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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단대책 패러다임 바뀌어야
    기독교는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를 포용하고 있어 다이나믹 하다. 그만큼 다양성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심판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고 있다면 이는 모두 기독교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우리의 형제요 자매로 봐도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신학이 보수화 되고 경직되어 근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신앙운동을 ‘이단시’하여 배척하고, 끝내는 ‘사교’(邪敎)로 몰아 처단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신학의 진보나 새로운 신앙의 각성운동이 발을 붙일 수가 없다. 현재 한국의 각 교단 신학교의 교수들도 자신들이 공부한 신학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칫 이단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교단신학교육은 대학에서 좋은 기초학문을 전공한 우수한 학생들을 불러 모아 16세기 칼빈주의나 17세기 개혁주의 또는 19세기 정통주의나 보수주의 신학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그거을 전달하게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욕을 가지고 입학한 창의성을 가진 학생일지라도, 졸업 때에는 모두 그 교단의 교리, 그 교단의 제도만을 배워서 교문을 나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가 배운 질서가 아니면 모두 ‘우리 교단과 다르다’며 다 비진리로 낙인 찍는다. 그래서 이단을 만들기도 한다.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단 시비는 너무 가볍다. 이단 아닌 이단이 너무 남발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가 21세기 새시대를 이끌려면 이처럼 험악한 교계 풍토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단논쟁을 교회의 통일성과 정통성을 확인하는 신학논쟁으로 승화시키고, 오히려 거기에서 교리와 신학의 발전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정통주의와 색다른 신앙운동을 만나면, 그들이 가진 특징이 무엇인지부터 살피고, ‘나와 다른 것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나와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형제를 이단시 하는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연합과 일치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이단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추진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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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10
  • 서울교회 불신자 ‘당회장 직무대행’ 등장
    서울 대치동에 있는 서울교회(담임목사 박노철)가 분쟁에 휩싸인 끝에, 법원이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전문지식이 없는 변호사를 ‘당회장 직무대행’으로 파송해 교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는 물론 교회분쟁을 노회나 교단이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고 세속 법원에 판결을 의뢰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교회의 입장을 최소한이라도 살폈다면 전혀 기독교와 무관한 불신자 변호사를 지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재판부는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법에 따라 판단만 할뿐, 그것이 기독교든 아니든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할지 모른다. 또한 이전에도 불신자 변호사가 분쟁이 생긴 교회의 당회장을 하면서 교회로부터 수백만원씩 월급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과 신앙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의 당회장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을 지명하는 것은 재판부가 비난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뿐만 아니라, 교회는 불교의 전통사찰이나, 유교의 향교와는 전혀 다르다. 불교는 ‘전통사찰보전법’과 유교는 ‘향교재산법’에 의해 관리됨으로, 분쟁이 생기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진흥사찰의 보조.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보조” 받을 뿐 아니라, 그 기관 자체가 국가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단 한 푼의 경비도 보조 받지 않는 순수한 자율단체이다. 당연히 신도들에 의해 자율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에 분쟁이 생겨 법원에 그 판결을 의뢰했다 하더라도 국법에 의해 판단될 부분이 있고, 국법이 개입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교회법에 의하면 “당회장은 지교회 시무목사가 된다. 당회장이 결원되었을 때에는 노회가 임시당회장을 파송하고, 기타 사정이 있을 때에는 당회장이 위임한 자 또는 당회원이 합의하여 청한 자로 당회장을 대리케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양쪽이 갈라져 다투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쪽이든 불신자를 당회장으로 파송해 달라고 지명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찌해서 불신자 변호사가 당회장 직무대행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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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10
  • 우리사회 좌경화, 한국교회가 막아야 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종교개혁으로 신앙과 양심에 따라 탄생된 독일의 루터파 교회와 개혁파 교회의 약 80%가 나치를 지지했다. 그리하여 독일교회는 나치가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고, 유대인 6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 동안 침묵했다. 그 시기 동쪽 한반도의 한국 기독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적극 장려하고 솔선이행 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누구나 이단이나 반역으로 몰려 처벌되었다. 독일교회나 한국교회의 이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위배한 배신이요 반역이다.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어쩌면 종교의 자유가 현저히 침해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각급 종교집단들은 두고라도 한국교회조차 아무런 목소리가 없다. 좌파 정당과 문재인 정권이 노리는 것은 헌법을 개정해 사회주의를 만들자는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과 지적이 수없이 있는 데도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는 오히려 그들 좌파들을 편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결코 정치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이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해 좌우파 간 싸운다고 치부하더라도,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선교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 말살 당하고, 한국인이 집안의 전통인 성씨(性氏)마저 잃고 일제에 굴종한 것은 독일의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가 비판기능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기독교는 하늘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땅위에 문제는 외면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땅위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땅위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전국에 6만 개 교회가 있고, 수십만에 이르는 목회자가 있으면 뭐하나. 이들이 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徘)만 섬기는 자들”(롬 16:18)이 되고 만다면, 결국 교회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는 것이다.현재 우리사회에서 한국교회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미친 짓거리를 하는 우리 정치권과 좌경화 되는 우리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세력은 한국교회 밖에 없다. 한국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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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4-26
  • 부활 신앙인의 삶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 20).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자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그 사실을 증언하고 다니다가 유언비어 날조 혐의로 당국에 붙잡혀 심문을 받고, ‘말조심 하라’는 협박을 받은 후 훈방조치 되면서 당국자에게 한 말이다.예수 부활 이후 제자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겁에 질려 도망다니던 제자들도 모두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예수님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에클레시아, 즉 교회이다.이후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고, 로마로부터는 사회혼란 세력으로 몰려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며 끝내 승리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전히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공동체이다. 따라서 부활을 증언하지 아니하는 교회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기독교가 다른 세속종교와 다른 점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부활하여 땅에 자기 시신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유물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동물의 세계와 같이 생명이 있는 동안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하여 영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영혼의 불멸설이든, 수면설이든, 마지막 때에 죽은 자의 부활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 기독교만이 가진 인간관이다. 교회는 이런 소망을 전파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답게 다른 세속적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달리 세상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고 하신 밀씀을 청종해야 한다. 이것이 곧 부활신앙을 가진 전도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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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4-26
  • 내년 총선 부정선거 감시기구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내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 300석 중 260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밝혔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내뱉은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부정선거를 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더불어민주당은 20년 장기집권을 말하고 있는데, 지금 문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부정선거를 해서라도 헌법을 바꾸려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정말 국민이 정신 차례야 할 때이다. 현 좌파정부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가져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무력화 시키고, 공산사회주의 통제경제체제를 이루어 북한과 손잡고 연방정부를 만들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공산사회주의는 지난 세기 실험에서 패배하고 폐기된 체제이다. 공산사회주의로는 새로운 시대의 인민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21대 총선은 결국 우리국민이 자유민주의를 지키며 계속 번영할 것인가, 아니면 공산사회주의를 용인하느냐 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선택이다. 따라서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보수당 편에 서야 하고, 공산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은 소위 진보당 편에 서면 된다.그런데 우리사회에서 공산사회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핵심적 세력은 한국교회이다. 물론 한국교회 안에도 좌파는 있다. 그러나 그들 좌파들도 우리사회가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독재체제인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도 억압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종교자유를 억압하는 북한 공산집단의 박해를 경험했다. 해방 후에 3.8 이북에 살던 교인들이 대거 남쪽으로 월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하다. 총선에서 부정선거를 감시하고 보수우파의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나서서 조직적 부정선거 감시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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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4-23
  • 통일시대, 한국기독교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한반도는 통일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처럼 도둑같이 어느날 올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통일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지금 이때 한국기독교는 통일한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통일을 달라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는 하는데, 막상 통일을 대비하는 선교적 비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통일이 되면 북녁땅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교회의 교파주의 또는 교단주의를 그대로 이식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된 통일국가에 걸맞는 ‘하나된 기독교’로 나갈 것인가 하는 논의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분열은 통일한국에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무조건 먼저 모든 교단은 교파별로 통합하고, 전통별 교파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합과 일치기구가 필요하다. 그 명칭을 ‘한국기독교’ 같은 것으로 내걸면 어떨까. 거기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교파별 전통은 그대로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교회들이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고, 가까이는 중국교회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가르치는데, 교회가 진보니 보수니 하며 갈라져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의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통일한국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기독교 기구가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너무 이기주의적으로 방종하고 있다. 누구나 교단 간판을 내걸 수 있다하더러도 똑같은 정치체제, 똑같은 신앙고백, 똑같은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200개, 300개 교단으로 갈라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래 놓고 교권집단을 만들어 교계에 군림할려는 짓을 하니 제대로 된 교회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한국기독교는 연합과 일치를 통해 어떤 모양으로든 당장 통일한국을 준비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18
  •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로 완성된다. 따라서 부활신앙이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이 생전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는 말씀을 하셨고, 또 예수님이 실제로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미혹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초기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사상은 고대 종교사상에도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실제로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예수는 하나님의 품에 있던 독생자로서, 그 자체가 태초에 존재한 생명의 빛이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무던 속에서도 그대로 있어 썩지 않고 부활에 이른 것이다.그러면 죄로 인해 이미 ‘죽었다’고 선고를 받은 인간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자는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죽지않고 실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변화하게 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4).현대교회는 세속화로 인해 부활신앙이 약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부활신앙을 돈독히 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18
  • 고난 주간
    역사적 기독교는 부활절 이전 7주간의 매 주일날을 뺀 40일간을 사순절로 정하고 기도와 금식과 절제로 지켜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주간을 고난 주간으로 보낸다. 이는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을 깊이 명상하며 경건과 함께 결제로 그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기 위함이다.어떤이들은 이것을 중세 가톨릭교회가 제정한 의식이라고 주장하며 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다. 부활절을 앞두고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명상하는 일은 가톨릭교회가 확립되기 이전 초대교회에서부터 있어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보고 가장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를 지나면서 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신비화 하여 그 의미를 왜곡하고 미신화 하는 바람에 종교개혁 시대에 그 중요성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 고난에 의해 탄생하였으므로 그 고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다. 첫째,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비밀을 맡은 기관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아 흘린 “자기 피로 사신 것”(행 20:28)이고,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것이다. 또 창세기 2장의 첫 아담의 신부가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물과 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지 아니한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따라서 현대교회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또 우리가 이 시대의 삶 속에서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 주간은 하나의 통과의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점검하는 기간으로 삼는 것이 고난 주간의 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다. 이번 고난주간도 온 교회가 그런 정신으로 맞아 세속에 물들지 않게 경건한 영성적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4-10
  • 목사는 신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아니다
    중세 종교개혁은 만인사제론이 기본 정신이었다. 그리스도교회에서 본디 ‘사제 계급’은 없었다. 그래서 사도시대의 지도자는 ‘장로’였다. 사도들도 모두 사제나 제사장이 아니라 장로로 불렸다. 이는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직접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러다가 교회가 교권적 제도화를 꾀하면서 그리스도와 사람 사이에 또 하나의 중재자로 끼어넣은 계급이 사제(司祭)이다. 중세 종교개혁은 이것을 본래 자리로 돌려 놓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500여년이 지나다 보니까 이젠 개혁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에도 새로운 사제계급이 나타나고 있다. 이름하여 ‘신령한 목사’라는 사람들이다. 목사는 본래 장로에서 왔다. 장로는 사제가 아니다. 그저 평신도 가운데 교회를 돌보는 지도자로서 세움을 받은 자일 뿐이다. 그런데 목사안수를 받으면 무슨 영적 권능을 받은 것인양 특수한 존재로 변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 노릇을 하려 한다. 이는 만인이 사제인 종교개혁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다.교회에서 목사가 신령한 존재로서 특수계급화 되면 그 교회는 교권주의 교회로 변하게 되고, 목사와 교인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생기게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분쟁의 저변에는 대부분 바로 이 문제가 깔려있다.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신령한 존재가 되어 군림하려 하고, 교인들은 그것을 인정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의 갈등에서 생기는 일이다.목사안수의 라이센스는 교회를 맡아 관리하며 전문 설교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목사는 하나님과 교인사이의 중재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목사의 기도를 교인의 기도보다 더 잘 들으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목사나 교인이 똑같은 평신도일 뿐이다.장로교는 목사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을 양육하는 목자, 그리스도를 봉사하는 종,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깨우치는 교사,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 그리스도가 설립한 율례를 지키는 청지기라고 한다. 어디에도 그리스도교회의 특수계급이라는 말은 없다.
    • 연지골
    • 사설
    2019-04-05
  • 이단 사이비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
    19세기 말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이후, 불과 한 세기 만에 기독교인이 1천만 명이 되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한국 기독교 주변에는 수 많은 ‘재림 예수’가 나타났다. 줄잡아 한 스무 명은 넘을 것이다. 어떤 이는 ‘감람나무’, 또 어떤이는 ‘보혜사’ ‘이긴자’ ‘제3엘리야’라고도 하고, 또 아예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자도 있었다. 이들이 모두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나온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가짜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감언이설을 따르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도 요한계시록 가지고 작란 치는 자들이 많다.사람은 영적인 동물이라서, 한번 이런 더러운 영적 물을 먹으면 거기에서 헤어나기가 어렵게 된다. 주변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해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 뭘 몰라서 그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끝내는 패가망신 하거나, 자신이 또 다른 재림 예수로 등단해 가짜 대열에 합류한다. 통일교도, 전도관도, 장막성전도 수 많은 아류(亞流)를 양산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 주변의 이단 사이비 신앙의 유형이다.그러면 왜 한국에만 이런 이단 사이비가 많이 나타나는가? 물론 이와 유사한 집단들은 다른 나라들에도 있다. 그러나 한국이 유독 더 심하다. 아마도 한국인의 종교심성이 타민족보다 더욱 영성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순진한 종교심성을, 사이비적 욕심으로 경전을 오각(誤覺)한 이단 사이비들이 노리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한국인의 오랜 의식 속에 남사고예언이나 정감록 같은 비결(秘訣, 예언) 신앙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비결을 들고 나오는 사람에게 쉽게 넘어가게 된다.그러나 그런 사상들이나 주장들은 기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동정녀를 통해 임마누엘로 오리라고 한 초림 예수와 달리, 재림 예수는 더 이상 여인의 몸을 통해 어린 아이로 오지 않는다. 재림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행 1:11). 그것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쫓아 강림하신다”(살전 4:16). 어느 날 슬그머니 나타나 ‘내가 재림 예수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발 이단 사이비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라. 그들에게 속는 자는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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