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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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영원히 함께 통치할 가족을 원하시고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그분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것을 계획하셨다(엡 1:5). 이 같은 하나님의 가족은 과거, 현재, 미래의 믿는 사람들도 포함 한다. 그래서 영적인 가족은 혈육 관계보다 더 중요하다. 기독교는 주안에서 혈연을 초월한 새로운 영적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부르며(고전 8:6, 롬 8:15) 서로를 형제와 자매로 부르는 것은 주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고 복음 전도를 위한 한 팀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가족이 된 근거는 주님의 보혈에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보혈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즉 우리 심령 속에는 똑 같은 주님의 보혈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교회는 국가와 인종과 지역과 혈연을 뛰어넘는 가장 진한 색깔을 띌 있는 하나의 영적 가족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너무도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한 집에 있는 가족으로 부르고 있다(딤전 3:15, 벧전 4:17). 물론 이 세상에서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때때로 이혼, 먼 거리, 노화, 그리고 죽음으로 깨어지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영적인 가족, 즉 다른 믿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영원토록 계속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랑스럽게 여기신다(마 12:49~50). 아울러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가족의 유산을 나누게 된다(갈 4:7, 빌 4:19). 이 땅에서 풍성함, 은혜, 친절함, 인내, 영광, 지혜, 그리고 자비를(엡 1:7, 롬 2:4, 3:16) 얻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우리는 더 많은 유산을 받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가장 큰 영광이고 특권이다. 그 어떤 것도 이에 비할 수 없다. 고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성도들을 대할 때에는 친 가족을 대하듯 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를 아름다운 천국 가정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오늘 날 가족 윤리를 잊어만 가는 이 세상을 향해서도 진정한 가정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 명목적인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에 봉사 하지 않고 등한시 하며 소홀이 하거나 버리기도 한다. 이에 사회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하는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라고 정죄 한다(딤전 5:8). 실로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마음에 새겨진 양심과 본성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따라서 불신자라 할지라도 가족을 위해 어떠한 수모와 스트레스도 참고 인내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씀을 통해 가족에 대한 의무를 알고 있는 성도들이 이를 게을리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는 믿음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양심마저 외면하는 악한 일이다. 고로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경건을 실천하노라 하면서 밖으로 뛰쳐 나아가 외치기 전에 먼저 육신의 가족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가족에 대한 의무도 다해야한다. 즉 은퇴한 목회자들과 불우한 노인들을 외면하지 말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한다. 진정한 가족은 동고동락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울을 위해 헌신했던 구레네 시몬의 아내이자 루포의 어머니처럼 말이다(롬 16:13).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이 내려쬐는 사막 한 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끌고 가던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타시죠’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태워줄 수 있겠소?’ 젊은이와 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노인의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량자 노인이라고 생각한 젊은이는 주머니를 뒤져 25센트를 노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영감님 차비에 보태세요. 몸조심하시고요’. ‘참 친절한 젊은이구먼 명함 있으면 한 장 주게나’ 젊은이는 무심코 명함을 건네주었다. ‘멜리 다마! 이 신세는 꼭 값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고 하네’ 얼마 후 세월이 지나 이일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무렵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 사망’ 이런 기사와 함께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하워드 휴즈가 남긴 유산의 16분의 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 이었다. 멜빈 다마가 누구인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유언장 이면에 멜빈 다마는 하워드가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친절한 사람 이것이 유산을 남겨주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워드 휴즈 유산 총액이 25억 달러 정도였으니 유산의 16분의 1은 최소한 1억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2000억원 가량이었다. 무심코 베푼 25센트가 6억 배가 되어 되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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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족들 돌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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