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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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한 외국잡지에 실려 있는 글을 오려서 읽던 책 사이에 끼워두었었는데, 최근 우연히 그 쪽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D. Carnegie의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 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 중의 일부로 “아빠가 자주 잊어버리고 있는 일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잠들어 있는 아들 곁에서, 조용히 아버지가 중얼거린다. ‘미안하다 아가야. 오늘 조반을 먹으며, 마치 일과처럼 너에게 잔소리를 했었지. ‘버터를 너무 발랐어!’ ‘또 우유를 엎질렀군!’ ‘식사를 하는 자세가 그게 뭐람!’하고.
그런데도 오늘 아침, 내가 출근할 때, 너는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잘 다녀오세요.’하고 손을 흔들어 주는데도 나는 너에게 ‘자세가 좋지 않아, 어깨를 쭉 펴야지!’하고 화를 냈었지.
저녁 때, 회사에서 돌아오는 아비를 본 너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중이었는데도, 내게로 달려와서는 ‘아빠, 우리가 이겼어요!’ 하고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일러주었을 때, 나는 ‘너 또 양말을 찢었군. 양말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하고 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았었지.
저녁식사 후, 서재에서 석간을 읽고 있을 때, 가볍게 문을 노크해준 너에게 “지금 왜?...”하며 귀찮은 듯이 잔소리를 쏟아 부었었지. 그래도 너는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계면쩍은 듯이 달려와서는 나의 목을 껴안아주면서 ‘아빠 편히 쉬셔요.’하고 미소로 키스해주었지.
그 순간, 마음이 아파왔단다. 읽고 있던 신문이 손에서 떨어지고 나서 한 참이나 멍하니 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단다. 나는 나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야. 그래서 이렇게 사과하러 왔단다. 미안해. 지금도 내가 옳았다고는 믿고 있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거야. 네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어.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해줄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한 마음씨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아. 앞으로도 혹 너를 엄하게 꾸짖어줄지 모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더 오래 너와 같이 있어주면서 같이 놀고, 같이 웃자고. 미안했어, 아가야‘“
얼마 전, 10여명의 4,50대 남녀가 모인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반응은 의외였다. 요즘의 대한민국이라면 그런 아버지는 흔해빠졌지만, 그런 아이는 눈을 부비며 찾아도 없을 것이라는 것. 이야기꾼의 말솜씨가 서툴러서인지 전혀 기대와는 다른 반응을 불러오고 만 것이다.
TV나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정보가 넘치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현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손쉽게 무엇이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노력을 등한히 할 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칠까. 우리의 앎은 넓은 것 같지만 그 넓이라고 하는 것은 평균적인 넓음일 뿐, 조금만 관심을 돌리거나 깊이를 지닌다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할 영역이 많이 널려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정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마다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거나 처해있는 사정이 있게 마련이고 그 사정을 감안한 대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 다음과 같은 삽화가 있다. 회사의 경영주 토머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은 채, 어머니 엘리자벳이 자신의 지참금에서 꽤 많은 금액을 토마스의 아우 크리스천에게 송금해주었대서, 대노한 토머스가 어머니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사장에게 아무런 의논도 없이 제멋대로 대금을 빼돌린 어머니의 처사에 화가 난 것이다. 어머니로서는 자신의 돈을 아들에게 주었을 뿐인데, 토마스로서는 사장인 자신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대금에 손을 댄 어머니의 처사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요즘 들어 이따금 <바울의 사랑노래>(고린도전서 13장)를 읊게 되었다. 한동안 읊기를 등한했던 것을 뉘우치면서... “내가 비록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 주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내 몸을 내주어 불사르게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주는 여유도 사랑의 일부일 터.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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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자주 잊어버리고 있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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