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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희망은 교회에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우리사회로부터 전 세기에 비해 많은 신뢰를 잃었다. 그것은 교회의 급성장과 목회자들의 과욕이 낳은 결과이다. 세련되지 못한 목회자의 교권행위로 인한 개교회의 분쟁,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 대형교회의 목회세습 등, 교회 내외에서 교회 본연에서 일탈한 사건들을 보면서 교인들은 실망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보수하면서도 주일날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노미날리티, 즉 일명 ‘가나안교인’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다.그럼에도 지금 우리사회가 희망을 걸 곳은 교회밖에 없다. 우리사회에서 정기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이 교회이다. 매주 줄잡아 약 400만명 이상이 예배에 참여한다. 그리고 오늘도 전국 6만 교회 강단에서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언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곧 사람들의 희망이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 13).여기에 교회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도 찔러 쪼개 가치관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전국의 6만 교회에서 설교자가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1천만 성도들이 그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사회는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다. 우리가 그래도 희망은 교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고 집권자가 그 법을 집행함으로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는 정직한 사회가 실현되기는 어렵다. 인간은 그 속에 이기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한국사회에서 주류종교는 기독교이다. 비록 교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고 구원할 주체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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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22
  • 사회를 향한 교회의 신뢰회복이 우선 과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2017년 한 해를 무언가 의미있는 자세로 맞는 듯 하더니, 구호만 요란했을뿐 아무것도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한 해를 보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2017년에도 교계의 분열만 초래했다. 교계는 지도자들의 오만과 단견으로 분열하기는 쉬어도 한번 분열한 교회가 다시 통합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추진하던 교단장회의가 끝내 한교총이란 제3의 기구로 드러난 것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500년 전 타락한 교권주의에 매몰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복음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며 수백만명의 희생을 딛고 얻어낸 개혁신앙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그 옛날 타락한 가톨릭의 신앙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대로는 우리교회가 사회를 구원하는 민족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지난 수년간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교회지도자들의 과도한 세속적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새해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도 그 근원을 따라가보면 수천 수천명씩 모아놓고 성공적 목회를 했다며 교회를 멋대로 운영해온 그 잘난 목회자들의 행태에 있다. 따라서 종교인 과세는 한동안 정부와 교계 간에 상당한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더욱이 ‘종교활동비’라는 목회활동비에 대한 과세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왜냐하면 목회활동비는 목회자의 개인소득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목회활동비는 비록 목회자가 임의로 집행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교회의 공적활동에 쓰이는 선교비이다. 만에 하나 어떤 이유로든 세무당국이 선교비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종교의 자유는 형편없이 위축될 것임은 명확관화 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이른 이유가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은 데서 온 것이다.그러므로 새 해에는 그동안 교회가 사회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해 지금의 혼란한 사회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작금 한국사회는 교회의 신뢰회복 밖에 기댈 데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거기에서부터 사회를 향한 지도력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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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05
  • 기독교인의 종말론적 삶
    기독교인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말론이다. 종말론은 기독교인의 삶의 모든 가치관의 표준이다. 기독교에서 종말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성육신과 함께 시작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 속에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이 종말은 모든 역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예수의 재림과 함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종말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삶의 표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이다.언젠가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한 치의 거짓도 숨길 수 없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종말론적 삶의 윤리가 터잡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 즉 계명을 따라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가? 거짓말 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성경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 한국의 1천만 기독교인들이 이 십계명에서 가르치는 윤리를 실천하려는 의지만 가져도 우리사회는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 교회의 개혁은 무슨 거창한 일을 벌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십계명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 곧 교회의 개혁인 것이다.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하고, 모함하고, 무고할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거짓말과 모함과 무고가 난무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했다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처럼 새벽기도 잘하고, 성경 많이 읽고, 헌금 많이 하고, 예배당 많이 짓고, 집회마다 가득가득 모이는 교회가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타락했다고 비판받는다. 바로 그 이유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종말론적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23, 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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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05
  • 종교활동비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코자 하는 종교인 과세에서 정부와 종교단체 간에 심각한 분쟁이 예고되고 있다.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를 본 종교인 과세 관련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낙연 총리의 재검토 지시에 따라 폐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초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를 본 종교인소득 과세의 대상은 매월 월급처럼 교회로부터 받는 ‘사례비’(생활비)에 한정하고, 규모가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사용하는 ‘목회활동비’(종교할동비)는 비과세 항목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안이 입법예고된 이후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종교단체가 종교인 사례비를 줄이고 종교활동비를 늘리려는 ‘꼼수’라며, 시행령에 종교활동비 상한선을 정하고 종교활동비 내역에 대한 증빙자료를 세무서에 신고해 세무조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한 탓이다.기독교의 경우, 목회활동비는 대교회 혹은 대형교회에서의 문제이다. 사실상 선교비나 구제비로 지출되는 목회활동비는 교회가 회계년도에 미리 교회에 보고된 범위에서 담임목사가 임의로 지출하고 차후에 회계처리하는 돈이다. 그러나 이것을 목회자가 가족이나 사생활 등에 사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사정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이 돈이 마치 국정원 특수활동비처럼 목회자가 마음대로 남용하는 것처럼 여기는 데서 나온 오해이다.사실 정부는 건국 이후 최초로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면서 욕심을 너무 많이 내고 있다. 처음에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한대로 과세 대상을 종교인에게 지급되는 사례비(월급)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계에 세금을 부과하려다가 부작용이 일어난 예가 수없이 있었다. 종교계는 신도들의 한푼 두푼 모은 헌금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마치 종교계가 지하경제의 온산인양 증빙자료를 세무서에 신고하고 수틀리면 세무조사를 받게 하면, 과연 종교인 과세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종교인들도 소득이 있다면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 교회의 경우 80년대 이후 목회자들이 무슨 월급쟁이마냥 월급과 보너스까지 받아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과도한 목사 은퇴비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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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12-23
  • 아! 예루살렘
    2017년 올 성탄절은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리는 한 해가 될 듯하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유일 수도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범이슬람기구는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하고 있다. 자칫 성지를 두고 테러와 분쟁이 깊어져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총독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해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자,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눅 23:34)이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쫓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이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5, 26)고 엄중히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성지로 부르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다. 이 셋은 모두 아브라함의 유일신 사상을 따른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일찍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기 위해 찾아간 모리아 땅이고, 다윗이 성전을 세우기 위해 구별한 곳이며, 그 아들 솔로몬이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세운 곳이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지은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 예루살렘에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그런데 왜 거룩한 성지에 평화가 없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배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가 차고,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을 때에 완성될 것이다(롬 11:2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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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12-23
  • 모호한 ‘한교총’의 정체성
    이달초 제4의 한국교회 교단연합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창립되었다. 처음에 이 단체는 교단장회의라는 모임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통합시켜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데서 비롯되었다. 그에 따라 지난 9월 각 장로교 교단총회에 추진상황을 보고하고 가입을 허락받은 단체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한기총과 한교연은 그대로 남고 ‘한기연’이란 이름마저 한교연의 새로운 ‘법인’ 이름이 되고, 이 단체는 총회 하루 전에 부랴부랴 이름을 바꾸어 ‘한교총’이란 단체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데는 대교단 중심의 교단장회의가 기존 한기총이나 한교연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합을 선언하고 밀어붙인 결과이다.이렇게 되면 지난 9월 장로교 각 총회가 가입을 허락한 단체가 과연 어느 쪽인가 하는 의문이 있게 된다. 장로교는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총회에서 총대들이 모르는 일이 결정될 수는 없다. 그런데 지난 9월 총회총대들은 ‘한기연’이란 단체의 추진을 보고받고 그 단체의 가입을 허락했는데, 막상 교계에 새로 나타난 단체는 ‘한교총’이다. 이 단체는 총회총대들이 모르는 단체이다. 그러면 이것이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만한 일이 아닌가. 백보양보하여 내년 9월 총회에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고 다시 한교총 가입을 허락받을 수는 있지만 절차상 하자는 분명하다. 총대 중 누군가 나서서 ‘우리가 가입을 허락한 단체는 한기연이지, 한교총이 아니다’고 하면 시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9월 총회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단체에 너도나도 가입을 허락한데서 이런 혼란이 온 것이다.한교총은 대교단 총회장들이 자신들의 힘만 믿고 한기총과 한교연을 통합시켜, 자신들이 한국교회 대표성을 가지려다가 통합은커녕 분열만 야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도 잡음이 가시지 않고 있다. 처음에 대표회장을 예장통합, 합동, 기감에 군소교단 인사 한 명을 끼어 넣으려다가 그 인사가 참여를 거부하자, 막판에 여의도순복음 총회 이영훈 목사를 끼어 넣었다. 그런데 이 목사마저 사의를 표함으로써 앞으로 이 단체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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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12-14
  • 한국교회가 권력의 감시자 돼야
    탈북자 고 황장엽은 그의 책 ‘인간중심철학원론’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가장 큰 결함의 하나는 혁명을 최고의 도덕적 행위로 간주하며 개량주의와 보수주의를 가장 혐오스러운 것으로 배격하고 변혁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신성화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지난 시기 지배계급이 창조한 문화를 반동적인 것으로 배척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지금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촛불집회를 ‘혁명’이라 해 최고의 도덕적 행위로 간주하고, 보수주의를 혐오스러운 것으로 배격하며, 사회변혁을 시도한다. 그리고 지난 보수정권의 통치를 '적폐'란 이름으로 반동적인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의심한다. 거기다가 눈만 뜨면 쏟아져 나오는 지난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그런데 문제는 우리사회 언론이 모두 정권의 눈치를 보며 이런 정부 정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보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원전 폐기를 공약으로 들고 나오자 그간 게거품을 물고 원전의 중요성과 완전성을 떠벌리던 언론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심지어 원전의 중요성을 말하는 원전관련 단체나 핵물리학자 등의 주장은 단 한 줄도 언론에 인용하지 않는다. 메이저 신문이고 방송이고 할 것 없이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니 국민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지 여론에 깜깜하다. 주변에는 문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막상 언론은 이를 외면하고 있는 탓이다. 그 배경이 곧 황장엽이 지적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가장 큰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화문의 촛불을 혁명운운하며, 지난 보수정권의 정책을 적폐로 모는 것 등이 그렇다는 말이다.그러므로 이런 때일 수록 한국교회가 그 중심을 잡아 우리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런지를 살펴 정권의 감시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벙어리 개가 되어 좋은 게 좋다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부가 실패하면 한 나라가 흔들린다. 정권은 5년 혹은 10년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대한민국과 국민의 안전은 영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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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12-14
  • 연합과 일치운동 ‘통합측’이 중심 잡아야
    익히 아는대로 한국기독교는 장로교가 주류교파이다. 약 6만개 교회 중 4만2천여 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이다. 그리고 예장교단은 약 300개로 분열되어 있다. 그런데 세계교회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예장'은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회원교단으로 있는 '통합측'뿐이다. 즉 세계교회에서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회는 예장통합측이라는 말이다.통합측이 세계교회에서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이유는 에큐메니칼 교단이라는 명분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퉁합측이 에큐메니칼은 고사하고 오히려 한국교회를 분열시키는데 앞장 서고 있다. 처음엔 NCC와 한기총에 양다리를 걸치고 한국교회 대표성 운운하더니, 한기총을 합동측이 접수해 교권을 휘두르자 '한기총 이단 옹호' 운운하며 한기총을 분열시켜 제3의 연합단체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이라는 또 다른 연합단체 창립에 앞장 서고 있다.한국기독교는 교파주의 교회에다가 교단마저 수백 개로 갈라져 있어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교파간, 교단간 연합과 일치 없이 각개 격파로 대사회, 대정부 관계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대표성 있는 교단협의체가 절대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 통합측이 빠진 교단협의체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90년대 이후 통합측이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이곳저곳 한 무더기씩 싸놓고 그것을 치우지도 않고 돌아다니는 격이다.통합측은 국내에서만 한국기독교의 대표성을 갖는 교단이 아니다. 각 나라에서 한국 장로교회 가운데 통합측 선교사만 인정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는 통합측이 WCC 회원교단일 뿐 아니라, 교단분열이 심각한 한국기독교에서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교단으로 인정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몇 사람의 교권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계를 이렇게 분열시켜서야 되겠는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 통합측 교단이 중심 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
    • 연지골
    • 사설
    2017-12-08
  • 또 하나의 ‘한국교회 대표기구’ 탄생
    한국교회에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교단연합단체가 탄생했다. 여기에는 예장통합, 합동, 기감 등 ‘교단장회의’ 중심의 주요교단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멀쩡한 연합단체들을 둔채, 교계를 대표한다는 또 하나의 연합단체를 만든 것이다. 이는 명백한 교계분열 책동이다. 이에 교단장회의와 통합논의를 하던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현재 대교단 주도하에 벌어지고 있는 분파행위에 대해 경고한다”며, “입으로는 '골든 타임'운운하며 한국교회가 하나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떠들면서, 뒤에서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소아병적 이기심에 사로잡혀 패거리 정치와 줄세우기로 주님이 세우신 한국교회를 난도질 하는 불법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교계의 이런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기독교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저뿐이 아닐 것이다. 교계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단연합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면, 기존 연합단체를 해산하거나 정리하고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런데 같은 교단이 이미 기존 연합단체에 양다리, 세다리 걸치고 있으면서 또 다른 연합단체를 결성하는 것이 교계에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말이다.여기에는 지난 9월 교단총회에 참석한 총대들의 지지도 한심함 그대로이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교회협도 있고, 한기총도 있고, 한교연도 있다. 그런데 총회장 주변에 있는 몇몇 패거리들이 '우리가 이런 단체를 만들려는데 동의해 달라'는 말에 그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가입을 동의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연합단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대관절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단체가 몇 개나 더 필요한 것인가? 한 마디로 한국교회 목사들의 수준이 한심스럽다.내년부터라도 당장 교계연합단체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협이든, 한기총이든, 한교연이든, 한교총이든 그 이름은 중요치 않다. 다 통폐합해 하나의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난 후 남북통일도, 민족통일도, 말해야 한다. 한 하나님, 한 주님, 한 성령님을 믿는 교회도 하나로 통일 못하면서 무슨 통일 운운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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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7-12-08
  • 목사가 왜 강단에서 목사를 공격하나
    한국기독교 참 이상하다. 목사가 왜 강단에서 목사를 공격하나. 목사는 소명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직업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동료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기독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은 목사가 동료목사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을 통해 자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할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얼굴을 대면하고 충고하든지, 아니면 다른 모임이나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꾸짖든지, 그것도 아니면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 될 것을, 왜 하필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할 강단에서 같은 동료를 공격하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강단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다.구약성경에는 예언자들끼리 서로를 공격하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 주로 거짓 선지자가 참 선지자를 공격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동료 간에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최근 목사가 목사를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은 정의롭고 공의로운데, 다른 동료목사가 하는 꼴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독선적 태도이다.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처럼, 동료를 공격하는 그 목사들 가운데도 ‘내로남불’이 많다.목사는 강단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의 죄를 비판하고, 세상의 타락을 꾸짖어야 한다. 죄와 타락에는 눈감고 기복설교만 늘어놓으면서 강단에서 같은 소명을 받은 동료들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니 그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남을 비판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성경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빌 1:3,4)고 했고,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라”(마 7:1)고 했다.하물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할 강단을 이용해 동료를 비판하고, 남을 까내리는 설교를 하는 것이 한국교회 공동체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 연지골
    • 사설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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