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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재)동천冬天
    동천冬天 서 정 주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한국은 전쟁 후 폐허를 딛고 21세기에 모범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광복 후 1인당 국민 소득이 60달러에 불과하였던 한국의 경제는 현재 1인당 26,000달러로 380배 늘어났고, 무역 규모는 세계 12위이며, 반도체와 조선 산업은 세계 1위, 인터넷 통신 보급률 세계 1위, 철강 산업 세계 4위, 자동차 산업 세계 5위 등 경제 규모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있었습니다. 1987년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있은 이후 한국은 정치적 민주화도 이룩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 개발 모델과 정치 민주화 과정은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여러 나라의 경제와 정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 문화면에서도 K-Pop, K-Drama 등은 중국·일본?대만 등에 한류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성장 배경에는 시의 역할이 한 몫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1976년 『서정주 시선』에 위 작품이 실린 이후, 「동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습니다. 이는 이 작품에 나오는 이미지가 지상과 천상을 오가며 사랑의 깊이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 섣달”은 일 년 중 가장 밤이 길고 추운 때지요. 이때 화자는 임의 모습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눈썹을 생각해 냅니다. 화자는 그 아름다움을 혼자만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소유의 욕심도 버리고 집착과 권태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천 날 밤이나 되는 꿈으로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눈썹”이 임의 눈썹을 닮은 초승달이 되었네요. 그러자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도 비끼어 가네요. 이와 같은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기에 한국인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요.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류 가운데서 역사상 그 누구도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보이신 분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몸소 못박히셔서 속죄양의 역할을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과 다시 화평할 기회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함께 하게 하셨지요. 필자는 성가대 솔리스트입니다. 어느 날 녹화된 나의 노래를 보고 나는 얼굴이 매우 화끈거렸습니다. 화면 속의 내가 너무 노래를 못하였던 것입니다. 평소에 내가 그리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창피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리숙한 아들이지만, 진정 사랑하지요. 아마 하나님의 심정도 이러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진정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5-07-31
  • 선교지의 한국어 교육
    선교지에서의 교육을 통한 선교 접촉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대부분의 선교사가 말씀 선포 이전에 접촉점을 갖게 되는데 피부와 언어가 현지 사람들과 다른 한국인 선교사는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거부감을 완화하여 그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전략이 한국어의 가르침이다. 필자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전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평생교육원을 통한 한국어 교원 양성이다. 이는 국립국어원으로 부터 교원양성을 허가 받아서 교원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좋은 교수와 일꾼들을 만나서 2013년부터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우리 평생교육원에서 교육 받은 두 사람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르완다 지역으로 파송되었다. 지난 7월 19일 두 분의 파송식이 수원명성교회에서 있었다. 그 분들에게 전달해야할 “한국어 3급 교원 교육 수료증‘을 갖고 참여하였다. 어떻게 보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지만 기어이 떠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우리 기관을 통해서 그들의 사역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선교지에 전략화 하기 위해 서둘렀던 이유는 경험에 의한 것이다. 과거 선교 단체에 근무하던 중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활동하기를 원했지만 언어를 배울 길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노량진에 소재한 SDA영어 학습당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영어를 배우면서 언어가 선교의 접촉점을 갖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한국어를 신기하게 볼 뿐만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한류의 본질은 문화적 요소이다.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요구이다. 한류를 통해서 화면 속에서 한국을 이해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교육을 통해서 배우게 해야 함과 아울러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래의 글은 몇 년 전 국내의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이다. 북동유럽 발트해 인구 320만 명의 나라 리투아니아에도 최근 한류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빌뉴스대학교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이 ‘한빌뉴스’(HANVilnius) 동아리를 결성해 한국 문화 배우기와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빌뉴스대학교는 1579년 설립된 동유럽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교 중 하나이다. 15년 전 부터 여러 해 동안 한국어 강좌가 열렸으나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런데 2010년 9월부터 주말학교 프로그램으로 한국어를 다시 가르치고 있다. 빌뉴스대학교는 향후 2-3년 내에 선택과목이 아니라 학사과정 프로그램으로 한국관련 학문이 자리잡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어 수강생들은 함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한국을 더 많이 알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아리를 결성했다. 최근에 동아리 결성식이 열린 빌뉴스대학교 동양학센터 강의실은 10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태극기를 벽에 걸고, 또한 스크린에 띠우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창립 회원들은 리투아니아어와 직접 배운 한국어를 사용해 연극적 요소와 함께 다양한 한국 문화를 소개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스크린을 통해 한국의 대중 가수나 그룹이 등장할 때에는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들 가수들의 실제 공연장에 온 열혈 지지자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서 행사를 마쳤는데 어느 한인회 모임에서보다 더 한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현재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 등이 주로 리투아니아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펴져 있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다. 동아리 창립 회원이기도 한 리투아니아인 외교관은 한국 드라마는 짧고, 상황전개가 빠르며 서양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필자가 소개한 리투아니아에서의 한글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기대심리를 선교전략으로 연결시켜야 하겠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연구원)
    • 칼럼
    • 선교
    2015-07-31
  • 유대인의 조크와 ‘페이소스’
    조크 1: 네덜란드 동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일대가 물에 잠겼다. 경건한 유대인 모세의 집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하나님께 기도했다. 반드시 지켜 줄 것이라 믿고 기도했지만, 물은 점점 불어나기만 했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마르크가 와서 피난가기를 권했다. 모세는 거절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 줄 것”이라면서. 아래층에 물이 차자 처자를 데리고 이층에서 기도했다. 이층도 물이차자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도했다. 이제 기도 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 때 친구 암논이 작은 배를 저어 와서는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곧 빠져 죽을 것이니 어서 배에 오르라!” 그러나 모세는 암논의 호의도 거절했다. 친구의 보트는 멀리 사라졌다. 모세 일가는 집과 더불어 떠내려가다가 익사하고 말았다. 모세가 하늘나라 입구에서 하나님께 불평을 토로했다. “그렇게도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했다. “나는 그대의 기도를 듣고 두 차례나 구원의 손길을 보네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그대는 듣지 않았네.” 조크 2: 랍비 솔로몬의 삶은 경건했다.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토라를 어기는 일도 없거니와, 날마다 기도와 경전 연구에 몰두했다. 그야말로 유대교 성직자의 모범이었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랍비 솔로몬이 죽어서 하늘나라로 영접되었다. 하늘나라에서 그에게 배당된 집은 아주 소박해서 속세에서 살던 집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길 건너에는 향기로운 꽃동산으로 둘러싸인 궁궐 같은 저택이 있었다. 어느 날 저택의 유리창 너머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서 솔로몬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 사람은 생전에 택시 운전사를 하던 벤이었기에. 그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벤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을 마시며, 감미로운 하프 소리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음악소리에 섞여 벤의 호방하고 야비한 목소리가 길 건너 자신의 집에 까지 들려왔다. 벤이란 녀석은 한 마디로 돼먹지 못한 파락호였다. 폭주를 들이키며 도박과 여자 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위인이었다. 시너고그에 얼굴을 들이미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생전의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랍비는 생각했다. 필시 착오 때문일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놓았다. “하나님 왜 나는 이렇게도 허술한 집에서 겨우 비바람을 피하며 초라하게 살고 있는 데, 저 되지 못한 파락호 벤은 궁전 같은 대저택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대답했다. “그대가 시너고그에서 설교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잠을 잤다. 그러나 벤이 운전하는 택시의 승객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열심히 기도했다.”조크 3: 러시아의 숲에서 어린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런 경우, 유대인의 짓이라면서 유대인 마을은 습격을 받아 불타고 재산을 약탈당하는 것이 예사로웠다. 이것을 “포그롬(pogrom)”이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인 거리에서는 유대인이 소녀를 죽였다면서 격분했다. 총과 칼을 꺼내들고 유대인 마을을 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거리에서 일하고 있던 한 유대인이 소식을 전했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든 유대인이 시너고그에 모여 랍비를 중심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한 유대인 청년이 달려와서 말했다.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요! 좋은 소식이요!” 모두가 기도를 멈추고 청년을 바라보았다. 청년이 말했다. “죽은 것은 유대인이었어!” 양념: 그리스어 ‘파토스’는 영어의 ‘페이소스’가 되면서 약간 함축이 달라지는 것 같다. ‘승화된 아픔’이랄까. 유대인의 조크에서는 거의 언제나 ‘페이소스’를 읽을 수 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찰리 채플린의 과장된 몸짓이 관객에게 와 닿는 것은 그 페이소스 때문이 아닐까. 그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07-31
  • 외모로 차별하지 말자
    사람의 얼굴은 참 묘하다. 자신의 의지 없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얻었지만 이 얼굴로 인해 좋다, 나쁘다, 싫다 등 평가를 받게 된다. 이 평가는 사람의 성품을 결정하게 되고, 심지어는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의 외모를 평가할때는 지극히 신중해야 하며, 심사숙고 해야 한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외모란 사람의 얼굴, 신분, 직업, 빈부, 성별, 종족 등 여러 외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외모로 취한다는 것은 사람의 외적 조건에 따라 차별 대우하는 것을 가리킨다.사람을 외모로 취해선 안될 이유는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전인이 하나님의 성품의 영향을 받아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걸작품인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다면 이는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실례를 보자.하나님께서는 이새의 여덟 아들 중 가장 약하고 작게 보여진 다윗을 장차 왕으로 예정하셨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별, 종족, 신분, 지위, 빈부, 과거를 보고 판단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 소경된 자, 문둥병자, 가나안 여인, 혈루증 앓은 여인, 로마의 백부장, 니고데모, 삭개오 등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그들에게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사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세상적으로 볼 때에 지혜나 문벌 재산이 없는 비천한 자들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약하고 천하고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게 하시고 세상의 지혜자 문벌 좋은 자 학식있는 자 부자 권력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잃어버리고 외모가 초라한 가난한자 실직자 노인 장애인 병든자 소년 소녀가장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이주여성 등을 본 척 만 척 하며 넘어가서는 안된다. 우리는 왜 사람을 외모를 보고 취했을까? 나와 무관한 사람들로 보고 멸시했을까? 고통 받는 그들을 돕지 않았을까? 그들은 모두 주안에서 한 아버지를 모시는 하늘의 형제 자매들인데 말이다(마 12:50).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주님의 세계명(요 13:34)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예수님의 새 계명을 지키지도 않고, 경건한 채 하면서 주안에서 한 형제된 성도들을 차별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주님의 새 계명을 지켜야 한다(요 13:34). 새 계명을 지키라는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하신 말씀이다. 예화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해선 안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미국의 한 도시에 노인 부부가 있었다. 노부부는 자신들이 평생 동안 모은 전 재산을 교육 사업에 헌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는 지금의 미국명문 대학교인 하버드 대학을 방문을 하여 정문을 지키는 수위에게 총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위는 노부부의 허술한 옷차림을 보고 퉁명스럽게 대했다. “총장님은 지금 바쁘셔서 당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없소”라며 거절 했다. 하지만 노부부는 “이런 대학하나 설립하는데 얼마나 돈이 들어갑니까?”라고 수위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위가 노부부의 말을 들은 척도 안하면서 멸시하는 태도로 인정사정없이 쫓아냈다. 노부부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두 노부부는 자신들의 전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지금의 명문대학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하였다. 그 후 하버드 대학에서는 이런 사연을 듣고 크게 아쉬워 했다고 한다. 현재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기록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고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5-07-31
  • 공정한 판결
    법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사 30:18) 그들을 법관으로 세우시고(롬13:1),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신16:20, 사56:1)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뇌물을 받고 판결을 불의하게 내려 힘없고 약한 자들을 울리는 불의한 법관들도 참으로 많다(욥 22:9, 렘 5:28) 우리의 법관들은 공의로운 재판을 하고 있을까? 일본 에도시대에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로 유명한 ’이다구라 시게무네‘가 있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공정한 판결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나는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의 얼굴이란 보면 볼수록 미워지는 얼굴과 볼수록 선량해 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눈에는 믿게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악인일리 없고 내 눈에 선하게 보인다고 해서 꼭 선량한 사람일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피고와 원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문을 닫고 혼자 방에 앉아서 재판 합니다. 유명한 재판관들은 얼굴을 보고도 악인과 선인을 구별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재주가 없으니 그저 사심 없이 사실 그대로 재판하는 것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오늘 날 우리 사회를 보자. 어떤 분이 우리 사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회는 부패가 극에 달하여 외국인들로부터 ‘ROTC 공화국’ 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고 한다. 즉 총체적 부패 공화국(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이라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가 이러한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을까? 오늘 날 우리 사회가 이토록 혼탁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의를 신조로 하는 사법부가 빵 한 조각 훔친 사람에 대해서는 ‘법대로 외치면서도 힘 있고 돈 많은 권력층과 부유층에 대해서는 소위 ‘성역‘을 만들어 이들의 불법을 보호 묵인 은폐까지 함으로써 사법적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이같이 법관이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다른 이유로 불의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 나라의 정의는 바로 서지 못하고 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게 된다.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의무는 재판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남을 판단하고 시비를 가리는 자들에게도 요구된다. 공정한 재판의 비결이 무엇일까? 먼저 선입견을 버려야한다. 법관은 재판받는 당사자들을 볼 때 은연중에 사회적으로 비천하거나 학식이 높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게 되고 그를 마치 죄인 것처럼 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삼상 16:7). 그리고 궁핍하고 비천한 자의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은 선입견을 가지고 불의한 판단을 내리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기 때문이다(겔 18:12, 13). 고로 법관들과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은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나 재물 등 외적인 모습을 보고 판단을 내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말씀과 공정한 양심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물질의 탐욕을 멀리해야 한다. 법관이 법정에서 불의한 판결을 내리는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재물 때문이다. 법관이 어느 한쪽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이 개입 될 때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불의한 판단을 내리게 된다.(미가7:3) 그래서 성경은 뇌물은 재판자의 명철을 흐리게 하고(전7:7) 판결을 굽게 한다고 경고하며 재판을 할 때 결코 뇌물을 받지 말라(신16:19)고 교훈했다. 아울러 이러한 일은 비단 법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나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자신의 금전적인 이익을 위하여 시비를 올바르게 가리지 않고 불의하게 판단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를 망하게 한다. 왜냐하면 뇌물이나 불의한 재물은 지금 당장은 그 개인에게 유익이 되는 듯하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의 장막을 불태우고(욥15:34) 결국엔 멸망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권세자의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을 멀리해야한다. 왜냐하면 재판을 받는 한 쪽 편이 높은 권세를 가지고 있을 때 그는 법관에게 부당한 압력을 넣게 되고 법관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당한 판결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판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나 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비를 가릴 때 공정하지 못하고 권세 있는 자의 편을 들고 약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허나 이것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시35:2) 고로 법관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자들은 선입견이나 재물이나 권세 때문에 불의한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5-07-24
  •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8세에 아비를 잃는다. 폼페이우스가 죽인 것이다. 로마가 정쟁이 일상이었던 세월을 어린 브루투스는 어머니 세르빌리아의 손에서 자란다. 당시 로마에서는 미망인의 재혼이 당연시되고 있는 터였으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한다. 어머니의 배경에는 카이사르가 있었다. 세르빌리아가 재혼하지 않은 것은 정부 카이사르 때문이란 소문이었지만, 카이사르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라는 사춘기 브루투스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 훗날 브루투스로 하여금 카이사르를 살해하게 하는 동인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까. 청년 브루투스는 학업에 몰두한다. 아테네, 페르가몬, 로도스 섬 등, 당시의 최고학부를 모두 거친다. 여느 청년처럼 정치와 군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30세가 될 무렵 금융업에 뛰어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넘었기에 로마가 내전에 휩쓸렸기 때문. 36세가 되어서는 삼촌 카토에게 동조하여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했다. 폼페이우스가 누구였던가.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정서의 젊은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포로가 된다. 어머니가 나설밖에. 카이사르의 주선으로 용하게 살아난 브루투스는 이후 카토와는 손을 끊는다. “브루투스는 석학 키케로의 총애를 받을 만큼 해박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식과 교양이 반드시 지성과 일치하지는 않는 법,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영향 아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로마인 이야기) 키케로가 브루투스의 연설원고를 두고 한 말이 있다. “문장구성은 치밀하고 논리적이지만, 정열이 부족하다. 남에게 자기 뜻을 전달시키고 싶다는 의욕이 모자란다.” 카이사르도 그의 연설을 듣고 평가한 적이 있다. “그 젊은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를 강렬히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키케로와 카이사르의 눈에는 그가 그리 탐탁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평생을 함께해준 애인의 아들이 정계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준다.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살해음모의 주모자였던 것은 아니다. 진짜 주모자는 매제 카시우스. 그런데도 그가 주모자로 떠받들린 것은 브루투스의 명성을 이용해서 한 사람이라도 가담할 인사가 불어나게 하려는 카시우스의 책략 때문이었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그에게 그만한 지도력은 있었다는 것도 확인된 셈이다. 롱기누스 카시우스는 브루투스와 동갑내기. 30세에 크라수스의 파르티아 원정에 종군하지만, 크라수스군의 궤멸로 끝이 난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총사령관 크라수스를 버리고 500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쳐서 목숨을 건진 뼈아픈 경력을 남기게 된다. 또 내전이 일어나자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는가 하면, 파르살로스 회전에서 승리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에 도착하자, 카시우스는 싸워보지도 않고 투항했다.카이사르의 관용으로 거주선택의 자유를 얻은 그는, 이집트로 망명한 폼페이우스도, 북아프리카로 망명한 동지도 마다한다. 그렇다고 브루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한 동안 근신하는 척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카이사르에게 협력하고 나섰다. 그에게 군사적 재량은 있었던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로 알려진 전투에서는 군단장에 임명된다. 이제 카시우스가 카이사르의 충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브루투스의 누이를 아내로 맞고, 브루투스와 함께 법무관이 된다. 41세. 앞길이 훤하게 트이는 듯 했다. 그러나 카시우스는, 옛날 크라우스를 버리고 500기병과 함께 뺑소니 쳤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군 카이사르도 밑바닥에서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었으리라. 카이사르가 권력을 잡고 있는 한 자신의 장래는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다. “카시우스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의 본질을 깨닫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잔머리는 잘 돌아갔다. 브루투스 뒤에는 카이사르의 비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원로원 의원은 없는 터에, “나 브루투스가 찌른 것은 사랑하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야심이었노라!”하는 브루투스의 수사법은 성공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성공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것이 역사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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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7-24
  • 카타콤에서의 주일 예배
    2015년 6월 28일의 주일은 필자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이 날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로마를 여행하고 있었다. 때 마침 주일날이라 예배를 기획했으나 호텔을 비롯한 여러 장소들이 제약을 받고 있어서 예배처가 마땅치 않았다. 현지 여행 관계자들과 논의 끝에 결국 섭외 된 곳이 카타콤 이었다. 즉 카타콤을 여행하는 동안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었다. 카타콤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안식처’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필자가 탐방 한 곳은 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였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아려진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던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만난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쿼바디스교회와는 1km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칼리스토의 지하 묘지는 로마의 지하 묘지중 최대로 제 1~4 세기동안 여기에 묻힌 기독교인만 50만명에 달한다. 19km나 되는 길이에 터널을 파고 토굴로 만들며 무덤에 홈을 만들어 그곳에 장사를 지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대단했고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지하로 피하게 되었다.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구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대소 25개의 카타콤베가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은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서 5층으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이다. 이곳에는 3세기의 교황의 유골이 모두 모셔져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 성체칠리아의 묘도 있다카타콤내의 여러 곳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증거들이 다양하게 나타나있다. 즉 물고기 그림은 익투스( 그리스어: ?χθ?? 이크투스)로서 성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하였다. 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가? 초대교회의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서 주일을 맞이하여 순교와 선교적 열정으로 가득찬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다니!. 필자는 시 113편을 중심으로 ‘찬양과 감사’라는 주제를 통해 설교를 하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 시편의 기자도 우리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특히 시편 113편의 본문은 먼저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날마다 지속하는가? 하나님의 성호를 우리의 전심을 다하여 찬양해야 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렇게 찬양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이 있다. 우리의 못난 체면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의 어지러운 환경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할 이유를 찾아야 하겠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감사해야할 신앙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카타콤 속에서의 예배는 성찬식과 함께 끝을 맺었다.“예배는 있으나 영성은 없고 인물은 있으나 인격은 없다. 건물은 있으나 교회는 없고 명성은 있으나 존경은 없다”고 말씀하신 김상복 교수님의 진단처럼 암울한 기독교의 현주소 속에서 카타콤의 신앙으로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무 흠도 없고 거룩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네” 찬송과 함께 예배를 마쳤다. 필자의 평생에 이러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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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4
  • (정신재)바둑과 氣
    바둑과 氣 정 신 재푹신한 나무결 위바둑알의 멋진 낙점첩첩이 쌓인 마음빗어내린 수염과 이마올곧은 기개는 살아초록 물밑 자맥질.정중히 응시한 대면눈동자는 하늘을 덮고뿌린 씨앗 보기 전에짜여진 판을 훑는다서로가 읽어가는 승부수투시 속의 꽃무늬. 가끔 자녀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자녀를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집 딸 아이는 나의 시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빠. 이 작품이 좋은데, 이것 문예지에 한 번 내 봐.”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빠. 나 독후감 써야 하는데, 좀 도와 주세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두 아이를 보며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면 어떤 아이를 좋아하실까. 나는 딸아이의 행동이 더 맘에 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주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자녀를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오늘도 말씀 한 구절이 다가오네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신 8:7). 작가는 아름다운 세계를 찾아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주님이 나를 “아름다운 땅”에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하늘과 같은 시야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임재한 세계를 보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기뻐 찬양하며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상처를 보여 주며 상처받은 제자들을 위로하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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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4
  • (정신재)문상(問喪)
    문상(問喪) 정 신 재딸아이의 병아리가 봄날의 햇살을 쪼던 오후아프지 마세요란 딸의 말이 이마를 간질이는데통풍과 오십견과 고혈압과 지방간이 어깨동무하고 오더니바람이 엄지 발가락을 찌르고세월이 어깨에 주사를 놓는데모래 바람으로 흩어질 몸에생명의 진액을 흘려 보냈던 청춘이 손 흔들며 지나가고꽃잎을 엮었던 대궁이가 여행을 떠나려는지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황혼의 빈혈 앞에엊그제 악수했던 묵객(墨客)이 떠났다는 비보허겁지겁 달려가는 발걸음에 매인 사연눈물이 말을 하고 공허가 모이를 쪼는데새싹처럼 일어서는 봄날의 하소연에도당신의 사연은 영원으로 가는 흔적마지막 웃음을 항아리에 담으려고영혼의 집 열쇠를 가슴에 담아가는우리들 행보는 바위를 닮나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거역할 수는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림으로써 모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셨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나사로는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다. 그의 동생 마르다는 예수님이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로 생각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무덤에 있던 나사로를 살리신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물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44).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표적은 복음서의 여러 군데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 7:11-17),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다(눅 8:40-56). 역사상 죽은 자를 살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었다. 필자 주변에도 연로하신 분들이 세상을 떠나갔다.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영생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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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9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속에 신앙 유산
    최근에 학생돌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을 다녀오게 되었다. 스플릿(Split)이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크로아티아의 수많은 휴양지(休養地)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중부 달마치아(Dalmatia) 해안의 꽃’이라고 표현될 만큼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예쁘며, 주변의 풍광 또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플릿은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이곳도 긴 질곡의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90년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아직까지도 도시 곳곳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그곳은 한국의 종편 TV에서 소개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그러나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옛 달마티아의 땅이다. 스플리트에는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로마유적 가운데 가장 보전상태가 뛰어나고 위엄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이곳 출신으로서 로마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권을 자신의 두 심복들에게 이양하고 말년을 보냈던 장소였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누구인가? 284년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람이다. 달마티아 지방의 비천한 집안 출신인 그는 군대에서만큼은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마 제국의 방어를 위해서 남달리 애쓰고 있던 그는 군사적 위기를 상당히 잘 극복해 나가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 285년에 공동 황제를 임명하여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재위 기간 초기에는 자신이 부황제로 임명한 갈레라우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임 황제들이 가졌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재임 기간의 말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와 로마의 신들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군대에 복무중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신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신들을 모욕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궁정 내부에 있었던 로마 신들을 모시고 있는 사제들은 불경스러운 기독교인들 때문에 점성술의 효력이 발생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황제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이 어떠한 노선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밀레투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신탁을 의뢰 했다. 돌아온 대답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궁전과 군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퇴출되었다. 두 번째는 제국의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 303년 2월부터는 더욱 무서운 속도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교회의 건물을 파괴 되었고, 거룩한 문서들은 몰수 되었다. 성직자들을 투옥되었고, 이교의 신전에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 되었다. 일부 신자들은 순교를 감행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했으며, 또한 신앙을 버렸다.기독교인들을 무섭게 박해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새워진 성이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에 세워진 디오클레시안 궁전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그곳을 방문하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역사는 흘러서 이렇게 무섭게 박해하던 황제의 궁은 쓸쓸한 초가집이 되었다. 그대신 그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과 성 도미니크 수도원과 그레고리우스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렇게도 무섭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호화로운 궁전은 역사 속에서 유물로만 남아있고, 심하게 박해 받던 신앙의 유물들을 지금까지 보존해 오면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믿음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느겼다. 역사는 놀라운 것이다. 한때 그토록 무섭게 타올랐던 세상의 힘들은 종이장 처럼 바람에 말라갔지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꽃피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세계로선교학교(www.worldc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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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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