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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자 양병희 목사)이 최근 바른신앙수호위원회를 통해 은혜로교회의 신옥주 목사를 조사 검증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교연의 바수위는 우리가 흔히 아는 이대위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으로, 이단으로부터 한국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한교연이 최근 한기총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취한 태도 때문에 바수위의 역할이 매우 모호해졌다. 한교연은 그동안 한기총이 평강제일교회 고 박윤식 목사나 다락방 류광수 목사 등을 이단 해제한 것을 두고 “연합기관은 이단에 대한 결정이나 해제를 할 권한이 없다”고 여러차례 강조하며, 한기총의 이단해제를 정면에서 비난했다. 또한 한교연은 한기총과의 통합에 있어 그 선결 조건으로 이단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내걸었고, 이 조건은 사실상 ‘이단해제 철회’였다. 한교연이 한기총 이대위의 결정에 대해 연합기관의 한계를 명시하고, 이에 따른 ‘월권’을 지적했지만, 역으로 볼 때 한교연 역시 그 연합기관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렇다는 것은 한교연의 바수위 역시 이단 문제에 있어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지난해 한교연의 회원교단인 예장합신이 총회에서 은혜로교회의 신옥주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자 신 목사측이 이에 앙심을 품고, 올해 초 합신측의 신년하례회를 찾아 난동을 부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합신측은 한교연에 신옥주 목사와 은혜로교회에 대한 대처를 요구했고, 한교연은 이 문제를 바수위에 위임했다. 문제는 바수위가 신옥주 목사를 조사하고, 검증을 하긴 해야겠는데, 그동안 한교연이 앞세운 연합기관의 ‘월권’에 자신들의 행위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최근 바수위는 신옥주 목사를 심문키 위해 만든 자리에 대해 검증, 조사 등의 단어를 배제하고 굳이 질의응답이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이름만 ‘질의응답’일 뿐 내용은 신옥주 목사에 이단성이 있는지를 조사한 사실상의 검증이었다. 여기에 바수위는 이날 자리의 내용을 절대 유포하지 않겠다는 사전 서약을 받은 채 비공개로 모임을 진행했다. 언론마저도 철저히 통제하고, 대화 내용도 발설치 못하게 한 바수위가 이날 숨기고 싶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그리고 ‘질의응답’ 이후에 바수위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유포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험악한 서약까지 해가며, 꽁꽁 숨기는데는 성공했지만, 위에서 말했듯 이단문제에 있어서 바수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혹여 무엇이라도 하려 한다면, 한국교회 공기관과 지도자가 자가당착의 전형을 보여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그간 이단 문제에 있어 한기총을 견제하기 위해 한교연이 주장했던 ‘월권’이란 말은 결국 부메랑처럼 한교연으로 돌아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발목을 묶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교연이 앞으로 신 목사 뿐 아니라 이단 문제에 있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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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2015-06-30
  • 동성애 반대, 개인기가 아니라 팀웍이다-이 효 상 목사
    최근 한 포털사의 여론 조사에서 보면 네티즌의 96%가 ‘국민의 정서와 맞지 않다’며, “퀴어축제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국민들 대다수가 이미 동성애를 우려하고, 동성애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게 통계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의 정서는 이번 퀴어축제 앞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법원은 반나체의 음란한 행위를 하는 동성애 거리 퍼레이드를 인정했고, 서울시는 오는 28일 서울시민들이 자유로이 이용하는 서울 광장을 퍼레이드 장소로 허락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교회의 대표 연합기관 및 단체들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제2의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려는 퀴어축제를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미래목회포럼, 한국교회언론회 등 5개 단체는 6월 1일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최고 5개 기관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한국교회 과거에 비춰 굉장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역사적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분열과 반목만을 반복하던 한국교회가 동성애라는 비성경적 사회적 현상에 대해 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관계나 자기 단체의 이익을 떠나 오직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건강을 우려한 가장 모범적인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교회는 지금의 기회를 결코 허비해서는 안된다. 5개 단체들의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된 모습을 보여야 하며, 이번 연합을 계기로 향후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각 단체들에서 파견한 현장 실무자들이 공통된 목표 앞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책회의를 하며, 쌓은 경험들은 차후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큰 동력이 될 것이기에 더욱 큰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성경의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 24장 6절)”는 말씀처럼 열정만으로 전투에서 승리할지 모르지만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략이 필수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협심과 더불어 전략이 필요하고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한국교회동성애책위원회는 동성애 및 퀴어축제 반대캠페인, 이론화작업의 일환으로 △‘동성애는 성왜곡이요, 중독이다’ 라는 논문집 발간 △탈동성애 지향자를 위한 상담, 보호와 상담사 양성 △교과서 동성애 조장 및 삭제나 폐기유도 △국가인권위와 기자협회가 체결한 인권보도준칙 삭제 △질병관리협회의 2012년 이후 에이즈발생 원인과 대책, 현황 공개청구 △동성결혼·동거법 대체결혼보호법제정(간통법 폐지이후) 저지 △동성애 지지의원 공개 질의 및 낙선운동 전개 △지방자치조례폐지 및 위헌소송 제기 등의 사역방향을 정하고 추진하게 된다. 이는 이번 연합을 한국교회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 프로젝트로 보고, 꾸준한 대처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아직도 동성애를 조장하는 일부 세력들은 교회와 강단(講壇)에서 동성애의 문제점을 가르치는 것도 원천봉쇄하는 ‘차별금지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국교회에 심대한 타격은 물론,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 것이다. 동성애는 우리 사회적 전통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성경적 가르침과 교훈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성애조장반대운동의 전개는 우리 자녀들의 건강한 미래를 지키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사회를 이루기 원하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동성애조장 반대운동에 나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힘을 합하면 할 수 있다. 이제는 개인기가 아니라 팀웍이다. 한국교회, 분열과 갈등으로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세속과 역사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그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들로도 미래는 없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 새로운 지도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교회는 연합기관 지도자를 하나된 모습으로 교회가 대사회적 지도력과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얼마 전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보았듯이 한국교회가 연합기관의 지도자들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는 상황에서 더욱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하나되는 모습은 절실하게 요청되어 진다.한국교회는 복음 선교 130년 세월동안 나라와 민족과 함께 해왔다.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되돌아보면 북한의 남침을 한국교회가 맞써 공산화를 막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신앙의 자유를 지켜내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교회는 또 다시 동성애 조장과 확산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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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15-06-30
  • 이신칭의(以信稱義)
    ‘이신칭의’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 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온전한 의(義)를 전가 받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3:11).로마 가톨릭교회는 “의화(義化, 즉 칭의)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며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오히려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의전가에 의하여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또는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호의뿐이라고 말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트렌트공의회)라고 이신칭의를 저주하며 부정한다.그러나 루터는 “이신칭의 교리는 복음의 진리이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 교리의 기본 주제이다... 만일 칭의의 교리를 한 번 상실하면 모든 참된 기독교 교리를 상실하게 된다”고 했고, 칼빈은 “칭의의 시작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은혜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죄에 얽매인 우리에게 칭의를 선물로 주신다”고 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칭의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로서,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엡 1:7), 그의 안목에 우리를 의롭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고후 5:21),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심이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니라”(롬 5:9)고 말하고 있다.오늘날 한국교회에 이 이신칭의 교리가 약화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선행에 힘써야 한다. 이는 믿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몫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선행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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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30
  • 연예인들의 간증과 개런티
    수년 전부터 사람 좀 모인다는 교회는 인기 연예인이나 이름난 예술가 등을 초청해 소위 ‘간증’ 시간을 갖고 있다. 개중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교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간증이 교인들에게는 상당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교회에 와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간증을 한 후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개런티를 받아가는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몇몇 인기있는 가수나 탤런트는 세속 행사에서 받는 개런티와 맞먹는 액수를 요구한다. 한 시간 왔다 가면 500-800만원이 보통이고 성악가나 예술가들도 200-300만원의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좀 잘나간다는 사람은 몇 곡 연주하고 500-6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들을 강단에 세워 간증을 듣는 일은 분명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가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또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교회를 상대로 자신의 간증을 하고 개런티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는 교회의 세속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밖에 볼 수 없다.연예인이든, 예술인이든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으면 돈은 밖에서 벌고, 교회에서는 그 은혜를 나누는 일에 참여해야지, 어떻게 교회를 상대로 돈벌이를 하려 하는가? 이런 연예인 치고 교회에 헌금 제대로 하는 사람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물론 대다수의 기독인 연예인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며, 교회 부흥과 복음 전도에 헌신하고 있다. 다만 몇몇의 일부 연예인과 이들을 동원하는 교회들의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돈 몇 푼 모인다고 이런 식으로 돈을 쓰면 안된다. 그 돈은 성도들이 선교에 사용하라고 교회에 헌금한 돈이다. 연예인 불러 간증 집회를 하면 전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너무 가벼운 짓이다.어떤 교회 목사에게 왜 그런 연예인들을 불러 강단에 세우고 그 많은 돈을 주느냐고 물었더니,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는다면 그 돈이 무슨 대수냐’고 대꾸했다. 솔직히 그런 교회 부목사나 전도사들에게 한달에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 묻고 싶다. 부교역자들에 대한 생활비나 후생비는 사명 운운하며 평준에도 못 미치게 대우하면서 연예인 불러다가 수백만원씩 개런티를 퍼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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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29
  • 교리 논쟁
    ◇종교는 무엇을 믿는가 하는 교리체계를 갖는다. 성경의 종교인 기독교는 더욱 그러하다. 교리(敎理)는 성경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것으로, 내가 믿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전파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교리는 내가 믿는 신앙을 선전하고 다른 사람이 내 신앙을 공격할 때 방어하는 ‘방패’(防牌)의 역활을 한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신앙적 헛점을 공격하는 ‘창’(槍)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특별히 믿는 교리가 없고 성경만을 믿는다”고 말한다. 이 또한 그들이 특별히 강조하는 성경구절이 곧 교리인 셈이다. ◇역사적 기독교에 교파가 생겨나기 전, 기독교가 ‘하나’였을 때 모두가 동의하여 민든 교리를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삼위일체 교리)라고 하고, 중세 이후 여러 교파로 갈라진 이후에는 그 교파가 강조하는 각 교파별 전통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 교리가 추가 되었다. 이 역시 모두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성경을 보는 관점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을 교리가 다르다며 이단으로 규정할 땐, 교파별 전통에 따른 ‘내가 믿는 바’와 다른 점을 기준 삼을 것이 아니라, ‘그가 믿는 바’가 성경과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기준 삼아야 한다.◇세계 기독교는 처음에는 하나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문화권과 만나면서 같은 성경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여 교파가 나누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가톨릭교회와 희랍정교회의 교리가 다르고,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다르며, 개신교 내에서도 각 교파별 전통에 따라 다르게 고백된다. 중세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나 쯔빙글리나 칼빈의 로마 가톨릭 개혁에 만족하지 않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거나 또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한 ‘환원주의’ 교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가톨릭의 전통과 신앙고백을 부정했다. 그래서 가톨릭의 잘못된 교리와 전통적 관행을 고친 ‘개혁교회’가 아니라, 이들을 초대교회로 돌아간 ‘환원주의 교회’라고 부른다. 엄격히 말하면 사실상 이들은 프로테스탄트이긴 하지만, 개신교(改新敎)는 아닌 셈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는 개신교로 분류되어 한기총에도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한다.◇그런데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안에서 회원교단 간 교리적 논쟁에 이단 시비가 붙었다. 문제는 한기총 소속 환원주의 교단의 한 인사가 그 교단 대학의 총장을 지내면서 ‘유아세례’가 아니라 ‘성인세례’를 받고 그 대학 교수로 임용된 타교단 출신 목사에게 다시 ‘침례’를 받을 것을 강요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개신교는 ‘세례’와 ‘침례’는 형식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침례는 믿는 자의 세례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대속주로 믿는다는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다시 ‘침례’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면, 먼저 받은 세례는 부정한 셈이 된다. 한기총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아주 미묘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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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9
  • 그 사건과 예언자의 목소리-임 영 천 목사
    지난달 하순(5. 24)에 향년 80세의 백경자씨가 한(恨)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이분의 존함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는 혹시 이분이 노령에 이른 어떤 일제(日帝)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 중의 한 분이 아닌가 짐작해 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분은 소위 그 위안부 여성의 삶 못지않은,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간 한국의 여성이기도 하였다.이분은 1973년 10월 19일, 당시 중앙정보부의 강압적인 수사에 의해 이른바 고문치사 당한 고 최종길 서울대 법학과 교수의 부인이었다. 당시 42세의, 앞길이 구만리 같았던 젊은 엘리트 교수를 남편으로 두고 있었던 이분에게 남편인 최 교수의 죽음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사흘 전인 16일 중정의 수사협조 요청에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들어갔던 남편이 그 사흘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버렸으니, 어찌 이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있었겠는가.몇 달 뒤 다가올 올해 10월 19일은 최 교수 서거 42주기의 날이다. 42세였던 남편이 사망한 뒤 그 곱빼기 햇수(42주)가 되는 그날을 차마 살아서(눈뜨고) 맞을 수는 없었든지 그분은 이 한 많은 세상을 표표히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 통탄해 마지않았던 모든 이들이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도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박근혜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위 과거사 문제 해결에 힘을 쏟은 결과 과거 사건들이 많이 해결(해명)되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 가장 큰 것이 아마도 인혁당 사건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의 해명 결과, 실로 8명의 목숨을 재판 직후 전격 처형해버리고 만 이 사건이 실은 날조된 것이었다는 공식 발표에 임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무슨 간첩 사건이니, 또는 무슨 간첩단 사건이니 하는 것들도 모두(거의?) 날조된 것이었다는 재판 결과 발표에 역시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음이 또한 사실이다. 최종길 교수 사건도 ‘그가 간첩이었음을 고백하고 자살했다’는 식으로 처음 발표되었던 내용이 그 후의 조사에 의해 그 사건 자체가 날조된 것이었다는 결과 발표에 우리는 분노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민사소송에 의해 몇 푼의 돈이나 쥐어주고 마는 배상 판결로 끝나버리고, 형사 재판은 시효가 끝났다는 것을 구실로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국가의 공신력에 대하여 신뢰할 수 없는 국민들이 참으로 가련하기만 할 뿐이다.이스라엘의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이 떠오른다. 예레미야,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위정자들은 떨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들은 주저함 없이 제왕들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였다. 그들의 예언은 당연히 길예연(吉預言)이 아닌 흉예언(兇預言)이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아닌 “이래서야 되겠습니까?”와 같은 직언 앞에서 속으로 떨지 않을 제왕들이 있었겠는가. 만일 그들이 오늘의 우리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앞서 말한 그런 흉측한 일들이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당연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하고 제왕과 그 측근 권부 인사들에게 질타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예언이 발(發)해진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흉예언일 수밖에 없으리라.미국의 신학자 월터 부르지만은 그의 이름난 저서 <예언자적 상상력> 속에서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로 들어 한 나라의 바람직한 정치와 경제를 이렇게 바라보았다. ‘억압의 정치 아닌 정의의 정치’, ‘풍요의 경제가 아닌 평등의 경제’, 이렇게 보았다. 정의(正義)의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백성들에게 억압의 정치가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의를 하수같이, 공의를 강물과 같이 흐르게 하라”는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이 그 단적인 예이다.풍요의 경제가 백성들에게 일시적인 위안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등의 경제라는 것이다. 이 평등의 경제를 지향하지 않고 풍요의 경제만을 추구할 때 모든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풍요의 경제는 결국 억압의 정치와 손잡게 되는 법이다. 불평등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입을 봉쇄하고, 억압의 정치에 반기를 드는 국민들을 잠재우기 위해 인혁당 사건도 날조하고 무슨 간첩단 사건도 조작하고 또 긴급조치법도 만들고 하다가 결국은 무너져 내린 정권이 아니었던가. 흉예언을 발하는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일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6-19
  • 한기총 임원회 분쟁에 대한 우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난 16일 오전 한기총 회의실에서 모인 한기총 긴급임원회는 친이영훈파와 반이영훈파 간에 격돌이 벌어져 경찰과 119 구급대가 동원된 가운데 이영훈 대표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반이영훈파 공동회장들을 자격정지 시키고, 직전 대표회장인 홍재철목사에 대한 재정비리를 조사키로 하는 등 강경한 결정을 내렸다.한기총이 여기까지 온 배경에는 이단 문제 재검증이 있다. 한기총은 지난 회기 이단대책위원회와 신학특별위원회, 임원회, 실행위원회, 총회를 거쳐 류광수와 박윤식 목사가 ‘이단 아님’을 발표했으나, 이영훈목사가 대표회장이 된 후 교계연합기관의 통합을 명분 삼아 다시 재검증에 나섰기 때문이다.이렇게 되면 한기총은 법정싸움으로 날을 지샐 것으로 보여 이영훈 대표회장 체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 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 개신교가 정말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회의가 든다.한기총은 한국교회 보수권 교단들의 대표성 있는 연합체이다. 그런데 이미 한번 갈라진 한기총이 또다시 분열한다면 한국교회 보수주의권 연합운동은 지리멸렬하여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원로들이 나서서 한기총의 분열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기총에는 이 사태를 중재할 만한 원로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계속 분열해 왔다. 이번 한기총 분쟁도 그러한 보수권 교회들의 고질적 분열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양쪽의 주장을 조정하고 화합하려는 정치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상대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패거리들의 기싸움만 등등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영훈 대표회장은 한기총을 복마전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패거리들의 놀음에 놀아나지 말고, 한국교회를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한기총을 화합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임원회의 결의가 실행위에 까지 올라가 막다른 길까지 가기 전에 양쪽의 화합을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연지골
    • 사설
    2015-06-19
  • 교회의 예배와 봉사
    기독교가 자체 종교시설을 짓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초기 동로마 시대부터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곧 ‘교회당’이란 개념이 정착되었다. 그로인해 중세교회는 너무 많은 돈을 교회당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 현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교회의 본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다. 기독교의 3대 사명이 예배(케리그마), 교육(디다케), 봉사(디아코니아)에 있다. 여기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예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으로 예배 없이는 교육이나 봉사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그래서 천주교는 매일 공중예배가 있다. 사람이 둘이 있든, 셋이 있든 사제는 예배(미사)를 인도한다. 그런데 천주교를 개혁했다는 개신교는 오히려 예배가 등한하다. 매일의 새벽기도 외에는 매일 공중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는 ‘설교’ 때문이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청중이 있어야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교회가 갖는 교육의 사명은 성경과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를 세우고 세속교육을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교육은 굳이 교회가 맡아 해야 할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더욱 그렇다. 교육은 교육당국이 책임을 지면 된다. 그리고 봉사는 교회의 사회적 사명이다. 그러나 봉사나 친교가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반드시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하지만, 교회가 사회사업기관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이웃 사랑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오늘날 좀 유식하다는 사람들이 교회가 헌금 거두어 뭐하느냐고 힐난한다. 교회당 짓는 데만 쏟아붓고 가난한 이웃을 위한 사회사업에는 등한하다는 비난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의 본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교회가 이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교회는 사회 안에서 사회를 섬기라고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6-19
  • 영성 결핍 시대
    ◇공산주의 교육에 심취했던 사람들은 인간에게 ‘영혼’(靈魂)이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도 다른 동물과 똑같이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내면의 갈등은 심리적인 현상일 뿐, 영적 문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인간의 영혼이나 사후세계를 말하는 종교인은 인민의 정신을 좀먹는 사기꾼쯤으로 여겨져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에는 기독교 목회자들은 모두 체포돼 집단농장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급속도로 늘어나 지금은 약 8천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중국의 기독교인은 대부분 한족(漢族)이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한족이 92%를 차지한다.◇20세기 들어 유물론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성인들 가운데는 ‘종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의 내세 따위를 ‘영직 진리’를 논하는 종교는 그것이 전통 클레식 종교라 할지라도 과학이라는 ‘세속적 진리’에 밀려나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 60억 인구 중 그 3분의 2가 넘는 약 42억만명이 어떤 모양으로든 종교를 믿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시대인 셈이다. 따라서 현대사회는 경제, 정치, 문화 전반이 종교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태는 세계 평화와 글로벌 사회의 정치 경제 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또한 종교적 세속화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인류역사는 그 어느 시대나 세속화의 시대요, 종말론적 시대로 여겨져 왔지만, 현대야 말로 그 어느 시대보다 세속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시대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사는 영성(靈性)이다. 그럼에도 현대교회는 무섭게 영적 침체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현대교회의 병리현상, 또는 현대교회의 위기를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영성 결핍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 교인도 늘어나고, 교회도 많아지는데, 이같은 영성 결핍의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신앙의 영적 체험이 가벼운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현대인의 종교가 대체로 경전을 중심한 형식주의에 빠져 이론과 조직 체계에만 매달릴뿐, 그 그릇이 담고 있는 영성적 내용을 추구하려는 삶은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은총을 깊이 체득해야 하는데, 신학이라는 이름의 교리공부와 목회적 테크닉에만 머물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골 1:26-27, 엡 3:3-6, 빌 2:5-11). 그러다보니 목회자의 설교가 가벼워져 깊은 영감을 끌어낼 수 없고, 청중의 감동을 불러오는데 실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지 종교적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기복과 축복신앙이 복음으로 오도되고 있는 것이다. 기복과 축복신앙으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들 수 없다.
    • 연지골
    • 연지골
    2015-06-18
  •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판단 오류와 교회의 정당한 대응/이 광 호 목사
    이제 며칠 후면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서 동성애자들의 ‘퀴어축제’가 열린다. 이는 수년 전부터 열려왔는데 해마다 그 참가자 수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지지하는 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이라 해도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직접 그와 같은 퇴폐행위를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그들을 비판하지 말자는 자들도 있다. 물론 그에 대하여 무관심한 자들도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께서 경멸하는 무서운 죄라고 지적하는 성도들도 있다, 우리 시대에는 기독교에서마저 동성애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성이 점차 커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 동성애를 죄라고 지적하면 기독교를 앞세우는 옹호자들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받게 된다. 그것을 죄라고 말하는 자들이 도리어 신앙이 없는 자로 간주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동성애자들을 위하는 듯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왜곡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은 겉보기에 저들에 대한 사랑을 가진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주장은 그들을 더욱 심각한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동성애자들은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임에 틀림없다. 신앙을 가진 성숙한 성도들은 저들의 죄를 명확히 지적하고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동성애 이외의 다른 죄를 범하게 될 경우에도 그것을 죄라고 지적하여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다. 죄를 짓는 자에게 그것이 괜찮다고 격려한다면 그로 하여금 더욱 깊은 죄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된다. 우리 시대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인권을 앞세워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이 많이 있다. 저들의 죄를 일깨우고 그로부터 돌이키도록 도와주어야 할 자들이 어정쩡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저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은 죄악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성애에 대한 현대 한국사회의 입장은 불과 15년 전과 비교해볼 때 완전히 변해 있다. 2000년 당시 유명 연예인 가운데 한 사람이 동애자로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한국은 발칵 뒤집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동성애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닌 사악한 행위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공영방송에서는 그의 출연을 전면 금지했으며 방송국의 그런 처사를 잘못된 것이라 지적한 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지금 30대 중반이 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판단과 반동성애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그것이 성경과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은 동성애가 무서운 죄라는 사실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마저 그와 같은 발언을 하면 벌떼처럼 덤벼드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복음이 불과 몇 년을 사이에 두고 그처럼 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15년 전에는 하나님이 경멸하는 악한 죄로 인식되던 것이 15년 지난 후에는 동일한 행위가 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즉 성경의 진리는 시대적 환경이나 세태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수천 년 전이나 수백 년 전에 죄로 규정된 것이라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죄가 된다. 인간들이 아무리 죄가 아니라고 부르짖는다 해도 그것은 죄일 수밖에 없다. 혼탁한 시대에 존재하는 지상 교회는 세상의 시류에 편승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죄를 보고 죄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즉 세상의 눈치를 보고 우왕좌왕하는 자세를 취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세상은 점차 교회를 포위하여 진리를 말하지 못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현대 교회는 그에 대한 새로운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악한 세상의 편에 설 것인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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