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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18
    "만성 신부전증입니다.” 직장 건강 검진에서 이상한 징후가 보여 2차로 K대학병원에 가서 받은 검진 결과는 나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동안 고혈압과 통풍을 앓고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생긴 결과였습니다. 고혈압은 운동을 통해 뱃살을 빼야 하고, 통풍은 물을 많이 마시고 멸치 등을 먹지 않는 것으로 음식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마 내 신장이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고 물을 엄청 마셨더니, 이번에는 만성 신부전증이 온 것입니다. 이 병은 통풍과는 달리 물을 많이 마시면 그게 과부하가 걸려 신장 기능에 이상이 오게 되고, 급기야 걸러지지 않은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 몸이 붓기도 합니다. 여기서 어느 한쪽에 너무 신경을 쓰게 되면 다른 쪽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몸이 건강을 유지하려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겠다 싶어 직장을 명퇴하였습니다. 남들은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내가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전업 작가 생활이었습니다. 작가라고 해서 당장 집필을 통해 돈벌이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내가 직장을 다니기에 대신 나는 가사를 책임지면 되었습니다. 아내를 직장에 다니게 한다 해서 몰인정하다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아내는 삼식이 노릇 그만 하고 당장에 어디 가서 단돈 백만 원이라도 벌어 오라고 농담삼아 다그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34년 동안 직장 생활 하였으니, 이제 놀 때도 되었다는 것이 내 지론입니다. 대신 가사를 열심히 합니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이 여자만 해야 할 일은 아니니까요. 요즘 알파 에이지 시대라 해서 앞으로 인간이 120세 이상 살 거라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살아온 만큼의 세월이 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그게 지겨울 거라는 얘기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멋지게 노는 것도 한 번뿐인 생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독서하고, 여행하며, 식도락을 즐기는 것도 존재로서의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여행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동호인들과 바다낚시를 자주 다니는데, 그것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즐거울 수가 있지요. 그 가운데 나에게 딱 맞는 맞춤형 취향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헬스입니다. 시작한 지 한 이 년 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집필 활동에 신경 쓰느라 헬스를 자주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많이 불어났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담당 의사한테 호되게 혼났습니다. 체중이 불어나면 신장 기능이 안 좋아지는데, 살이 더 쪄 오면 어떻게 하느냐며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몸무게 줄이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주일을 제외하고는 헬스장 가는 일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평상시대로 먹으면서 싸이클과 런닝 머신을 매일 한 시간씩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삼 개월 동안에 몸무게를 6킬로그램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어지럽지 않느냐고 묻더니 몸무게를 더 줄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압니다. 몸 안에 있는 체지방과 내장 지방을 줄여야 신장에 부담이 덜 간다는 것이지요. 건강 상식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히 운동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일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식사량을 줄이지 않으면 몸무게가 쉽게 빠지지 않기에, 다이어트가 어려우면 꾸준히 운동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은 아령·역기 등 근육 운동을 한 후 사이클과 런닝머신을 한 시간 동안 하면 내장 지방을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근육 운동은 근육이 뭉쳐지지 않게 풀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넓적한 가슴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는 닭가슴살이나 돼지고기 살을 삶아서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탄수화물이 많은 밥을 소량 먹으면서 고깃살만 꾸준히 먹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근육 운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0년 전에 나와 함께 헬스를 시작했던 이들은 꾸준한 운동 덕에 제법 멋진 가슴 근육이 생겼습니다. 닭가슴살을 먹고 운동한 이는 아주 멋진 근육이 만들어졌고요. 그러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동은 당신의 살을 빼 주면서 건강한 몸을 만들어 주는 보약이지요. 운동으로 얻어진 앳된 얼굴과 멋진 몸매는 보는 이들을 신선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삶에 활력이 생기게 합니다. 나의 친형이 외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다가 나쁜 공기와 저칼로리 음식으로 인하여 백혈병을 앓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의 병력도 개인의 건강에 관련이 있습니다. 건강. 신경 쓰면 얼마든지 삶을 멋지게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헬스장에 들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통해 멋진 몸매와 건강한 삶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몸으로 멋진 신앙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7-19
  • 기독교인의 행복론 -17
    모윤숙. 그녀는 일찍이 『렌의 哀歌』(1937)란 시집을 출간한 적이 있습니다.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앉아 밤을 샙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작고 큰 별들이 떨어졌다 모였다 그 찬란한 빛들이 무궁한 저 편 세상에 요란히 어른거립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는 무한한 암흑 속에 꼭 파묻혔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허공 중에서 마치 나는 당신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조용히 꿇어앉았습니다.” 깊은 밤에 누구나 한 번쯤 그리운 이를 생각할 법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그리운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감을 젖게 하지요. 그녀는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의 암울한 심정을 깊은 밤으로 묘사하면서 그리운 이를 통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자아를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그리운 이는 곧 임이며 얼로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근원이었습니다. ‘시몬’은 기독교에서의 주님으로 확대 해석이 가능합니다. 자아를 숨쉬게 하고, 생동감 있는 일상을 느끼게 하는 주님 말입니다. 광복 후 미 군정 시절에 하지 중장은 한국에서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그는 은연중에 김규식을 한국의 지도자로 점찍고 있었습니다. 이때 유엔한국위원단이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신탁 통지 할 것인가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유엔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대표 단장이 바로 메논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중립국이었던 인도의 네루 수상에 버금가는 역량 있는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주장하는 이승만 진영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생리를 잘 아는 이승만은 이대로 가다간 북쪽의 김일성 술수에 말려들어 나라가 혼란과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특단의 대책을 세웠습니다. 당시 작가는 요즘의 K-Pop 가수에 해당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광수 등 당시 내노라 하는 작가는 친일 문제에 휩싸여 반성하는 의미로 칩거하고 있었습니다. 이광수의 문단 후배였던 모윤숙도 친일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최종고, 『대한민국 건국과 한국 여성』기파랑, 2012/ 199쪽 참조). 그때 그녀는 이승만의 비서인 이기붕한테서 민족대표자대회에 참석해 달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이박사에게 국내에도 인재가 있으니 난국을 바로잡는 데 활용하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유엔한국위원단 회의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문학에 대한 식견이 높던 메논(유엔한국위원단 단장)을 만나게 됩니다. 메논은 모윤숙에게 인간적인 호의를 느끼고 그가 주재하는 파티에 모윤숙을 자주 초대하게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메논은 인도 정부의 뜻에 따라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에, 모윤숙은 메논의 태도를 한국적인 입장으로 돌리는 데 온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한만의 총선거론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논은 2,3일 후면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는 일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모윤숙은 메논에게 말을 꺼냅니다. “인도에는 타지마할이 있는데, 한국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명성황후라는 분인데, 그분 묘가 동구릉 쪽에 있습니다. 교교한 달빛 아래서 보면 한국에서의 당신 감회가 남다를 겁니다.” 이렇게 하여 그를 동구릉으로 안내한 후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이승만이 있는 이화장으로 데려갑니다.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치르려 하는 이승만을 만나기 꺼려 했던 메논은, 이승만이 반갑게 맞이하자 당황하며 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승만은 수많은 사람이 서명한 민원 두루마리를 보여 주며 한국 국민의 염원이 담긴 이것만이라도 유엔에 가져가서 보여 주기를 간청합니다. 이후 이승만의 끈질긴 유엔 외교 덕에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경성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던 모윤숙은 미처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피신하였습니다. 오랜 피신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죽음을 선택하려 할 즈음, 그녀는 한 병사의 시신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녀는 젊은 병사의 주검을 보면서 자신 안에 있는 민족의 얼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서 쓰여진 시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입니다.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나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레 숨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부분). 그녀는 병사의 혼에 들어 있던 민족의 얼을 생각하며,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얼을 살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7-08
  • 기독교인의 행복론 -16
    구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외곽 고속도로 위를 운전하는데, 아주 커다란 분홍빛 태양이 처절한 빛을 띠고 산 아래로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멋있다. 그런 생각 끝에 내게도 멋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은 내 옆에 바짝 붙어서서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답게 살면서 아름다운 품위를 보이는 멋. 한편으로 이문동 철길이 내려다 보이는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늙은 개 한 마리가 있습니다. 딸아이가 학교 수위실에 버려져 있는 것을 데려온 잡종이긴 하였지만, 곰처럼 검은 털빛에 가슴 한복판과 왼쪽 발에 하얀 털이 그야말로 하얀 빛을 띠고 예뻤습니다. 나는 그 멋 때문에 녀석의 머리를 가끔 쓰다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유리창 너머로 주인이란 사람은 소파에 편히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거리는데, 주인이 내 준 음식이나 홀짝거리는 신세. 주인은 베란다 문을 열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목 주변을 간질이기만 해도, 녀석은 주인 쪽으로 엉덩이를 쑥 내밀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좋아합니다. 역겨운 냄새가 심한지 녀석이 코를 킁킁거려 봅니다. 어렸을 적부터 왜 어떤 이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어떤 것은 개나 돼지로 태어났을까요. 왜 녀석은 개로 태어나 주인에 대한 정을 떼지 못하면서 죽도록 주인 과 정을 나누며 살아야 할까요. 녀석은 아파도 아프다는, 추워도 춥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맘만 먹으면 여행 가방을 들고 어디든 떠나지만, 개는 주인이 이끌어 주지 않는 한 아무 데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흔적도 없이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개나 돼지를 학살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은퇴 후 시골로 귀향한 사람이 서울에서 귀한 분들 오셨다고 키우던 개를 잡으려는데, 그만 그 개가 목줄을 빠져나와 달아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점에서 식사를 대접한 후 집에 돌아왔더니 그 개가 그만 자신의 집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더랍니다. 주인은 자신이 키웠던 개를 잡으려 했던 것을 반성하고, 그 후 그 개를 극진히 키웠답니다. 개 얘기가 나왔으니 성경 얘기도 해 보자.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한 얘기가 신약 처음부터 전개되지만, 개 얘기는 거의 없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주님은 모든 생물 가운데 인간을 제일 많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창조하셨고, 질서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번성하도록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뜻에 의해서 개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살아갑니다. 제자들도 주님의 사랑 안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그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도 이들 제자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도 잡혀 죽을까봐 무서워 떨며 다락방에 숨어 있을 때에는 찾아가 당신의 깊은 상처를 보이시면서 제자들을 위로하셨고, 엠마오에 가는 두 제자에게는 실제로 동행하시며 그들의 말소리에 귀기울이셨습니다. 다시 고기 잡는 어부가 되려는 베드로에게는 직접 찾아가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간절히 기도하는 120명의 제자들에게는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인간은 자기 의지를 활용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인간미를 언제 어디서든지 발현할 수가 있습니다. 개는 인간처럼 기도하고 간구하여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게 된 것은 복된 은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영원 위에 흔적을 남기는 좋은 일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도 가야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음미하여 보려 합니다. 주님은 내가 주의 뜻에 따라 인간미를 발휘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며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밝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처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도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미국의 한 교회에서 시작한 선교 헌금이 이 땅에 젊은 선교사들이 보내지는 열매를 맺은 것처럼,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곳에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선교를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복음 사역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작가는 글로써, 자본가는 물질로써, 기술자는 자신의 기술로써, 선교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평신도 선교 말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도기를 기도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6-30
  • 기독교인의 행복론 -15
    필자가 작가를 와룡(臥龍)-옆드려 있는 용-에 견주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작품이 언젠가는 독자를 감동시키는 명품이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광수의『유정』(1933년)이 <조선일보>에 연재될 적에는, 장안의 청춘 남녀들이 신문을 구독하기 위해 배달되기 몇 시간 전부터 문밖에 서서 기다릴 정도로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시의 경우에는 김소월의 「초혼」이나 한용운의「님의 침묵」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실제 삶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김소월은 그의 아버지가 일본인 철도 노무자에 머리를 맞아 실성하는 정신적 외상으로 인하여 자살하였고, 한용운은 일제가 만든 신분증을 만들지 않는 등의 절개를 지키느라 순사들에게 온갖 곤욕을 겼었습니다. 요즘에는 성석제의 『투명 인간』(2014), 정유정의 『28』(2013) 등이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편입니다. 독자들은 그들의 흥미진진한 플롯과 돋보이는 문체 등에서 뜨거운 감동을 받기도 하지요. 이들은 실제로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서 뜬 경우에 해당하지만, 이와는 달리 지인들에게만 읽히는 작품도 없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작가를 ‘와룡(臥龍) 선생’이라 부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이 땅에는 2만여 명의 시인과 작가 들이 활동하고 있고, 나름대로 언젠가 자신의 작품이 뜰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지요.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한 꿈을 삶의 동력으로 삼곤 하지요. 그래서 한 해에도 수천 명의 문예창작과 출신 학생들이 꿈을 찾아 나서고, 문예지나 신춘 문예 문을 두드립니다. 유명 문예지나 이름 있는 신문을 통해 등단하려면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나와야 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론가나 독자들로부터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받으려면 수만 대 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야 하지요. 그러나 그들이 쓴 글 가운데 불과 몇 편만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나아가 노벨 문학상 후보가 되려면 작가의 작품이 적어도 5개 국어로 번역될 만큼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지요. 더구나 이십대의 나이에 인기 작가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작가라면 누구나 좋은 글을 내기 위해 몇 개월 내지 몇 년을 고뇌하고 사색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글이 숙성되기를 기다리지요. 그래서 작가들은 교사나 출판인 등의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야말로 와룡(臥龍)처럼 자신의 작품이 뜰 날을 기다리는 것이지요.필자도 삼십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가 된 지도 삼 년이 되었습니다. 몇 군데 문예지와 신문에 평론과 산문을 연재하면서 원고료도 받고 있으니 전업 작가라 할 만하지요. 그러나 아직 온전한 전업 작가로 자리매김되지는 않았습니다. 전업 작가가 되려면 원고료만으로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내가 생활 전선에 나서고 있는 편입니다. 간호사인 아내에 비하면, 필자는 백수에 해당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설거지나 빨래 등의 집안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애들이 공부하라는 부모 앞에서 공부하는 시늉을 하듯이, 언제부턴가 필자도 아내가 퇴근하기 두 시간 전부터 집안 일을 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입니다. 설거지는 30분, 빨래 30분, 청소 한 시간이면 가사(家事)를 어느 정도 끝낼 수가 있더군요. 그러다가 청소도 이삼 일에 한 번 하니 집안 일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더군요. 그래도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중 그 두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독서와 사색 등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면 작가의 생활이 단순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사색으로 서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헬스와 산책과 바둑 두기 등으로 시간을 때우니, 직장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면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나만의 고독을 사색으로 때우는 일이 여간 즐겁지가 않습니다. 영화 감상이나 여행보다도 더 재미나는 일이 사색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작가라는 직업이 생겼나 봅니다.그러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의 설움도 없지 않습니다. 아내는 따분하게 소파에 앉아서만 일하니 건강에 안 좋다며, “무브(move)”를 외치지요. 또한 아들놈이 자신의 이력서에 아빠의 직업을 ‘무직’이라고 적는 것을 보면, 내가 백수가 맞나 하고 혼자서 되뇌이곤 한답니다. 이때 생각나는 분이 삭개오의 집을 방문한 예수님입니다. 삭개오는 세리였지요. 세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직업이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어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면서 중간에 이득을 취했으니 백성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삭개오를 소외시키지 않고 직접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신 게지요.한때 글쓰기와 대학 강의와 직장 일을 병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도 네 군데에 출강하였었고요. 그때 필자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고민도 많이 하였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6-16
  • 기독교인의 행복론 -14
    노년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질 뿐이지요.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 노년의 흔적을 남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요. 필자의 경우에는 글 쓰는 일로 노년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요.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하고 두꺼운 공책에 메모하며, 어떻게 해야 인간미 있는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추억도 정리하고, 체험도 적어 보며, 상상의 나래도 펴 봅니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이 일은 지속될 겁니다. 글 쓰는 일은 은퇴가 없으니까요. 저는 한때 노래 부르기에 중독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출판 기념회 등에 가면 사회자에게 가서 내가 노래 부르겠다고 자청하곤 하였습니다. 짖궂은 사회자는 내가 노래 부르겠다고 자청해서 시켰다고 청중에게 일러 바친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각고의 노력 끝에 저는 <KBS 전국 노래 자랑> 1500회 특집에 여덟 번째로 출연하여 송해 선생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다만 두 번째 곡을 부르고나서 예정에도 없던 막춤을 추는 바람에 뒷 부분이 편집되었습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저는 우이교회 H장로에게 부탁하여 대예배 헌금송을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며 불렀습니다. 그럼 주님은 이러한 저에게 채찍을 내리치셨을까요? 아니면 사소하다며 이런 일에 신경을 안 쓰셨을까요? 이제부터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던 사실 하나를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채찍을 내리셨습니다. 건강함을 장담하던 저에게 갑자기 고혈압과 통풍과 만성신부전증 등의 합병증이 찾아왔습니다. 잠을 못 이룰 만큼 발가락이 쑤시고 무릎에 통증이 생겨 걸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저에게 큰 깨달음을 가져왔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주님이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와 관련이 없다면 예배 시간에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든 말든 신경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갑작스런 합병증이 생기자, 저는 저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개인 파산자가 한 분 있었는데, 저는 그분이 저보다 젊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생명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존재가 매우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니면 교인들 앞에 보이기 위한 노래를 하느냐?” 저는 심도 있게 저의 찬양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찬양 드렸는가, 아니면 교인들 앞에서 내 자랑을 하였는가”. 결국 저는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정년을 5년 6개월 앞두고 명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야말로 절실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저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십 년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으며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기도가 매우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그 간절한 기도 때문이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예수 전도단의 홍성건 목사님을 우이 교회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해발 6300미터 위에서 시속 250킬로미터의 속도로 나는 독수리를 예화로 들면서 <창세기> 13장 14-15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이 우리들의 시선도 바꾸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닭은 모이만 찾아 눈 앞의 것만 바라보지만, 독수리는 태풍이 오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바람과 함께 할 정도로 시야가 넓었습니다. 저는 저와 저희 가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계를 바라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대한민국은 21세기에도 분단 현실의 경계가 있습니다. 남북간에 휴전선 뿐만 아니라, 언어와 가치관에서도 많은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셨으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제공하셨고, 병든 자에게는 치유를 하셨으며, 율법의 틀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제시하셨습니다. 죄에 얽매인 자들에게는 구원을, 사랑에 굶주린 자들에게는 사랑을 제공하셨습니다. 개인이 세상에 놓인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질투와 시기의 경계를 허물며,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류는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사랑은 노년에 가질 수 있는 행복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6-10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3
    주기적으로 성찬을 베풀려고 오는 사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집주인은 그에 관한 나쁜 비행을 듣고 격분하여,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심판을 빼앗아갔구나.” 그리고 황홀경에 잠겨 황금 우물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황금 두레박이 있으나 나병 환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맛있는 우물물을 마실까를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왜 우물물을 마시지 않는가. 물을 긷는 자가 누구면 어때? 그의 직책은 다만 두레박에 물을 채워 항아리에 붓는 일이 아닌가.” 이러한 환상을 체험하고 그는 돌려보낸 사제에게 사죄하고 다시 성찬을 거행하여 주도록 간구하였습니다. 복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선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사랑의 편지를 반석 위에 올려 놓고 너와 나의 소통을 기다리지요”.하나님 앞에서 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죄인이었던 내가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으니 의인으로 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함께 하여 주십니다. 믿음으로 사탄을 이길 힘을 주시고, 의인으로 행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행복합니다. 나의 삶이 꽃보다 아름다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영감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1975년 봄, 나는 ‘대학 신입생 장기 자랑’에서 마당극 ‘춘향전’의 변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 여기 대한민국을 행복으로 이끌 남녀 청춘들이 모였으니, 얘 방자야. 풍악을 울려라.” 할아버지가 물려 준 한복을 차려 입고 구성진 목소리로 장내를 웃긴 덕에 상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친구들은 나에게 회식 때마다 변사 역할을 하라 하였고, 나의 변사 역할은 참석자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이에 힘입어 163가지의 상황에 따른 표정을 노트에 적어 놓고 연습하여 TBC 연기자 시험에 응시하였으나, 2차 면접 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그만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예술적 끼를 발산시키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습니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예술적 끼가 있다고 칭찬하여 주던 어른들의 칭찬을 잊지 않았습니다. S예대에서는 방학중에 교사들에게 무용 강습의 기회를 제공하였는데, 나는 기꺼히 거기에 신청서를 넣었습니다. 청일점인 상황에서도 나는 열심히 무용을 배웠습니다. 현대 무용을 비롯하여 고전 무용과 탈춤, 에어로빅 댄스까지 배워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나는 거뜬히 소화해 내었고, 고전 무용 교수로부터는 당신의 제자가 되라는 제의도 받았습니다. 나아가 나의 예술적 끼는 문학에서 제대로 발휘되어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첫째, 나는 어린 시절부터 광대 기질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시절에는 조숙하여 ‘성탄의 밤’을 준비하다가 옆에 앉은 여자 아이의 볼에 갑자기 뽀뽀를 하여 주변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고, 총각 시절에는 맞선 상대를 만나 음식점이나 다방에서 나올 때마다 빳빳한 만 원 짜리 지폐가 수십 장 들어 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하면서 상대에게 여유 있는 척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한 번은 처갓집에 신선한 과일을 잔뜩 싣고 가다가 차에 펑크가 나서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서 가족들 앞에 자신감을 보이며 타이어를 갈아끼웠는데, 펑크난 타이어를 다시 끼우는 바람에 가족들에게 망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둘째, 나는 우둔하였습니다. 내가 포천군 일동면에 살 때의 일입니다. 초등 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매일 한두 시간씩 늦게 오길래 아내와 함께 담임 선생님께 사정을 알아 보러 갔습니다. 그랬더니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모든 과목에서 이해가 느려 한두 시간씩 수학과 음악 숙제를 하게 하고 하교시킨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글씨도 삐뚤빼뚤하게 써서 가정에서의 교육이 절실하다는 말까지 곁들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 글씨를 그렇게 썼다고 하였더니, 담임 선생님은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럼 아들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아빠가 초등학교 때 그랬으면 아들도 나중에 아빠처럼 박사학위를 딸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나는 나의 우둔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총각 시절, 내가 우둔함을 안 까닭에 결혼은 시력이 좋고 영리한 여성과 결혼하여 영리한 2세를 낳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H여고에서 전교 1등을 하였다는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결과적으로 아들의 유전적 요인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취직을 못해 친구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주일날이면 성가대석에서 주님이 기뻐하실 표정을 짓고 열심히 찬양을 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6-02
  • 기독교인의 행복론 -12
    후줄근한 바바리 옷차림으로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다가, 날카로운 질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LA 경찰청의 형사 콜롬보(피터 폴크 分). 드라마 도입부에 살인범이 먼저 밝혀지고, 범인의 완벽한 계획 범죄가 콜롬보에 의해 밝혀지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형식의 형사 추리물인 <형사 콜롬보>. 이 드라마는 미국 NBC를 통해 1968년 2월 20일과 1971년 3월 1일에 2개의 TV 파일럿으로 소개된 후, 1971년부터 1978년까지는 NBC에서, 1989년부터 2003년까지는 미국 ABC를 통해 13개 시즌에 걸쳐 방영되었으며, 국내에서는 1980-90년대 K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습니다. 리차드 레빈슨 외 4명이 극본을 썼고, 빈센트 맥에비티 외 4명이 연출하였지요.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인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꼭 형사가 아니더라도 극적 반전을 하는 인물은 많이 있지요. 고종의 부친인 흥선 대원군도, 안동 김씨 세력이 300여 년을 왕비를 안동 김씨 집안에서 간택하여 집권하는 동안, 잔치집에서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어리숙하게 보였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되지요. 안동 김씨 세력 등쌀에 시달리던 조대비가 대왕대비로서 다음 왕을 결정할 때에 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정함으로써, 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는 반전이 있게 되지요. 그가 어리숙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씨 왕족처럼 모반죄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겠지요. 이와 같은 인생 역전은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다운 멋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은 반전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멋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떠한 것과도 비견될 수 없을 만큼 멋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그 나라를 언어로 설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나 달란트를 맡긴 주인의 비유, 산상수훈과 같은 역설로 그 나라를 가르치지요.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마태복음> 13:34). 산상수훈에 나오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5:4)도 아주 훌륭한 역설이지요. 애통하는 자가 어떻게 복을 받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안다면 그 깊은 뜻을 가히 헤아릴 수 있게 되지요.예수님의 멋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에 바리새파와 부딪치지 않을 길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혼내지 않았다면, 로마 총독과 대제사장 등 정치인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면, 바리새파와 부딪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대제사장이나 로마 총독 앞에서도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병든 자를 고쳐 준 것이 잘못이냐며 항변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상심한 제자들에게 몸소 찾아가 몸에 난 상처를 보여주며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성령이 함께 함을 알게 하였습니다. 이는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며 아버지의 뜻을 성취한 아들의 멋이요, 인류를 사랑한 그리스도의 진정한 멋입니다.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많이 있지요. 1866년 평양 근처 대동강변에서 한 권이라도 더 조선에 성경을 보급하기 위해 조선군에게 잡힐 때까지 사력을 다해 강가로 성경책을 던진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 이 땅에 병원과 학교를 세워 근대의 터를 닦아 놓은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 당신의 두 아들을 죽인 학생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 등은 진정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거룩한 존재이지요. 이들 외에도 세계의 오지에서 열심히 헌신하는 선교사, 기도하고 말씀 보고 찬송하는 신자 들도 다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멋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하며 동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받을 멋진 일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지요.오늘도 나는 그리스도가 걸어간 거룩한 길을 반추해 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며 화해의 길을 열어 놓으신 분, 가난하고 소외받고 애통하는 자에게 다가가 위로해 주신 분,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분, 그분이 계시기에 나는 행복하고 낮고 천한 곳에서도 빛을 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골방에서는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만나고 북녘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며, 주일날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주님과 만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립니다.이제 조금 있으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옵니다. 봄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씨앗들이 단단한 흙을 뚫고 일어서게 합니다. 이들의 생명은 주님이 세워 놓으신 세계의 진실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5-19
  • 기독교인의 행복론 -11
    W교회 성가대에 들어가면서부터 표정 연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요? 찬양 가사 내용에 맞추어 슬프고 기쁜 감정을 적시適時에 표현하는 것입니다. 몇 년 동안 하다 보니 이제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처음엔 어색하였나 봅니다. 나의 표정 연기에 은혜 받은 교인도 있는 반면에, 또라이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이도 있다고 지인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표정 연기를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에 Y대 종교음악과에서 성가 지휘 강습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C교수의 “찬양의 마무리는 표정에 있다”는 말이 나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 강의 덕분에 교회에서 대예배 헌금송을 부르면서 마이클 잭슨의 다리를 떠는 춤 흉내를 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가해 오는 압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휘자는 두 눈 가진 원숭이가 정상이지만 한 눈 가진 원숭이들 사이에서는 바보가 되는 만큼, 혼자서 유별나게 표정 연기를 하는 것도 뭔가 튀어 보인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고민도 하였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무표정하게 노래 부를까, 아니면 나의 장기를 살려 표정 연기를 계속할까? 그렇게 하여 얻은 결론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찬양을 하면 표정 연기를 하든, 안 하든 상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거울 앞에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에 따른 표정을 제대로 하는 것도 만만찮았습니다. 잘못하면 교인들 앞에서 개그처럼 보여 예배를 망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괜히 튀는 행동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예뻐 보이려면 어떤 표정을 지어 보일까를 나름대로 연구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과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표정 연기는 연단의 과정을 더해 갔습니다.표정 연기를 통하여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라면 내 앞에 닥친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까?’ 하고 주님 편에서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오늘 K도서관에 이력서를 제출할까요, 말까요? 오전에 수필을 쓸까요, 설거지를 할까요? 오후에 J협회 총회에 참석할까요, 말까요? 이렇게 하다 보니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옆에 계신 주님과 같이, 내 옆에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동행하시니, 행동이 조심스럽고 신중하여졌습니다. ‘하나님, 저 예뻐요?’ 이는 평상시 내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맞게 처신하기 위해서 영원 위에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삶, 인류를 감동시키는 글을 창조하는 작업 등을 생각하니 삶이 즐겁고 경쾌하였습니다. 글을 쓸 때에도, 헬스장에 갈 때에도, 인터넷 바둑을 둘 때에도 즐기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식탁 앞에서 아내와 아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습니다.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예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소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제단 위에 올려진 양과 같이, 온 인류를 위해서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죄로 인하여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행복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와 동행함으로 죄짓는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을 이길 힘을 주님이 주시기 때문이지요.나는 한때 여자들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적이 많았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미모로 다가오는 여성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한때는 여류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서 그보다 더 즐거운 것이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 보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보람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름다운 멋임도 알게 되었습니다.가난한 자와 아픈 사람이 많았던 이스라엘, 당시 가장 황폐한 땅이었던 스블론과 납달리 땅에 춥고 삭막한 마굿간에 나셔서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함께 하신 주님이였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형벌을 피하지 않고, 다시 사신 후에도 상심해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 위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은 민중으로부터 외면받던 세리 직업을 가진 삭개오를 찾아가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애통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분단의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메시아로 걸어오십니다. 주여! 어서 오소서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5-12
  • 기독교인의 행복론 -10
    팔은 천장을 찌르듯 높이 쳐들고, 허리는 뱀처럼 또아리를 틉니다. 몸을 오십 센티미터 위로 떠오르게 하고, 머리를 사물놀이할 때처럼 흔듭니다. 얼굴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활기차게 돌리고, 팔은 풍차 돌리듯 마구 흔들어 댑니다. 이와 같은 동작을 규칙적으로 하면 몸부림춤이 됩니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를 때 하는 나의 몸짓입니다. 내가 ‘뭇여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방 시인’으로서 팔을 걷고 나선 것은 순전히 나의 예술적 끼를 발산하고 싶은 충동에서였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면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과는 격이 다른 품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감동시키는 에너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에너지는 평범한 일상에서의 행동으로는 선뜻 일어나지 않습니다. 뭔가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 고민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멋진 삶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강의 시간에 노래를 하게 된 것은 작가로서의 멋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를 탐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파마 머리를 하고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 어때요?”라고 물으면 학생들은 깔깔 대고 웃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안치환의 「내가 만일」에서)을 부르면, 강의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떠오르게 됩니다. 작가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은 영감입니다. 체험과 상상에서 재료를 가져오지만, 그러한 재료들을 모아 새로운 의미가 담긴 작품을 엮어내는 것은 영감입니다. 이 영감은 노력만 한다고 해서 갑자기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놀고 사색하면서 갈망해야 얻어지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소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들이 어떻게 이토록 재미있게 쓰지?’ 하면서 주로 멋진 구절들을 독서 카드에 적어 놓곤 하였는데,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는 오히려 사색하는 시간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놓기를 반복하면서 멋진 글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곤 합니다. 그러다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면서 조금 색다른 상상을 해 보곤 합니다. 피터 폴크 주연의 <형사 콜롬보>에 나오는 인물의 어리숙하면서도 냉철하게 사건을 추리해 가는 모습을 메모하기도 하고, 작가 이상李箱의 기이한 행동이 어떻게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가의 개성을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너는 시인들의 출판 기념회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너는 남산에 있는 문학의 집, 종로에 있는 H관, 서대문 역사 박물관, 안산에 있는 S카페 등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로 네가 사회자에게 다가가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신청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너의 제자가 반주 MR을 만들어 준 덕택에 거기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수필가 K는 사회를 보면서 네가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해서 순서에 넣었다고 청중들에게 알리는 바람에, 장내가 웃음 바다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너는 자신감이 쌓이고 넘쳐 ‘KBS 전국 노래 자랑’에 출연 신청을 하였습니다. 대개 신청한 사람들이 대중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너는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들고 예심장에 나갔지요. 600여 명의 신청자 가운데서 네가 본선에 뽑힌 것은 순전히 너의 표정 때문일 겁니다. 너는 오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십대의 표정을 짓는 괴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래서인지 16명이 본선에 오르는 무대에 네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딩동댕”이 아닌 “땡”으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너는 거기에 들지 않기 위해서 밤새도록 박자와 음정을 표정까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외웠지요. 그 덕에 너는 1500회 특집의 여덟 번째 순서에 노래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노래의 질보다도 표정에 신경을 쓰다 보니까, 노래가 자연스럽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땡”으로 처리되지 않은 것은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너는 주위의 지인들에게 1월 31일에 방송되니 시청하라고 대여섯 번씩 문자를 보냈습니다. 지인들은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네가 나온다니까 그냥 인사치레로 전국 노래 자랑을 시청하기로 하였습니다. 드디어 너의 순서가 되자 너는 온갖 인상을 써 가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인 한 사람이 친구 병문안을 갔다가 병실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 너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병실에 있던 환자가 투덜댔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힘들여 노래 부르지. 보는 나도 힘드네.” 그 얘기를 듣고 너의 지인은 얼른 병실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너무 목에 힘이 들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목을 푸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너의 그 개성을 지지합니다. 그로 인해 영감이 생긴다면 말입니다.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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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6-04-27
  • 기독교인의 행복론 -9
    하얗고 높은 캡, 길고 홀쭉한 가운, 그리고 어깨 위에 은빛으로 빛나는 계급장. 이것이 아내가 나에게 준 첫인상이었습니다. 아내는 한때 A본부 의무실에서 간호 장교였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아내의 손바닥보다 훨씬 큰 권총을 보여 주었을 때, 나는 솔직히 바짝 쫄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내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못 간 나는, 나의 몸 어딘가에 빈 곳이 있는 것 같아 여성 앞에서 당당하게 굴 수가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 나의 앞에 그 이름도 당당한 간호 장교라니. 직장 동료들은 내가 간호 장교를 사귄다고 했더니, “에이,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이런 내 심정을 알았는지, 아내는 언젠가 나의 직장 현관 앞에 운전병이 모는 포니2를 타고 와서는 혼인 신고 서류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얀 면사포를 쓴 아내와 데이트를 할 수 있었지요. 아내와의 데이트는 주로 돈암동에 있는 T제과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과점 안에는 빵을 사러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데 비하여, 우리처럼 데이트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아내가 간호 장교이니 만큼, 나 역시 아내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카알라일의 『영웅 숭배론』을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오지요. 시인으로서의 영웅, 과학자로서의 영웅, 제왕으로서의 영웅이 많이 나와야 그 나라는 밝아진다. 난 장차 영웅들이 될 인물들을 가르치고 있지요.”“책을 많이 읽으시나 봐요?”“예. 나름대로 가치 있는 시간 채우기라고나 할까요?”대충 이런 대화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리타분한 얘기를 당시에는 꽤나 진지하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집이 어디지요?”“예. 정릉이요. 김지미가 저희 동네 산다고 들었습니다만…”당시 영화 배우 김지미가 정릉에 산 것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달동네인 우리 집과는 상당히 떨어진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집은 대지가 73평밖에 안 되어 좁아요.”사실 우리집은 한때 시유지였던 땅이어서 우리 땅에 주변의 판잣집들이 차고 들어와 있어서 실제 땅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등기상으로는 엄연히 73평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때 내 말을 100 내지 200평에 비하여 73평이 좁다는 뜻으로 알아 들은 모양입니다. 결혼 후 우리집을 와서 보고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으니까요. 아무튼 결혼해서 신혼 생활을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닌 겁니다. 퇴근해서 별로 할 일도 없고 해서 벽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아내는 부엌일을 하다가 쏜살같이 들어와 말하는 겁니다.“그런 TV 볼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 봐요.”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닥달이 심해졌습니다. “당신, 너무 TV에 빠져 있는 거 아니예요?”사실 나는 뉴스에 관심이 많아서 채널을 돌려가며 뉴스를 보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총각 시절에 비하여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많이 줄였는데도, 아내의 성화가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대뜸 이렇게 말해 버리고 말았습니다.“여긴 군대가 아니야?”그러자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한참 있다가 그 말이 맞는 지 픽 웃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군대에서 사병들에게 지시하는 일이 많아서인지, 한때 집에서 잔소리를 많이 한 편이었습니다. 가만 있지 말고 청소 좀 해라, 빨래 좀 널어 달라 등으로 말입니다. 그 후로도 “여긴 군대가 아니야.”를 십여 차례 더한 후 아내의 잔소리가 줄어 든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아내도 실수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였습니다. 그 실수란 다름이 아니라, 아내가 병실을 순회할 때였습니다. 한 번은 병실을 순회하는데 환자들이 계속 킥킥 웃어대더라는 겁니다. 그러자 한 사병이 한 사병이 “장교님. 거울 좀 보세요.”라면서 픽 웃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랬다나요. 사무실에서 그만 급하게 화장을 하느라고 글쎄 눈썹을 반만 그리고 병실에 나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했지요. “거 봐. 사람이 실수도 좀 하고 그래야, 사는 재미가 있는 거예요.”그 후로 우리는 부부로 살아오면서 몇 번의 실수도 있었지만, 아내가 간호 장교였던 탓에 내게 습관이 배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을 알뜰히 사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직업이 가져다 주는 생활 습관이 있는 모양입니다. 한때 간호 장교였던 아내가 나에게 매겨 준 습관은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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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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