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한국교회 이단연구는 ‘동물의 왕국’ 보는 것 같아

이단감별사들 중엔 싸이코패스와 성격적 장애자들도 있다




모든 종교에는 이단운동이 있다. 특히 기독교는 이단논쟁을 통해 교리와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참과 거짓을 밝혀왔다. 이단논쟁은 어느 시대나 교회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교회 작금의 일부 이단감별사들의 망동은 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연말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고창곤목사)가 회원교단이 연구를 의뢰한 장재형목사의 통일교 관련설과 변승우목사의 이단성 연구가 ‘혐의 없음’으로 결론나고, 류광수목사의 다락방운동과 김기동목사의 베뢰아운동이 재심청원이 들어오자,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해온 이단감별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한기총 이대위가 돈을 먹고 이단을 해제하려 한다”며 설레발을 떨고, 또 인터넷 매체들이 이들의 유언비어를 그대로 받아 사실인양 떠벌려 교계를 혼란스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이것은 한국교회 이단연구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를 두고 한기총 이대위의 한 인사는 “의사가 자기 환자의 오진(誤診)이 들통날까봐 다른 병원에서 진단도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회원교단이 재심청원을 해오면 기존에 각 교단이 정죄한 내용이 합당한 절차와 사실 관계가 증명되는 것인지 등을 살펴보고 그 연구 결과를 밝히는 것이 한기총 이대위의 일인데, 재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들(이단감별사)이 엉터리 연구로 이단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온갖 음해성 유언비어를 만들어 한기총 이대위 활동을 불신케 한다는 설명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교계의 일부 인사들은 순진하게도 4인방 혹은 5인방으로 표현되는 이들 이단감별사들의 말을 그대로 믿고, 한기총 이대위 위원들이 정말로 이단들로부터 돈을 먹고 이단을 해제하려 하는 줄로 알고 실행위원회에서 이대위 해체론까지 들고 나왔다. 또 어떤 이는 한기총 이대위가 이단을 해제하면 국제적으로 이단연구기관을 만들어 다시 이단으로 묶고, 이단을 해제한 이대위 위원들을 ‘이단옹호자’들로 정죄한다는 황당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이단은 누가봐도 이단이어야 한다. 이게 이단인지, 아닌지 아직 명학히 드러나지 않았다면 그 열매가 맺힐 때까지 그대로 기다리면 된다. 주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일이 있다. 농부가 잠자는 사이 밭에 원수가 가리지를 뿌려 곡식과 함께 자랐는데, 일꾼들이 그것을 보고 밭에 가라지를 뽑을까요? 라고 주인에게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으려다 곡식까지 다칠지 모른다며 추수 때 함께 거두어 곡식은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묶어 불태우면 된다고 했다(마13장).
그런데 이단감별사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자신들만의 비법으로 병아리 감별하듯이 이단을 감별하고, 그들을 공교회의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이건 순전히 그들의 영웅심리에서 비롯되었거나, 성격적 장애를 겪고있는 싸이코패스의 소행일 가능성이 많다. 싸이코패스는 평소에는 일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위험성을 느낀다든지, 남을 괴롭혀야 자신이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납치, 감금, 살인을 일삼는다. 그래도 주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한국교회 이단감별사들 가운데 좀 잘나가는 목회자들을 괴롭히고 인격살인을 일삼는 것은 싸이코패스적 유형의 성격 장애자들의 행동과 유사한 것이다.
이때 이들의 공격대상은 대체로 교단적 배경과 신학적 배경이 빈약한 인물 중에서 교회가 급성장하고 좀 인기가 있는 자를 고른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과 같다. 배고픈 사자가 사냥감을 고를 때 아무 동물이나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다니는 놈이나, 좀 다쳐서 절뚝거리는 놈이나, 또는 나약해 보이는 어린 놈을 골라 공격한다. 한번 찍힌 놈을 끝까지 쫓아가 쓰러뜨리면, 주위를 맴돌며 지켜 보고있던 다른 사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뜯어먹는다. 한국교회 이단연구가 이 꼴과 꼭 닮았다는 말이다.
한국교회는 든든한 교단적 배경에 있는 인물들은 그에게 어느 정도 이단성이 있어도 아무도 건들지 않는다. 잘못 건드렸다간 교단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오히려 자신들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단적 배경이 빈약한 목회자는 사소한 말실수나 한 두 줄의 잘못된 표현의 글을 문제삼아 쉽게 공격당할 수가 있다.
솔직히 개신교회 목사치고 이단성 발언을 전혀 하지 않는 목사는 거의 없다. 왜냐면 설교 중심의 개신교회 목사는 많은 설교를 해야하고, 또 새로운 설교로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아니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다. 말이 많으면 어딘가 말실수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말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듯이, 이단감별사가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 목사의 말실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다른 동료목사들은 아무 내용도 모른채 ‘그런가 보다’하고 공격받는 목사를 슬금슬금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떤 이해관계가 얽히면 자기도 그에게 돌을 던지는 무리 속에 들어가 옛동료를 죽이는 편에 선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단에 영향을 행사하는 지도자들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내 문제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외면한다는데 있다. 그리고는 교단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조하고는 “총회가 결정한 일이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며 애써 변명한다.
심지어 이단감별사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동조하지 않는 교계언론에도 테러를 감행한다. 그래도 좀 힘이 있는 언론사는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고 만만한 언론은 ‘이단옹호신문’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것도 자신이 속한 총회의 이름으로 정죄하고는 “총회가 결의한 일이지 나는 책임이 없다”며 타조가 모래밭에 머리를 쳐박듯이 이름을 감춘다, 목회자는 남 살리는 일이 직업인데 어쩌다가 그 좋은 머리를 남 죽이는 일에 쓰는 것인지, ‘성격적 장애자’란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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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이단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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