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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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비가 관직을 맡아 임지로 떠나게 되었다. 먼저 벼슬길에 오른 친구가 말했다. ‘여보게, 관직에서 일하려면 무엇보다도 참을 줄 알아야 하네’ ‘명심 하겠네’ 하지만 친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저 참는 게 제일 이라네’ ‘알았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친구가 또 당부했다. ‘몇 번이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게’ ‘글쎄 알았다니까?’ 선비가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 막 떠나려고 하는데 친구가 선비의 소맷자락을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해. 참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하게’ 이 말을 들은 선비가 버럭 화를 내면서 말했다. ‘자네 나를 놀리는 건가? 도대체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하는 건가?’ 그러자 친구는 한탄을 하듯 말했다. ‘고작 네 번 말했는데 자네는 그걸 못 참고 화를 내는군’ 이라고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 날 한국 사람들은 어떤 학자들이 말했듯이 ‘냄비근성이 강하고 화끈한 유목민족기질’이 있기 때문에 점점 참을성 즉 인내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를 상실하고 하루에도 너나할 것 없이 가정, 교회, 일터, 친지들 중에서 늘 다투기를 좋아하고 비판적이며 남을 지배하고자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실로 이런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은 곤욕스럽기 짝이 없다. 달래거나 설득하려고 애써 봤자 소용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를 다스리는 요령으로 첫째, 화를 일으키는 감정을 찾으라고 한다. 즉 좌절감, 위협, 두려움, 거절감, 아픔, 질투 중에서 화를 일으키는 감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한다. 둘째로 경멸하는 말을 삼가라고 한다. 화를 낼 때 경멸하는 말은 사람의 자존감을 망가뜨릴 수 있다. 관계를 끊거나 일을 그만두자는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셋째 자신의 감정 상태를 상대에게 알리라고 한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화가 났다면 빈정거리거나 모욕하지 말고 자신의 기분을 털어놓고 상대의 말이나 행동이 거슬린다고 말하라. 넷째 몸싸움은 피하라고 한다. 절대로 때리거나 혹은 어떤 식으로라도 육체적으로 학대하면 안 된다.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 때는 그 자리를 떠나라. 가능한 빨리 자리를 피해야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다섯째 필요하면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자제력이 떨어질 때는 잠깐 산책을 하든지 아니면 앉아서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가라. 마음이 가라앉았으면 자신을 화나게 한 상황에 대해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라고 한다. 여섯째 운동으로 풀라고 한다. 화가 났을 때는 건설적으로 분출하는 것이 좋다.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는 논의가 좋은 방법이 못 된다. 이럴 때는 육체적인 활동과 운동이 좋은 배출구가 된다. 일곱째 용서하라고 한다. 노여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바로 ‘용서’ 하는 것이다.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사건에 대해서도 용서할 수 있는 성품을 만들어라.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 용서하라. 참고 용서하는 것이 인격의 힘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갈등은 참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고 용서하지 못하는데서 끝난다. 사람다움은 자제력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성경은 노를 어떻게 다스리라고 하는가? 먼저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분을 품는 경향이 있다. 또 매사에 자기중심적 이어서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 ‘네 탓’이라며 언성을 높여 싸우기 일쑤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하는 겸허한 자세로 분을 자제하고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 그러한 태도야 말로 남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대방을 부끄럽게 하는 진정한 지혜이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잠언을 보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12:16)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오래 참음의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 병사들이 모여들 때 베드로가 화가 나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 버렸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면서 말고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 그러기에 억울하게 손해를 본다고 해서 화를 벌컥 내기 전 우리와 같은 죄인을 향해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벧후 3:9). 아울러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한다. 성령을 힘입어 살 때만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 지라도 오래참고 인내함으로 노하기를 더디 할 수 있기 때문이다(갈 5:22, 23).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내함으로써 온전해 지고(약1:4) 장차 주님의 약속의 유업 즉 큰 상을 받기 때문이다(히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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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화를 다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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