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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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처음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두 번째 받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처음 것과 같은 두 돌판을 준비하게 하셨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사십 주야를 지내면서 우상숭배 금지에 관한 계명과 반드시 지켜야 할 것과 절기에 관한 것들을 하나님께 받고. 돌 판에 새겨진 계명을 받는다.
첫 번째 돌판이 깨어진 것은 백성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돌 판은 깨뜨리지 않고 거룩한 법궤 속에 안치 했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깨뜨린 하나님의 법을 마지막 아담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예표로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하셨다. (마 5:17-18).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려 오셨다.
아담이 율법의 대표라고 하면 예수님께서는 의의 대표자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두 번째 율법은 깨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율법 판을 법궤 속에 넣어둔 것은 (신 6:19)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공의와 사랑이 공존하심을 보여주신다.
은혜라는 단어는 우리의 심령에 진정한 평안을 주심을 의미한다. 비록 법궤 속에 공포의 율법이 들어 있을지라도 ‘속죄소 위에 피가 있으면 우리의 심령은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속죄소를 시은 좌 (施恩佐)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보좌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기를 원하는 이유는(히 4:16) 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고 그들의 우상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기브온 족속들의 속임수에 속아 그들과 언약을 체결함으로 두고, 두고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은 우리의 본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와 허물의 장벽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 인간이 해결 할 수 없기에 예수께서 인간의 죄와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 산에서 사십 주야를 금식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전달되어진 것이다.
모세에게 40년 동안 지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가는 길에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영광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주와 함께 사십일 밤을 그곳에 있었으나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더라.28절)가 증명 한다. 모세는 지고하신 분의 은밀하신 곳에서 전능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였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영광을 찾으려고 한다. 영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영광의 광채를 누리기를 원하는가? 모세는 영광을 얻은 자였다. 그는 용사들과 정치가들과 문인들 사이에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은 얼마나 가게 될 것인가? 우리들은 어디에서 영광을 구하고 있는가? 만일 참된 영광을 구한다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
그리하면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요 17:22) 주님께 주신 영광을 우리도 누리게 되어 질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 (고후4:4)라고 하였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광채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수건이 주님이 오심으로 벗어졌다.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 3:14)고 한다.
말하자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 부터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 (골 1:26)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아직도 유대인의, 안목으로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않고 있어서 참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바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듯 (행 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라고 기도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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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체험한 자(출 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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