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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난에 대한 선교적 의미
    2015년 한해를 마무리 짖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누구에게나 희망과 고난이 겹치는 것 같다.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또 다른 해인 2016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고난 속에서 허우적거린 사람들은 어서 속히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 나기위해 기도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말씀 하셨다. 바울의 선교 초기에 로마에 있는 교우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 가운데 있었는가를 집작하게 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성도들의 삶이란 간단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 칼빈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각각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화의 길은 어차피 십자가의 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도 독생자이신 예수님께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지체들의 고난은 복음을 방어하고, 모든 형태의 의를 방어하는 일과 대적들로부터 오는 핍박에서 일어나게 된다. 칼빈은 가혹한 고난을 통해서 주님과 사귐으로써 고난 자체가 우리에게 복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촉진하는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은 성도들의 십자가와 성화의 필연적 연관 관계를 다음의 몇 가지로 논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성도가 일생동안에 계속적으로 십자가 밑에서 지내야할 이유는 고난이 자아의 교만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겸손을 배우는 길이라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관이라는 역경의 병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며, 육에 대한 사악한 신뢰를 탈피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 하게 된다. 둘째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을 경험하는 기회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준다. 셋째는, 십자가는 우리의 인내와 순종을 훈련시킨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주신 인내력과 지조를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인내를 시험 하신다(창 22:1,12; 벧전 1:7)고 말한다. 모든 일에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우리는 백방으로 이 순조의 습관을 우리에게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처사를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된다. 넷째는, 십자가는 약이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벌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끌려 그의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나 우리는 반대로 악의를 품고서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받고도 계속해서 타락한다. 따라서 성도가 충동으로 날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벌을 내려서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 다섯째, 십자가 밑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개혁신학자인 칼빈 목사님께서 주장하신 고난에 대한 해석은 성도는 고난이 왔을 때에 축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침착한 마음과 지혜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의 길은 성도에게 유익으로 주는 변장된 축복이다. 성도가 십자가를 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의와 공평이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하나님은 지극히 원하신다는 사실이다.선교적인 삶이란 항상 고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불충분은 물론 가정 속에서 직장 속에서 그리고 넓게는 사회 속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직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좌절과 고난은 기차의 레일과 같이 늘상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멀리하는 시간은 모든 생명의 세포가 활동을 중지한 죽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세포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난이야 말로 선교적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친하게 지내야 할 친구라고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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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11
  • (정신재) 고향에 가면
    고향에 가면 목 영 민고향에 가면 산에 새소리 들리고외양간에 소가 여물을 먹고똥개는 툇마루에 낮잠을 자고뒤뜰에 암탉은 알을 낳았다고 울어댄다할아버지는 장에 가서 친구 만나 곡차 드시고거나하게 취하셔서 또 늦으시나 보다금년 봄에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는남쪽 나라로 떠난 지 오래고 뒷동산에 대추나무올해도 가지가 휘어지게 달려 있다길 건너 산에 밤나무에는 탐스러운 밤이 주렁주렁달려 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할아버지 할머니버선 발로 나와 반갑게 맞으시고씨암탉 잡아 주실 것만 같은데이미 저승에 가신 지 오래다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언제나가고 싶은 고향 내 고향이다하나님의 자녀에게 고향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인간은 누구나 다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곳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이지요. 고향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주님을 통해서 갈 수 있는 나라가 그곳입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행 2:28). 이곳은 믿음이 행함과 함께 온전하게 될 때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약 2:22). 이곳에 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합니다(에 2:22).위 작품에서 화자는 고향에 가고 싶어합니다. 그곳에는 정들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소와 개와 암탉과 제비가 평화롭게 있는 곳입니다. 그리하여 정든 사람들이 정을 담뿍 담아서 나누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자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언제나/ 가고 싶은 고향 내 고향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보다 더 가고 싶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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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시선
    2015-12-11
  • (정신재)병원
    병원 원 응 순나를 외면하고 너를 마중하는괴로운 표정이 방마다 걸리고빠알간 의식이너울너울 춤추듯 왕래하는공포를 주사하고-,사늘한 미소의 언저리나를 헌신하는모순 속에희생을 투약하는 창구.항시 나를 외면하고너를 마중하는밀림지대,거래의 ‘메스’가 번쩍이는수술대 위,환자의 아픔이 꿈틀거리는시장市場,상냥한 점원의 손길이독점하는 ‘디파트먼트’,항시나를 외면하고너를 마중한다.“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베드로가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칠 때 한 말이다. 위 시에서 화자는 “나를 외면하고/ 너를 마중”하면서 치유를 간구하고 있다. “너”는 의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의로써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기를 원하신다. 의를 말씀하시는 진리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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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4
  • 장로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교훈
    이 땅의 민주화의 거목으로 사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바울사도는 말씀하였지만 그분의 빈자리가 크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특히 장로 대통령으로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정치를 기대하게 만든 장본이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22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김영삼 장로님의 생애를 조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1927년 태어난 김영삼은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을 둔 덕분에 생활의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6.25 전쟁이 끝난 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자유당 공천을 받아 만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비록 그는 자유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제한철폐에 반대하고 탈당하고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 생활을 이어갔다. 5.16 쿠데타 이후 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출소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질산 테러 사건을 겪기도 했다. 당시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내적으로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았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는 YH 사건으로 김영삼의 존재가 정권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경호권 발동으로 수백 명의 무술경위를 출동시켜 놓고 국회 별실에서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10여 분 만에 변칙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 사건으로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부마민주항쟁을 촉발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야당인 신민당이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지만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아 민주화의 길은 다시 멀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에게는 사형을 선고했고, 김종필은 보안사령부에 감금시켰으며, 김영삼은 가택 연금 조치를 취하며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은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정권에 굴하지 않았고, 결국 오랜 민주화 운동 끝에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으나 제13대 대선에서 김대중과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군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민주화 운동의 두 거목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충격은 컸다. 그리고 당시 극도의 여소야대 구도에 힘겨워했던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과 김종필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는 3당 합당이라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크나 큰 대사건으로 이어졌다.3당 합당으로 거대 정당의 힘을 얻은 김영삼은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또 다시 맞붙어 42%의 지지를 받으며, 33.8% 지지에 그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킨다는 의미로 정부의 명칭을 ‘문민정부’로 지었으며, 재임 초기 명성에 걸맞은 행보를 계속했다. 그는 군대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군사정권이 다시 들어서는 싹을 잘라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키웠고, 전두환과 노태우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하나회는 하룻밤 새에 김영삼 대통령의 발 빠른 행보로 소멸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든지 공과가 있다. 그는 군사 정권과 손을 잡아 대통령이 된 것은 비판 받을 부분이지만,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후, 하나회를 숙청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바로잡기 운동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지는데 큰 공을 세웠다.또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검은 돈의 유통을 막아 경제민주화의 토석을 다졌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지방자치제도 실시 등의 업적으로 여론조사 공식 지지율 90%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청춘을 바쳤으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김영삼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군사정권과 손을 잡은 ‘3당 합당’과 국민들을 고난에 빠뜨린 ‘IMF 사태’는 그의 그림자다.최근 우리는 현대사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장로님으로서 우리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영삼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쉽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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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2-04
  • 아우슈비츠의 음악대
    1937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우람한 체격의 빌헬름 프루트벵글러와 남달리 키가 작은 아르투르 토스카니니 두 거장이 만나 언쟁을 벌인다. 토스카니니 왈: “나치의 나라에서 지휘하는 자는 모두 나치이다.” 이를 받아 프루트벵글러는 “예술은 정치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베토벤이 연주되는 곳에서는 언제나 자유가 있다.”하고 응수했다. 만약에 둘의 만남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우슈비츠의 음악대>란 책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면 같은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을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우슈비츠의 음악대>는 1948년, 프랑스에서 출간 책으로, 같은 음악가라도 유대계는 배척을 받아 마치 가축처럼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던 나치 지배시절, 우연히도 음악대원으로 발탁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몬 랙스(Simon Laks)와 르네 쿠디(Rene Coudy) 두 사람이 펴낸 수용소 생활의 기록. 어느 날 ‘나’는 수용소에 도착한 커다란 짐짝 속에서 나무로 만든 보면대를 발견하고, 이 죽음의 수용소에 왜 보면대가 필요할까 생각했다. 장송행진곡을 위해서? 아니면 죽음의 무도회를 위해서? 나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너희 중에 음악가가 있는가?”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 이송되기 전, 색소폰을 연주하는 한편 편곡가로도 활동했던 ‘나“는 그렇게 아우슈비츠 음악대원 명단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수용소 이발사는 너는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음악대원은 모두 35명. 하루에 두 차례, 새벽에 수용수가 작업하러 나갈 때와 저녁 무렵 그들이 돌아올 때 연주했다. 그 밖의 시간에는 노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스실과 총살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언제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나’는 열심히 연주하며 간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독일군의 유대인 학살은 계속되었다. 수인들이 가스실이나 사형장에 끌려갈 때도 우리는 연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러 친위대원들과 수용소 간부들의 파티에 불려가 연주하기도 했고, 사령장관 슈바르츠 후버의 탄생일을 위해서는 특별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오후, 수용소 간부들의 요구를 따라 독일 오페레타의 서곡을 연주하고 있었을 때, 솔로에 열중하는 프룻 주자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열중함으로서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는 표정 말이다. 그래서 그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들을 실은 트럭행렬이 화장터로 달려가는 것도 보지 못한다. 실려 간 여자들 가운데는 그의 딸도 섞여 있었는데 말이다. 비유대인인 선임자 악장이 권리를 남용하다가 개처럼 끌려가 목숨을 잃는가하면, 음악대와 친하게 지내던 집시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일도 있었다. 또, 사령장관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아내와 일여덟쯤으로 보이는 아들 형제를 데리고 와서는 행진곡을 연주하라 명령했을 때는 “왜 우리에게는 그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의 두 아들을 끌어다 불 속에 던져 버릴 용기가 없는가?”하는 생각을 하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니 연주가 어찌 아름다울 수 있었겠는가. 연주는 슬픔과 증오가 얽힌 영혼의 갈등이 번져나가는 그런 음악이었다.그러나 ‘나’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상상을 초월하는 특이한 일만이 아니라, 삶의 기본적인 조건이 철저하게 박탈되고 있는 지옥 같은 세계에서도, 인간의 삶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생활이 놀라우리만큼 일상적으로 영위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기록한다. 몰래 식량과 생활필수품은 물론 귀금속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지만, 하루에 수백 수천의 인간을 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악을 열렬히 사랑하며 음악대원들과 친해지려 하는 독일 친위대원이 있었다는 것은 더욱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음악을 통해 이루어진 그들과의 한 가닥 인연으로 해서 아우슈비츠 음악대에 속한 유대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음악활동은 “엄격한 규율 밑에 있는 수용소의 활동이 빈틈없이 진행하기 위한 일인 동시에, 수용수들을 감시하는 친위대를 즐겁게 해서 그들의 사기를 돋우어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도 최후의 순간이 온다. 소장은 떠나면서 말했다. “나의 음악대여!”하고. 물론 그는 체포되어 죄수가 되지만 수용수들은 해방된다. 그러니 나치를 낳은 독일 민족과 그들의 희생이 되었던 유대민족이 더불어 다른 민족들에서는 볼 수 없는 깊은 음악적 유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특이한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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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12-04
  • 주의 일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자인 맥클라덴 목사가 한 가정을 방문했다. 예배를 마치고 다과를 들던 중 그 가정의 부인이 말했다. ‘목사님, 저는 주님께 너무도 죄송합니다. 소녀 시절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작정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주님께 바친 봉사나 헌신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목사님은 부인에게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고 물었다. 부인은 한숨을 쉬며 ‘저는 하루 세끼의 음식 준비와 설거지를 했어야 했어요. 식구들의 빨래를 모두 해야 했고 또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자매님은 아이들이 몇입니까?’ ‘목사님, 우리 아이들은 넷이 아닙니까? 성경대로 이름을 지어 큰 아이는 마태, 다음은 마가, 셋째는 누가, 그리고 막내는 요한이지요’ 목사님은 다시 물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목사님께서 아시는 대로 큰 아이 마태는 중국에서 선교사로, 둘째 마가는 아프리카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우리 교회에서 파송하지 않았습니까? 누가는 제 형과 함께 중국에서 일하고 있구요. 막내 요한은 오늘 아침 나에게 말 하더군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같다고요’ 맥클라덴 목사는 말했다. ‘그런데도 자매님은 자기의 삶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자매님이 하늘에 갖고 있는 그 큰집이 부럽고 자매님이 주님의 보좌에 아주 가까운 것처럼 나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오늘 교회 안에 그리스도인들을 보자. 각각의 은사와 종류와 분량이 다른 것을 볼 수가 있다. 곧 하나님은 각 사람의 능력과 품성과 기질 등에 따라 그에 필요한 적절한 은사나 사명을 주셨다(고전 12:4~11). 즉 목회자, 장로, 정치인, 경제인, 과학자, 큰 능력자나 작은 능력자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각 사람이 받은 은사는 다양하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깨닫지 못하고 목회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귀한 주의 일이고 그 외의 일 등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생각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닐까? 일례로 한 선교 단체에서 친선 체육대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동경기를 하기 전 각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시설 관리부 사람이 농담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일 우리 부서를 이기는 팀에게는 앞으로 화장실 청소도 안 해주고 책상도 안 고쳐 줄 거야’ 그랬더니 식당에서 일하는 한 집사님이 ‘아이고, 우리부서는 어떻고 만일 우리 부서를 이기는 팀에게는 앞으로 밥도 안해 줄 거야’ 그리고 이러한 농담이 오고간 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즉 그 선교 단체 가운데 할 일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또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해 나가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제각기 합당한 은사와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고 계신다. 우리 각자에게도 은사 즉 주께서 필요에 따라 주신 고유의 선물이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그 것이 어떤 은사든지 그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주신이의 뜻에 맞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한다. 헌데 이것은 축복이다. 이 세상에 살면서 외롭지 않으며 다른 이를 섬기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그러면 주께서 주신 은사를 다른 사람들과 값없이 나누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세월을 아껴야 한다(엡 5:16). 모든 일에 때가 있기 마련이고 이때를 놓치면 그 손실이 크기 때문에 우리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항상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어진 기회를 사장시키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성패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 하는가 좌우하는데 있는데 말이다. 만일 우리가 주께서 주시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고 준비하고 기다린다면 기회를 만드는 자가 되나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으면 기회를 잃고 사장하고 평생 후회하는 자가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생이 짧고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간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주께서 봉사의 기회를 주실 때 열심히 섬기고 준비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혹 재물이 없다면 기도를 통해 봉사하고 머리가 없거든 팔과 다리로 감당하며 이것조차도 없거든 환한 웃음과 친절과 칭찬으로 다른 사람들의 용기와 신앙을 북돋아 주자.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신앙인의 현명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의 결산의 날에 주께서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며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도 기억하자(눅 12:48).
    • 칼럼
    • 목회자
    2015-12-04
  • 프랑스의 비극과 비대칭 전선
    통계에 의하면 2012년 이슬람 관련 테러그룹에 의한 총 테러 건수는 2,800건에 사망자가 17,725명이며 부상자는 15,708명이다. 이 중에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저질른 테러 건수는 155건이고 사망자 수는 848명, 부상자는 1,638명이다. 이슬람에 의한 테러는 해가 거듭할수록 증대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 13일 프랑스 파리를 강타한 동시 다발 IS의 테러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IS는 이번 테러 공격으로 거대 국제행사를 앞둔 프랑스의 안보 역량과 테러 경비태세에 대한 의문이 일도록 하는 효과를 낳았다. 올랑드 대통령은 15일 터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했다. 이처럼 세계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범죄를 저질럿다. 세계는 한목소리로 IS를 규탄하고 있으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두 정상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IS의 퇴치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항 하자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번 파리의 총기 만행을 일으킨 세력들을 추적한 결과 주동자 8명 중 3명이 벨기에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왜 벨기에가 유럽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 됐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일보에 의하면 ‘유럽 언론들은 우선 벨기에가 유럽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일찍부터 허용된 나라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벨기에는 이미 197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요청으로 ‘과격한 사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설파할 설교자들의 입국을 허용했다. 이슬람 초기 사회를 본받자는 취지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이 신봉하는 사상이고, 이교도를 몰아내기 위한 성전(聖戰)을 정당화하고 있다. 다분히 벨기에의 이슬람교도들이 근본주의를 접하기 쉬운 환경이고, 또 이들이 과격화되는 원인으로 꼽힌다.‘고 언급하였다. 프랑스의 비극은 우리에게 IS가 가진 전쟁 형태를 짚어보게 만들고 있다. 전호진은 이를 비대칭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은 군인대 군인,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전쟁터가 존재했다. 그러나 비대칭 전쟁은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데 따른 이념, 전선, 군대, 전략등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IS가 시도하고 있는 서방과의 전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첫째는 IS의 전쟁 목적은 자기 나라와 자기 부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초자연적인 전쟁으로서 알라의 세계를 위하여, 알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 이로 보건데 테러를 통한 전쟁의 목적은 정치적 요인이 아니라 종교 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IS의 전쟁 목적에 반하여 서방의 방어적 전선은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나, 프랑스나 러시아의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IS와 같은 테러 전쟁에 개입하는 나라들이 빨리 전쟁을 종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무한정으로 끝까지 싸워서 끝장을 보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전략으로 말미암아 서방 나라들은 국내의 여론과 정치적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도중에 전선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는 서방의 군대는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민간이 투사들이다. 그들은 테러 훈련은 받았으나 군번도 없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다가 죽으면 보상도 없다. 다만 죽으면 이슬람 교리에 의해서 72명의 미인들이 천국에서 그들을 환영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네 번째는 테러리스트 전쟁에 참여한 서방의 군대들은 테러리스트를 색출하거나 체포하여 사살한다. 이에 반하여 IS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한다. 다섯 번째는 테러리스트들은 자기 나라 국기가 없다. IS같은 집단도 자기 나름대로 만든 국기를 상징적으로 들고 있을 뿐이다. IS는 코란을 기초로 한 이념을 상징화 한 깃발을 들고 있을 뿐이다. 반명 테러전에 참여한 서방 군인들은 자신의 국가 상징물인 국기가 어깨에 걸려 있다. 결국 프랑스의 비극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다문화정책일 것이다. 온정주의로 대별된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1-20
  • 대림절(Advent)을 위하여…
    옛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라니에로라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다. 남달리 힘이 센 그는 성품이 난폭해서 싸움이라면 마다하는 법이 없었다. 아내 프란체스카도 남편의 난폭을 견디다 못해 끝내 친정으로 도망 가버리는데... 거칠고 지기 싫어하는 사나이 라니에로도 아내 사랑만은 남달랐던지, 이래저래 달래 보았으나 아내는 집으로 돌아와 주지 않는 것이었다. 궁리 끝에 용병이 되기로 작정한다.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피렌체의 대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 갖다 바친다면 신앙이 깊은 아내가 돌아와 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사나이는 공적이 모자란다고 여겼던지 그때 막 바람 불기 시작한 십자군 전투에 참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슬람으로부터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운 그가 보상으로 예루살렘 그리스도의 성묘를 밝히고 있는 횃불에서 불씨를 얻어 자신의 등에 옮겨 붙일 수 있는 특전을 허락받게 된다. 당시 그것은 가장 소중한 전리품이었던 것이다. 사나이는 그 등불을 멀리 이탈리아까지 모셔갈 작정을 한 것이다. 동료들은 입을 모아 반대했다. “아무리 힘이 센 자네라할지라도 그 등불을 들고 가서 피렌체의 성모마리아상 앞에 바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놀려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동료들의 빈정거림에 화가치민 사나이는 오히려 절대로 불을 끄지 않고 피렌체까지 등을 가지고 가겠노라 장담하고 나선다. 예루살렘에서 피렌체까지, 그렇게 등불을 끄지 않고 옮겨가는 세상에서 드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막상 여행은 장사 라니에로에게도 생각했던 만큼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거꾸로 말 등에 올라앉아 외투로 바람을 막으며 천천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도적을 만난다. 여느 때라면 말에서 뛰어내려 한주먹 먹이면 만사가 해결될 일이었으나 등불을 지키자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도둑이 달라는 대로 아끼던 말과 갑옷을 내주고는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말라빠진 말 등에 흔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놀림은 날로 심해갔다. 당장 말에서 뛰어 내려 본때를 보여주고 싶지만 등불을 지키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등불을 모셔가는 라니에로의 여행은 이어졌다. 여행을 통해서 사나이는 많은 것을 체험하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의 인생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쉬 꺼져 버릴 것 같은 가냘프기 짝이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많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같이 타오르는 분을 참아야 하는 것이 분하고 서글펐다. 그러나 분노와 증오로서는 그 작은 것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터득해가게 된 그는 가장 싫어했던 굴욕도 참아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마저 깨닫는다. 그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곧 꺼져버릴 것 같은 작은 등불을 지키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나그네 길을 통해서 그는 점차로 변해가고 있는 스스로를 느끼게 된다. 다툼보다는 평화를, 거침보다는 온유를, 미움보다는 용서를 소중히 여기며, 연약한 것을 돌보는 사나이로, 그는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등불이 남달리 우람한 한 사나이를 그렇게 바꾸어갔다는 것이 <횃불>이야기의 골자. “등불이 꺼진들 부싯돌만 있으면 곧 되살릴 수 있을 터인데...” 사나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예루살렘의 불과 피렌체의 불이 다를 것이 무언가”하고 말할 줄도 몰랐다. 그 우직스러움이 가냘픈 등불을 그 등불 그대로 지켜올 수 있었으리라. 우직함은 어느 틈엔가 온유함으로 바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림절을 맞으며 <횃불>을 되씹는 것은 어느 틈엔가 우리에게서 없어져가고 있는 그 무엇이 아쉬워서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림절은 잃어버린 그 무엇을 되찾게 하는 계절일 지도 모르고.셀마 라겔뢰프(Selma Ottilia Lovisa Lagerl?f, 1858-1940)는 스웨덴 출신의 여성작가. 풍부한 상상력과 모성적 애정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을 낳았다. 청소년이 읽도록 썼다는 <닐스의 이상한 여행>이 특히 많이 알려진 것은 190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횃불>은 그녀의 <그리스도 전설 집>에서 옮겨온 것.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11-20
  • (정신재) 버리기. 9
    버리기. 9 양 왕 용그대의 명령 따라물 위를 걸어가는베드로에게바람으로 다가온무서움.끝내 물 속으로 빠져갈 때믿음이 적은 자여왜 의심하였느냐고꾸짖으며 건져 내신그대의 말씀대로무서움과 의심 버리기.이 세상의 온갖 바람과 어두움도그대의 말씀 거역하지 못하는 법.말씀으로무서움과 의심 모조리 물리치기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한 노숙자가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그 문 앞에 섰습니다. 문지기가 물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너의 지금까지의 행적 점수가 1000점이 되어야 한다. 네가 한 행적을 말해 보아라.” 노숙자는 자신 있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동료들을 위해서 폐휴지를 팔아 봉사하였습니다.” “그건 50점밖에 안 된다.”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성가대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것도 50점이다. 아직 1000점이 되기에는 멀었다.” “청빈하고 온유하게 살았습니다.” “그것도 50점이다. 아직 모자란다.” 노숙자는 답답하고 막막하였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이제까지 공들였던 것이 허사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는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주님께 매달렸다. “주님! 도와 주십시오. 제가 주님만 믿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제가 의인의 반열에 들어 의롭게 살았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였습니다.” 그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제서야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바로 그거다. 그게 850점이다. 이제 들어가라.”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로지 나를 지으신 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할 도리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빛과 소금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는 기회를 주셨고, 죄인에서 의인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우리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믿음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5-11-20
  • 허무주의
    쿠바에 사는 한 어부의 이야기이다. 산티아고란 이 노인은 홀아비였다. 어느 날 그는 고기를 잡기위해 멀리 멕시코만까지 갔다. 어찌된 일인지 84일이 되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가 85일째 드디어 ‘말린’ 이라는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된다. 말린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셌으며 사나웠다. 산티아고와 배는 말린에 의해 넓은 바다에서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때부터 산티아고와 물고기의 처절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다음날도 물고기의 힘은 약해지지 않았다. 산티아고는 생고기와 고등어를 먹어가며 고독과 피곤을 이겨야 했다.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지친 물고기는 수면으로 떠올랐다. 노인은 물고기에 작살을 꽃아 배 옆에서 끌고 가려고 하였다. 하지만 물고기가 흘린 피는 상어 떼를 불러들였다. 밤새도록 상어 떼와 필사의 싸움을 하면서 새벽 포구에 도착한 노인은 오직 물고기의 앙상한 뼈만 발견할 수 있었다. 지친 그는 침대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 노벨문학상을 수상케 했으며 영화로도 제작된 세계적인 문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소설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의 지향점은 바로 ‘허무주의’ 이다. 인생은 그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어느 날 엽총으로 자살을 하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허무주의가 문학, 음악. 사회, 경제, 종교 등에 깊이 침투하여 현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행사하며 기독교 진리를 왜곡 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허무주의가 우리의 청년, 청소년, 초등학생은 물론이거니와 기성세대도 심각할 정도로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할뿐더러 이 세상의 모든 삶을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역동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고 절망의 늪에 잠겨 있는 것이 더욱 편한 것이라 생각하며 심지어 자살이라는 엄청난 죄악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허무주의 빠지면 자아가 상실 된다 자아(Ego)란 인간의 의식적인 부분을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자신이 깨어 있는지 잠자고 있는지 알고 있다. 또한 기억력이 있으며 확실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직접 인식하고 항상 ‘나’ 라고 주장하는 부분을 ‘자아’ 라고 말하다. 물론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의식적인 면’ 만을 자아라고 한다.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그런데 명예, 권력, 물질, 쾌락 때문에 자아가 상실된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일까?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P, Tillich) 는 자아 상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자아 상실이란 자아 결정의 중심의 상실이며 인격 통일의 붕괴이다. 통일 될 수 없는 분열의 충동에 의한 중심적 자아의 붕괴이다. 유한한 인간이 어느 것의 중심이 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온다’ 그렇다. 인간이 물질을 포함한 피조계에 대하여 스스로 중심됨을 주장하여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면 결국 그 속에 예속되어 영혼 없는 물질과 같이 되어버린다. 심각한 것은 오늘 날에도 자아를 상실한 사람들이 많다. 심한 말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물질, 명예, 권력, 성욕, 쾌락, 술, 도박, 게임, 인신 매매, 폭력, 이단 등으로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인간의 모든 생활은 감각 기관, 호기심에 의해 끊임없이 유혹을 당한다. 그렇다고 하여 정신 나간 상태 즉 물질이나 어떤 것으로 인한 자아 상실의 상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맛있는 생선일수록 날카로운 가시와 치명적인 독이 있는 것처럼 이 땅의 영화와 사치 역시 생선과 같다. 즉 맛있는 생선에 가시와 독이 있는 것처럼 눈에 보기 좋은 이 땅의 영화와 사치에는 고난과 애통이라는 형벌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주의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그 가시와 독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허무주의에 빠져 자아를 상실할까? 그것은 인생의 목적 즉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짐승처럼 맹목적으로 살면서 동물적 본능에 의해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좇게 된다. 고로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짐승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창조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짐승처럼 산다면 결국은 도살당하는 짐승처럼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생의 바른 목적을 분명히 가져야한다. 또 인생의 바른 목적을 모르고 사는 자들에게 그것을 부지런히 가르쳐할 본분과 사명이 있다.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맨 초두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묻고 그 답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사는 것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있다.
    • 칼럼
    • 목회자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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