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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총-한교총 통합 논의의 장애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지난해에 결성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한기총 한교연 통합 합의서'를 작성하고 통합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은 2011년 한기총이 분열하기 전의 7.7정관을 기본 골격으로 통합하되 문제가 되는 교단은 재심의한다는 원칙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문제되는 교단’이란 곧 ‘한기총 내 이단 문제’라는 것인데, 한교총은 “기구 통합 과정에서 한기총 내 이단은 배제돨 것”이라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대관절 한기총 내의 이단 문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기총에 이단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한기총이 이단과 연루되어 있다는 말인가.2011년 한기총에서 한교연이 갈라질 때 내세운 명분이 ‘한기총이 이단 풀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분열주의자들의 분열을 위한 명분이었을 뿐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었다. 한기총이 갈라진 것은 예장합동측 인사들이 연이어 대표회장 자리를 차지하자 예장통합측과 대신측을 비롯한 몇몇 교단들이 반발하며 새로운 기구를 만들고 나간 것이지 이단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한기총에는 교계의 일부교단으로부터 이단시비를 당한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단감별사들의 특정인에 대한 무분별한 이단시비와 교단이기주의가 어우러져 만든 현상이지 그들을 이단이라고는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통합 상대의 회원교단에 대해 심의도 해보지 않은채 통합과정에서 이단운운 하는 것은 통합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기총과 한교연이 진심으로 통합을 하려면 우선 조건없이 통합한 후에 회원교단이나 단체에 대해 심도 있는 실사를 통해 이단성 여부를 가려 조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한국교회는 이단감별사들의 무분별한 이단시비가 교계의 연합과 일치를 해쳐 왔음을 인식하고, 더 이상 그들이 제기한 이단시비로 인해 교계가 분열하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덧붙여 한기총과 한교총뿐 아니라 한기연도 함께 통합논의에 참여하여 한국교회의 대통합이 이루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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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4-11
  • 교회-그리스도의 몸
    교회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시며 지상에 남긴 유일한 기관이다. 처음엔 제자들도 이 교회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고 하신 것을 기억하며,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고, 떡을 떼며,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서로 기도하고 교제하는데 힘썼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으로 여긴 것이다.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이 마지막 때에 성도들에게 나타난 것”(엡 3:9, 골 1:26)이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를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엡 1:21, 22)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어떤 세상의 종교기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비밀을 맡은 기관이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것’(행 20:28)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며,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고전 1:2)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최후의 승리자라고 부른다.둘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 창세기 2장의 첫 아담의 신부가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만들어진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물과 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지 아니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셋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이다.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할 때, 우리는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교회를 부정하는 집단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섹트(이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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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4-11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는 만고의 명언이다. 보수 우파 한나라당이 배출한 두 대통령이 모두 구속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이는 11년 전 이명박과 박근혜가 제17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당내 경선에서 분쟁할 때부터 싹튼 예견된 결과이다. 당원 직접투표에선 이기고 모바일 투표에서 진 친박계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같은 당에서 5년간 이를 악물고 권토종래를 노리다가 마침내 박근혜도 제18대 대통령이 되었다.박근혜 정부는 취임하자 마자 같은 당 출신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과 해외자원투자의 비리을 찾는다며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당내에서는 친박계와 친이계가 얼굴을 붉히며 권력분쟁에 돌입했다. 친박계와 친이계의 분쟁은 20대 총선의 공천을 놓고 그 절정을 맞았다. 이한구 공천위원장과 친박계는 박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인물을 배제하기 위해 ‘친박’ ‘진박’하며 공천권을 휘둘러댔고, 급기야 당 대표가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피신하는 사태를 연출했다. 그 꼴을 본 보수 우파 국민들은 한나라당에 대한 깊은 실망감에 좌절을 맛보았다. 그때 이미 한나라당은 두동강 나 친박계는 더 이상 자신들의 주군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박 대통령이 임기를 1년여 남겨놓고 탄핵되어 감방에 가게 된 것은 결코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나 촛불 때문이 아니다. 친이계가 대통령을 지키라는 국민의 명령을 무시하고 탄핵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무너지자 한나라당을 지탱하던 보수 우파는 마치 한여름 장마통에 담벼락 무너지듯 우르르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좌파 정부의 다음 타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친박계와 친이계의 이 감정싸움이 결국 자신들의 주군을 둘 다 감방에 가두는 정치적 패배를 안기게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탄핵사태가 없었다면 문재인의 진보 좌파정권의 탄생은 있을 수 없고, 또 박 대통령이나 이 대통령이 감방갈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보수 우파 정치인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친박계’이니, ‘친이계’니 하며 패거리 놀음을 일삼다가 좌파에 정권을 넘겨주고 결국 그들의 두 주군을 한꺼번에 감방에 쳐넣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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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3-30
  • 부활, 기독교 신앙의 완성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무덤에 묻힌 그 예수가 제삼일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났다. “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자신이 제삼일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제자들은 한 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을 이직 본 일도 없고, 더구나 부활 후 영원히 산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어 무덤에 갖다 묻어버린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 제자들에게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 그때부터 제자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갔다. 그것이 기독교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도 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2, 13)라고 했다.기독교는 죽은 자가 마지막 때에 무덤에서 일어나 영생에 들어가는 부활체와 그 후에 또 살아있는 자가 변화하는 변화체를 믿는다. 이 두 사건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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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3-30
  • 한국교회 다시 총력전도 체제로 바뀌어야
    오늘날 한국사회는 마치 종교전시장 같은 다종교사회이지만 5000만명의 국민 중 약 절반은 아직도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전국의 6만 개 기독교회는 교인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이다. 실제로 대교단들도 매년 세례교인이 통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교회당 수와 목회자 수는 늘어나는데 전체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청소년 세대가 줄어드는 데서 찾으려 하고 있다.그러나 불과 130여년 전 선교초기 한국교회는 기독교인을 어디에서도 만나 볼 수 없는 맨바닥에서 오늘의 1천만을 이루었다. 너도나도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한 덕이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에게는 전도대상자가 최소 2500만명(무종교인)에서 4000만명(타종교인 포함)이나 남아 있는데 왜 전도가 안된다고만 하고 있는가. 교회가 전도자를 적극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도 복음은 전파되어 왔다.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전도자 양성은 개교회 문제만이 아니다. 모든 교회가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전도자를 양성해야 한다.한국교회가 한창 부흥하던 60~70년대에는 문서전도, 축호전도, 산업전도, 학원전도, 군선교에 이르기까지 전도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로 80~90년대에 한국교회가 기독교인 1천만 시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지금은 어떤가. 그때 모여든 교인들을 상대로 교회를 유지하려할 뿐, 지금은 총력전도 체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전도가 안된다고만 한다. 사실상 전도는 어렵다. 한 사람의 일생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전도인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지금 일천만이 일생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한 세대가 가기 전에 한국교회는 이천만명이 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민족복음화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먼저 목사가 강단에서 교인들을 전도하라고 독려하기 전에 목회자들부터 전도지를 들고 현장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전교인 전도자화를 이루어 총력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새해가 되어 새로운 집사를 임명할 때도 한 사람 이상 전도를 한 사람에게 직분을 주고, 장로나 권사를 뽑을 때도 돈이 아니라 전도하여 열매를 맺은 경험을 중심으로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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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3-22
  • 도덕성과 윤리가 상실된 사회
    조선 500년은 유교가 우리사회의 주류종교로서 모든 사회적 가치관이었다. 유교 질서에 반하는 것은 정치도, 종교도, 문화도 모두 사이비로 취급되어 배척되었다. 그런데 조선 500년의 정치이념을 뒷받침하던 유교가 조선이 사라진지 겨우 100여년 만에 그 역할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교는 지역의 향교 재산을 관리하는 유림만이 존재할 뿐, 국민 속에는 일종의 전통문화 현상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전개되고 있는 가치관의 혼돈은 유교의 급격한 몰락에 그 원인이 있다. 유교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 자리잡은 기독교가 그 역할을 다해야 했는데, 서구적 가치관을 덧입고 온 기독교가 새로운 질서를 공급하지 못한데도 그 책임이 있다.오늘날 우리사회는 기독교와 불교와 무속적 종교현상이 혼재한 다종교 사회이자만, 그래도 엄격히 말하면 기독교가 주류종교의 위치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종교 인구 비례로 볼 때에도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기독교 인구가 불교 인구보다 훨씬 많고, 사회구성원의 리더십도 기독교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타종교에 비해 매우 높다. 국회의원, 장차관, 각군 장성, 대학총학장,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리더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이 많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사실상 기독교인들이 끌고 간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그런데 전국에 6만 교회당을 가진 기독교가 과연 우리사회를 이끄는 사회적 가치관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는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미투’운동은 도덕성과 윤리가 상실된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서 온 성적 타락이다. 카바레니, 노래방이니, 비디오방이니, 키스방이니 하는 업소들이 즐비해 있는 이 타락한 문화적 현실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신앙의 힘 뿐이다.기독교인들만이라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도덕성과 윤리적 삶을 살아서 우리사회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가 절제운동에 적극 나서서 청장년 세대가 세상풍조에 따라가지 않도록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타락한 문화현상으로부터 몸과 마음과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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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22
  • 친북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적 복음주의자들
    한국기독교는 일제시대 온갖 수난을 다 겪었다. 일제는 1919년 3.1운동의 주역이 기독교 세력이었다는 이유로 기독교 세력을 잠재적 범죄집단으로 여긴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학교에 대한 탄압과 기독교 지도자들에 대한 회유를 계속해오다가 끝내 1938년 장로교가 신사참배에 굴복한다. 그런데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며 버티던 장로교가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과정을 보면, 당시 신사참배를 이끈 사람들의 대부분이 해외에서 돌아온 유학파이거나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친일 지식인들이었다.어느 시대나 국가나 사회에 위기가 닥치면 소위 지식인들의 변절이 심했음을 알 수 있다.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제 말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원천적으로 불신한 자유주의 신학이라 불리는 신신학도 당시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고,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요한계시록은 신비주의 문학이라며 성경에서 제외한 혁신교단도 친일 진보주의자들이 중심이었다. 이런 자들은 이단 중에도 이단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해방 후에도 그대로 승승장구 했다. 모두가 괜찮은 교회를 맡아 목회를 계속했고, 신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쓸만한 지식인들이 많지 않았던 탓일 터이다.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와 교회는 어떠한가. 우리사회는 진보주의자들이라고 자처하는 친북 좌파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고, 한국교회 안에도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한국교회의 연합을 해치고 있다. 이들은 교회개혁을 화두로 삼아 사사건건 보수적 교회를 비방하고 사회에 고발한다. 왜 교회 문제를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잘 모르는 사회에 고발하나? 그래서 얻는 교회의 유익이 무엇이란 말인가.물론 보수적 한국교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백 개의 교단분열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좀 모아 돈이 생기면 그것으로 교계의 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혈안이 된 교권주의자들과 교단 안팎에 돈 생기는 자리에는 재빨리 자기패를 심는 재주꾼들이 대부분 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한국교회 타락의 원흉들이다.또 교회 퇴직위로금이라며 수십억원씩을 교회 돈을 챙겨간 사람들은 누구인가. 모두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다는 복음주의자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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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8
  • 한기총·한기연, 지금이 통합의 기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7일 제24대 대표회장 선거를 무사히 치루어 엄기호 목사를 연임시켰다. 엄 목사는 제23대 대표회장을 불과 6개월여간 수행했다. 이제 다시 1년간의 시간이 주어졌으니 한기총을 본궤도에 올릴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한다.엄 목사가 한기총 제24대 대표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한기총에서 갈라진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과의 통합이다. 지금 한기총은 기독교의 대표기구라는 그 허명(虛名)만 남았을 뿐, 현재 상태로는 사실상 교회연합과 일치에 있어 아무 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교단들이 모두 이탈해 남은 회원교단만으로는 기독교계를 이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일단 한기총에서 갈라진 한기연과 통합이 이루어지면 교계나 사회에서 보는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엄 목사도 대표회장 당선 소감에서 이 점을 밝히고 한기연과의 통합이 성사된다면 언제든지 그 직을 내려놓을 각오를 갖고 있다고 했다.이제 통합은 한기총이든, 한기연이든 양쪽에 속한 멤버들의 생각에 달렸다. 암은 문제는 첫째는 행정실무자들의 자리 문제이고, 둘째는 각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대한 배분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양 기관이 조금씩 양보하여 얼마든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지금이 한기총과 한기연이 통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이다. 따라서 그동안 걸림돌로 작용해온 논란은 접고 적극적으로 통합에 나설 것을 권한다. 그것이 한국교회가 살길이고, 또 실무자들이 살길이기도 하다.무당은 각기 자신들이 받은 신이 달라 섬기는 신도 다르다. 그래서 무속에는 하나의 통일된 연합체나 교단조직이 없다. 그런데도 그들도 근래에는 살아남기 위해 대한경신회를 만들어 연합활동을 한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종교세계도 조직화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당연히 하나여야 한다. 그래서 연합단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연합단체마저 갈라져 있으면 무슨 힘을 쓸 수 있나? 이제 한국기독교는 우리사회의 주류종교의 위치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소아적 행태를 벗어나 한국사회를 이끌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연합단체의 통합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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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08
  • “한기총 깰려는 세력 있다”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운동은 80년대를 지나면서 진보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와 함께 두 바퀴로 굴러가던 보수측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명분없이 분열한 이후, 끝내 제 자리를 찾지 못한채 혼돈을 거듭하고 있다. 한기총은 아예 대표회장 선거조차도 제때 하지 못하고 법정 소송에 시달리고 있고, 한국기독교연합(구 한교연)은 주요 회원교단들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제 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고, 새로 출범한 한교총은 간판만 내걸렸을 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엔 한기총측에서 “한기총을 깰려는 세력이 있다”는 폭탄발언이 나와 교계를 긴장시킨다.지난 19일 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최성규 목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느닷없이 한기총을 깰려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한기총을 깰려는 세력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에 앞서 지난 14일 한기총 증경회장 일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최성규 선거관리위원장의 사태를 요구한 바 있는데, 이들은 지금의 한기총 선거 가처분 사태를 만들어놓은 전광훈 목사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이들이 속한 교단들은 이미 한기총을 거의 다 탈퇴한 상태이다. 한기총을 깬다고 특별히 자신들에게 이익될 일도 없다. 그런데 이들이 왜 한기총을 깰려고 하는 것일까?우리는 한기총을 깰려는 세력이 이들 뒤에 있는 어떤 다른 세력일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기총은 이제 거의 허명만 남았지만, 그래도 한기총은 한국교회 보수진영의 대표성을 갖고 있고, 정부의 종교단체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의 힘을 분열시키기 위해 한기총을 깰려는 음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인구 60만에 채 이르지 않았던 일제시대에도 일제 총독부는 기독교가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서로 나뉘어져 분쟁하게 만들고, 끝내 친일적 진보세력이 보수세력을 억압하고 신사침배도 가결시켰다. 이것이 종교단체는 분열시켜 통치한다는 정책이다. 이런 정책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여기에 놀아나는 자들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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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23
  • 교계 분열 핵심에 통합측이 있다
    예장통합측은 언필칭 한국교회에서 에큐메니칼 교단이라고 불린다. 300여 개에 이르는 예장교단 가운데 유일하게 NCCK와 WCC에 속한 교단이 통합측이기 때문이다. 에큐메니칼이란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지향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통합측은 80년대 이후 교회의 연합과 일치가 아니라 갈등과 분열에 핵심역할을 해왔다.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들이 의도했던, 안했던 교계 분열에 통합측이 있다.통합측은 에큐메니칼 교단답지 않게 자파교단의 교인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타교단 인사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무슨 시혜나 베푸는 양 ‘사면 선포’ 운운하는 등 제 멋대로 교계를 혼돈케 만들더니, 교계 연합단체도 계속 분열시키고 있다. 1989년 한기총을 만든 것도 통합측이고, 한기총에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며 떨어져 나와 한교연(지금의 한기연)을 만든 것도 통합측이며, 다시 이번에 한교총을 만든 것도 통합측이다. 그런데 지금도 통합측은 이들 연합단체에 세 다리를 걸치고 있다. NCCK와 한기연과 한교총이다. 대교단 통합측이 이러니 정부나 사회단체들은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어디에 둘지 몰라 혼란스러워 한다. 한국교회에서 통합측만 중심을 잡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교계에 질서를 세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되는 이유는 통합측이 에큐메니칼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통합측은 1959년 합동측으로부터 ‘칼측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끌면서 중심을 잡아왔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조용기 권신찬 두 목사에 대한 이단시비를 제기하면서부터 에큐메니칼 교단의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연합과 일치보다 ‘이단 잡는 교단’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통합측이 이단이라면 한국교회 전체가 이단으로 보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로인해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퇴보하고 오히려 분열만 촉진시켰다.문제는 통합측에 세계교회와 한국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는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타깝게도 통합측이 에큐메니칼 정신을 회복하기 전에는 한국교회는 계속 분열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라 전망된다.
    • 연지골
    • 사설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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