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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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만인이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라는 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천명하였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어떤 것이나 인간 영혼의 어떤 부분을 두고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인간, 곧 자신을 선지자같이 생각하고, 제사장 같이 느끼고, 왕같이 행하는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제사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처럼 만물의 통치자로서의 왕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제사장이라는 역할은 카톨릭 사제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모든 신자들이 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개혁자들은 바로 이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 모든 성도들이 다 선지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그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다 선지자라는 것의 의미를 더 정교하게 파악하고, 강조했더라면 아마 기독교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선지자는 단순히 장차 있을 일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다. 그 근본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이다. 그는 그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몸짓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대언하라고 하신 말씀이 장차 이루어질 예언일 수도 있지만 과거나 현재의 일을 깨우쳐 주시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선지자를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입” 혹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타락하여 죄와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새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와 회복의 계획을 세우신다. 하나님의 회복은 말씀을 불순종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세력을 얻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세상, 그리하여 적대감과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사 2:1-4; 11:1-9; 렘 31:31-34; 겔 47등).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직무를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물론 노아, 아브라함, 모세를 비롯한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이들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 주셔서 그것을 전하고, 해석해주시고, 순종하도록 가르치게 한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직접 언급하신다(창 20:7). 말씀을 통한 구속 역사는 모세에게 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시고 그의 말씀을 그의 입에 두겠다는 약속, 곧 대선지자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약속(신 18:18) 을 통해서 그 윤곽이 분명해진다.
모세는 70인의 장로들이 그에게 임하신 성령과 같은 성령을 받은 장로들이 예언을 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서 그분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셔서 모두 선지자가 되게 하셨으면 좋겠다”(민 11:29)는 희망을 토로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그들의 입에 주시고, 하나님의 종말의 비전을 실현해 가신다.
그리고 때가 되어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셨다. 예수께서 백성들의 죄 값을 대신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제사장적 직분을 감당하셨으며, 부활하심으로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 곧 새로운 왕으로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의 직분을 수행하게 된 것이라면, 그의 생전에 온 유다 땅을 다니시며 말씀을 가르치시고 제자들을 양성하신 일은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감당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 선지자로서의 그의 사명을 마치신 후, 그의 부활 승천 직전 제자들을 불러 선지자 임명식을 가지셨다. 제자들에게 제자를 삼으라(make a disciple maker)는 명령을 주시는 데 이 명령이 선지자 임명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첫째로 이 대사명을 기록한 마 18:16-20이 구약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부르시는 소명 기사의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예수께서 이들에게 주신 사명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그가 가르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위로부터 말씀을 받아 가르치는 일은 선지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을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당시의 제자들에게 그가 명한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선지자적 사명을 주시고, 새 언약의 선지자로 임명하셨다. 그러나 선지자는 위로는 하나님의 인증이 필요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인정이 있어야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 말씀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는 일꾼들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오순절에 불과 같이 갈라진 혀 모양으로 임하셔서 사도들과 제자들의 입을 터치하셨다.
이와 동시에 제자들은 각 나라 말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의 입에 손을 대심으로 “너는 내 입이다”라고 인을 치신 것과 같이 제자들의 입을 터치하시고 선지자로 세우신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새언약의 선지자로 임명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이들을 인치신 것이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새언약의 선지자로 세우는 위임식이라고 할 수 있다(주: 손석태,  “성령세례 다시 해석한다” 47-61)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신 선지자적 대 사명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초월한 명령이다.
 “모든 민족에게” “세상 끝날까지”라는 말씀은 이 명령이 단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나가서 앞으로 계속 이 일을 이어갈 “제자를 양성하는 제자들”(disciples making disciples) 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통하여 선지자적 사명을 위임 받았다.
그러면 오순절 이후의 제자들은 언제 새언약의 선지자로 위임을 받는 것인가? 물세례를 받을 때이다.
우리 죄인들은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천명한다.
따라서 우리는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함께 받는다고 우리는 믿는다. 예수님도 대선지자로의 사명을 개시하실 때 물세례를 받으셨고, 바로 이 때에 그의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셨다. 따라서 성령세례는 물세례를 받을 때에 함께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세례의 가시적인 상징이 바로 물세례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에 새언약의 선지자로서의 위임을 받는 것이다.
세례는 신자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새언약의 선지자로서의 위임식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말씀을 전하고,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을 적용하는 일을 할 뿐 아니라 이러한 일을 계속해야 할 제자를 양성해야 한다.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은 모두가 선지자가 되어야 한다.
종교 개혁자들이 가르치고 천명한대로 모두가 선지자 노릇을 해야 한다. 목사가 세례를 줄 때에 세례 받는 성도에게 반드시 그가 선지자가 되었음을 공포하고, 그의 일생이 선지자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세례교인의 교회에서 할 일은 십일조 내고, 주일성수하고, 공동회의에 참석하는 일 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전도하고 말씀 가르치는 일이 세례 받은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 임을 강조하고 가르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적 사명은 새로운 계시를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선지자들과 시도들을 통하여 주어진 정경적 계시, 즉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개신교회는 카톨릭 교회와 대항하여 신자들의 만인 제사장 됨을 많이 강조하고, 우리 성도들의 만인 선지자 됨을 가르치지 않았다.
나아가서 만인의 왕 됨에 대해서도 목회자와 장로들의 왕 됨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평신도들의 왕 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우리 개신교는 이제 만인이 선지자 됨을 강조하고, 선지자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때에 비로서 모세의 소망(민 11:29)이나 하나님의 종말적인 비전(사 11)이 성취되며 새로운 부흥의 역사 일어날 것이다.  
개신교는 이제 신자들의 만인 제사장직을 강조하는 것 보다 만인 선지자직을 더 강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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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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