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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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네카는 네로가 열두 살 날 때부터 14년 동안 네로 곁에 있었다. 처음 여섯 해는 가정교사, 이어지는 여덟 해는 정치적으로 보좌한다. 그렇다고 황제가 된 이후 줄곧 네로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세네카가 나이 들면서는 네로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낌새를 느꼈을 것이다. 정치적 군사적인 면에서는 그 영향력이 줄었다 하드라도 음악과 시 쪽으로 기우러지고 있는 네로에게 있어서 세네카는 요긴한 조언자였을 터.
권력을 가진 자는 그렇지 못한 이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게 마련. 식민지 브리타니아를 상대로 고리대금을 한 것은 세네카만이 아니었지만, 원로원은 세네카가 그 우두머리인 양 비난했다. 게다가 무사로서 세네카와 함께 어린 네로를 가르치고 지켜왔던 아프라니우스 부르스의 죽음은 네로를 불안하게 했다. 이미 60대 후반에 접어든 세네카는 은퇴해서 저작활동에 전염하기로 한다. 35세 제자와 66세 스승의 이별은 평온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네로의 지시로 세네카는 자결하게 되는데...  
네로는 아내 옥타비아를 버리고 애인 포페아와 결혼한다. 옥타비아는 살해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지 않는가. 네로가 황제가 된 것은 앞선 황제 글라디우스의 양자가 되어 그의 딸 옥타비아와 사이에 자식을 가지게 됨으로써만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을. 그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 아그리피나가 그렇게도 반대한 이혼이 아니던가. 네로가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죽였다는 소문이 돈다. 네로가 황제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인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새로 왕비가 된 포페아는 이것 보란 듯이 사치에 치우쳐 시민들의 눈 밖에 난다. 스무 다섯 살 네로, 그만한 고비쯤은 해결될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네로는 소년 시절부터 시를 좋아했다. 손수 수금을 켜며 자작시를 노래하는 황제의 연주회는 관중으로 붐빈다. 노래하는 황제라! 어찌 대중의 흥미를 끌지 않겠는가. 게다가 공짜라는데. 우쭐해하는 네로. 그러나 사건들이 이어진다. 로마에 큰 불이 나자 그리스도 교도를 박해한다. 처형을 구경거리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도를 처형하는 잔혹한 볼거리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진다. 타키투스는 기록했다. “그들이 더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드라도 처형하는 방법이 지나치게 잔인한 것은 시민들의 가슴을 동정으로 몰리게 했다.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잔혹한 처형은 공공의 이익 보다는 몇 사람의 잔인한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란 것을...” 그리스도 교도를 방화범으로 몰아 자신에게 솔려 있는 시민들의 의심을 불식해보려 했던 네로의 의도는 실패한다. “방화범은 네로!”라는 소문이 발 빠르게 번져나갔다.  
태어난 지 16년 하고 10개월짜리 틴에이저가 로마의 황제가 되었을 때, 국민의 지지율은 꽤 높은 편이었다.  세네카가 작성하고 네로가 낭독한 원로원에서의 시정방침 연설문의 대강은 이렇다.  
“...짐에게는 통치권을 차질 없이 행사하기 위한 훌륭한 조언자와 모범이 있다. 젊었기에 시민들의 다툼이나 가정불화에 몸을 적시지 않고 있다. 그 누구에게도 증오를 품은 적이 없고, 그 누구로부터도 모욕을 받은 적이 없다. 따라서 복수의 욕망도 없다.”
-조언자는 원고를 써준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일 것이고, 모범이란 아우구스투스 황제일 것- 연설은 이어진다. “나는 사법권을 소수의 손에 맡기지 않을 것이고, 짐의 집에서 매수나 정실로 통하는 길은 모두 없앨 것이다. 카이사르의 집안과 국가 사이에는 명확한 선을 그을 작정이다. 원로원은 예부터 내려오는 권한을 확보해도 좋다.”
취임 연설은 결코 공수표가 아니었다. 네로를 규탄하기 위해 서슴없는 글을 썼던 타키투스마저 “이 약속만은 네로가 충실히 지켰다.”하고 기록했으니.    
감동한 원로원 의원들은 네로에게서 아우구스투스의 재림을 본다. 연설문을 은판에 새기고, 황금으로 황제의 상을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더러는 네로가 태어난 12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해야 한다며 흥분한다. 그럼에도 네로는 과장된 영예라며 물리친다. 원로원은 감사의 말씀만이라도 받아 주십사 간청하는데, 네로는 “받을 만한 자격이 되었을 때에 주시오.”한다. 결국 그 때는 영영 오지 않고 말았지만, 그와 같은 겸손이 네로 본래의 자세였는지 세네카의 지시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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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와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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