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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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를 쓴 호이징거(Huizinga, Johan)는 <에라스무스-종교개혁의 시대>도 집필했다. 둘은 모두 네덜란드 출생. 1872년생인 호이징거가 1469년생인 에라스무스의 생애를 책으로 쓴 것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에라스무스를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라 부르곤 했다.
호이징거는 쓴다. “베니스의 귀족정치를 제외하면, 네덜란드의 귀족정치만큼 오래 정교하게 비폭력적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역사는 없을 것. 외국인의 눈에 17세기의 네덜란드 공화국이 번영과 자선과 사회 훈련에서 모범으로 비쳤다면 (비록 우리들 네덜란드 사람에게는 불완전하게 비친다고 하더라도...) 그 공적은 정부를 운영했던 귀족계급에게 돌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호이징거는 그의 조국이 그러한 역사를 가질 수 있게 된 데에는 적어도 에라스무스의 영향이 없지 않았으리라는 고백을 덧붙인다. “네덜란드 귀족들에게 그런 동기가 살아있어 행동으로 옮겨졌다면, 에라스무스가 강조한 사회적 책임정신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 네덜란드의 역사는 주변의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피 흘림과 잔인함이 훨씬 덜했었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 개인사에 대해서도 기록한다. “‘내가 공격당해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그 누구도 노하게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에라스무스의 말이다. 그러나 그의 적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
“늘그막 해서는 격한 논쟁에 이골이 난다... 루터나 그 밖의 다른 이들과 여러 차례 논쟁을 벌이고 만다. 처음 한동안은 무척 괴로워했다... 만약 에라스무스가 여론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했다. 아니면 자신의 옳음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쳤다 해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언행이 미칠 효과에 대해서 사전에 약간은 과장된 색채를 칠해서 내다보곤 했다.”     
그는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요청에도 신구 어느 편을 편들어 싸우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그 누구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는 그를 ‘병신’ ‘비겁한 자’로 보는가 하면 ‘해바라기족’이라 손가락질 했다. 그가 바라지 않았던 것은 ‘교황’이라거나 혹은 ‘반항자 루터’ 와 같이 직접 이름을 내건 아무개나 특정인을 공격하는 짓거리였다. 반면에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어리석음’ ‘폭력’ ‘격정’ ‘광신’에 대해서는 죽기까지 싸웠다.
여기저기에서 인용해본다:
-그는 오로지 ‘광신’만을 이성의 적이라며 마음 깊이에서 미워했다.  
-그는 수도원으로부터 도망쳤다. 답답함과 편협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것을 미워했다.
-그는 다중의 열기가 느껴지는 공기와 악취를 무엇보다 싫어했다. 구린 냄새를 피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가곤 했다.
-교란을, 거칠고 조화롭지 않은 것을 무엇보다 혐오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투쟁을 혐오하게 한 것이다. 그는 그 누구와도 다투는 것을 견딜 수 없어했다.  붓에 피를 묻히지 않기를 원했다. 자신이 공격받을지라도 타자를 공격하지 않으려 했고, 그 누구도 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곧 이 말 자체였다. 그러나 그의 적들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
- 논쟁을 싫어하고 독선을 미워하고 격정을 마다했던 에라스무스는 오직 그의 필봉을 인간의 어리석음에 견주면서도, 풍자라는 형식을 빌려 해학의 옷을 입혀가며 인간의 본성을 비웃곤 했다. 그 결실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는 <우신예찬>이 아니던가. 이 작품을 통해서 ‘바보 신’을 예찬하는 것은 풍자이고, 야유이고, 역설이고, 익살이었다. 에라스무스는 ‘바보 신’ 모리아의 입을 빌려 인간의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비웃어준 것이다.
이쯤해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의 승리와 비극>)에서 몇 곳 인용해본다.
-흔히 “에라스무스가 낳은 알을 루터가 부화(孵化) 시켰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였다. 루터는 싸우기와 논쟁을 좋아했으나, 에라스무스는 그러는 것이 질색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큰 저택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그 저택 때문에 소송을 해야 한다면 나는 그 저택을 남에게 주고 말겠다.”
- “그는 죽었다. 홀로 외롭게...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에게는 독립과 자유가 있었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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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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