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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선교
    사람들은 무엇을 추구하고, 행동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사람들 마다 삶의 목표가 있다. 사업가는 돈을 모은다는 목표아래 활동하고 있으며, 스포츠 스타는 오직 승리하기 위하여 훈련하면서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을 보게 되며,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게 되된다. 목적하는 바가 성취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상에서 언급된 모든 것들은 인간들의 현세적인 삶에 만족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 8:29절에 의하면 “...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요 8:29)”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 그의 기뻐 하시는 일”, 즉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일을 위해서 사셨다는 말이다. 결국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인 우리는 어떠한 일을 통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순종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은 빌립보서 2:5-8에 나타난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본체 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 하셨다.하나님의 군사는 순종이 절대적으로 요구 된다. 사실 우리는 다 주님의 청지기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셔드린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분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아무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성과 감정이 우리가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삶을 살기를 거절할 때가 많다.두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주님께서 히브리서 10:7에 말씀 하시기를 “... 아버지여 보시 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인간을 구원 시키는 것”이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은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었지만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죽음이란 간단한 용어가 아니다. 사실 우리는 가끔 선한 목적을 위해서 고난을 받을때가 많이 있다.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 후서 4;5에서 디모데 에게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는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향한 삶이란 참으로 고난을 받아야 하며, 고난의 학교를 통과 할 때에 목적이 성취되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세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삶의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고백하셨다.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 하는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뿐만 아니라, 신명기 4:40절에 의하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리라”라고 축복의 말씀을 주시고 계신다.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신앙의 요소인지 알아야 하겠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와 감정을 그분은 은혜 아래 굴복시키는 작업이 필요 하다. 아울러 우리는 그분께 순종할 뿐만이 아니라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져야 하겠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서 우리는 깊은 감명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초림하신 주님의 겸손과 순종을 우리가 마음에 담을 때에 참다운 선교사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선교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우리들은 선교를 위한 삶의 계획을 분명히 해야 하겠다. 목적 없이 방황 하는 배는 좌초할 것이 뻔하다. 오늘도 신학대학원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제자들을 상담하면서 느낀 것 하나는 목적 없이 3년을 캠퍼스에서 보낸 결과가 얼마나 암담한 것 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삶의 목적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다고(빌 2:8)”말씀해 주셨듯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실 줄 믿는다. 그리고 결코 혼자두지 않으시고 함께 동행해 주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10-27
  • 혼합적 신앙을 배격해야 할 기독교
    필자는 이번 학기에 한세대 대학원의 박사과정 강의에 “한국종교와 기독교 선교 세미나”라는 과목을 개설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그동안 모든 강의들이 외국의 것들로 채워져서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만이 아니라 선교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종교를 비판적 관점에서 평가해 보고자 한다. 글의 많은 부분을 박사과정에 참여한 학생들이 발표된 부분을 발췌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먼저는 샤머니즘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샤먼”이니 “샤머니즘”이니 하는 용어는 원래 한국어와 동일한 언어계통인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퉁구스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샤먼은 신령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그러므로 신령들을 불러 제 몸에 모시고 그 신령들이 자기 몸을 통해 인간들에게 말을 하도록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샤먼은 몰아경 내지는 탈아경에 돌입한다.최근 들어 샤머니즘이라는 용어는 세계 여러 문화권 안에서 다양한 종교적 과제들을 취급하는 사람들과 그 제도에 구별 없이 마구 사용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즉 신비가·주술사·주술의 등에게도 “샤먼”이라는 호칭을 남용함으로써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하간에 순수한 샤먼은 신령에 대한 종교적 체험을 한 사람들만을 일컫는다. 샤먼의 신령체험 내지 소명체험의 첫 증상은 샤먼 후보자의 지속적인 정신장애와 육체적 고통이다. 한국 무교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신병 혹은 무병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당이 되는 증후군은 샤먼의 직능을 수행함으로써 차차 극복된다. 엘리아데 같은 종교학자들에 의하면 한국을 위시하여 중국,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의 이러한 신앙체계는 북만주 지역에 분포하는 퉁구스족의 종교를 대표로 하는 시베리아 형의 샤머니즘에 속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샤머니즘이라고 알려진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비교해서 한국의 무교는 그 틀이 상당히 고정되어 있다. 특히 남부 지방의 무교는 강하게 의례화한 모습을 보인다.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다른 한국 무교의 변형은 지리, 기후적인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현상은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이 사양길을 걷는 반면, 한국의 무교는 여전히 활발하게 살아 있는 종교현상이라는 점이다. 가톨릭 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박영일 교수는 2015년 강의에서 무속인이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말하였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그 이름을 대한경신연합회로 바꿨고 협회 홈페이지의 로고에는 30만 무속인의 단결과 화합이라는 문구가 있다. 그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2017년 9월 14일의 시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에 최소한 10만 명에서 많게는 30만 명 안팎의 무속인들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의 삼대 요소를 흔히 경전과 의례와 조직이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 종교로서 온전한 꼴을 구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교에는 경전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직도 정비되어 있지 않다. 소위 『무경』巫經이라는 것이 있으나 그것은 구비전승된 내용을 단순히 받아쓴 형태이지 공인된 종교 경전은 아니다. 그리고 무당들의 조직은 친선단체나 이익단체이지 종교적 기능을 하는 종교 교단조직은 아니다. 최근에 각 지역 무당 대표자들이 1988년 5월 경기도 남이섬에 모여 “천우교”의 창교를 선포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소략한 형태이긴 하나 『천우교 교리서』까지 발간하였다. 서울 인근의 경우, 굿당의 수효가 다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1980년대 초반까지 인왕산 국사당 등 서너 개로 명맥을 유지하던 굿당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십 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심지어는 대단위 아프트 단지 부근에도 굿당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무교를 한마디로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현대사회 속의 ‘원시’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다. 즉, 심각하고도 신혹하게 변화하는 사회 가운데 엄존하는, 오래된 그러나 생동하는 종교라고 말이다. 샤머니즘은 우리의 문화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샤머니즘이 여과 없이 기독교에 혼합됨으로서 문제를 야기 시킨다. 특히 믿음이 약한 성도들은 기독교가 지닌 진리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함으로 혼합된 신앙 속으로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도들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10-13
  • 학교 폭력에 대한 청소년 선교적 대안
    최근 우리사회는 청소년 범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자님들께서 주지 하시다 시피 부산 여중생의 동급학생 폭행 사건은 의식 있는 국민들과 동급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공분을 사게 만들고 있다. 이들 사건을 담당한 경찰에 의한 발표는 다음과 같다. ‘부산경찰청이 밝힌 수사 결과는 이랬다. 피해 학생은 6월29일 공원과 노래방에서 1차 폭행을 당했다. 2차 폭행은 9월1일 발생했는데, 피해자가 두 달 전 사건을 경찰에 알린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진이 공유됐던 그 현장이다. 경찰이 밝힌 기소자는 모두 7명이다. 이 가운데 폭행 혐의가 무거운 2명은 구속했다. 부산경찰청은 사이버 상에서 피해자의 합성사진과 모욕적인 댓글을 단 2명에 대해서도 입건한 사실을 공개했다. 또 피해자에게는 치료비와 생계비도 지원한 사실도 밝혔다. 이일로 교육 당국의 수습책도 발표 되었다. 김상곤 교육 부총리는 "청소년 폭력 예방 종합대책 마련...학교 폭력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하달했다. 김 부총리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부산 중학생 폭행사건으로 청소년 범죄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법무부 등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예방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교육청과 협력해 피해자 보호와 치유에 힘쓰고 있고, 경찰청과 협력해 학교폭력 수사 의뢰 대상자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청소년폭력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엄벌주의를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엽기적인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장 손쉬운 대안은 바로 엄벌주의다. 하지만 우리가 집행한 여러 가지 엄벌주의 결과가 어떤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 것인지 꼭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발생하지 않던 범죄 중 요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묻지마 살인이다. 공공장소에서 흉기난동을 벌여 인명을 살상하는 사람들 중에는 물론 정신질환자들도 존재하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또 다른 부류가 바로 반사회적 누범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해 어릴 때부터 가출과 비행을 일삼은 자들이다. 최근 엄벌주의로 인해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기간이 길어지자 그야말로 출소 후 즉시 부랑자 생활로 전전하다가 아무나를 대상으로 복수극을 펼친다. 이들을 면담해 알아낸 가장 큰 공통점은 어릴 때부터 모든 이들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피해의식이다. 또 한가지 공통점은 소위 ‘prisonization(교도소화)'인데, 교도소 안에서는 어느 정도 수동적인 적응이 가능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바깥 경쟁사회로 내쳐지면 그 즉시 생존해내기 어려운 무기력 상태에 놓인다. 결국 세상에 대한 원망과 무력감이 이들을 재차 범죄로 내모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언제나 다시 사회로 돌아온다. 엄벌주의 논의에서 전제하는 처벌에 따른 스스로의 반성과 회개는 형벌론자들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인간은 그리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과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문제는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아직도 관심과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들에게까지 넓혀 적용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물론 죄를 저지른 즉시 벌을 받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깨달음을 줄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소년사건에 대한 법원선의주의와 아이들의 특성에 맞춘 조기 선도 개입은 꼭 법적 강제력을 발휘해 제공돼야 한다. 하지만 지리한 사법절차 그리고 나서 이뤄지는 여러 번의 불기소나 기소유예 등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게 해주는 과정과 거리가 멀다. 또한 격리는 결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사회로부터 격리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회화의 과정은 송두리째 망가진다. 따라서 아직은 상황판단력이나 의사결정능력 상에 부족함이 많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강력한 선도개입이 즉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년 전담재판부와 다양한 단기 수용시설부터 처벌 후 사례관리 방안까지 모든 것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모에 대한 교육도 처분 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교수의 논지를 살펴 보면 엄벌주의는 결국 사회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듯하다. 필자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성경적 대처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왜냐 하면 교육 현장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충만하게 살아 움직이게 만들 때에 이러한 사회 병리는 해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9-29
  • 가정선교를 위한 순수한 생각
    오늘은 세상 돌아가는 글을 쓰고 싶다. 때 마침 조선일보의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 늙어 가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보면서 마음을 나타낸 글을 읽었다. 제목은 ‘쿨한 시어머니 되려했더니, 잊혀지고 마네요’ 라는 글이다. 내용은 이렇다. “잔소리를 해야 할 이유는 백가지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해봐야 얻을 게 없기 때문이죠. 말로 가르쳐 알아들을 사람은 그냥 둬도 언젠가 깨우칩니다. 스스로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로 가르쳤어도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부모가 할 일은 오직 기다려주는 것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기다림을 끝내 돌아봐주지 않을지라도 후회하거나, 노여워하지도 말고... 생전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시던 우리 시어머니. 덕분에 저는 시집살이가 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고부 갈등’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된 것은 친정 언니를 통해서였죠. 어려서부터 맏며느리감이라 소리 듣고 자라더니, 실제로도 맏이한테 시집가서 집안 대소사를 온몸으로 감당해낸 큰 언니. 그러면서도 형제들과도 의좋게 잘 지내서 과연 맏이는 하늘이 낸다는 소리를 들어온 그 언니가 어찌된 일인지 본인의 며느리와는 영 뜻이 맞지를 않았지요. 잘 키운 아들에게 걸맞는 좋은 며느리를 봐 놓고도, 언니의 마음에는 서운함과 답답함만 쌓여가는 듯 하더군요. 다른 데 가서는 못 하는 말, 오직 너니까 털어놓는다며 언니는 내게 하소연하곤 했는데, 그 얘기만 들으면 질부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듯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도 며느리를 봤지요. 언니의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저는 출발부터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상처나 부담 없는 쿨한 관계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제가 기대를 접고 잔소리를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요. 그래서 굳은 의지로, 장님에 벙어리로 몇 년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자식인데 잔소리 할 일이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모르는 척 했습니다.소식 없으면 잊고 살았고, 전화 오면 반겨 맞았습니다. 2세 소식이 무척 기다려지지만 한 번도 사정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자식의 도움이 절실할 때도 어지간하면 혼자 해결했지요. 아들 며느리 효도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만한 고부관계, 내 아들 마음의 평화, 그리고 최소한 나쁜 시어머니 소리는 안 듣는다는 나의 자존심이었기에... 그러나 저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그 손바닥만한 평화와, 종지만한 원만함이 아닌가 싶어서요. 평화롭고 원만하면 무엇하나요? 화목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게는 가족이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찾지 않으니 자식들이 저를 잊었나 봅니다. 몇 달째 연락이 없기가 쉽네요. 궁금하지만 제 쪽에서 전화를 하는 것도 어째 어렵습니다.몇 년 전 환갑 때도 날짜를 놓치고, 하필이면 무척 바쁜 시즌이라는 변명과 함께 온라인 송금으로 퉁친 아이들이기에... 환갑인 줄은 알았는지 예년보다 금액이 좀 많더군요. 그럴 때도 가만 있어 놓고 이제 와서 도리니 뭐니 가르치려 든다는 것도 쉽지는 않죠. 나이가 드니 자꾸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러다 내가 아파 입원이라도 하게 된들, 자식이 알고 달려올까? 세상을 뜬다 한들, 저희들이 애통해 할까? 하기야 자식이 애통해한다고 죽다 살아날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요. 다만, 저는 자식들의 인성이 걱정스럽습니다. 저래 가지고 사회생활은 잘 하는지, 어디 가서 매정하다, 본데 없다 소리는 안 듣는지...하지만 아들도 며느리도 회사에서는 승승장구인 모양이니 쓸데없는 걱정은 내려놓아야겠지요. 저는 제 자신의 어리석음만 걱정하면 됩니다. 내가 편히 대해 주면, 저희들도 내 마음 알아주겠지 생각했던 것, 참 어리석었습니다. 존중해주니, 최소한의 형식마저 무너지네요.그러나 후회는 안합니다. 저런 아이들에게 애초에 기대를 걸고 가르치려 들었더라면, 지금쯤은 갈등이 심각했을 게 뻔하니까요. 안 그러길 잘했죠.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는, 외롭고 허무한 평화가 백번 낫네요.“자식을 끝까지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서 성경적 가정관을 생각해 본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엡 6:2-3)”. 보모 공경이 점점 희석되어져 가는 세태 속에서 가정 선교의 필요성을 생각해 봐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9-22
  • 연합의 필요성
    한국사회는 다방면에서 연합이 실종된 느낌이다. 불행 스럽게도 최선선에서 날마다 뉴스를 생산해 내는 정치권, 사회의 양극화를 통한 고통의 소리 그리고 심지어 기독교계 에서도 연합이라는 상생은 실종된지 오래가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선교학자인 데이비드 보쉬가 주장하는 연합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다. 그는 선교가 지닌 패러다임의 변환과정을 담담히 기술하면서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도 연합의 중요성을 기술하고 있다. 오늘은 그가 진단한 계몽주의 이후에 도래된 서구의 사고들을 소개하고자 한다.식민지 확장 계획을 일으킨 것은 대체로 계몽주의 발전사고였다. 그러나 호의적인 식민주의 정책은 부분적으로 기독교 선교사역에 의해 산출되었다. “발전”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기독교 선교에 관한 한 과거의 접근들을 넘어서는 독특한 발전을 반영했다. 그러나 발전 모델의 결과들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부유한 나라들은 더 부유해진 반면에 가난한 나라들은 더 가난한 상태가 되었다. 가난한 나라들 안에서도 기득권 층들은 그 발전계획들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린 것 같았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그 결과들은 종종 재난에 가까웠다. 기술의 적용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사회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전제들에 의해 깊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과거 2,3세기 동안에 일어났던 기술적인 발전과 이러한 발전들이 서구 사람들을 재구성한 방식 때문에 서구는 사실상 다른 나라들이 따라잡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앞질러 가 있었다. 그러므로 점점 더 많은 제3세계 나라들이 그 발전 개념과 그것의 계몽주의적인 전제들을 배척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모델이 주장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에 깊게 물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후진성과 현대성간의 관계가 아닌 의존과 해방과의 관계였다. 그러나 현재 나는 해방 모델이 현대화 모델이 겪은 계몽주의를 쇠약하게 하는 영향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계몽주의 패러다임에 기본적인 전제는 사실과 가치간의 철저한 구분이었다. 그러나 이 전체의 구조는 붕괴되었다. 실증주의와 경험론이 주체와 객체 사이에, 가치와 사실 사이에 세워 놓은 벽들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보는 것을 변화시킴이 없이 실재를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적인 문제는 현대 과학이 인간의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권력의 손이 쥐어준 상황에 의해 크게 복잡해졌다. 결국 우리는 상호의존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계몽주의 신조는 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고 가르쳤다. 이 전체 접근은 파괴적인 결과들을 낳았다. 너무 자신에 차서 그들의 종교적인 뿌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에 결국 남는 것은 허무주의의 수용이다. 최근 수십년간 그렇게 자랑하던 개인의 자율성은 결국 타율로 끝났다. 사람이 원하는 것을 믿는 자유는 결국 신앙의 부재로 끝났다. 상호 의존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은 결국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로 끝났다. 자율성의 거짓된 교리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일이 필요하다. 첫째로, 우리는 확신과 신앙의 필요성을 다시 긍정해야 한다. 결국 아무도 실제로 그것들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요구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인기 없고 심지어 위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관용이 분명히 덕은 아니며, 특히 서로를 도전할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 “나도 좋고, 너도 좋고”식이다. 둘째로, 우리는 연합, 상호 의존, “공생”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개인은 단자가 아닌 한 유기체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면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세계 속에 산다. 단지 함께할 때에만 구원과 생존이 있다. 이것은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포함한다. 계몽주의의 “도구적인” 이성은 “교통적인” 이성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는 정의상 상호주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 공동의 운명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으로서의 기독교 선교에 대한 재발견의 적절성이 있다. 지금 이 순간 이미 소천하신 보쉬의 혜안을 되 세겨 볼 시간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9-08
  • 가장 귀한 십일조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도의 신앙의 표본이다. 따라서 목사님들이 사석에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십일조 신앙이 진짜 신앙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십일조 신앙이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성직자의 삶이 항상 그러려니 하고 살지만 은퇴한 나에게는 그래도 젊어서 조금은 더 준비를 해야 했던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칠 때가 많다. 가끔 매체를 통해서 어느 목사는 재산을 얼마나 축적 했다느니, 아니면 교회 재산을 얼마나 가져 갔다느니 하는 기사를 볼 때에는 내 자신이 무능한 목사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요즈음 조그만 개척교회를 해 보다 보니 더욱 물질에 대한 필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의 논제와 함께 다루어 보고자 한다. 필자에게는 세 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이 있다. 이들 중에 첫째가 되는 딸이 몇 년 전에 참으로 좋은 신랑을 만나서 시집을 갔다. 그리고 지금은 아들과 딸을 출산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손자와 손녀를 안아 보면서 그동안 숨막히게만 달려온 나날들을 보상 받는 느낌도 든다. 몇일 전 방금 소개한 큰 딸과 사위를 비롯한 손자와 손녀 그리고 필자의 자녀들 몇 명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를 하기 전에 시집을 간 큰 딸이 나에게 왔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전달하면서 “아빠 이것은 십일조예요” 하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큰 딸 부부가 섬기는 교회에 그동안 십일조를 드렸는데 집이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된 후 교회를 정하지 못한 관계로 십일조를 드릴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다. 때마침 아빠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됨으로 십일조를 아빠의 개척 교회에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딸이 건낸 십일조의 봉투를 받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십일조야 말로 가장 귀한 십일조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사실 평생 선교사로만 살아온 나는 경제적인 관념이 별로 없다. 그랬기 때문에 딸이 시집을 간다고 할 때도 단돈 500만원을 마련해 주면서도 아빠로서 해야할 의무를 다한 것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 저기에서 들려오는 세속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아빠의 무능함이 얼마나 자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가를 헤아리기도 하였다. 필자는 오늘도 무더운 더위와 싸워 가면서 선교학 강의를 위한 교안을 작성하고 있다. 초대교회 이후 수 없이 많은 선교사님들의 삶을 다루면서 공통된 주제어가 있다. 이는 선교사의 삶은 청빈한 삶이 었다는 것이다. 선교사 바울도 두벌 옷을 가지지 말 것을 교훈하였다. 이러한 교훈이 현대선교로 이어지면서 믿음의 선교(faith mission)를 낳게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교회 속에는 세속주의 물결이 넘실대면서 청빈한 삶은 곧 처지는 믿음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공중에 나는 새도 마리 둘 곳이 있고, 평지에 있는 들풀도 머물 곳이 있지만 그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말씀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청빈한 삶이야 말로 오늘날 세계의 모든 입들이 그 분을 칭송하게 만들게 됨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주제인 십일조로 돌아가 보자. 구약의 말라기서를 보면 십일조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나와 있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 물이라. ...만군의 야훼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아둘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10)”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오늘 필자의 자녀에게 십일조의 믿음을 주심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도한다. 돌아오는 주일날 강대상 위에 자녀가 헌금한 십일조를 올려 놓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껏 축복 기도를 해 주고 싶다. 마치 야곱이 요셉을 축복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는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사위와 딸이 갖고 있는 신앙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쩜 적은 봉투 하나가 나를 이렇게 감격하게 만든 것을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 는것 같다. 그러나 자녀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비록 짧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게 헛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할렐루야!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8-25
  • 바울의 대도시 선교의 현대적 의미
    필자는 지난 학기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재한 중국인 학생들에게 도시선교학을 강의한 적이 있다. 이를 통해서 부상하고 있는 중국 대륙의 선교를 위해서 도시선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켐퍼스에서 제자들을 만나면 도시선교의 현대적 적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바울의 선교에 관한 그 자신의 이해는 로마서의 끝에 있는 한 본문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바울이 거의 순회 설교자였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특히 몇몇 장소들에서 그가 오랫동안(고린도에서는 일년 반 정도, 에베소에서는 약 3년간 머물렀다) 머물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옳지 않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함께 바울이 “첸투름스미지온”, 즉 전략적인 중심도시 선교를 수행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는 종종 그의 선교가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말한다. 예리한 시각으로 바울은 유리한 곳에서 선교현장을 연구하고 미리 그곳으로 이르는 길을 탐방한다고 베르니는 말하고 있다. 바울은 인종적으로가 아닌 지역적으로 생각 한다. 그는 대표적인 성격을 갖는 도시들을 선택한다. 이들 각각에서 그는 한 기독교 공동체의 기초를 놓으면서, 분명하게 이 전략적인 중심들로부터 복음이 주변 마을로 퍼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이 일은 실제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그곳에 처음 도착한 지 1년도 채 못 되어 데살로니가의 신자들에게 보낸 그의 첫 번째 편지에서 그는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만이 아니라”(살전 1:8)고 말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선교 비전은 적어도 그에게 알려진 세계의 범위 안에서 세계적이다. 예루살렘 공회(AD 48)까지 이방인 선교사역은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한정되었다(갈 1:21 참조; AD 1세기의 40년대에 세워진 로마의 교회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회 이후 즉시 바울은 선교를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보기 시작한다. 전세계에 복음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로마가 제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그가 이 대도시 방문을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를 알았을 때에, 그는 서바나로 가는 길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할 것을 계획함으로써, 좀 더 늦은 시기로 로마 방문을 연기한다(롬 15:24). 한편 그는 자신의 사역을 주로 그 제국의 헬라어를 말하는 지역들에, 특히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걸쳐 있는 지역에 집중시킨다. 그러나 그는 곧 서바나에 가려고 시도한다. 바울은 그의 회중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다양한 실제적, 세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그들을 위로한다. 그는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그들의 지역에서 빛이 되기를 소원한다. 이 모든 것은 명백하게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강렬한 종말의 기대의 틀 속에서 일어난다. 일부 초대 기독교 진영에서 임박한 종말의 열정적인 기대가 세계선교의 개념을 무력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던데 반해, 바울의 경우에서는 정확하게 정반대이다. 바울은 복음의 전령이며, 이방인들의 대사이고, 그의 교회들의 모범이며, 그들의 중보자이고 위로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의 종말론적인 선교의 일부분이다”. 바울에게는 사도직과 묵시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이 전혀 없으며, 단지 창조적인 긴장만이 있을 뿐이다. 베커의 주장에서 이를 잘 보여준다. “바울에게는 열정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온건한 열정이다. 그리고 바울에게는 조급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그 임박한 운명을 위해 준비시키는 인내에 의해 조절된 조급함이다. 세상의 임박한 운명을 그리스도 사건이 시작시켰다... 묵시적인 열정과 선교적인 전략은 동반 관계이다... 그것들은 마치 한 쪽이 다른 쪽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서로 상충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다.필자는 한세대 신학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사도 바울의 사역지를 연구하면서 그가 사역하였던 소아시아와 유럽의 로마를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바울 당시 사역지였던 소아시아의 대부분이 지금은 무슬림의 땅으로 변하여 교회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보면서 씁쓸함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돌 위에 건설되었던 교회는 사라졌어도 바울이 가졌던 대도시 선교의 전략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큰 교훈으로 남겨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8-11
  • 바울의 소명과 선교의 실제
    우리가 선교적 소명을 이야기 할 때에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 했던 마게도니아인의 부름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의 선교신학자인 허버트 케인은 이러한 경험의 요구는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는데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허버트 케인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현현을 언급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그 현현으로 부름받아 사도로 위임받았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선지자적인 소명들을 암시하면서 이 일을 한다. 그들처럼 그의 소명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 속에서 일어났으며 계시와 환상을 통해서 그에게 전달되었다. 종종 그의 회개 경험으로 언급된 것은 그의 사도적인 소명이라는 더 큰 실재에 의해 흡수된다. 바울의 소명에 대한 강조는 분명하게 전통적인 바울의 회개 이해에 가장 중요한 교정책이다. 그럴지라도 스텐달과 다른 학자들은 바울의 사건을 전적으로 소명의 관점에서만 고찰함으로써 지나치게 나아간다. 신약의 회개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서 가벤타는 변경(alternation, 사실상 과거로부터 발전된 비교적 제한된 형태의 변화), 변화(transformation, 과거 또는 이전에 소유한 가치들에 대한 부정이 요구되지 않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식, 과거에 대한 재인식-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을 포함하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 그리고 회개(과거가 강하게 부정적인 관점에서 묘사되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단절이 있는 변화)를 서로 구분했다. 스텐달은 변경의 관점에서 바울의 사건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울은 그의 과거와 기본적으로 연속성을 가진다. 그의 과거에 “단지” 이방인 선교의 소명이 더해진다. 바울은 나사렛 예수에 대한 그의 인식과 율법의 구속적인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의 세계관의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많고 중요한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가벤타가 그 증거에 대한 매우 철저한 분석에서 증명한 것처럼 그의 사건을 “회개”(또는 적어도 “변화”)로 지칭하는 것이 좋다. 그것은 참으로 바울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한 근원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므로 의로운 유대인으로 살았던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요한까지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기 위해 다른 것을 경험해야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신앙해야 했다. 그리스도 사건은 시대들의 반전을 의미하며 바울에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신 새로운 질서의 선포를 의미한다. 구원의 길로서의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대치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만 했다(롬 7:4). 그것은 그들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것은 회개 언어이다. 예수님과의 만남은 역사의 과정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은 유대인에게는 종말이 실제로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의 구원이 지금 이방 세계에 제공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그의 경험에서 그리고 그 자신의 증거에 따르면, 그의 회개와 이방 선교에 대한 그의 소명은 일치한다. 한은 그것을 잘 표현한다: “그의 사도직 개념은 그가 회개하고 동시에 복음을 맡아 이방인들에게 보냄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로 특징지어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핍박자를 그의 특별한 사자로 변화시키셨다. 사도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갈 1:16). 참으로 바울 자신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그의 회개와 사도직이 일치한다는 그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선교 여행을 시작했을 때 기독교 선교 활동은 이미, 적어도 로마에 이르기까지 제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와 같이 비록 바울 자신이 이방인 선교의 소명이 그의 회개와 함께 주어졌다고 주장 할지라도, 그의 바리새파적인 과거와 그의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접촉은 이것에서 한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가 점차적으로 그의 소명의 충만한 의미를 깨달았을 수도 있다. 그의 이방인 선교의 가장 역동적인 사역은 갈라디아서 2:11에 묘사된 사건들과 예루살렘 사도 공회에 비추어 볼 때 다메섹 경험 수년 후에야 시작되었다. 바울의 사역은 12사도들과 그들의 메시지에 대한 충실성과 그 자신의 소명과 사도직의 독특성에 대한 충만한 인식 사이의 창조적인 긴장 속에서 전개된다. 필자는 오늘 데이비드 보쉬의 저서인 “변화하는 선교”에서 발췌한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엮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7-28
  • 바울 연구의 선교적 교훈
    필자는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비 서구의 대표적인 선교신학자인 데이비드 보쉬가 엮은 글을 중심으로 바울 선교가 가진 중요한 요소들을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선교신학의 기초가 더욱 튼튼히 서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글을 엮어 감에 있어서 데이비드 보쉬가 기술해 놓은 “변화하는 선교”가 상당히 인용될 수 있음을 먼저 밝힌다. 사도바울은 항상 선교사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주었다. 따라서 수년에 걸쳐서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바울이 지닌 의미에 관한 몇 편의 논문들이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을 연구함에 있어서 자료의 활용은 항상 학자들의 논쟁거리이다. 즉 바울 서신들에만 집중할 것이냐 아니면 2차 자료인 사도행전을 첨가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사도행전이 바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신뢰할 만한 전승에 기초한 많은 자료들을 담고 있고, 결국 “바울에 대한 첫 주석”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은 바울에 대한 2차 자료이다. 그리고 1차 자료들과 2차 자료들을 섞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하지 않다. 바울 신학의 선교적인 차원이 항상 인식된 것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바울은 주로 교리 체계의 창시자로 간주되었다. 이어서 종교사학파의 등장으로 그는 주로 신비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조금 후에 그 강조점은 “교회론적인” 바울로 옮겨 갔다. 점차적으로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또한 그의 서신들 속에서 우선적으로 선교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울의 신학과 그의 선교는 단지 바울의 선교가 그의 신학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오히려 그의 신학은 선교적인 신학이며, 그리고 선교는 본질적으로 그의 정체성과 사상과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이론”과 “실제”로서 서로 관련되어 있다. 바울의 선교 이해는 보편적인 원리에 매달려 있는 추상적인 구조물이 아닌, “바울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준 첫 번째 경험에 의해 유발된 실재 분석이다”. 이것은 특히 바울이 자신에 의해 설립되지 않은 교회에 쓴 그의 유일한 편지인 로마서에 해당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바울 서신들의 “선교 본문들”을 찾고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주제를 연구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신학 저술 전체를 조사해야 한다. 바울이 가장 복합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에 이것은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미 초대 기독교 저자가 이렇게 바울의 서신들에 관해 불평한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벧후 3:16) 그것은 특히 진지한 성경학도들이 만나는 바울에 대한 많은 다양한 해석들을 고려할 때에 오늘날 결코 더 쉬운 일은 아니다.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초대 기독교 운동의 핍박자를 그 주된 지지자로, 예수님을 유대교의 위협으로 간주한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한 사고가 바뀌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 김세윤 박사는 다메섹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과을 만났다. 몇몇 학자들은 우리가 바울의 다메섹 경험을 언급하기 위해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 이유로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회개는 종교의 변화를 암시한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그의 종교를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은 바울의 당시에는 유대교 내의 한 분파였다. 둘째로, 아직도 주장되는 것처럼 바울을 그의 죄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자로, 결국은 그의 회심을 유발한 내적 갈등을 경험한 자로 묘사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1960년에 스웨덴어로 처음 발간된 고전적인 논문에서 스텐달은 바울의 다메섹 사건에 대한 그러한 “심리적인” 해석은 그 사건에 대한 현대의 전형적인 이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지난 몇 세기 동안에 루터의 눈을 통해서 바울을 읽고, 그리고 그것을 신약 속에 넣어 읽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새로운 모든 회심자들의 규범으로 선언함으로써 전형적인 서구의 회개 경험을 보편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필자는 오늘 바울의 자료가 갖는 중요성과 신학적 위치를 살펴보았다. 한국교회는 선교의 연속성을 위해서 선교사들의 활동을 역사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면 성기호 박사께서 노력하고 있는 “한국인선교사” 같은 잡지를 적극적으로 할용 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7-26
  • 희생 제물인 닭의 피
    필자는 오늘 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기술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잘 알듯이 구약 성경 레위기에는 이스라엘의 제사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레위기 17장의 피에 대한 규례가 나온다. 하나님은 피를 엄격히 금하셨다.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3:17). 레위기 17장 10-16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또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모든 자는 본토인이거나 거류민이거나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라고 기록되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며(17:11a) 피가 속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17:11b). 이처럼 제물의 피는 인간의 죄를 속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것, 즉 피를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피를 바르고 뿌리는 행위는 레위기 전체를 통해 그 중요성을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피의 제사는 삶 가운데 늘 반복되는 제의였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아 단번에 해결이 되었다.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9:26) 구약의 생명으로서의 피의 의미는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의 피로 주어지는 영생으로 성취된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생의 도구로 표현 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 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3-54) 또한 속죄의 도구로서의 피는 히브리서에 의하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그 의미가 성취도는 것을 볼 수 있다(히9:14). 이처럼 피를 통한 속죄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속죄의 원리가 담겨져 있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고 그 결과는 사망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도구로 삼으시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렇듯 구약과 신약의 피흘림과 말레이시아의 이반족들이 닭의 피를 통해 제사를 드리는 세계관을 이해하고 건슬란의 의미를 잘 접목시켜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선포하고 전하는데 크나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신학계 내에서도 한때 피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님께서 예수님의 피나 돼지의 피나 같은 피라는 말을 하여 복음주의 신학자들로 하여금 공분을 불러 오는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피가 지닌 의미는 분명히 달라진다. 오늘 필자가 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으로 통해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구속적 유비로서의 피 흘림을 통한 제사가 복음의 접촉점을 마련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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