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설교가 변하기 시작했다. 진지한 성경강해나 설교자의 깊은 기도에서 우러나는 영성적 설교는 약회되어 갔다. 그리하여 8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설교는 기복주의화 되고, 세속주의화 되어 테크닉만 늘어 사람들의 말초감성만 자극했다. 이때부터 이런 설교가 돈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 한절 읽어놓고 ‘말씀’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경험을 늘어놓는 것은 설교가 아니다. 설교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보편적 역사적 기독교 공동체의 경험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성경이 보급된 교회이다. 교인들 집집마다 몇 권씩의 성경은 다 쌓여있다. 교인들도 대체로 그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깨닫고자 갈급하다. 그러나 목회자의 설교는 천편일률적으로 예배의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성경을 자유자재로 끌어다가 설명하는 신흥집단들을 찾는 다. 그러나 그들의 설교는 대체로 그 집단의 섹트화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이단 시비가 생긴다.
예배를 왜 꼭 한 시간 안에 끝내야 하나? 하나님의 영감이 임하면 설교자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씀을 전하는 풍토를 만들어 가자. 새해에는 진지한 성경강해가 교회마다 일어나고, 아무개 교회는 설교가 길어서 맘에 안든다는 소리가 들려도 그것이 우리교회의 장점이다 라고 말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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