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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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소설 <6호실>은 러시아의 한적한 시골에 있는 한 정신병동에서 일어난 이야기. 작가의 다른 단편들이 그렇듯이 줄거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1892년에 발표된 체호프의 단편의 제목 <6호실>은 그대로 보통명사가 되어 오늘날에도 러시아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비꼬아서 하는 말로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그게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 <6호실>을 다시 뒤져보게 된다. 주위를 살피노라며 여기저기에 <6호실>은 산재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다 내가 이미 그 <6호실>에 수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한적한 시골에 병원이 하나 있다. 좀 떨어져서 “6호실”이라 부르고 있는 격리병동이 있는데, 가시 울타리로 둘러쳐져 있지만, 별로 시설도 없고 언제나 드러누워서 빈둥대는 감시인 말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어 보이는 초라한 시설이다. 
의사 안드레이 예피모치 라긴이 이 시립병원에 원장으로 부임해온다. 환자를 대하는 라긴의 태도는 여느 의사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병동의 살균과 소독을 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환자들과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럼에도 의사로서의 안드레이 예피모치 라긴의 노력은 점차 한계를 보이게 된다. 
라긴 원장은 젊어서 신학대학에 가려고 뜻을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의 강요로 의사가 된 것이었다. 부임 초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환자를 돌보았다. 그 결과 병원의 분위기와 상태는 몰라보리만큼 개선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몸을 아끼지 않고 진료를 했어도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 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리들은 회계장부를 속이고, 사람들은 명예도 모르고, 삼갈 것을 삼갈 줄도 몰라라 하면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바보들로 보였다. 마침내 진료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격리병동도 내버려 둔 채 날마다 좋아하는 독서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철학을 말할 상대도 없는 한직에 내몰린 것을 슬퍼하고 있는 원장은 의학공부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후회한다. 신학을 공부했더라면 지금은 지식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병원과 격리되어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 “6호실”에는 다섯 사람이 입원해 있었다. 어느 봄날 밤, 라긴이 우연하게도 6호실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그의 6호실 방문이 무척 잦아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라긴이 6호실에서 말벗을 찾았기 때문. 이반 드미트리치 글로모프 33세는 귀족출신이었으나 몰락하여 현청에서 집달 리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신경질에다 과민한 소심성 탓으로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발광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원장 라긴이 이 환자의 지성과 교양에 감동하여 격리병동에 살다시피 하며 그와 철학을 논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환자가 흥분해서 광기어린 언동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것조차 라긴의 가슴에는 신선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의사 라긴은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진리와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의사 라긴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는 자신이 환자가 되어 격리병동에 수용되게 된 것이다. 결과는 언제나 누워서 뒹굴기나 하는 게으름뱅이 직원에게 매 맞은 다음날 아침, 사늘한 주검이 되고 만다.
미라 잡이가 미라가 된다했던가. 원은 격리병동에 환자를 입원시키는 쪽에 있었던 의사가 역전하여 환자가 되어 격리병동에 갇히게 된다는 을씨년스러운 스토리전개는 동서고금을 통해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 전개법이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귀를 스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들린다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이미 내게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아닐는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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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6호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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