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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측 교회수호연대의 성명서
- 지난 연말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모인 ‘예장통합 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가 발표한 성명서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몇 가지 문제를 담고 있다. 첫째는 신학교수들이 신학생들을 선동하고 교회를 해롭게 하는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영방송을 비롯한 세속언론들이 충분히 확인되지 아니한 내용으로 교회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며, 셋째는 한국교회가 세운 CBS가 사회여론에 편승하여 교회를 폄하하고 있다고 규탄한 것이다.이들 가운데 세속 언론들의 교회 비난은 그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그 조직과 신도들이 정한 규약에 따라 치리되는 특수성을 가진 기관이다. 교회를 유지하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신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세속적 잣대로 잴려고 해서는 안된다.교회가 헌금을 거두어 어디에 얼마를 쓰던 그것은 교회의 자유이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에 위배되거나 반사회적 활동에 쓰이지 않는한 그 교회의 신도 아닌 사람은 누구도 거기에 간여할 수 없다. 남의 교회 운영에 개입해 여기에다 밤 놓아라, 저기에다 대추 놓아라 하는 것은 권한 없는 자들의 월권이다. 왜 세속 언론들이 자신들이 단 한 푼의 돈도 헌금한 일이 없는 교회운영을 시비하는가? 한때 MBC PD들은 자신들이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사회적 목탁이 되겠다고 선언한 일도 있다. 주제 넘는 일이다.또 신학교수들이 신학생들을 선동해 교회를 해롭게 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교회와 신앙을 훼손하는 악한 세력에 맞서 순교적 각오로 나서는 일이 아닌한 신학교수들은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옳다. 특히 교단 소속 신학교수들이 특정교회를 공격한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교회의 개혁이 아니다.그리고 처음에 선교방송으로 시작한 CBS가 기독교방송이란 이름을 뗀 후에 ‘교회개혁’이란 화두로 한국교회를 공격해 해롭게 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기독교를 변호하고 한국교회를 호교(護敎)해야 할 CBS가 “교회를 폄하하고, 교회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방송의 진행자로 세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언론 자유만 내세울 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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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측 교회수호연대의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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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측 에큐메니칼 정신 회복하라
- 예장통합측은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교단으로서 그동안 신학과 교단운영에 에큐메니칼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에큐메니칼 신학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교단의 에큐메니칼 정신은 사라졌다. 교회협과 한기총의 양다리 영향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도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다보니 통합측은 교권만 난무하여 1년짜리 총회장이 되기 위해 수십억씩 돈을 뿌리는 타락현상을 드러냈다. 당연히 교단의 정체성이 모호할 수 밖에 없다.그런 사실을 확인시킨 예가 지난 연말에 벌어졌다. 지난 12월 17일에 통합측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제103회 총회 결의 이행촉구대회”를 가지고, “총회 임원회는 총회 법리부서를 맡은 인사들의 103회 총회결의에 위배되는 모든 언행에 대해 책임을 갖고 엄중히 대처하라”고 선언했다.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3일 후, 12월 20일에는 통합측의 목사 장로들이 모여 “예장통합 정체성과 교회수호연대 창립총회”가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그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우리는 교단의 정체성 회복과 법질서가 바로 서도록 요청한다. 근자에 예장통합총회는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졌으며, 제103회 총회는 여론에 편승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인 특정교회의 자유를 훼방하고, 교단의 헌법과 규칙 및 절차를 유린한 총회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헌법을 위반한 제103회 총회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같은 103회 총회 결의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통합측은 한국교회의 중심교단이다. 이처럼 통합측 교단의 정체성이 모호하니까 한국교회 전체 연합과 일치가 파괴되고, 한국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측이 에큐메니칼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통합측이 살고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교단의 에큐메니칼 정신을 회복하고 ‘에큐메니칼맨’을 양육하는 것이다. 그런데 통합측 인사들은 한국교회의 보수측과 항상 엇박자를 놓는 교회협의 운영만 보고 에큐메니칼 운동을 경계하고 있다. 자연히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이끌 지도자 양육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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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측 에큐메니칼 정신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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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도 보수가 망치고 있다
- 한국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사에서 2018년은 가장 실망한 한 해였다. 연합과 일치를 위해 탄생한 연합단체가 아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진보측을 대변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한국교회가 갈라지기 전 1924년에 조선예수교공의회로 출발했다가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분열없이 하나로 이어오고 있지만, 소위 보수측을 대변한다는 연합단체는 수차례 창립되고 또 분열하기를 거듭해 왔다.박정희의 유신정부와 싸워온 교회협은 1980년대 신군부가 들어서자, 인권침해와 언론탄압을 일삼는 신군부에 대해 여러 명의 교회협 총무들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저항했다. 그러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기독교 내부의 보수측에서 교회협에 대항할 수 있는 연합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1983년 12월에 보수교단들이 모여 창립한 것이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이다. 보수교단협에는 합동측을 비롯한 소위 한국교회의 대표적 보수교단들이 다 참여했다. 그러나 보수교단협은 오래가지 못했다. 1987년 5월 ‘한국개신교교단협의회’(지금의 한국기독교교단협의회)가 창립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한국개신교교단협의회도 교계로부터 그 대표성을 인정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1989년 4월 한국교회 각 교단 원로들이 모여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그것이 한동안 보수교단을 대표해온 한기총이다. 이 한기총은 세력이 좀 늘어나자 교권을 탐하는 인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대표회장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되돌아와 다시 대표회장이 되기 위해 돈을 뿌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다가 한기총은 결국 말도 안되는 이유로 분열하고 말았다. 그것이 ‘한국교회연합’(지금의 한기연)이다.대교단들이 빠져 나가자 한기총은 군소교단들의 군웅활거 시대가 되어 그 이름만 남긴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교계는 갈라진 연합단체를 합할 생각은 않고, 아예 또 다른 연합단체를 창립하고 나섰다. 이름하여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다. 이러고도 한국의 보수교회가 정부와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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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도 보수가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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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우리 사회와 교계 언론의 거울론
- 언론이 사회의 거울이라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현상이 그 거울에 비치게 된다. 그런데 그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이 추하다고 여겨 아예 거울 자체를 깨뜨려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정부의 ‘가짜 뉴스’ 척결소동도 거울을 못마땅히 여긴 권력자들의 보호본능에서 생긴 일이다. 사실 권력은 어느 시대에나 언론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을 없앨 수 없을 바에야 그 언론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도록 압력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다.그런데 근래에 우리사회 언론은 거의 모두가 정권에 코드를 맞추어 사회전반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분명히 사건은 있는데 메이저 언론들에는 아무런 보도가 없다. 정부의 압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언론이 알아서 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이 그렇다면 정권도, 국민도 불행한 일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교계도 마찬가지이다. 교계언론은 교회와 목회자들의 거울이다. 그런데 소위 대교회 목회자들이나 내노라 하는 교계인사들은 교계언론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특히 교인이 좀 모여 돈과 권력과 명예가 생겨 숨길 것이 있는 목사들은 자신의 모습이 액면 그대로 교계언론에 비치는 것을 싫어한다. 어떤 때는 아예 거울의 수은을 제거해 버리려고 드는 경우도 있다. 광고도신문도 끊어버리는 것이다.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보인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그 얼굴을 닦고, 머리를 단정히 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된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러면 아예 거울이 더러우면 어떻게 할 것인가고 묻는다. 사실 더러운 거울이 있을 수도 있다. 교계언론이 근본적으로 왜곡과 오해로 깨끗한 목회자를 추한 모습으로 비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문서선교를 자임하고 나선 사람치고 의도적으로 교회를 해롭게 하고 허위를 날조할 수야 있겠는가.그러나 언론이 얻은 정보가 잘못되었다면 건전한 목회자에게 폐해를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목회자 스스로 진실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함으로써 언론의 오해를 극복할 수 있고, 교정할 수 있다. 기분 나쁘다고 하여 거울 자체를 깨뜨려버리려는 만용을 부려서는 안된다. 이는 정권이나 교계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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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우리 사회와 교계 언론의 거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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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탄생
- 누가복음은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따라 갈릴리 사람 요셉이 그 정혼자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고향 베들레험에 갔을 때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았다. 그 때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9, 10)라고 했다. 이에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베들레험으로 달려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천사들이 전한 소식을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눅 2:1~20)라고 했다.이것이 나사렛 예수의 탄생이다. 예수의 탄생을 성탄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영원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의 탄생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되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이다.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안다면, 누구라도 성탄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에 대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면저 나신 자이고,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라고 말한다.즉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고, 만물의 머리이며, 인류의 구속자이시라는 말이다. 아기로 우리에게 온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목자들에게 계시한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나 강보에 싸인 이 아기 예수가 곧 그리스도임을 전한다. 그래서 예수의 탄생은 곧 성탄이다. 성탄절을 맞는 모든 인류가 경성하고 기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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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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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가 답이다
- 1945년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한반도에서 남북은 각기 전혀 다른 정치체제를 받아들였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북한은 인민민주의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선택했다. 북한은 1950년 남한에 비해 월등한 조건을 앞세워 전면전을 일으켰다. 그 결과 한반도는 남북 모두가 폐허로 변했다. 1953년 휴전 이후 65년이 지난 지금 남북은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공산주의자들이 그렇게도 혐오하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선택한 남한은 G20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공산주의를 택한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이로써 어느 쪽의 선택이 옳았는가는 판가름난 것이다.흔히 ‘인민의 낙원’이라고 떠벌리던 북한의 민생파탄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압박으로 경제를 일으키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틀린 말이다. 한 마디로 평하면 북한은 김일성 공산왕조가 국가경영에 실패하여 수백만의 인민을 굶겨 죽인 것이다.전쟁이 끝난 후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 교류하며 글로벌 경제체제로 나아가는 동안, 북한은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과만 교류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공산권이 무너지자 북한은 결국 고난의 행군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것은 북한 스스로가 자초한 일일 뿐이다.그 결과 북한은 나라다운 나라의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지금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여 자본주의 사회로 밀려오는 인민의 대열이 이를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공산주의의 정치실험은 이미 끝났다. 그럼에도 아직 마르크스의 망상에 젖어 공산주의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주체사상파들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들이 장악한 작금의 우리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어디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는 것은 이미 실패한 체제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이 번영하고 인민을 잘 먹일 수 있는 길은 실패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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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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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목사 자격 심사는 종교자유 침해이다
- 서울고등법원 민사부가 지난 5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서울 서초동 예장합동측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대해 합동측 목사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오 목사는 미국장로교단(UPA)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편입하여 연구과정을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를 거쳐 합동측 목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합동측에서 목사고시와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랑의교회 위임목사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합동측은 타교단 목사가 합동측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2년간의 ‘편목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오 목사는 편목 과정이 아니라 ‘일반 편입’과정을 거쳤다고 본 것이다.이에대해 사랑의교회와 동서울노회는 “오 목사는 이미 미국장로교단의 목사이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소정의 과정을 마친 후 강도사 고시에 합격하고 인허를 받았다”며, 목사안수를 두번 받는 일은 없는데 법원이 사실을 오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한 마디로 이 사건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목사의 자격은 소속 교단의 헌법에 따라 노회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다. 즉 목사는 노회가 양육하고, 노회가 장립하며, 노회가 지교회에 파송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일지라도 그 노회가 그 자격을 인정했다면 당연히 그 교단의 합법적 목사인데, 단지 오 목사에 대한 편목 과장의 해석이 달라 소송이 제기되었다는 이유로 법원이 그것을 판단한 것이 잘못인 것이다. 법원이 목사의 자격 문제를 판단하기 시작할 때, 이미 대한민국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이 침해된 것이다.교회의 권징에 해당하는 목사 자격에 관한 시비가 어떻게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기독교의 목사 자격의 문제는 결코 사법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사랑의교회 오 목사에 대한 ‘목사위임 결의’를 법원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았으니, 결국 법원 스스로 자충수에 빠진 셈이 되었다. 목사의 자격 시비는 어디까지나 교단 내부에서 판달할 문제인데, 법원이 나서서 그 자격 유무를 판단한 것은 종교 자유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닌 종교자유 고유영역을 침해한 본 판결은 대법원에서 바로 잡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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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목사 자격 심사는 종교자유 침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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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망하는 길로 가는 총체적 현상
- 한 사회가 망하는 데는 복합적인 총체적 현상이 얽혀있다.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 국가 안보에 대한 군의 무능과 정신적 해이, 국민의 도덕적 타락과 성도덕의 붕괴 등이 그런 현상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풍조가 바로 이런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구성원들의 광범위한 성도덕의 타락은 사회 붕괴의 현상 중 가장 대표적 풍조이다. 인류 역사에서 성적 타락이 한 사회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지적은 수도 없이 많다. 로마제국의 멸망도 성적 타락과 연관이 있고,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성적 타락에서 찾고 있다.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성적 일탈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기혼자나 미혼자를 불문하고 성인의 불륜은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청소년들의 성적 일탈도 심각하다. 심지어 세속적 풍조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할 목회자 세계에까지 성적비행이 파고 들고 있다.뿐만 아니라 교사, 의사, 판사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교사는 다음세대에 지식을 전달하고 인성을 길러주어 그들에게 옳고 그름과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친다. 또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며, 판사는 정의를 바로 세운다. 그런데 교사가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왜곡된 지식을 전달하고, 의사가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돈을 더 중시하며, 판사의 재판이 권력이나 돈에 휘둘려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망조(亡兆)가 든 사회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이와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그러면 이런 사회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래서 설교자가 필요한 것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교회뿐 아니라, 우리사회를 살리겠다는 소명감을 가지고, 이 시대를 향해 바른 설교를 해야 한다.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규탄하고, 국민의 도덕적 삶을 촉구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시대 교회에 주어진 사명이다. 이 사명을 감당하려면 무엇보다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 스스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설교자가 책잡힐 것이 없어야 그 설교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도 사회로부터 질시를 당하고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희망을 걸데는 교회밖에 없다. 종교가 아니고는 어떤 것도 모든 인민을 교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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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망하는 길로 가는 총체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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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예언자 정신
- 주전 600년경 예레미야는 여호와로부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 집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예레미야는 자신에게 온 이 예언의 말씀을 여호와의 집에 모여있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 앞에서 선포했다.그러자 거기 모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소리쳤다.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방백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죽음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같이 이 성을 쳐서 예언하였느니라”(렘 26: 8-11). 그러나 나는 여호와의 명을 따랐을 뿐이니 너희 좋을대로 해보라는 예레미야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그를 끝내 죽이지 못했다.이것이 소명받은 예언자의 자세이다. 오늘날 예언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에게 대언하는 설교자이다. 설교자는 성경을 읽거나 기도 중에, 또는 신문을 보거나 명상 중에, 깨달음이 있으면 그것이 재앙이든, 축복이든 가감없이 설교를 통해 설파해야 한다. 혹여 국가 권력이나 교권이나, 또는 시민사회의 항의가 두려워 할 말을 못한 채 얼버무리고 만다면, 이는 설교자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책임은 엄중한 것이다.작금 우리사회는 목회자들의 설교가 사회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설교가 자신의 교회 안에 모인 성도들의 영성에만 치중한다면, 이런 설교는 교인을 늘리고 기복주의자는 양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할 수는 없다. 설교는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삶이 변화된 성도들에 의해 사회가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변화가 따르지 않는 것은 감동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설교자들은 요즘 우리사회의 1인방송 뉴스해설 진행자들의 수준만도 못한 경우가 많다. 현대 교회의 설교자는 모두 예언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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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예언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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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성 교단의 통합 선언
- 일명 순복음교단으로 알려져 있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가 분열한지 10년만에 통합을 선언했다. 네 가닥 혹은 다섯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기하성교단 가운데 대표적 교단인 ‘여의도순복음총회’와 ‘서대문총회’가 11월 20일 역사적인 통합을 이룬다고 공고했다. 이들은 기하성총회가 성령으로, 미래로 새시대를 선언한다면서, “지난 수년동안 지속된 갈등과 정쟁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나 되어 기하성총회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천명했다.기하성은 20세기 초 미국교회의 현대오순절운동에서 비롯된 성령운동을 주도하는 교단이다. 이런 교단이 한국에 와서 여러 이유로 갈라지게 시작해 지금은 5~6개 교단으로 갈라져 있다. 성령은 하나인데 성령운동 교단이 갈라지는 것은 신앙의 정체성과 윤리적 패배이다. 그나마 이번에 두 교단이 통합을 선언한 것은 그래도 한국교회에 하나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하성은 6.25 전쟁 직후 1953년 4월에 한국교회의 아웃사이더 교단으로 창립되어, 장로교 중심의 한국교회에 다이나믹한 성령운동으로 부흥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교회와 교단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지 못하고 1980년대에 기하성과 예하성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하는 등 통합과정이 있었으나, 끝내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예하성과 다시 갈라섰다. 그 과정에서 기하성 자체의 분열이 심화되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그래도 기하성은 한국교회의 주류교단에 편입될 수 있었다. 지금은 여의도총회와 서대문총회 외에 광화문총회와 신수동총회가 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두 교단의 통합은 매우 큰 상징적 의미가 있다.그러므로 기하성은 두 교단의 통합으로 만족하지 말고, 나머지 교단들도 하나가 되어 명실공히 순복음교단의 대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순복음교단의 통합을 시작으로, 장로교의 통합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로교는 같은 신학, 같은 신앙,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 300개 교단으로 갈라져 있다. 여기에는 아무런 명분도 없는 교단들이 수두룩하다. 이래서는 안된다. 장로교 대통합운동도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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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성 교단의 통합 선언

