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11(월)

해설/기획
Home >  해설/기획  >  손석태

실시간뉴스

실시간 손석태 기사

  • 바로 알고 바로 믿자 5
    성찬 시에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하신 것은 상징적 표현 가톨릭은 성찬예식을 ‘성체성사’(聖體聖事)라고 부른다. 성체성사는 가톨릭의 7성사(성례) 중 하나이다. 7성사는 세례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이다.가톨릭의 교리-화체설(Transub stantiation)성찬예식을 성체성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가틀릭의 화체설(化體說)이란 교리에서 왔다. 화체설이란 성찬예식 시 신부의 축성기도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전(全)실체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333조, “성찬례 거행의 중심인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청원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된다. 빵과 포도주의 표징은 신비롭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면서도 창조계의 확실한 산물이라는 의미도 잃지 않는다...”제1350조,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의 몸과 피가 된다.”제1375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제1376조, 트렌트 공의회는 “...빵과 포도주의 특성으로서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한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변화라고 불러왔다.”제1411조, “유효하게 서품 받은 사제들만이 성찬식을 거행할 수 있고,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도록 축성할 수 있다.”가톨릭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거룩한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한다. 이것을 화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대로 남아 있지 않고 빵의 전(全)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전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빵과 포도주의 외형만 남게 된다.”비평화체설은 기독교의 초기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9세기 라드벌투스(Radbertus)가 성찬 거행시 비록 외적 모양과 형태·맛·감각·냄새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떡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된다는 화체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 화체설은 1059년 교회의 신앙으로 선포되었고, 제177대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Ⅲ, 재위 1198-1216) 때에 개최된 제4차 라테란회의(1215년)에서 결의하였으며, 1551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선포되었다.가톨릭은 마 26:26-28, 눅 22:19-20, 요 6:47-51, 고전 11:23-26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그 근거로 주장한다.마태복음 26:26-28,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린도전서 11:23-26, “주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주님이 손에 빵과 포도주를 가지시고 “이것은 나의 몸이라... 이것은 나의 피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가톨릭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취하므로 화체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이것(This)’은 지시대명사로 자신이 붙잡고 있는 빵과 포도주를 가르키는 것이요, 결코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자신의 몸과 피를 자기의 손안에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 그러나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실제적 살과 피가 되는 이적을 행하시지는 않으신다. 주님께서 최후 성만찬 시에 빵과 포도주를 가지시고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 이것은 나의 피니라”라고 하신 것은 빵이 주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주님의 피가 된다는 뜻이 아니고, 앞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예시하신 말씀이다. 빵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고 있는 단어이다. 성경에는 빵, 문, 포도나무, 반석(요 6:33-35, 10:9, 15:5, 고전 10;4) 등의 상징적 표현들이 있다.만일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피니라” 말씀하시고, 그 잔을 마셨다면 자신의 피를 마셨다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은 피를 마시는 것을 엄히 금하셨고,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불변하신 하나님은 이미 금하셨던 것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행하도록 번복하시지 않으신다. 화체설은 성례의 진정한 의미를 파괴한다.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의 화체설을 부인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자들은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에 관한 교리의 일치를 보지는 못하였다. 루터파는 ‘공제설’을, 쯔빙글리파는 ‘상징설’을, 칼빈파는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였다.루터파의 공제설은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실제로 빵과 포도주 “안에, 함께 그리고 아래(속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또 쯔빙글리파의 상징설은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였고, 칼빈주의의 개혁파는 성찬 시에 “그리스도의 역동적 또는 영향적 영적 임재설”을 강조하였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5-09-18
  • 바로 알고 바로 믿자 3 / 가톨릭의 전승들
    구전상 전승은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어 가톨릭의 전승로마 가톨릭(천주교)은 ‘전승’(Tradition)도 성경과 동일시 한다. 가톨릭은 전승 혹은 전통을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을 말해준다고 한다. 그들은 전승을 조심스럽게 성경과 구별하면서도 중요시 하고, 동일시 한다. 전승에는 장로들의 유전이 근간을 이룬다. 트렌트공의회(1545-1563)는 전승을 성경과 더불어 교리로 규정하였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78조, “성령 안에서 완성된 이 생생한 전승은 성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성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전승이라고 부른다. 이 전승을 통하여 교회는 교리와 생활과 예배(전례)를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전승한다...“제80조, 전승과 성경은 밀접히 같이 매어져 있고, 서로 공통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성경과 전승)는 하느님의 똑 같은 샘에서 흘러나오며 같은 목적을 향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제81조, “...전승은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위탁하신 하느님의 말씀이며.”제82조, ...교회는 성경만으로는 모든 계시된 진리에 대하여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전승과 성경)를 꼭 같은 애정과 존경으로 받아들이고 존중시 되어야 한다.”제95조, “...그러므로 거룩한 전승.성경.교회의 교도권은 하느님의 가장 현명하신 계획에 의하여 어느 하나도 없으면 설 수 없다.” 비평가톨릭은 전승을 단순한 ‘인간의 전통’과 신적(神的)으로 ‘영감된 전통’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영감된 전통을 성경과 동일시 한다. 이 전통은 1950년 교황 비오 15세가 전통으로 규정하기까지는 전승으로 내려왔다.1. 전승(전통)과 성경을 동일시 할 수 없다. 가톨릭에서는 전승을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한다. 즉 성경에는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구두로 내려오는 전승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승은 그 내용이 사실이고 또 우리의 싱앙과 행위에 유익이 될지라도 성경과 꼭 같은 샘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니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므로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표준은 될 수 없다. 따라서 성경과 전승을 동일시 할 수 없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4장 6절, “...성경에는 아무 것도 그 어느 때라도 가(加)할 수 없으니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전통들을 불문한다...”고 했다.2. 가톨릭은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부정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82조는 “교회는 성경만으로는 모든 계시된 진리에 대하여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므로 성경의 완전성과 충족성을 부정한다.3. 가톨릭은 성경의 독립성을 부정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95조의 “전승과 성경은 어느 하나도 없으면 설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성경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성경과 전승의 상호 보완, 상호 의존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경 디모데후서 3:16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그의 말씀 또한 완전하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장로들의 유전본래 장로들의 유전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래, 유대 랍비들은 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법들과 규정들을 정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적용들이었다. 그것들이 한 세대에서 다은 세대로 또 그 다음 세대로 계속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다가 주전 3세기경에 책으로 기록되었다. 이것을 미쉬나(Mishnah)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장로들의 유전을 율법과 동일시 하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예수님 시대에는 이 장로들의 유전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보다 우위에 있었다. 마태복음 15:1-3, “그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이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받쳤다면서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이른 말이다.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살후 2:15)라고 했다. 바울이 여기에서 지키라고 한 유전은 장로들의 유전이 아니라, 신약 성경이 기록되기 까지 구두(口頭)로 전하여 오는 초대 원시교회의 전통을 말한다. 이 전통은 성경이 기록되기 전의 근본적 복음을 가리킨다.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씀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말씀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말씀을 고린도교회에 전하였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전통이었다.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 11:2).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라고 경고하였다. 여기서 사람들의 전통과 초등 학문이란 유대주의자들의 할례를 가리킨다. 그것은 잘못된 전통이다.전승은 문헌상 신빙성은 있으나 전승의 내용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구전상 전승은 신빙성이 있는 것도 있고, 신빙성이 없는 신화 같은 이야기들도 있다. 그러므로 전승은 기독교 진리의 표준으로 삼을 수 없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5-09-10
  • 바로 알고 바로 믿자 -4
    과연 면죄부를 사면 죽은 조상도 천국으로 보낼 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이 있나? 1. 가톨릭의 대사(大赦)와 면죄부의 근거중세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은 ‘면죄부’(免罪符)였다. 일종의 헌금증서인 면죄부를 사면 산 사람의 죄와 죽은 사람의 죄를 경감받거나 면제 받을 수 있는가?가톨릭교회에는 신자가 사제(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이나, 또는 죽은 자의 죄에 대한 형벌을 경감받거나 면죄받을 수 있다는 교리가 있다. 이것을 가톨릭에서는 대사(大赦, Indulgence)라고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제1471조, “교회에서 대사에 대한 교리나 관습은 고해성사의 효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대사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을 경감 또는 면죄해 주는 것인데, 교회는 그 권위로 그리스도와 성현들의 만족한 보물(Treasury)을 나누어주고 적용한다. 대사는 죄로 인해 받게 될 일시적 형벌을 부분적으로 면죄하거나 전부 면죄하느냐에 따라서 부분 대사와 전체 대사로 양분된다. 대사는 신실한 사람이나 죽은 사람에게 모두 적용된다.”제1479조, “정화 중에 있는 죽은 신자들도 성도들과 같은 지혜들이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한 다른 도움과 더불어, 그들의 죄들로 인한 일시적 형벌들을 면하게 되는 대사로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제1498조, “신자들은 대사로서 자신들과 또한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죄의 결과인 일시적 형벌을 면죄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2.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기금을 위한 역사적 면죄부 판매사건로마 황제 콘스탄틴 대제는 324년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베드로의 무덤 위에 대성당을 지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베드로 성당을 재건축할 필요가 제기되어 교황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가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건축된 베드로 성당을 허물고, 1506년 4월 18일 ‘대 성 베드로성당’을 기공했다. 그러나 건축비가 엄청나게 소요되므로 건축기금을 충당키 위한 수단으로 면죄부 제작과 판매포고령을 선포하고 즉시 실행에 들어갔다.이 성당은 당시의 유명한 건축설계사 브라만테(Brammante)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그리고 라파엘(Raphael) 등이 고용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2세는 1513년 2월 21일 열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은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기금을 위해 면죄부를 팔았다. 면죄부를 사면 죽은 조상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현혹하였다.당시 면죄부 판매 책임자는 수도사 요한 테젤(Johann Tetzel)이었다. 테젤은 “지금은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권세를 받은 교회가 천국과 지옥문을 열어 놓았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이 자리에서 곧 사함을 받을 것이요, 회개의 필요 없이 현재 살아 있는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나 또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하여 이 표를 사면 그 돈이 헌금 궤 속에 철렁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곧 천국으로 올라갈 것이다.”라고 선전했다.면죄부란 일종의 헌금증서이다. 사제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면죄부라는 증서를 지참하면 어떤 성당, 어느 신부에게 가서라도 고해성사를 할 수 있고, 또 면죄부를 소지한 신자에게는 사죄권이 제한없이 주어진 것이다. 일부 사제들은 면죄부를 판매하므로 그 이익을 챙기고, 사치와 호화 를 하는 한편, 일반 신자들은 저들의 사기행각에 빠져 가난에 허덕이게 되었다.3. 면죄부에 관한 논쟁이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발전16세기 종교개혁은 면죄부 논쟁으로부터 비화되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자신이 시무하던 성당의 신자들이 면죄부를 사 가지고 와서 고해성사를 받으려 할 때 경고하고 교훈하며 되돌려 보냈다. 신자들은 면죄부를 들고 판매처로 돌아가 루터 신부의 말을 전하며 대금반환을 요구하였다. 이에 테젤은 대노하여 광장에 불을 피워 놓고 ‘이 면죄부를 반대하는 모든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하라는 교황의 명령을 받았다’고 협박하며 내쫓았다.이에 루터는 과연 면죄부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죄를 면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가를 논쟁해 보자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부르그 교회당 문에 내붙였다. 이것이 중세 종교개혁의 서막이었다. 이는 1517년 10월 31일의 사건이다.그럼에도 가톨릭은 1563년 트렌트공의회 제25회기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면죄의 권세를 부여한 이래, 교회는 면죄의 권세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는 가장 오랜 때에도 이 권세를 사용했고, 교회에 전달했다. 성 대회(Synod)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면죄부의 사용을 가르치고 명한다... 공의회는 면죄부가 무용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나, 또는 교회에 면죄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정죄한다’고 선언했다.4. 비평가톨릭은 지금도 연옥설과 면죄부가 옳다고 주장하며 시행하고 있다. 가톨릭은 면죄부의 정당성의 근거로 출애굽기 32:30-32, 욥기 1:15, 고린도후서 12:15, 갈라디아서 6:2, 디모데후서 4:6 등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출 32:30-32,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金神0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데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어 버리시옵소서.”가톨릭에서는 이 말씀을 성인들이 하늘에 쌓아놓은 ‘교회의 보고’ 또는 ‘공로의 보고’라고 하며, 면죄에 필요할 때 그 공로의 보고를 끌어다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천국에 사람의 공로를 보관하는 창고란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은 모세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받기를 자청하였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모세의 간구를 들으신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받으신 것과 같다.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모세의 생명을 취하시지 않으셨으며, 모세의 이름을 기록된 책에서 제하여 버리시지도 않으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될 자격이 없다.소위 ‘공로의 보고’(Treasury of Merit)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충족성을 부인하는 무서운 죄이다(요 19:30, 히1:3, 2:14-15).
    • 해설/기획
    • 손석태
    2015-09-03
  • 바로 알고 바로 믿자 2
    묵주기도를 통해 마리아에게 중보를 요청하는 ‘성모송’을 외울 뿐 1. 묵주기도의 유래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하나님께 직접드리는 자유기도는 할 줄 모르고, 묵주기도만을 한다. 묵주기도는 주기도, 성모송, 영광송 등을 외우는 전례기도이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로사리오(Rosary)라는 묵주이다. 묵주를 손가락으로 한 알씩 세면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도문을 외우는 것이다. 로사리오 묵주는 십자가+큰묵주알 1+ 묵주알 3+큰묵주알 1+묵주알 10+큰묵주알 1+묵주알 10+큰묵주알 1+묵주알 10+큰묵주알 1+묵주알 10+큰묵주알 1+묵주알 10으로, 십자가와 큰묵주알 6개와 묵주알 53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기도의 숫자를 세기 위함이다.성모 마리아는 1884년 이탈리아의 한 어린 아이에게 나타나서 청원의 9일 기도 3번(9×3=27일)과 감사의 9일 기도 3번(9×3=27일)을 마치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묵주기도로 드리는 9일 기도는 그 당시 교회의 관습대로 환희·고통·영광의 신비를 차례대로 3번 묵상하며 54일동안 9일 기도를 바치도록 한데서 유래하였다.가톨릭교회교리서 제971조, “성모 마리아 공경은 천주의 모친에게 바쳐진 전례축일들과 전체 복음의 요약인 로사리오 기도와 같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드리는 기도에 나타났다.” 제2678조, “중세 서방 교회의 경건은 대중이 성무일도 대신에 묵주기도로 발전시킨다...” 제2708조,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 독서나 묵주기도에서처럼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데 마음을 쓴다.”고 하여 묵주기도를 장례하고 있다.2. 가톨릭 교인들은 묵주로 어떤 기도를 하나?묵주기도의 순서는 먼저 십자가를 잡고 성호경(십자가 성호를 그으며)과 함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한 후 사도신경을 1번 외운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흘 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두번째 기도는 주기도이다. 큰묵주알을 붙잡고 1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세번째는 성모송이다. 한번에 묵주알 한알을 붙잡고 3번,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또는 “은혜가 충만한 성모 마리아여! 주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나이다. 그대는 여인들 중에 복이 있으며, 그대의 태의 열매 예수도 복이 있나이다. 거룩하신 마리아여! 하느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아멘.” 그리고 이어서 영광송, 구원송, 신비1단, 주님의 기도를 한다.영광송=“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구원송=“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3. 비평묵주는 분명히 기독교 역사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며, 많은 이교도 나라에서 잘 알려진 우상숭배의 도구이다. 수세기 동안 이슬람 교도들은 알라신에게 드리는 기도를 세기 위한 것으로, 33개, 66개, 99개의 염주로 구성된 염주걸이를 사용하였다. 또한 인도, 중국, 티벳, 일본 등지의 불교, 도교, 이슬람교 등은 노사리오를 사용하고 있다. 주전 800년경 페니키아 사람들은 염주들을 어미 여신 아스타르테를 숭배하는데 사용했다. 또 인도의 브라만들은 초기부터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염주로 된 로사리오를 사용해 왔다.묵주기도 전체에서 주기도는 6번인데 비하여, 성모송은 53번이나 반복된다. 마리아에게 하는 기도가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치신 주기도보다 더 중요하고 또 효력이 있다는 뜻인가?성모송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니 그것은 비성경적이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오로지 영원자존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시며, 공의·거룩·사랑·자비·긍휼이 풍성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다.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고 했다.마리아가 우리의 신앙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마리아는 우리의 중보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할 수 없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가톨릭 교인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줄을 모른다. 기도는 사제를 통해 대리로 기도하고, 마리아에게 대신 기도를 요청할 뿐이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5-08-14
  • 바로 알고 바로 믿자 1
    로마 가톨릭은 구약 외경 7권을 포함 73권, 개신교는 역사적 교회의 결의 따라 66권만 성경으로 인정 1. 로마 가톨릭(천주교)의 성경로마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으로 총 73권의 책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개신교의 구약 39권에 외경 7권을 더한 것이다. 가톨릭교리서 제120조, "교회는 사도적 전승(전통)에 의하여 어떤 문서들이 성서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했다.... 이 목록에는 구약성서 46권과 신약성서 27권이 들어있다. "제138조, "교회는 구약성서의 46권과 신약성서의 27권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그리하여 구약 39권에 외경 토빗(욥기서와 유사), 유딧(에스더서와 유사), 마카비 1서, 마카비 2서(유대 왕들의 전쟁사), 지혜서, 집회서(잠언서와 유사), 바룩(예레미서와 유사)을 첨가하였다.2. 구약시대 외경들(전 15권)구약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외경(Apocrypha)은 총 15권이다. 가톨릭은 이 15권 가운데 7권만 성경에 포함시켰다.△에스드라 1서: 주전 2세기경에 아람어로 쓰여진 율법을 엄수하기 위한 문학소설이다.△에스드라 2서: 주전 1세기경에 아람어로 기록된 계시문학으로 7번의 환상과 바벨론, 아시아, 애굽 나라들을 책망한 것이다.△토빗: 주전 2세기경에 아람어로 쓰여진 것으로 ‘생선열’을 태워서 전 남편을 학살한 악마를 내어 쫓았다는 애정담과 부모의 눈을 뜨게 했다는 흥미로운 소설이다.△유딧: 주전 150년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3년된 용감한 과부가 마카비 전쟁시 미인계로 적장 홀로페론을 암살했다는 일종의 애국소설이다.△에스더의 후기: 주전 125년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에스더서를 더 삽입했거나 보강한 소설책이다.△솔로몬의 지혜: 주전 40년경 헬라어로 기록된 헬라철학을 포함시켜 바리새 교리를 스며들게 한 것으로, 영생, 기원, 자연, 행위, 이스라엘의 역사를 시로 엮은 일종의 철학서이다.△집회서: 주전 180년경에 히브리어로 쓴 것으로, 시락의 아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면서 5개 부문으로 쓴 일종의 지혜문학이다.△바룩: 주전 2세기경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편지한 것이다.△예레미야의 서신: 주전 200-100년경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으,로, 예레미야가 우상숭배를 비판하는 공격서로서 포로로 잡혀간 자를 위해서 보낸 편지이다.△다니엘의 세 친구의 노래: 다니엘 3;23 이후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썼다는 전설을 가진 책이다.△수산나: 주전 150경에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기록된 책으로, 수산나가 강간하려던 두 유대 장로의 모함으로 사형 직전에 다니엘의 도움으로 살아나 여자의 정절을 지켰다는 소설이다.△벨과 용: 주전 150년경에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다니엘이 벨(바벨 신)과 용의 우상과 싸우는 소설이다.△므낫세의 기도: 주전 50년경에 히브리어로 쓴 것으로, 잔인하고 악했던 므낫세 왕이 추후 회개하였다는 통회의 기도문이다.△마키비 1서: 주전 100-75년경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으로, 마카비 전쟁 시 그 상황과 주전 175-134년까지 유다 역사를 간단 명료하게 저술한 역사서이다.△마카비 2서: 주전 50년경에 헬라어로 유전되어 내려온 주전 175-160년어간의 유다 민족의 전설 책이다.3. 구약시대 위경들(전 17권)구약의 외경 외에도 위경(Pseudepigrapha)도 있다. 위경이란 헬라어에서 '거짓 글' 또는 ‘가짜의 글’이란 뜻이다.△아히칼의 이야기: 주전 450년경에 아람어로 쓰여진 것으로, 나이 많은 아히칼이 그 아들에게 가르친 지혜문이다.△에녹 2서: 주전 150-75년경에 아람어로 스여진 것으로, 바리새주의를 조장시키기 위한 에녹의 계시이다.△유부리의 책: 주전 125-25년경에 아람어로 쓰여진 전설책으로, 바리새 교훈을 조장키 위한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추가한 책이다.△12족장서: 주전 100-25년경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야곱의 아들들이 하스모니안들을 찬동과 거역한 예언서이다.△씨비린의 서경: 헬어로 쓰여진 것으로, 유다 사람들과 기독교인들 증 여자 예언자의 6조 음악의 시를 첨가한 계시문학이다.△아리스테아스의 편지: 주전 100년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의 번역과정을 기록한 전설책이다.△마카비 3서: 주전 100-25년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마카비 전쟁 시 유대인을 괴롭힌 토레미 4세(Ptolemy Ⅳ)와 그의 모든 행사를 기록한 전설책이다.△마카비 4서: 주전 1세기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스토아 찰학을 격려한 철학책이다.△솔로몬의 시편: 주전 50년경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사두개 교리를 반대하는 바리새인 주장의 시문학이다.△에녹 2서: 헬라의 세속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기록된 에녹의 계시서이다.△욥의 서경: 주전 1세기경에 아람어로 기록된 소설로서 욥의 이야기를 다르게 쓴 책이다.△선지자들의 생활: 주전 1세기에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으로, 모든 선지자들의 지파의 이름, 출생지, 죽음 등을 기록한 책이다.△모세의 승천: 주후 6-25년경에 아람어로 된 바리새인의 어떤 정숙주의에 맞춘 계시문학이다.△이사야의 순교: 주후 50년경에 헬라어로 쓰여진 것으로, 열왕기 26:16에 이사야의 죽음을 재해석한 유대인의 주석책이다.△바룩 2서: 주후 65년경에 아람어로 쓰여진 것으로, 바룩이 기독교를 몹시 반대하는 계시뮨학이다.△아담과 이브의 저서: 주후 100년경 아람어로 쓰인 헬라파 유대인들의 전설책이다.△바룩 3서: 주후 15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유대교를 강하게 반대한 기독교 입장에서 쓴 계시문학이다.4. 구약의 외경들과 위경들을 정경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① 성령의 영감으로 된 책이 아니다. ② 선지자들이 인정치 않았다. ③ 정경(구약과 신약)이라고 유대인들이 승인치 않았다. ④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부인했다. ⑤ 외경과 위경은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와 신약의 복음서 중간에 쓰인 책이며, 말라기 3:1에는 예수님의 선구자가 임한다는 것만 언급했다. ⑥ 권위가 없는 잘못된 계시, 소설, 철학, 전설의 책이다. ⑦ 성경역사에 위배된다. 외경의 기록들은 연대적·역사적·지리적 과오들이 많다. ⑧ 성경의 교리와 위배된다. ⑨ 요세푸스(주후 30~100)가 성경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⑩ 오래된 성경 사본에 외경과 위경이 없다. ⑪ 300년경에야 외경과 위경이 어떤 사본에 첨가되었다. ⑫ 필로(주전 25~45)나 다른 초대 역사가들과 교부들이 부인했다. ⑬ 확실히 성취된 예언이 부족하다.5. 비평외경들과 위경들은 성경 66권과 달리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역사적 기독교는 주후 365년 라오디게아 공의회에서 교회는 정경만 읽는 것이 옳다고 결의하고, 393년 히포 공의회와 397년 칼타고 공의회에서는 신구약 성경 66권만을 정경으로 확정하였다. 개신교는 그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5-07-3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